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10화 (110/208)

110 유적 공략법

카론은 주먹을 쥐었다 펴며 조금 전 주먹에 닿은 모래 병사의 감촉을 되살려보았다.

분명 숨통을 끊을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고 그것은 보기 좋게 맞았다.

그러나 모래 병사의 쓰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불길함을 본능적으로 느낀 카론이 뒤를 돌아보았다.

스아아아-

부서졌던 머리의 모래들이 다시 한군데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점점 원래의 형태를 갖추어갔고 끝에 다다라선 처음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

“슬라임 같은 건가?”

“그렇다면 뭔가 달라져야 하는데 전혀 데미지가 없어 보입니다.”

슬라임도 큰 데미지를 입으면 분열하고 다시 수복하면서 원래의 형태를 갖춘다.

그렇기에 크기가 변하는 것처럼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지금의 모래 병사는 처음과 다른 점이…….

“어? 모래가 더 크게 뭉쳐지고 있어요!”

모래 병사를 이루던 모래의 주먹 부분과 발 부분이 조금씩 더 커지며 어쩐지 익숙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갔다.

“저거 카론의 아이언 피스트 아닙니까?”

그 모습은 카론이 아이언 피스트를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강철 장갑과 부츠의 모양을 빼다 박았다.

점점 밝혀지는 모래 병사의 능력에 흥미가 동하긴 했으나 막막함이 더 컸다.

공격하면 할수록 상대의 무기나 능력을 베껴온다?

심지어 어떻게 해야 죽일 수 있는지 애초에 죽일 수는 있는지조차 미지수다.

“물은 어떨까.”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맞네요! 카론! 물 속성 마법을 써봐!”

카론은 뒤에서 일러주는 조언을 듣고 자신이 할 줄 아는 물 속성 중 가장 강한 마법인 워터 젯을 만들어냈다.

워터 젯은 강력한 한 줄기의 수압으로 닿는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마법.

카론은 손을 날의 형태로 펴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촤악-!!!

손날의 움직임에 따라 모래 병사의 몸이 조각조각 나기 시작했다.

한 번만으로는 모자라다.

두 번, 세 번 병사의 몸 마디마디를 정성스레 잘라주자 이제는 원래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워졌다.

“으음…….”

이제 드디어 해치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모래 병사가 수복을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물이 모래 병사의 회복 속도를 늦춰주고는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닌 듯했다.

“회복할 틈을 주지 않겠다.”

카론은 자신만의 해결책을 내놓았고 두 주먹을 힘을 꽈악 쥐었다.

순식간에 아직 회복을 끝내지 못한 병사의 앞까지 다가선 카론은 마구 연타를 날려댔다.

연타에 연타, 속공에 속공.

카론 특유의 속도가 담긴 강철 주먹들은 모래알 하나하나를 잘게 부숴갔다.

원래도 고운 사막의 모래가 한층 더 고아지고 고아져 까슬함이 사라졌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카론은 상의에 맺힌 땀을 쭈욱 짜며 뒤로 물러났다.

“참…… 뭐라 해야 할까.”

“좋게 말하자면 직관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무식한 방법이었습니다.”

“뭐로 가든 도착만 하면 그만 아니겠어요?”

자기 스승을 닮아 참으로 무식한 방법으로 상대를 찍어 눌렀다.

회복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 패버리는 전술이라니.

성공해서 망정이지 참 대책 없는 작전이었다.

“시간 끌어서 좋을 건 없으니 제가 가도록 하죠. 슬슬 저들에 대해 감을 잡았습니다.”

다음 선수는 트리스.

저쪽에서는 똑같은 모습의 모래 병사가 나왔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던 병사 하나가 고운 가루가 된 것을 보고도 아무 감정이 들지 않는지 한 치의 두려움도 엿보이지 않았다.

“선공은 하지 않겠지.”

트리스의 말처럼 모래 병사는 절대 먼저 손을 뻗는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아직 배운 전투 스타일이 없으니까.”

트리스가 선공이나 공격을 날려야 그것에 맞고 데미지를 입은 병사들이 싸움법을 카피할 수 있다.

그녀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오른손을 펼쳤다.

고오오오오-

한줄기 산뜻한 미풍이 트리스의 손가락 사이사이를 빠져나갔다가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그 바람을 잠시간 느끼던 트리스는 그것을 조금씩 뭉쳤다.

한낮 미풍에 그치는 위력이라고 하나 그것들이 모이면 돌풍.

돌풍은 거대한 태풍을 만들어낸다.

“너희들에겐 강한 마법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트리스는 바람을 원형으로 돌게끔 얽혀놓은 것을 그대로 모래 병사에게 던졌다.

그것은 모래 병사를 휩쓸었고 본래가 자잘한 모래인 병사는 점점 흩어져 부서져 버렸다.

부서졌으니 이제는 뭉치면서 회복할 차례.

하지만 그 행동을 바람들이 방해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오랫동안 회복을 하지 못하면 죽는다.”

짧은 시간 안에 트리스는 특이 사항들을 조합해가며 모래 병사들의 사망 조건까지 자력으로 밝혀냈다.

카론의 끈기 있는 공격을 당하고 죽은 병사를 보고 세운 가설은 보기 좋게 들어맞았다.

바람에 휘날리던 병사는 곧 평범한 모래가 되어 바닥에 있는 먼지들과 뒤섞였다.

“다른 놈도 나오거라.”

[다음은 다른 사람이 나와야 한다.]

이럴 줄 알고 또 다른 설명을 녹음해 둔 걸까?

모래 병사는 같은 이가 계속 상대해선 안 됐다.

한 사람당 하나씩 상대하는 것이 원칙.

“얄팍하군.”

트리스는 혀를 짧게 차며 뒤로 빠졌다.

기회를 보고 있던 벨린다는 검을 지지대 삼아 바닥에서 일어났다.

“다음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스릉- 파지직-

검을 뽑자마자 미약한 전류가 검신을 타고 손바닥까지 전해졌다.

벨린다는 궁금했다.

이 모래 병사가 레오의 검술마저 따라 할 수 있을까?

흐름이라는 개념을 필수로 이해해야 쓸 수 있는 이 검술을 한 번 당해 본 것만으로도 깨달을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보다 더 잘 사용할까?

수많은 물음들이 순서를 지키지 않고 나서며 머리를 복잡하게 했다.

지지직-

“……!!”

순간 벨린다의 심장을 미약하게 한줄기의 전류가 감싸고 지나갔다.

조금만 잘못 심장을 건드리면 심장마비가 올 수 있었기에 땀이 주륵 하고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이 마나는…… 레오 선생님?’

이유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찾아온 레오의 전류는 몸을 충분히 긴장시켰다.

머릿속을 떠돌던 잡생각도 갑자기 다 날아가 버렸다.

‘이걸 원하신 건가요?’

레오의 검술은 오직 흐름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상대의 공격을 받아치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것을 피하게 해주기 위해 방금 자신의 심장 곁으로 전류가 쏘아주신 걸까?

[…….]

당연하다.

검을 잡고 있는 손에서 미세한 떨림을 레오는 눈치챘다.

그것을 조금 해결해 주기 위해 거칠더라도 이런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레오의 도움으로 다시 깨끗해진 머리는 부드럽게 몸 곳곳에 명령을 내렸다.

벨린다가 취한 자세는 사자 탈춤.

레오의 검술로 펼치는 기술들 중 하나이다.

본래는 받아치는 것에 특화되어 있으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바로 들어갈 것이다.

슈와아악-!!

번개를 몸에 둘러 속도를 높인 벨린다는 그대로 모래 병사의 가슴팍을 베어버렸다.

“그렇게 하면……!”

완벽하게 모래 병사를 부수지 못했으니 곧 수복해 버린다.

예상대로 검이 지나가자마자 흔적이 사라지며 어느새 칼이 병사의 손에 들려있었다.

과연 스승님의 검술을 어디까지 따라할 수 있을까.

백스텝을 밟아 조금 거리를 둔 모래 병사는 모래 검을 뽑아들었다.

그와 함께 이루어지는 한 가지 동작.

“……정말 따라하는군.”

데카드가 한탄과도 같은 한숨을 터뜨리는 동안 레오도 두 눈을 크게 뜬 채로 끔뻑이고 있었다.

지금 병사가 하고 있는 건 사자 탈춤.

기본적인 동작이지만 동시에 묘리를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심화 동작이다.

우스갯소리로 말 한마디 더 보태자면 벨린다와 발가락 방향 하나마저도 똑같았다.

“겨뤄 보자.”

이런 상황을 원한 것인 듯 벨린다는 받아치기의 자세로 바꿨다.

뒤바뀐 공격과 수비.

사자 탈춤의 공격 방향이나 위력, 약점, 강점 등 모두 알고 있으나 벨린다는 마른 침을 삼켰다.

후우욱-!!

모래를 박차고 병사가 발을 빠르게 놀렸다.

번개를 두른 멜린다만큼은 아니었어도 평범한 인간의 기준으로 보자면 충분히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검 끝이 지나가다가 갑자기 찌르기로 변환되는 기술.

사자 탈춤은 벨린다가 시전한 그대로 이루어졌다.

처음 해본 것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깔끔한 움직임.

마수계에서 오랫동안 레오를 봐온 데카드가 뜯어보아도 딱히 흠잡을 데가 없는 기술 시전이었다.

“이 정도론 어림도 없어.”

벨린다는 검을 역수로 쥐고 날아오는 찌르기의 방향을 꺾었다.

달라진 검 끝의 방향은 모래 병사의 목을 꿰뚫었다.

단 한 번의 파괴로는 죽지 않는 병사는 당연히 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제 끝내야겠어.”

조금 더 수련 상대로 써보고 싶지만, 자신들은 흑마법사와 마주치는 상황을 피해야 했다.

벨린다는 이쯤에서 개인의 욕심은 접어두기로 하고 전력을 뿜어냈다.

폭발적인 번개 다발이 검신에 씌워지고 그것은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지듯 병사의 정수리를 쪼갰다.

번개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장대비처럼 우르르 쾅쾅 하면서 계속 떨어졌다.

모래알 하나하나가 전부 튀겨진 병사는 그대로 행동 불능.

벨린다의 승리였다.

“저는 뭐 어렵지 않겠군요.”

고드윈은 트리스의 공략법을 따라 백염을 최대한 장시간 펼칠 수 있게 했다.

바닥에서부터 원형으로 퍼진 백염이 땅을 뚫고 올라와 병사를 태웠다.

당연히 불 속에서는 회복이 불가능하기에 일정 시간 불 안에 가두자 픽 하고 쓰러졌다.

“너한테는 너무 쉬운 거 아니야?”

“그러게요?”

카론이 방금 전까지 두 주먹을 땀나게 휘두르며 잡은 것과 달리 고드윈은 중간 중간 코도 파면서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다음 차례는 아스카.

그녀는 트리스가 한 방법과는 조금 다르게 얼음 속성으로 밀어붙였다.

“아이스 베쉬.”

얼음의 뛰어난 절삭력으로 병사를 절단시킨다.

당연히 대충 자르지 않고 최대한 한 방을 내기 위해 힘이 닿는 데까지 잘라버렸다.

이후로는 회복하려는 병사를 그대로 얼려버리면 그만이다.

“프로스트!”

쩌저저저저적-

회복 중에 얼어붙은 병사는 그대로 굳어져 동사했다.

공략법만 알면 아주 상대하기 쉬운 존재들이었다.

“이젠 제가 한번 해볼게요.”

“언니 파이팅!”

데카드는 살짝 걱정스러운 투로 그녀를 쳐다봤다.

마법사가 아닌 엘리스가 상대하기에는 살짝 벅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눈빛을 느낀 엘리스는 조용히 데카드에게만 입모양으로 말했다.

‘괜찮아요. 저를 믿으세요.’

‘알았어.’

데카드 또한 입모양으로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해 주었다.

엘리스는 빙그레한 미소를 지은 채 한 손에 두 개씩 단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빠른 진행을 위한 흑색 가면.

흑무가 엘리스를 둘러싸고 그녀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조종하며 단검에 사악 입혔다.

이렇게 되면 단검에 공격력과 강도가 비약적으로 올라갈 뿐더러 절삭력 또한 훨씬 높아진다.

슈우우욱-!!

무광의 단검들이 인체의 급소를 노리고 일제히 날아갔다.

머리를 포함한 폐, 심장, 목에 하나씩 단검이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모래로 이루어진 병사는 몸이 펑 하고 터져나갔다.

여기서 엘리스는 벨트의 버튼을 눌렀다.

우웅-!

바로 발동하는 자동 회수 기능.

엘리스는 단검이 완벽하게 돌아오기 전에 남은 단검들을 마저 던졌다.

던진 단검이 회복 중인 병사를 난도질하고 그때쯤 허리엔 단검이 되돌아와 있다.

이것에 무한 반복.

마법과는 달리 공격의 끊김이 생길 수 있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끝났네요.”

그러나 엘리스는 톱 클래스급 암살자.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이제 나만 남았나?”

데카드가 벽면에 기댄 등을 떼고 몸을 풀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병사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