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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07화 (107/208)

107 협상 종결

서걱-!!

엘리스의 단검이 훑고 지나가자 그 중간에 무엇이 있든 가감 없이 잘려나갔다.

몇 번의 칼춤이 끝났을 때 더 이상 검은 전갈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들 다친 데는 없지?”

문 울프를 다시 마수계로 돌려보낸 데카드는 혼자서 몇 백 명씩 적을 상대한 부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부원들은 분출된 아드레날린 덕분에 피로도 잘 느끼지 못하고 한층 고조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네!”

“없는 것 같습니다.”

“후우……! 진짜 재밌었습니다.”

벨린다는 잠시 검에 묻은 피를 사악 닦다가 왼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미간을 좁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베인 듯하다.

피가 울컥울컥 새어나오는 깊은 상처는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제길.”

눈먼 칼에 운 없이 맞아버렸다.

벨린다는 주머니에서 약초 붕대를 꺼내 베인 부위에 감아주었다.

그 모습을 본 데카드.

“어디 다쳤어?”

벨린다는 머쓱한 듯 다친 팔을 감추며 어물어물 말했다.

“그…… 살짝 베였습니다. 별건 아니에요.”

“그래? 그래도 한 번 보자.”

엉거주춤 내민 그녀의 팔 위에 데카드가 손가락을 대고 어디 다치진 않았는지 마나로 쓸어보았다.

다행히 벨린다의 말대로 상처는 경상.

“상처 다 날 때까지는 수련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쉬엄쉬엄 해.”

“네.”

이렇게 말해도 또 밤새 검을 휘두를 걸 알았으나 구태여 다른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최근 레오의 검술에서 깨달은 묘리를 더욱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벨린다는 밤낮없이 수련 중이다.

그 깨달음들을 실전에 무리하게 적용하려다가 얻은 게 바로 이 상처.

자신의 페이스를 밀어붙이며 번개를 휘둘렀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다.

벨린다는 더욱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달으며 검집을 불끈 쥐었다.

“자! 이제 그럼 다시 마법부 베이스캠프로 돌아가자!”

“근데 부장님?”

“응?”

아스카가 질문이 있다는 듯 손을 높이 들며 말했다.

“이 상품들은 다 어떻게 하죠?”

“아…… 맞다.”

승리에 취해 잠시 이 코끼리와 낙타의 상단 행렬을 잊고 있었다.

커다란 수레와 마차에 그득그득 실린 값비싼 물품들.

능력 있는 상인이 맡는다면 다른 도시로 가 큰 이윤을 낼 수 있을 거다.

그러나 여기 있는 이들은 물건을 팔아본 경험이 거의 전무.

혓바닥을 열심히 놀려보아도 이런 대상단 사이즈로 넘어가면 먹히지 않는다.

“다른 도시로 갈 순 없으니까……. 그냥 우리가 가질까?”

“이 중에서 부원들이 원하는 물건이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금 실린 것들은 전부 사치품이나 보석.

마도구도 아니고 전투에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인데 주면 받겠지만 침을 흘리며 탐을 낼 물건들은 아니었다.

“크흠…… 그럼 저 아까 저 수레에 괜찮은 팔찌가 하나 있던데 하나만…….”

아스카가 아까 수레 옆에서 걷다가 눈여겨본 물건이 있는 듯 조심스레 물어왔다.

그러나 여기 있는 물건의 대부분은 트리스의 돈으로 샀기에 데카드가 마음대로 오케이할 수는 없었다.

“그건 트리스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마음대로 하십쇼.”

“오예! 감사합니다! 총장님!”

헤벌레 웃으며 아스카는 수레 안으로 뛰어 들어가 원하던 팔찌 하나를 챙겨왔다.

수수하게 빛나는 팔찌는 ‘나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팍팍 났다.

“선배는 뭐 갖고 싶은 거 없나요?”

“나는 그다지.”

평소에 이런 사치품에 관심이 있으면 모를까, 데카드는 그런 것에 별 의의를 두지 않았다.

“엘리스는요?”

“저, 저요?”

트리스가 자신의 의견도 물어봤다는 것에 놀란 엘리스가 순간 말을 더듬으며 반문했다.

트리스는 맞게 들었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엘리스는 마음에 드는 거 없습니까?”

“저도 뭐…….”

딱히 봐둔 물건도 없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들은 빛에 반사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아직 암살자로서의 본능이 살아 숨쉬는 지금은 기피하고 싶었다.

“그럼 이 남은 것들은 유적을 사는 데 보태야겠군요.”

가론을 잡았어도 유적의 가격은 백금화 천 개.

여전히 높은 가격임에 틀림이 없었다.

남아있는 상단 물품들과 더불어 마법부의 돈을 합친다면 유적은 충분히 살 수 있다.

일행은 다시 수레와 코끼리에 탑승하고 베이스캠프로 움직였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는 도적들의 시체가 즐비했다.

시체는 어쩔 수 없이 사기(死氣)를 내뿜고, 그것에 숨을 쉬며 힘을 쓰는 족속들이 있다.

“아아……. 공기가 참 좋군.”

“그러게 말이야.”

코를 킁킁거려 봐야 시체 썩는 냄새밖에 나지 않았지만, 이 검은 로브의 남자들은 그것이 정말 향긋하다고 믿었다.

냄새를 맡다 말고 한 흑마법사가 막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저번에 풀어두었던 전갈 하나가 부서졌다.”

“흑마력이라 마법사들이 알아채지 못할 텐데?”

“유적 근처에 있던 게 아니라 각 세력의 캠프 주위에 있던 거다.”

“지금 그런 걸 따질 때냐? 이 시체들이 보이지 않아?”

방금 막 죽어서 피도 굳지 않은 신선한 시체들.

신선함과 시체는 양립하는 단어이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렇지 않다.

흑마법사 셋은 시체들을 자신들의 주름진 손으로 쓸어보았다.

따뜻하다.

사막의 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따뜻한 느낌이 강했다.

“준비해라.”

“알고 있다.”

“명령하지 마라.”

딱히 부하의 관계는 아닌 듯 셋은 서로에게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들은 먼저 마법으로 시체를 한곳에 모았다.

그러고는 각각 떨어지며 나뭇가지로 모래를 그어 무언가를 그려냈다.

동그랗고 여러 수식들이 마구잡이로 그려진 그것은 마법진의 형태를 띄어갔다.

삼각형의 모양으로 셋이 시체를 둘러쌌다.

양손을 쭈욱 힘 있게 뻗었다.

로브 자락이 펄럭거릴 정도로.

그와 동시에 세 명에게서 폭발적인 흑마력이 튀어나왔다.

사아아아아-

시체를 쪼아 먹기 위해 왔던 독수리가 그 흑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땅으로 툭 떨어졌다.

근처에 있던 전갈이나 지네 할 것 없이 이 범위 안에 들어오는 순간 모두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 미물들의 시체가 내뿜는 사기조차 이들에게는 곧 힘.

셋은 몸 안으로 들어오는 힘에 만족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시체 융합!”

“시체 융합.”

“시체 융합!!”

셋의 기합과도 같은 시동어와 함께 시체들이 꿈틀거렸다.

시체들의 사지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붙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몸은 더욱 큰 신체를 만들어갔고 팔은 두 개를 넘어 세 개, 네 개씩 몸에 붙었다.

세 명은 이마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집중했다.

이 중의 한 명이라도 집중이 틀어졌다간 나락으로 가는 것은 한순간이다.

하지만 여기 모인 흑마법사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

일찍이 마법사 시절에서도 이름을 날렸다가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흑마법사로 전향한 이들이다.

그런 만큼 본래보다 성취가 더 높아졌고 힘 또한 더 막강해졌다.

한 시간가량 지났을 때 시체 융합이라는 거대 흑마법의 끝이 났다.

“후우…….”

“……지치는군.”

“큭큭, 고작 이 정도로 말이냐?”

“네놈도 땀 흘리는 거 다 보인다.”

“쳇.”

다른 놈이 성질을 긁어도 흑마법사들은 결과의 만족감에 화가 나지 않았다.

지금 자신들의 앞에 있는 시체 군대들.

약한 개체는 버려지고 이 흑마법을 버티는 강한 놈만이 살아남았다.

여러 개의 팔과 머리로 사각지대를 없앤 지옥의 병사!

무려 천 구의 시체가 있었기에 얻어낼 수 있었던 값진 결과물이다.

“좋아, 좋아.”

“이제 이걸로 유적 근처에 주둔하는 놈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겠어.”

“크크큭, 조용히 들어가는 건 재미가 없지.”

흑마법사들은 시체 군대를 자신들의 아공간에 나눠 담고는 해골마를 꺼내 천천히 유적으로 움직였다.

* * *

베이스캠프에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마침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

가론의 수급을 담은 상자를 들고 트리스는 옷을 갈아입었다.

“다녀와.”

“빨리 올게요.”

트리스는 상자를 품에 안은 채 중앙에 있는 막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조금만 깎아 주십쇼!”

“아니 거, 안 된다니까 그러네!”

이제는 아예 울고불고 매달리는 협상가들을 뿌리치고 있는 중인 샤릴마의 협상가.

다른 무역 도시에서 온 협상가들도 슬슬 백금화 만 개를 꺼내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막사의 입구를 펄럭이며 들어오는 붉은 머리의 여자.

모두가 익히 아는 마탑의 총장 트리스 아드리안이다.

“아아! 어서 오십쇼!”

최근 이 떼쟁이들에게 지친 샤릴마 협상가가 오랜만에 막사로 온 트리스를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트리스는 오자마자 서론은 날려버리고 본론부터 꺼냈다.

“백금화 천 개에 유적을 사겠습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그 가격으로 사시려면 검은 전갈을 모두…….”

샤릴마의 협상가가 또 했던 말을 다시 하려고 할 때 트리스가 상자 하나를 테이블 위로 올렸다.

쿠웅-

“이, 이게 뭡니까?”

“당신이 거래 조건으로 원하던 것이었습니다.”

“서, 설마?”

샤릴마의 협상가는 떨리는 손으로 상자를 열었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가론의 머리.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 내가 동시에 나는 것이 썩 좋은 향기는 아니다.

협상가들은 코를 싸매며 상자에게서 멀어졌고 트리스는 아무렇지 않게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돈은 저기 밖에 있습니다. 저 행렬을 그대로 들고 가시죠.”

“아, 알겠습니다.”

샤릴마의 협상가는 상자를 받아들고 헛기침으로 목을 풀었다.

“그럼 이제 저 유적은 정당한 값을 지불한 마법부의 것입니다. 마법부를 제외한 다른 세력이 유적에 침입한다면 저희 샤릴마가 가만두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것으로 유적 협상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샤릴마의 협상가와 같이 트리스도 막사 바깥으로 나왔다.

굳이 망연자실한 이들과 같이 있으며 그 기분을 자신에게까지 옮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빨리 돌아가야 그만큼 선배 얼굴도 빨리 보니까.’

사실 기분이고 뭐고 이런 이유가 가장 컸다.

베이스캠프로 돌아오자 각각 자신의 방에서 개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수련을 하고 있는 이도 있었고 한가롭게 캔 요리를 뜯는 이도 있었으며 평화로운 나날을 즐기는 이도 있었다.

“총장님도 드실래요?”

“저는 괜찮습니다.”

“넵!”

캔 요리 마니아인 아스카가 만드는 중인 캔 요리 하나를 내밀어 보았지만 트리스는 거절했다.

그런 저녁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기 때문이다.

“선…… 아니, 퇴마부장은 어디 있습니까?”

“잠깐 엘리스 언니랑 어디 가시던데? 잘 모르겠어요!”

순간 서늘했던 사막의 기온이 더욱더 내려가며 다른 사람들은 남극에라도 온 줄 알았다.

뜨거운 캔 요리에 서리가 끼는 것 같이 시려오는 트리스의 살기에 아스카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놓칠 뻔했다.

“총장님……?”

아스카 앞에 있던 트리스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녀는 지금 캠프 주위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기감은 최대한으로 넓히고 데카드의 마나를 찾아보았으나 워낙 그가 자신의 기운을 숨기는 데에 능하여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연적을 두고 방심해 버린 자신에 대한 자책과 함께 혀를 차던 트리스의 눈에 저 멀리 샤릴마의 마법사들이 들어왔다.

저들은 이제 샤릴마로 돌아가려는 듯 짐을 싸고 있었다.

이제 협상도 끝났고 저들도 돌아가는 것이 맞으니 이상한 행동은 아니었다.

이제 그것에 대한 관심을 끄고 사라진 둘을 찾으려던 찰나 그들에게 접근하는 세 명의 로브인이 보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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