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임무 완료
벽면이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열리고 일행은 잠시 전진을 멈추었다.
벽면이 열리면서 만들어진 구멍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곧 빼곡하게 벽면을 덮어가더니, 직사각형 모양으로 열린 구멍에서 소리가 났다.
덜컥-
“일단 빨리 건너가야겠는데?”
“동감입니다.”
데카드가 구멍이고 뭐고 앞으로 전진하려고 하는 순간, 양쪽에 열린 직사각형 구멍에서 거대한 도끼날이 떨어져 내렸다.
다리의 시작과 끝에 떨어진 도끼날.
“아스카. 저거 버틸 수 있냐?”
“으음…… 아마 못 버틸 걸요?”
콰직-!!!
시작과 끝을 잇던 다리가 부서지고 그 중간에 있던 일행은 몸이 순간 붕 떠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놀이 기구를 타는 것 같은 감각과 엇비슷했으나 그것과는 달리 바닥에는 독충들이 한가득하다.
‘짹짹아!’
[알겠습니다.]
실크 코트에서 까마귀의 날개가 펼쳐 나왔고 데카드는 허공에서 중심을 잡았으나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으아아악!”
“꺄아악!!”
“우와아앗!”
데카드는 일단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카론과 고드윈의 손을 재빨리 잡고 건너오기 전에 있던 복도로 던져버렸다.
“젠장! 너무 늦어!”
뒤에 있는 벨린다와 엘리스, 트리스, 아스카를 구해 주기에는 독충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아케인 체인.”
촤라라락-!!
떨어지는 와중에 극한의 집중력으로 마법을 발휘해 낸 트리스가 사슬들로 서로의 몸을 묶어 카론과 고드윈에게 던졌다.
“당겨!!”
“흐읍!”
다행히 독충들의 포식 시간은 찾아오지 않았고 유일하게 날 수 있는 데카드는 반대편에 안착했다.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네.”
“그러게 말입니다.”
방금 죽을 뻔해 놓고 이 둘은 그새 평정을 되찾았다.
부원들은 둘의 괴물급 멘탈에 혀를 내둘렀다.
“지나가려고 하면 온갖 방해를 하고…… 결국 그 방해를 뚫고 와야지만 이곳에 올 수 있는 건가?”
방해 중에선 아까 그 도끼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많은 구멍 중 직사각형 구멍에서만 나온 것.
아직 다른 구멍에서는 뭐가 있는지 나오지조차 않았다.
“선배가 먼저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뭐?”
“지금 저희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닙니다. 여기서 얼마나 더 시간을 잡아먹을지도 모르겠고 선배는 지금 반대편에 계시죠.”
트리스는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선배가 아니었다면 다 같이 건너갈 방법을 구상했겠지만, 선배라서 다행입니다.”
“나쁘지 않아요. 전에 유적도 세 개의 함정을 가지고 있었으니 정보대로라면 더 이상의 함정은 없어요.”
벨린다가 산맥에서의 유적을 떠올리고는 그녀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그래도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지 데카드는 반대편에 있는 일행을 바라봤다.
“저희 걱정은 마세요!”
“맞습니다!”
“어서 다녀오십쇼.”
데카드는 그제야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복도로 걸어 들어갔다.
“최대한 빨리 올 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있어.”
“저희도 대한 빨리 합류하겠습니다.”
일행은 그렇게 데카드와 떨어지게 됐다.
데카드는 어두운 복도를 뚜벅뚜벅 걸으며 뒤에 있는 일행이 눈에 밟히는지 연신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걱정이십니까?]
‘어.’
[어느새 저런 인간들이 마수왕님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군요.]
[쳇!]
[그래도 좋다! 마수왕님! 친구 많이 생겨서!]
[…….]
[크흠……. 솔직히 마수왕님 성격을 보면 친구가 많으실 것 같은 성격은 아니시니…….]
고오른이 헛기침과 함께 작은 소리로 말하자 모두가 동조하는 듯 동의의 끄덕임을 보냈다.
본인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 유물이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얼른 유물을 얻고 일행에게 돌아가 선선한 루비아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런 데카드의 마음을 알아준 걸까?
저 멀리 복도의 끝을 알리는 환한 빛이 보였다.
데카드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천천히 빛 속으로 들어갔다.
“이건 뭐야?”
빛이 있어서 안은 꽤나 밝을 줄 알았는데 입구에만 햇빛이 들어오고 다른 곳은 어두컴컴하기 그지없었다.
또 주변에 있는 또 하나의 특징.
“거울?”
애매하게 사선으로 머리가 꺾여 있는, 사람 얼굴만 한 거울이 입구 주변에 있었다.
데카드는 위에서 비치는 햇빛과 거울을 유심히 보았다.
“흐음…….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단순한 생각으로 거울의 머리를 꺾어 햇빛과 맞춰 주자 거울이 빛을 반사하더니 또 다른 거울에 빛을 쏘았다.
그 거울은 또 다른 거울에.
이런 방식이 수십 번 이루어지자 방은 곧 빛으로 가득 찼다.
“밝아졌군.”
고대인들과 비슷하리만치 단순한 생각의 소유자라 그런가?
데카드는 비교적 쉽사리 퍼즐을 풀어냈다.
데카드는 밝아진 방을 두리번거리며 앞에 있는 계단을 내려왔다.
“유물은 보이지 않는데 말이야.”
눈에 보이는 거라곤 미라가 담겨 있다고 하는 피라미드의 관이었다.
일렬로 쭈욱 서 있는 관을 꺼림칙한 느낌으로 지나가던 데카드는 발에서 무언가 움푹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유적에서 이 느낌은 곧 함정의 발동을 얘기하기에 데카드는 순식간에 마나룸을 전면 개방했다.
언제든 마법을 가감 없이 쓸 수 있도록.
[주변에서 뭐가 날아오진 않는데요?]
요르의 말처럼 독화살이 날아오거나 바닥이 푹 꺼지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발동되었을 것이다.
“아니야.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콰앙-!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저기 제일 끝 쪽에 있던 가장 거대한 관의 뚜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곳에선 오래된 양식의 갑옷을 착용하고 녹슨 사브르를 휘두르는 미라가 튀어나왔다.
붕대로 감겼지만, 누런색으로 형형히 빛나는 양 눈은 악몽에서나 나올 법했다.
[!#$%%@!]
미라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고대어로 말을 하자 아까 데카드가 지나쳐온 모든 관들이 열리더니 미라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모두 창을 쥐고 갑옷을 챙긴 무장 상태.
한 군대와 개인의 싸움으로 번졌으나 데카드는 별로 큰 긴장감은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은 개인이 아니니까.
“얘들아. 오랜만에 너희가 힘 좀 써야겠다.”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티이라! 혼내 준다!”
“오랜만에 하는 현신이네요!”
“…….”
짹짹이를 제외한 네 마리의 마수가 데카드의 안에서 튀어나오며 불끈 마나를 일으켰다.
그 거대한 울림에 유적의 천장이 한차례 진동하며 우수수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주변에 있는 미라들을 맡아 줘. 대장은 내가 맡을게.”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쇼!”
수십에 달하는 미라들과 마수들이 정면충돌을 했다.
속이 텅 빈 미라들은 고오른의 육중한 몸에 부딪치자마자 부서지거나 저 멀리 날아갔다.
레오는 검을 뽑아 잔상이 남을 만큼 빨리 다섯 미라의 목을 베었다.
티이라는 미라들이 찌르고 물고 할퀴어도 전혀 흠집도 나지 않으며 천천히 한 마리 한 마리씩 머리를 부숴 나갔다.
요르는 언제나 우아하고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며 미라들 사이로 파고들어 가 얼음 파도를 전개했다.
쩌저저저적-
얼음이라는 또 다른 관에 갇힌 미라들.
관보다는 차가운 얼음 속에서 더 오래 보관되리라.
데카드는 여전히 가만히 사브르를 들고만 있는 대장 미라에게 다가갔다.
“소환.”
전에 봤던 그랜트 일이 다시 한 번 소환되었다.
이번에는 한 마리가 아닌 다섯 마리.
모래에게 좋은 물 속성을 타고났으면서도 뛰어난 공격성을 지닌 번개 속성의 마수.
모래 병사와 비슷한 미라에게도 좋은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야. 오래는 못 놀아주겠다.”
그 말에 대장 미라가 사브르를 뽑아들고 관에 있던 방패를 다른 손으로 들어 올렸다.
고대 역사책에서 보던 사막의 대전사가 하고 있던 복장과 판박이.
이 미라가 얼마나 이곳에 오래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공격해.”
그랜트 일이 입으로 침을 뱉듯 바닷물들을 한 움큼 쏟아냈다.
푸화아아아-
순식간에 온몸이 물에 젖은 대장급 미라는 축축해진 붕대가 점점 떨어져 나갔고 썩은 피부가 드러났다.
“…….”
볼 이유가 없다면 평생 보고 싶지 않은 몰골이다.
그랜트 일은 그대로 전기를 뿜어내 박살 내려 했으나 대장 미라도 순순히 당해 주지만은 않았다.
번개가 물에 닿기 전에 공중으로 날아오른 대장 미라는 급강하하며 데카드의 머리를 쪼개버릴 듯 사브르로 내려찍었다.
“그런 건 안 맞는다고.”
데카드는 뒤로 살짝 백스텝을 밟아 위에서 날아오는 사브르를 피했다.
물로 인해 잔뜩 느려진 이동 속도로는 데카드를 맞힐 수 없다.
뒤를 힐끔 쳐다 보자 이제 병사 미라들도 슬슬 정리가 돼가는 것 같았다.
지배자급 마수들의 공세를 미라 따위가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짹짹아.”
[맡겨만 주십쇼.]
5서클로 올라선 이후 짹짹이와 직접적으로 합을 맞춰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바닥에 깔려있던 그림자가 스르륵 데카드의 손 위로 올라왔다.
그것은 부드럽게 날카로운 낫의 형태로 변해갔다.
“그림자 밟기.”
데카드의 몸이 그림자 안으로 쑤욱 들어가더니 미라와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미라는 갑자기 사라진 데카드를 찾느라 얼이 빠진 상태.
하지만 그림자로 존재감을 지운 데카드를 눈도 성치 않은 미라가 찾을 순 없었다.
“데스 사이드.”
그림자로 기워낸 대형 낫이 썩은 목을 치는 것을 마지막으로 대장 미라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데카드가 상대를 끝냈을 때는 마수들도 미라들을 전부 다 정리한 상황.
“편히 쉬어라.”
미라로 죽지도 못한 채 관속에서 수천 년은 있었을 이들을 위해 데카드는 영혼의 안식을 빌어주었다.
낫을 다시 그림자 속으로 넣어버리고 마수들 또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거울이 비치는 마지막 복도로 데카드가 들어갔다.
뚜벅- 뚜벅-
그의 발걸음이 묘하고 공허한 소리로 울리며 소리 없던 복도를 채워나갔다.
“저기 있다.”
복도를 벗어난 데카드의 눈에 커다란 제단 꼭대기에 올려진 큐브, 즉 유물이 보였다.
데카드는 제단을 오르기 위해 계단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두 번째 발, 세 번째 발도 문제없이 디딜 수 있었다.
그렇게 제단의 절반을 다 올랐을 때쯤 데카드는 몸의 이상을 느꼈다.
“이건 또 뭐야.”
몸 전체를 누르는 것 같은 위압감, 아니 중압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중력 전체가 늘어난 것 같은 이 느낌은 무릎을 천근만근 무겁게 했다.
[마수왕님! 괜찮으세요?!]
[또 쓰러지시는 거 아닙니까?]
마수들은 또 데카드가 저번에 저주로 쓰러진 것처럼 정신을 잃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이번에는 정신을 잃고 안 잃고의 문제가 아니라 올라갈 수가 없었다.
“후우…….”
데카드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시며 심기일전을 한 후에 다시 한 번 계단 위에 발을 올렸다.
냉장고 두어 개를 어깨에 메고 계단을 오르는 듯한 감각에 허벅지는 이미 얼얼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이 남자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눈곱만큼도 없었다.
“스트렝스.”
힘이 일시적으로 강해지는 버프 마법까지 써가면서 데카드는 계단을 오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한두 계단만을 남겨놓은 상황.
데카드는 이제 기어가듯이 계단 위로 손을 올리며 몸을 꾸물꾸물 위로 올려놓았다.
한 마리 뱀이 담을 넘듯 드디어 제단 위로 올라온 데카드는 죽을힘을 다해 허리를 폈다.
“이제 돌아간다.”
단상 위에 놓아진 유물이 턱 하고 손에 들어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