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해결사들
결전의 태양이 밝았다.
일행 모두가 각자의 작전을 짜느라 눈이 다크서클로 퀭 하고 머리를 쥐어짠 탓에 살짝 어지럼증도 느껴졌다.
그러나 정신과 기분만은 날아갈 듯 좋았다.
밤샘의 결과가 다행히 나와 주었기 때문이다.
흑마법사들과 최대한 접촉을 피하기 위해 잠입과도 가까운 작전을 짜던 데카드, 엘리스, 트리스.
유물의 소유권은 분명 그들에게 있었으나 도둑처럼 몰래 유물을 가져와야 한다는 사실은 열이 받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사상자가 생기는 것보다야 열 조금 받는 것이 훨씬 낫다.
유적에서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은 엘리스의 의견이 주를 이루었다.
그녀의 전직은 갈까마귀 암살단.
어디서든 은밀함을 첫째로 움직이기에 그녀는 최대한 흑마법사들의 눈에 덜 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유적 안을 들어가 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산맥을 떠올려 보자면…….”
엘리스는 해리스 산맥에서의 유적을 생각해 보았다.
매우 추웠던 그 산맥과 이 샤릴다 사막은 완전 정반대의 기후이나 유적 안은 비슷할 것이다.
여러 가지의 함정과 정체 모를 조각상, 해괴한 저주들.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것으로 가득한 유적에서 흑마법사들의 눈까지 피해 다녀야 한다.
“저희가 먼저 들어간다는 전제 안에 소음을 최대한 억누르고 함정을 쳐놓아야 해요.”
일행이 지나가면서 유적의 함정을 피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함정까지 추가한다.
이 함정들로 최대한 흑마법사들의 발길을 끄는 것이다.
“하지만 마나를 쓰면 흑마법사가 알아채지 않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트리스의 의문에 안에 있던 짹짹이가 대답해 주었다.
[저의 마나는 기본적으로 은밀함을 띠고 있어 괜찮을 겁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라는군.”
“누가요?”
데카드는 검지로 자신을, 정확히는 자신의 안쪽에 있는 마수들을 가리켰다.
그 작은 행동의 의미를 이해한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함정은 선배가 책임지는 걸로 하죠.”
“나한테 맡겨.”
짹짹이의 마나를 기반으로 데카드가 마수를 이용해 함정을 펼친다면 아무리 감이 좋은 흑마법사도 한 번은 맞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그 함정을 놓는 이는 흑마법사 사냥의 프로.
그들의 행동 습관이나 생각까지 데카드는 전부 읽어왔다.
“벌써 해가 떴군요.”
막사 입구로 비치는 햇빛을 보고는 트리스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그녀도 걱정인 것이다.
지금의 작전 미흡으로 부원들이나 자신들 사이에서 사망자가 발생할까 봐.
하루 만에 급조한 작전이라 잘 믿음이 안 서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트리스는 걱정이 앞섰다.
“밖은 시끌시끌하네요.”
“좋은 결과가 있나 보지.”
자신들이 막사에서 떠드는 사이 부원들도 방법을 찾은 듯했다.
그리고 연이어 귀를 때리는 마법의 소리는 그들이 지금 연습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했다.
“호오…….”
막사 바깥으로 나온 데카드가 부원들의 움직임을 보고 살짝 감탄했다.
근접전을 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사각지대를 뒤에 있는 이들이 마법으로 봐주는 상호 보완.
그것이 톱니바퀴 맞물리듯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마치 한 몸이 된 것처럼 움직이는 모습에서 그들이 밤새 고민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합격진.”
부원들을 본 트리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합격진은 서로 손발을 맞춰가며 상대를 압박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보다 훨씬 강력한 상대를 이길 수 있게 해주는 방법이다.
합격진이란 것을 염두하고 짠 진형은 아닌 듯하나 그 형태는 합격진과 유사했다.
“엇! 부장님 오셨어요?”
데카드를 본 아스카가 연습을 멈추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스카를 보고 그제야 데카드가 온 것을 알아챈 나머지 부원들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어때?”
데카드의 물음에 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치며 웃어 보였다.
데카드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이들의 하늘을 찌를 것 같은 자신감은 충분한 답변이 되어주었다.
“이제 준비가 끝났어.”
* * *
유적으로 가면서 작전 설명을 끝낸 트리스는 데카드를 슬쩍 바라보았다.
“흑마법사는 아직 없어.”
짹짹이의 까마귀가 눈에 불을 켜고 그들을 찾고 있으나 아직 냄새조차 맡아지지 않았다.
지금은 새벽을 벗어난 아침.
흑마법사가 힘을 펼 어두운 밤은 아니다.
“그럼 우리가 제일 먼저 들어가는 거로군.”
첫 번째 단추는 잘 꿰어졌다.
이제 나머지 단추들을 침착하게 잘 꿰매 가면 될 일.
일행은 유적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안으로 들어와서 처음 느낀 감상은 ‘서늘하다’였다.
밖과 완전히 다른 유적 내부의 온도.
태양의 열이 닿지 않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어도 기온의 서늘함과는 살짝 다른 점이 있었다.
감각의 서늘함.
죽음이 드리워졌을 때 느끼는 등골의 서늘함이 이 안에서는 항시 느껴졌다.
“더럽군.”
누군가 목에 칼을 대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엘리스나 데카드는 이런 느낌에 익숙해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표정이 안 좋았다.
“여기에 먼저 첫 번째 함정을 놓자.”
흑마법사들을 위해 입구에서부터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데카드의 마나가 아닌 짹짹이의 마나가 움직였다.
짹짹이가 마나를 보내 주면 마법 가공은 데카드가 처리했다.
“섀도우 트렙.”
이 마법은 그림자 속에 녹아드는 마법으로 밟게 되면 칼날이 솟아나 발 주변을 베어버린다.
데카드는 섀도우 트렙을 세 번 더 설치했다.
“확실히 산맥과는 다르네요.”
벨린다가 길을 걷다가 새롭게 바뀐 환경을 보고 감상을 뱉었다.
갈림길이 두 갈래를 넘어 세 갈래, 네 갈래를 넘어가고 있었다.
“미로…… 같죠?”
“그렇지.”
이 수많은 갈림길 중에 진짜 활로는 하나.
이런 길은 유적에서가 아닌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던전에서 본 적이 있다.
데카드는 그때의 경험을 살려 마수 소환을 준비했다.
“나한테 맡겨.”
데카드는 길의 개수만큼 우드 몽키를 불러냈다.
이 중에 마나가 흐트러지지 않고 고른 우드 몽키가 정답이다.
“느낌이 오십니까?”
“으음…….”
카론이 조심히 데카드의 곁에 다가왔다.
데카드는 대답하지 않고 조금 더 집중에 들어갔다.
이쯤 되면 몇몇 우드 몽키가 함정에 빠질 만한데 네 마리 모두 멀쩡했다.
“설마…… 하핫…….”
데카드는 한 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왜…… 그러세요?”
“우드 몽키가 전부 살아있어.”
“그게 무슨 의미죠?”
모두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고 있을 때 트리스만이 그의 말을 이해했다.
“이 갈래들 전부가 길이군요.”
지금 눈으로 보이는 것이 네 갈래 정도지 안으로 들어가면 점점 더 많아질 거다.
수많은 활로.
이것들의 차이는 도착지까지의 걸리는 시간.
“어떤 길은 10분도 채 안 걸릴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길을 잃게 되면 계속 빙글빙글 돌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흘러가면 일행은 전부 미로 안에서 아사할 것이다.
모두가 침음만을 삼키고 있을 때 아스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가?”
“네!”
무언가 방법이 있는 듯 앞으로 나선 아스카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그와 동시에 양손 또한 바닥에 두었다.
아스카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마나를 천천히 순환시켰다.
심장부터 시작해 오장육부, 손가락 끝까지 마나가 전해졌다.
“마나넨 소나.”
우우우우웅-
일반인의 눈으론 전혀 보이지 않겠지만, 마법사인 일행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아스카를 중심으로 물결처럼 번져나가는 마나의 진동을.
진동은 그 앞에 벽이 있건 장애물이 있건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뚫고 나갔다.
“호오…… 이런 원리인가.”
데카드가 마법사의 본능으로 저도 모르게 마법을 분석할 때 아스카의 마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벽을 감싸면서 훑고 지나가듯 빠르게 움직이던 물결은 다시 아스카에게 정보의 형태로 돌아온다.
마나넨 소나로 일으킨 물결이 지나간 곳은 이제 전부 아스카의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그중에 잡스러운 길을 전부 제외하고 가장 최단로를 찾아내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
아스카는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하나의 길을 가리켰다.
“이쪽이에요!”
“오오! 역시!”
“잘했어!”
부원들이 환호하고 있을 때 데카드의 안에서도 뿌듯해하는 한 마리 마수가 있었다.
[역시 내 첫 번째 인간 제자다! 으흠! 너희는 저런 제자 없지?]
[으으읏! 카론! 더 분발해라!]
[흥! 두고 보거라! 우리 고드윈이 흑마법사를 불태울 것이니.]
[…….]
레오 또한 조용히 마음속으로 벨린다를 응원했다.
아스카가 찾아낸 길을 맨 앞에서 안내하고 있을 때 데카드와 트리스는 함정을 뿌리고 있었다.
트리스의 함정은 마나로 만들었기에 같은 마법사인 그들이 알아챌 확률이 높았다.
그러나 그녀의 함정은 페이크.
그다음에 방심한 흑마법사를 노릴 함정들이 연달아 있다.
미로를 따라 5분 정도 걷자 출구가 나왔다.
“……이제는 뭐가 나올지 예상을 할 수가 없네.”
“동감입니다.”
“대련장처럼 보이는데요?”
벽면에 창이나 칼을 비롯한 냉병기가 걸려있고 활도 보였다.
바닥에는 잘 미끄러지지 않는 모래를 깔아두었고 발에 차이는 돌부리도 없었다.
“그렇긴 하네요.”
“그럼 누구랑 싸우는 건데?”
데카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연무장의 한쪽 벽이 쩌억 하고 열렸다.
쿵- 쿵- 쿵-
모래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움직임 하나하나에 각을 맞추며 척척 연무장으로 걸어왔다.
그 수가 하나…… 둘…… 셋…… 우연의 일치일진 모르겠으나 일행의 수인 일곱과 겹쳤다.
“얘들이랑?”
“아무래도 그런 것 같은데요.”
골렘과도 같은 마법 생명체인 것 같은데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도 본 데카드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
두 진영 중에서 먼저 입을 연 건 놀랍게도 모래 병사 쪽이었다.
[우리와 싸워서 이겨라. 그러면 보내준다.]
간단명료한 모래 병사의 설명에 트리스가 입을 열었다.
“너희의 정체가 뭐지?”
트리스의 말에 모래병사는 답하지 않았다.
아니, 답할 수 없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아마 입력되어있는 말이 방금 그게 끝이었나 봐.”
“……불친절하군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친절하다고 봐야지.”
이정도면 유적치고 매우 유순한 편에 속했다.
산맥에서의 유적은 고개를 절로 젓게 만드는 난이도의 함정이 즐비했다.
“그래서 수가 일곱이었군요.”
모래 병사 중 여섯 명이 한쪽 벽면에 붙고 남은 한 명은 우두커니 연무장 중앙에 서 있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먼저 나선 건 카론.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나선 카론이 모래병사에게 걸어갔다.
“아이언 피스트.”
철커덩-
빛나는 철권이 그의 손과 발을 감싸 안았다.
무기이자 보호구인 이것들은 카론의 속도를 만나 파괴적인 위력을 갖추게 된다.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모래 병사는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다.
스아아아-
모래가 병사의 손으로 천천히 올라오며 놀랍게도 카론이 갖춘 장갑과 신발의 모습을 했다.
“카피인가.”
카론이 두 주먹을 양 볼에 붙이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허리는 살짝 숙이고 끊임없는 풋워크.
훌륭한 무투가의 자세다.
“고작 모래 따위가.”
카론은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으며 순식간에 모래 병사의 턱밑까지 도달했다.
몸을 바닥까지 숙이고 카론은 몸을 스프링처럼 튕겼다.
순간 카론의 주먹이 흔들리며 잔상의 형태로 사라졌다.
그리고 턱에 들어간 깔끔한 어퍼컷.
퍼엉-!
“…….”
사람의 턱이 부서지며 피가 흐르는 상황은 역시 오지 않았다.
대신 머리에 있는 모래가 터져나가며 병사의 목 위가 사라져있었다.
“끝났군.”
카론이 주먹에 묻은 모래를 털고 뒤돌아선 순간 병사의 손이 움찔거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