115 발아와 발악
“연습한 대로만 하는 거야.”
“믿는다.”
“맡겨만 둬.”
부원들은 아직 모래 병사와 싸우고 있는 한스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서로를 응원해 주었다.
한스와 정면으로 맞서게 될 벨린다와 카론은 후방에서 보조해 주는 아스카와 고드윈에게 거의 목숨을 맡긴 것과 다름없었다.
반대로 앞에서 버텨주는 카론가 벨린다가 없다면 아스카와 고드윈의 목숨도 위험해진다.
한 명이라도 무너지면 와르르 전체가 쓰러지는 도미노의 형태.
그러나 완성 상태만 유지한다면 한스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간다.”
먼저 선공은 가장 높은 공격력을 가진 고드윈의 백염.
현재 한스는 모래 병사에게 정신이 팔려 있으므로 자신들의 마법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다.
심지어 육안은 어둠으로 가려놓은 상황.
의지할 것은 기감뿐이다.
“화권!!”
힘찬 기합과 함께 고드윈의 손이 하얗게 물들면서 맹렬한 백염이 한스에게 날아갔다.
갈수록 크기를 부풀리던 백염은 끝에 다다라선 꼭 불로 된 해일과 같아 보였다.
화르르르르-!!
“이건 또 뭐야?”
한스는 모래 병사의 공격을 피하고 뒤통수를 지지는 뜨거운 열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소환한 아수라 좀비를 한스는 벽처럼 쌓았다.
열에 기본적으로 내성이 있는 아수라 좀비이거늘 백염이 직접적으로 닿자 좀비는 재로 변해 있었다.
“젠장, 쉬엔이랑 크론은 뭐 하는 거야.”
육안으로는 식별이 어려워 저주를 걸 수가 없었고 온전히 저들에만 집중할 수도 없었다.
슈화아아악-!
모래 병사의 공격이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사의 마법을 고개를 틀어 겨우 피한 한스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반대편에 있는 둘을 탓했다.
“우린 병사와 합을 맞춘다는 식으로 움직인다.”
“알았어.”
이 어둠 속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거리는 전방 1M.
흑마법사는 그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으나 부원들은 달랐다.
데카드는 흑마법사의 표면을 감싼 어둠의 색깔을 바꿔 부원들에겐 환한 빛 속에 있는 것처럼 잘 보이게 했다.
모래 병사의 위치도 마찬가지.
벨린다와 카론은 각각 다른 방향에서 치고 들어왔다.
“네놈들이 함정의 주인인가? 만약 그렇다면 곱게 죽지는 못할 거다!”
함정 때문에 몇 번을 헤매고 돌아왔던 걸 떠올려보자면 이놈들을 천 갈래로 찢어버려도 시원치 않다.
카론은 쓸데없이 입을 열지 않고 묵묵히 주먹에 살의와 마나를 담아냈다.
자신을 실험용 쥐로 썼던 이들에 대한 복수심.
눈앞에서 잔인하게 죽어간 자신의 가족과 친구.
그 모든 복수의 칼날이 지금 이 주먹에 담겨 흑마법사에게 날아갔다.
“강체화.”
티이라의 비전 마법이라 할 수 있는 강체화.
몸을 강철과도 같은 강도로 바꾸지만, 갑옷처럼 사각지대도 없고 무게도 없는 아주 특별한 마법이다.
그러나 주먹을 지르려고 한다면 시야 범위 1M 안에 들어와야 했고 현재도 그러고 있다.
“감히 내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다니! 쓰러……!”
저주의 영창 주문인 ‘쓰러져라’가 발동하기 전에 카론은 자신의 속도를 십분 활용했다.
주문이 완성되기 직전 카론은 다시 어둠속에 몸을 맡겼고 한스는 잠깐 당황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벼락.”
정신을 차릴 틈새도 없이 귓가에 들리는 찌릿한 뇌명.
콰르르르릉-!!
번개가 다발로 위에서 쏟아졌고 한스는 입술을 깨물며 본 베리어를 썼다.
높은 등급의 몬스터 뼈로 이루어진 한스의 본 베리어는 항마력 성능을 갖춰 이런 공격으론 뚫리지 않았다.
번개들이 베리어에 막히고 휘둘려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쯧.”
저주에 걸릴 틈을 주지 않으며 카론이 빠지고 다시 벨린다가 공격권을 잡은 것은 좋았으나 방어가 생각보다 훨씬 더 단단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공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백염의 거창!”
“거스트 오브 윈드!”
고드윈이 자신의 백염을 날카롭게 뭉쳐 하나의 커다란 창을 만들고 아스카는 거친 돌풍으로 힘차게 백염의 크기를 부풀려 주었다.
하늘에서 점점 떨어지는 커다란 백염의 창.
한스는 똑같이 본 베리어를 들어 올렸고 거창과 뼈들이 만들어낸 보호막이 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어둠의 안쪽을 순간 밝게 만들 뻔한 빛이 거창에서 폭발했고 본 베리어를 이루고 있던 뼈들 중 일부가 후두둑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 충격은 온전히 베리어가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젠장! 쉬엔! 크론! 이 새끼들 좀 맡아봐라! 난 지금 바쁘단 말이야!”
본 베리어로는 부원들을 막고 자신은 또다시 시작된 모래 병사의 공격을 막아야 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럴 때 놀고 있는 그 두 놈이 하나씩 도와주면 얼마나 좋을까.
한스는 자신의 것을 그대로 베낀 마법을 피하거나 막아내며 한편으론 기감을 돋웠다.
“어디 있느냐…… 내 당장 사지를 찢어주겠다.”
기감으로는 지금 이 어둠 속을 활보하며 기회를 노리는 네 명의 마법사가 똑똑히 잡혔다.
자신은 당장 갈 수가 없으니 지금은 이것들을 이용할 차례다.
“놈들을 물어뜯어.”
간단한 명령을 받은 좀비들은 산 자의 기운을 찾아 어둠 속을 걸어 다녔다.
이제 놈들은 저것들을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거다.
역시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자신을 향한 마나가 줄어들었다.
필시 좀비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후후…… 그놈들은 코어를 부수지 않는 한 절대 죽지 않는다. 너희 같은 애송이들이 과연 코어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까?”
원래라면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원래라면.
어둠 안에서 세세한 조종을 맡고 있던 짹짹이는 좀비가 소환되자마자 마수의 감각으로 코어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흑마력을 느끼지 못하는 부원들은 전혀 느낌조차 오지 않았다.
하여 짹짹이는 흑마법사에게 했던 것처럼 어둠의 색깔을 바꿔 코어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오오! 여기구나!”
아스카는 훤히 드러난 약점에 얼음송곳을 꽂아 넣고 카론은 묵묵히 좀비를 다진 고기로 만들었다.
재빠르고 강력한 위력의 공격이 가능한 벨린다는 제일 먼저 나서서 좀비들을 처리했다.
코어를 정확하게 꿰뚫은 찌르기.
한스가 풀어놓은 수십 개체의 아수라 좀비들은 5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소멸했다.
그것은 한스가 준비 중이던 마법도 끝마치지 못할 정도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정말 좀비들이 모두 죽었다고?”
이미 죽어있던 것들에게 또 죽었다는 표현은 맞지 않지만 한스의 말이 옳았다.
그의 좀비는 단 한 마리도 남지 않고 모두 소멸했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빨리……. 코어의 위치를 전부 알지 않는 한 이런 건 불가능한데…….”
그의 멘탈이 대지진처럼 흔들리는 사이 모래 병사의 공격이 복부에 적중했다.
“커헉!”
흑마력으로 이루어진 공격이라 상처나 내상은 없었으나 충격은 그대로 전달되었다.
한스는 차오르는 고통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입에 고인 침을 바닥으로 거칠게 뱉었다.
“이젠 질린다, 질려. 뒷감당이고 뭐고 내 마음대로 할 거야.”
한스의 눈이 살짝 풀리고 어깨는 나른하게 축 처져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가는 대로 흑색의 선이 움직였으며 그것은 곧 마법진이 되었다.
“쉬엔! 크론! 알아서 피해라!”
같은 경지에 있는 흑마법사들에게까지 경고를 할 정도로 지금 한스가 펼치려고 하는 마법은 위험했다.
“끊임없는 부패.”
영창이 끝남과 동시에 한스의 발밑으로 사악한 흑마력을 내뿜는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 크기는 지금껏 부원들이 본 마법진의 크기 중 가장 커다랬다.
‘저것이 불러오는 파장이 뭘까’라는 생각은 하기도 싫었으나 저 마법은 곧 자신들이 온전하게 감당해야 했다.
“일단 물러서!”
후방에 있던 고드윈의 말에 카론과 벨린다는 뒤로 몸을 뺐다.
그러나 모래 병사는 전과 같이 공격을 날렸고 흑마법사의 마법에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병사가 내민 팔을 시작으로 흉부, 머리, 다리, 발끝까지 점점 썩어가고 있었다.
모래가 썩는다는 건 이상했지만 까맣게 변해가며 병사가 몸을 전혀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회복도 먹히지 않는지 병사는 그대로 소멸.
그 모습에 부원들은 그 끈질기던 병사가 저항 한 번 못하고 죽었다는 것에 눈을 의심했다.
“범위 안에 들어오면 저렇게 되는 건가?”
“그럼 그 범위만 알면 되겠네!”
“아니. 범위 같은 건 없다.”
카론은 뇌를 찌릿하게 울리는 직감으로 저 흑마법이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 흑마법은 시전자가 멈추거나 죽을 때까진 절대 전진을 멈추지 않아. 봐라.”
한스의 주변이 점점 새까맣게 썩어가더니 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앞뒤 할 것 없이 모든 방향으로 고르게 퍼져 나갔다.
“범위형 마법이라면 그 범위가 전부 썩어야 할 텐데 천천히 전진하고 있지 않나.”
“아주 좆 같은 마법이네.”
고드윈이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상스러운 욕까지 내뱉으며 현재 상황을 표현했다.
저 마법에 닿는 순간 자신들은 볼 것도 없이 사망.
그것도 아주 고통스럽게 생살이 썩어가는 것을 고스란히 느끼다가 죽을 것이다.
이대로 도망쳐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 들리나. 들리면 대답해라.]
“짹짹이 님?”
“그게 누군데?”
“믿어도 되는 사람이야.”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는 벨린다가 허공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래. 나는 너희들이 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신하다. 그러니까 믿고 따르도록.]
벨린다를 제외한 나머지 부원들은 카라스라고만 알고 있었기에 짹짹이는 빠르게 신원을 확인시키고 말을 이었다.
[지금 흑마법사가 펼치는 흑마법은 아주 위험하다. 저 부패의 기운에 닿기만 하면 무조건 죽는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놈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 그게 뭔가요?”
아스카가 말을 더듬으며 허공에 대고 물었다.
[내가 아주 잠깐 녀석의 흑마력을 묶어둘 수 있다. 그 틈에 저놈의 목을 쳐내면 된다.]
“그 아주 잠깐이 어느 정도인데요?”
[대략 1초가 채 되지 않는다.]
짹짹이 자신도 당연히 저것을 오래 붙들어 놓고 싶지만 서클의 차이가 확연했다.
또 현재 어둠의 전개로 힘을 빼놓아서 온전히 전력을 쏟아 부을 수가 없었다.
[시도해 볼 건가? 그것이 아니라면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다. 이대로 물러나도 너희를 탓할 사람은 없을 거다.]
고서클의 흑마법사가 자신의 비전을 꺼낼 정도로 몰아붙였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칭찬받아야 마땅했다.
부원들 모두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둠 사이를 뚫고 누군가 튀어나왔다.
“제가 할게요.”
“언니……!”
그 정체는 엘리스.
가면을 쓰고 몸에는 피 칠갑을 한 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것 같았다.
벨린다는 자원한 엘리스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언니. 내가 하게 해줘.”
“그랬다가 네가 죽으면?”
“…….”
“네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벨린다가 엘리스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맞받아쳤다.
“그럼 언니는! 언니는 안 죽을 자신 있어?”
벨린다의 말에 엘리스는 당연하다는 듯 1초의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자신 있어.”
그 확실한 대답에 듣는 이가 자연스레 믿음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엘리스는 빙긋 웃으며 어깨에 있던 벨린다의 손을 치우고 한스를 향해 섰다.
“그러니까 믿어줘.”
이 말을 끝으로 엘리스는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