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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08화 (108/208)

108 작전 타임

“또 다른 마법사……?”

로브를 입는 게 비단 마법사뿐만은 아니기에 속단할 수는 없었으나 불안한 예감이 속에서 끓어올랐다.

트리스는 천천히 마나를 잠재우며 유적으로 걸어갔다.

어두운 밤이라 시야가 좁아져 유적 근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뭐지, 저들은?”

트리스가 유적에 근접해 몸을 숨길 때쯤 두 무리의 로브인들이 만났다.

“거기 멈추시오.”

“우리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외다.”

“소속을 밝히시오.”

소속이라는 말에 세 명의 로브인은 낄낄거리다가 곧 대답해 주었다.

“우리는 소속이 딱히 없소.”

“그러면 당신들의 정체는 뭐요?”

샤릴마의 마법사들은 점점 높아져 가는 긴장감에 저들끼리 뭉쳐 모래를 샤라락 움직였다.

그들이 전투태세에 들어가는 걸 본 로브인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올렸다.

무언가 마법을 쓰려는 것 같은 자세였지만 마나를 비롯한 다른 마법의 전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입을 달싹이기만 할 뿐.

“정체를 밝히거나 썩 물러나지 않으면 공격하겠…….”

샤릴마의 마법사는 말을 전부 끝마치지 못했다.

풀썩-

한 명이 모랫바닥에 쓰러진 채로 발작하듯 몸을 심하게 떨어댔다.

“왜, 왜 그러는가!”

한 명이 저주에 걸렸으니 근처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옮는 건 순식간.

샤릴마의 마법사들은 별다른 대응도 해보지 못하고 저주에 몸이 굳어 질식사했다.

“크흐흑! 이거 너무 쉬운데?”

“목소리를 낮추어라. 우린 지금 잠입 중이다.”

“그래. 이 유적에 주인이 정해졌다고 하지 않았나.”

저주를 건 흑마법사가 샤릴마의 마법사들을 모래 안으로 파묻으며 대꾸했다.

“아아, 그 마법부 놈들? 그런 쓰레기들이 우릴 막을 수 있겠어?”

“우습게 보아선 아니 된다. 개중에는 트리스 아드리안도 있으니.”

“…….”

트리스 아드리안이라는 소리에 흑마법사의 몸이 순간 움찔거렸다.

흑마법사가 되기 전에는 이들도 마법부 소속이었다.

트리스와 부서는 달랐지만, 직급상 트리스가 이들의 훨씬 위.

데카드가 사라지고 한창 미쳐있어 철혈이라 불리던 때의 트리스를 똑똑히 보았던 게 이들이다.

뭐 하나 심기를 잘못 건드리면 그 상대를 죽일 듯 물어뜯는 미친개!

그 공포는 지금처럼 강해졌어도 본능에 남아있어 쉽사리 없애지 못했다.

“그럼 오히려 다행이지! 복수할 수 있는 기회니까 말이야.”

흑마법사는 자신의 공포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며 샤릴마 마법사들의 매장을 끝냈다.

“나와 봐라.”

매장 후에는 곧바로 흑마법을 이용해 시체 군대에 종속될 언데드로 만든다.

우어어어-

꽤나 순도 높은 좀비 메이지가 탄생했다.

생전에 높은 서클의 소유자였던 만큼 그 특성을 어느 정도 타고나 좋은 병사가 만들어졌다.

“오오! 이놈들은 쓸 만하겠는데?”

“그럴 것 같군.”

흑마법사 중 한 명이 까불대는 다른 흑마법사의 뒷덜미를 잡아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뭐, 뭐 하는……!”

화르르르-!!

거대한 불덩이가 까불거리는 흑마법사의 옷자락을 태우고 애꿎은 모래를 폭발시켰다.

“쯧.”

혀를 차며 아쉽다는 듯 등장하는 마법의 주체.

어두워서 흑마법사들의 눈에는 인형만 보일 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누구냐, 네놈은.”

큰 키에 가녀린 몸매는 왠지 여자 같기도 했으나 그건 자신이 알 바가 아니었다.

불덩이를 날린 이는 대답하지 않고 또다시 손에서 불을 일으켰다.

마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걸 보니 마법사인 것 같기는 한데 서클이 느껴지지 않는다.

“저놈의 실력을 가늠할 수가 없군.”

“그, 그러게 말이야.”

“그건 말이 되지 않는데.”

서클이 느껴지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서클의 개수가 자신과 같거나 아니면 더 높거나.

지금 흑마법사들의 서클 수는 7서클.

원래라면 닿지 못했을 엄청난 경지이지만 흑마력을 몸에 받아들임으로써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마법사가 7서클이다?

나쁜 농담으로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일단은 물러나지.”

“왜!”

“나는 동감이다.”

지금 저 마법사와 싸우는 건 도박이다.

자신들이 협공하면 높은 확률로 이기겠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낮은 확률로 자신들이 진다는 거다.

그냥 자신의 힘만 믿고 나갔던 흑마법사의 말로는 항상 좋지 않다.

언제나 준비의 준비.

최선의 준비가 생명이다.

“쳇!”

흑마법사들은 품에서 흑연탄을 꺼내 바닥에 터뜨려 자욱한 운무를 만들어냈다.

트리스가 손을 크게 휘둘러 만든 바람 마법으로 운무를 전부 제거했을 땐 이미 흑마법사들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그래서 데카드는 그때 어떻게 했나요?”

“뭘 어떻게 해. 주먹을 날렸지.”

“하하핫! 데카드답네요!”

잠깐 생각을 정리하던 트리스의 머릿속으로 멀지 않은 곳에서 시끌시끌 떠드는 데카드와 엘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트리스는 모래를 사박사박 밟으며 둘의 뒤로 다가갔다.

“둘의 데이트는 끝난 것 같네요.”

엘리스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사이 트리스는 어느새 둘을 다 따라잡았다.

“여기 계셨군요, 선배.”

“어. 협상은 잘 끝냈어?”

“네. 이제 저 유적은 공식적으로 저희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데카드는 고개를 주억이며 샤릴마가 있을 서쪽을 바라보았다.

“회식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다 같이 고생했는데.”

“그것은 유물을 손에 넣은 후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지.”

트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엘리스를 찌릿 하고 쳐다보았다.

그 눈에 담겨 있는 뜻은 이러했다.

감히 나 몰래 선배와 데이트를 나가?

“흠흠~”

엘리스는 콧노래를 부르며 트리스의 눈을 피했고 데카드는 팔뚝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럼 이제 들어가자. 춥네.”

“추우면 마법 걸어 드릴까요?”

“아니, 아니. 그 정돈 나도 할 수 있어.”

[이 고오른이 있으니 걱정 마십쇼!]

추울 때는 고오른이 따뜻한 마나를 몸에 돌려주고 더우면 요르가 차가운 마나를 몸에 돌려준다.

에어컨이나 히터가 전혀 필요 없어 아주 유용하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면서 트리스는 방금 자신이 본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걔네들이 도망갔다고?”

“그렇습니다.”

“아마 흑마법사들이겠죠?”

십중팔구로 그럴 것이다.

“그런데…….”

트리스는 무언가 말을 꺼내기 전 쉽사리 입을 떼지 않았다.

그녀가 이러는 경우는 정말 드물어 데카드와 엘리스의 눈이 트리스의 입으로 집중되었다.

“흑마법사들의 서클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얼마나 되는데?”

“최소 7서클입니다.”

마법사가 흑마법사의 직접적인 서클을 느낄 수는 없었으나 위압이나 기세로 미루어보아 거의 확실했다.

“흐음…….”

이것에 관해선 데카드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흑마법이라는 편법으로 올린 거겠지만 그래도 7서클은 7서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강함이다.

“그 대장 흑마법사 정도가 세 명이라…….”

데카드는 일이 쉽게 흘러갈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에 헛바람을 살짝 들이켰다.

“그들은 준비를 끝낸 후에 돌아올 것입니다. 저희도 그때 동안 대비를 하거나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유물을 가져와야 할 것 같군요.”

“그래.”

데카드는 짹짹이의 까마귀들을 유적 주위에 흩뿌려놓았다.

흑마법사들이 접근하면 언제든지 알 수 있도록.

이제는 샤릴마의 마법사들도 없어 마음껏 마나를 뿜어낼 수 있다.

“부원들에게 알릴까요?”

엘리스가 묻자 데카드는 살짝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는 게 낫겠어. 부원들을 전부 공용 캠프로 모아줄래?”

“네!”

엘리스가 베이스캠프의 각 방으로 들어가 부원들을 불러 모았다.

삽시간에 공용 캠프로 퇴마부의 부원들이 전부 옹기종기 모여 앉게 되었다.

고드윈은 샤워 중이었는지 샤워 가운만 걸친 채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런 오밤중에 불러 모아서 미안한데 이건 꼭 전해 줘야 할 것 같아서.”

데카드가 부원들의 앞에 서서 전반적인 상황 설명에 들어갔다.

먼저 유적은 순조롭게 자신들의 것이 됐다는 것에서부터 시작.

이때까지는 부원들도 모두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트리스가 방금 전에 목격한 세 명의 흑마법사.

이들의 강함과 노련함에 대해 말하자 퇴마부원들은 낯빛이 심각한 투로 변해갔다.

“이번 유적은 속도전이다. 흑마법사들보다 빠르게 유적으로 들어가서 유물을 가져온다. 질문 있나?”

그 물음에 벨린다가 한쪽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그래, 벨린다.”

“흑마법사들을 만나게 된다면 저희는 싸워야 합니까? 아니면 도망쳐야 합니까.”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7서클의 흑마법사 세 명과 부원들이 조우했을 때 이들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야, 벨린다!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괜찮다, 아스카.”

아스카가 벨린다를 나무라려는 그때 데카드가 그녀를 제지했다.

벨린다의 물음은 타당한 것이다.

“솔직한 나의 의견을 말하자면.”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며 고드윈의 머리 위에 맺힌 물방울이 땅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졌다.

“너희는 도망치는 것이 맞다.”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흘러나왔으나 데카드는 말을 끝마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갔다.

“너희들은 아직 설익은 과일이다. 어중간한 놈들은 손쉽게 해치우겠지만, 그놈들은 하나하나가 대장급이다. 아직 너희에게는 벅찬 상대지.”

“7서클의 흑마법사는 별다른 동작이나 마법진 없이도 저주를 거는 것이 가능합니다.”

트리스가 이들의 위험성을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맞아. 그래서 더더욱 위험해. 까딱 잘못하다간 여기 있는 모두가 죽을 수도 있어.”

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별다른 말이 없었다.

있을 리가 없다.

자신들이 그동안 피땀 흘리며 해온 고생의 결과를 뽐내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생겼으니.

“그래서 작전을 짤 것이다. 놈들과 최대한 만나는 일이 없는, 만나도 최대한 죽을 걱정이 없는 작전을 말이다.”

“저와 퇴마부장, 엘리스가 고민해 볼 터이니 너무 큰 걱정은 안 하셔도 좋습니다.”

“저희들도 작전을 짜는 데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키론이 기특한 소리를 하자 데카드는 싱긋 웃었다.

“물론이지. 너희들은 전법을 짜라. 어떻게 해야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며 공격을 최대한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 한 몸처럼 움직일수록 흑마법사들은 너희를 더욱 어려워할 거야.”

“알겠습니다.”

부원들이 후다닥 캠프 바깥으로 나가고 셋은 책상에 둘러앉아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 * *

“너는 옷부터 좀 갈아입고 오지?”

“아, 미안.”

샤워 가운만 덩그러니 걸친 고드윈을 아스카가 돌려보내고 다들 의자 하나씩을 가져와 불 앞에 모여 앉았다.

이렇게 하니 꼭 캠프파이어 같은 평화로운 느낌이 들었지만 지금 입에서 나오는 얘기는 전혀 평화롭지 않았다.

“아아, 어떻게 해야 그 새끼들을 잘 족쳤다고 소문이 날까.”

“일단 각자의 장점을 말해 보도록 하지. 그래야 그것들이 두드러지게 진형을 짤 것 아닌가.”

카론이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자신의 장점을 먼저 꺼냈다.

“나부터 말하자면 나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고 근접전에 유리하다.”

“나도 카론이랑 비슷해. 원거리도 가능하지만, 장점을 다 살리려면 검으로 하는 근접전이 좋지.”

근접전은 이렇게 두 명.

정확히는 여기 빠진 엘리스까지 합해 총 세 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고드윈이 끼어들며 말했다.

“나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그냥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

“화력은 중요하니까.”

고드윈의 백염은 흑마력과도 대척점에 있기에 그들에게 높은 데미지를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스카만 남은 상황.

“나는 여러 가지 속성을 쓸 수 있다는 것과 멀린 가문의 비전 마법으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힘든 상황일수록 변수는 유리하게 작용한다.

내일 당장 7서클의 흑마법사 셋과 부딪쳐야 하는 지금은 더더욱 유리하리라.

“그럼 우리 이렇게 해보자!”

쑥덕쑥덕 부원들과 트리스, 데카드, 엘리스는 밤새 이야기에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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