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각개전투
“야! 거기 무슨 일이냐!”
“아무 일도 없다. 아직까진.”
한스는 아직 모래 병사와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쉬엔과 크론은 일행의 집중 공세를 당하는 중이었다.
하루빨리 이 빌어먹을 모래 병사를 부숴버리고 싶은 한스였지만 그의 힘을 잔뜩 빨아먹은 모래 병사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한 기운 하나가 저들 사이에 끼어 있군.”
“너도 느껴졌나?”
“당연한 거 아닌가. 흑마력인데.”
쉬엔과 크론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선 엘리스가 몸을 숨기고 기습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위치는 이미 들통난 지 오래.
흑마법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면은 그녀의 위치를 너무나 쉽게 드러내 주었다.
쩌저저저적-!
공기 중의 수분마저 얼리면서 다가오는 얼음 화살을 고개를 숙여 피한 쉬엔은 혀를 찼다.
“아무래도 그걸 꺼내야겠군.”
“그래야겠어.”
쉬엔의 한마디에 크론도 동의하는 듯 품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품에서 나온 것은 일반 아공간 주머니보다 훨씬 내장 공간이 넓은 전문가용 주머니.
보통 안에는 건설 현장에서 필요한 자재를 싣는 게 일반적이나 흑마법사들의 사용법은 조금 다르다.
우어어어어-
“좀비.”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일으킨 시체들을 넣어 놓는다.
장내에 썩은 냄새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면서 이런 냄새에 약한 부원들은 코를 싸매었다.
정신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썩은 내는 몇 십 개체가 넘는 좀비들이 한 번에 뿜어내고 있었다.
“마법의 주체를 찾아내 죽여라.”
“백염 사용자는 살려서 내 앞에 꿇리도록.”
좀비들에게 자신들의 명령을 각각 내린 쉬엔과 크론은 가만히 서서 전황을 살펴보기로 했다.
육안으로는 어둠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감으로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좀비가 내 위치를 아는 거지?’
좀비는 죽은 자로 산 자의 활기를 쫓는 습성이 있다.
애초에 죽어서 눈이 안 보이는 좀비들에게 이런 어둠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다.
부원들은 갑자기 자신들을 향해 움직이는 좀비들을 보고 일단 서로 뭉치기 위해 살금살금 중앙으로 움직였다.
다행히 좀비의 이동 속도는 생각보다 느렸고 발소리를 죽여가면서 부원들끼리 뭉칠 수 있었다.
“이제 어떡하지? 진형을 짠 대로 움직일까?”
아스카가 소곤소곤 입을 열자 다들 판단이 잘 서질 않는 듯 침묵에 휩싸였다.
그런 와중에 부원들 앞으로 툭 떨어진 조그마한 쪽지.
벨린다는 그것을 조심스레 펴보았다.
[모래 병사와 싸우고 있는 흑마법사를 맡아. 병사를 잘 이용한다면 난이도는 훨씬 쉬워질 거야.]
“그럼 부장님과 총장님, 엘리스 셋이서 저 둘을 막는다는 건가.”
두 흑마법사뿐만이 아닌 좀비들도 충분한 위협 요소다.
한 번 물리게 된다면 그 살점이 썩고 온갖 독에 중독되어 시체 하나 남기지 못한다.
“일단 명령에 따르자. 두 분과 엘리스를 믿는 거야.”
“아오! 좀 죽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병사와 싸우고 있는 한스는 저쪽.
어둠 속이어도 한창 싸우는 소리는 격렬했기에 위치를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부원들이 슬금슬금 한스의 쪽으로 이동했다.
그 움직임은 어둠을 다루고 있는 데카드에게 전부 전해졌고 그는 미소 지었다.
‘좋아. 잘하고 있어, 얘들아.’
데카드의 뒤에 있던 트리스는 자신이 활약할 때가 된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둠을 조종하던 데카드 또한 일어섰고 둘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간다.’
결심한 데카드는 방 전체를 감싸던 어둠 반을 갈라 한스를 덮고 있던 어둠은 그대로 유지.
쉬엔과 크론을 감싸던 어둠은 깔끔하게 없애 버렸다.
그 덕에 쉬엔과 크론, 데카드와 트리스의 눈이 서로 정확하게 마주쳤다.
“어디 있나 했더니 그쪽에 있었구나. 쥐새끼들아.”
“쥐새끼는 원래 그쪽이지 않나? 뒷골목에 숨어서 쓰레기나 파헤치는 인간 쓰레기들아.”
“…….”
갑자기 들어오는 촌철살인에 크론은 말문이 막혔고 쉬엔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짓했다.
우어어어-
그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는 좀비 떼들.
어림잡아 삼십은 되어 보였다.
“선배. 좀비의 수준이 생각보다 높습니다.”
“아수라 좀비야.”
머리가 두 개 이상, 팔은 네 개 이상으로 달린 좀비를 아수라 좀비라고 지칭한다.
이 좀비와 무투로 맞서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사람은 다진 고기가 되어버린다.
그만큼 파괴력과 무력이 뛰어난 좀비다.
“일반 좀비보다 유연성이나 기동력도 뛰어나지.”
“워우. 아주 좀비 박사님이신데?”
“요즘 시대에서 우리를 이렇게 잘 아는 건 쉽지 않은데 말이야.”
데카드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난 요즘 사람이 아니거든.”
알 수 없는 말에 미간을 좁히던 둘은 남자 쪽을 말고 여자 쪽을 쳐다보았다.
역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트리스 아드리안.
두 번 보고 세 번 봐도 자신들이 기억하고 있는 그 미친개, 철혈의 트리스가 맞다.
“너. 우리를 기억하나?”
쉬엔과 크론은 로브의 후드를 벗으며 트리스에게 물었다.
후드가 뒤로 넘어가자 그들의 군데군데 썩은 살점이 악취를 풍겼고 움푹 들어간 볼살은 생기가 다 빠져나가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뻣뻣한 머리카락.
이 모든 특징을 종합해 본다면 이들의 겉모습은 흉했다.
“너희들 같은 건 본 적 없다.”
“그런가. 우리와 너는 꽤나 많이 부딪쳤거늘 너한테 우리는 그저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하였구나.”
쉬엔은 예상하고 있던 사실인 듯 다시 후드를 뒤집어썼다.
“어둠을 걷어낸 정도라면 꽤나 실력에 자신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네놈은 고작 5서클인가.”
“마법사의 강함을 서클로만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어디서 한 번 날려준 것 같은 대사를 똑같은 직종을 가진 이에게 말한 데카드.
그는 이것이 데자뷔인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흥. 웃기는 소리.”
흑마법사들은 오직 서클의 개수로 강함을 논한다.
서클이 올라갈수록 다룰 수 있는 흑마법의 수가 비약적으로 높아지고 일으키거나 다룰 수 있는 시체의 수도 훨씬 많이 올라가니까.
서클의 벽에 부딪혀 흑마법사로 전향한 이들에게 데카드의 말은 개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죽어라.”
“……!”
순간 이것이 저주의 영창임을 눈치챈 데카드가 몸에 마나를 한계 이상으로 회전시켜 저주를 떨쳐냈다.
트리스를 남겨두고 먼저 자신을 처리할 생각이었는지 아직까지 옆에 있는 그녀는 멀쩡했다.
데카드의 대처에 살짝 침음성을 삼킨 쉬엔이 물었다.
“어떻게 한 것이냐.”
“뭐가.”
“어떻게 나의 영창을 파악하고 저주를 튕겨낸 거지?”
“짬밥이지. 짬밥.”
흑마법사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모두 저주의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방금 쉬엔이 내뱉은 말은 ‘죽어라’.
충분히 저주의 영창 요소가 될 수 있는 문장이었다.
연륜 있는 흑마법사들은 이렇게 티가 나는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데 이런 면에서 저들도 실전 경험이 잘 없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보통 이들은 방금 ‘죽어라’라는 영창에도 나자빠졌을 테니까.
“괜찮으세요, 선배?”
“문제없어.”
초기에 저주가 몸에 가라앉기 전에 방어를 성공했기에 따로 문제는 없었다.
쉬엔이 당황함과 놀라움에 침묵한 사이 크론이 한숨을 쉬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내가 하는 것이나 잘 봐라.”
크론은 삼십에 달하는 좀비들을 방향을 나눠 앞을 비롯한 오른쪽과 왼쪽도 공격하게 했다.
세 방향에서 좀비들이 들어오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해 빠른 마법 시전이 필요하고 그렇게 되면 저주에 신경 쓸 틈이 사라진다.
좀비들이 녹슨 칼을 마구 휘두르며 다가온다.
다리를 절뚝이면서 피가 푹푹 터져도 달려오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진 않았다.
“리바이어던.”
티이라의 무기, 리바이어던을 소환한 데카드는 전 방위를 도끼로 크게 휩쓸었다.
휘이이이잉-!!
그러면서 불어닥친 삭풍이 좀비들의 몸을 상하체로 찢어발겼다.
데카드와 가까운 왼쪽의 좀비들도 마찬가지.
리바이어던이 쿵 하고 바닥을 찧는 순간 좀비들의 균형 감각이 무너지며 넘어지기 일쑤였다.
그 뒤처리는 아주 쉽다.
다시 재생하지 못하게 좀비의 코어를 부수면 그만이니까.
“흐음…….”
좀비만 수십 년 상대해 본 것 같은 저 노련함에 크론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코어의 위치는 또 어떻게 저리 정확하게 아는 거지?
좀비의 코어 위치는 각각 달랐다.
그러나 코어와 가장 가까운 몸의 위치는 부패가 더 심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설마 그걸 저 짧은 순간에 파악하고 삼십에 달하는 좀비 코어를 부쉈다는 건가.’
놀랍긴 했으나 어차피 좀비는 미끼.
크론의 노림수는 저주에 있었다.
“쓰러져라.”
저주의 영창과 함께 불온한 바람이 데카드에게 불어닥쳤다.
크론의 입가에 지어지는 회심의 미소.
“네놈이 사람이라면 그 많은 좀비를 상대하면서 저주를 떨쳐낼 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오래 버텼으나 이만 죽…….”
“미안한데 말이야.”
크론의 말을 끊으며 데카드가 끼어들었다.
그는 바닥을 기어와 어떻게든 자신의 다리를 물려고 하는 좀비의 코어를 발로 짓이겨 부쉈다.
“이딴 저주는 너무 미지근하다고. 더 센 거 없냐?”
옛날 데카드가 집행관이던 암흑시대에선 온갖 해괴한 저주가 많았다.
그런 것과 십 년 넘게 싸워온 데카드이기에 저주에 대한 내성이 너무나 높았다.
또 최근에 진저백이 시행한 그 말도 안 되는 저주에 걸리고 또 이겨낸 후로부턴 내성이 더욱더 강해졌다.
“너희 선배들이 저주는 안 가르쳐주디?”
리바이어던이 대각선으로 크게 휘어지며 초승달 모양 삭풍이 거세게 날아왔다.
“이지스 베리어.”
검은 돔형의 보호막이 삭풍을 막아내었다.
이런 공격이 먹힐 리는 없기에 기대도 안 한 데카드는 리바이어던을 어깨에 올리며 말했다.
“내가 저 안으로 파고들면 엄호 부탁해.”
“걱정 마세요.”
흑마법사와 데카드의 거리는 지금 상당히 멀었다.
거의 연무장의 끝과 끝이라고 해도 좋을 거리.
여기서 흑마법사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면 좀비와 저주의 방해가 엄청날 것이다.
그러니 뛰어가지 않으면 편하게 해결될 일이다.
“그림자 밟기.”
데카드의 신형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눈을 감았다가 뜨기 사라진 데카드를 쉬엔과 크론이 당황해하며 기감을 펼쳤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원래 없던 사람인 것처럼 마나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 없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집중에 집중을 가하려 했으나 안면으로 뜨거운 불덩이가 날아왔다.
“젠장! 방해하지 마라.”
이 또한 저주의 영창.
트리스는 눈치 좋게 저주인 것을 알아챈 후 데카드가 했던 것처럼 마나를 과한 속도의 빠르기로 순환시켜 그것을 튕겨냈다.
“어림도 없다.”
트리스는 두 명이 제대로 된 집중을 할 수 없도록 죽일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도 아닌 불덩이를 계속 쏘았다.
잠시 그림자 속에서 틈을 보던 데카드는 쑤욱 밖으로 튀어나왔다.
“일단 이 돔 안에 있으면 공격은 막을 수 있다.”
“호오, 그래?”
“당연하…….”
둘의 뒤에서 절대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쪽의 그림자를 통해 돔 안으로 들어온 데카드가 리바이어던의 그립을 거칠게 매만지는 소리가 침묵을 깼다.
땀이 등을 축축하게 적시고 입술은 파르르 떨렸다.
“일단 한 대 맞자.”
콰직-!!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둠 안쪽의 벽면이 터져 나오는 피로 범벅이 됐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