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검은 전갈의 습격
광활한 사막에 울려 퍼지는 총격음.
엘리스에 의해 엎드린 데카드는 급하게 고개를 조금 내밀어 주변을 살폈다.
“저격수…….”
샤릴마의 마법사로 보이도록 세워둔 황토색 로브가 저격수들의 총알로 너덜너덜해진 채 수레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젠장.”
또 있을 저격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데카드는 몸을 최대한 낮게 숙였다.
운전석에서 제일 눈에 띄는 고드윈은 총소리에 놀란 코끼리를 급하게 진정시켰다.
“남쪽이에요!”
햇빛에 반짝거리는 스코프를 확인한 엘리스가 일행에게 외쳤다.
“모두들 남쪽을 등지고 수레 뒤로 숨어!”
수레를 엄폐물 삼아 일행은 데카드의 명령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저격수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지금 방어 마법이라도 써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직 아니야.”
데카드가 올라간 아스카의 손을 내리며 그녀의 시전을 막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검은 전갈의 본대가 보이지 않는 지금, 마법 시전은 섣부른 짓이다.
쿠구구구구궁-
“으아악!”
아스카의 다리가 떨리고 뒤로 콰당 넘어질 정도로 큰 진동이 바닥에서 울려왔다.
카론은 그 정체를 직감한 듯 조용히 중얼거렸다.
“본대로군요.”
고드윈은 전 방위에서 느껴지는 진동이 점점 강해지고 잦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거, 이거 아주 작정을 했는데요?”
“바라던 바야.”
“설령 대장이 없더라도 심문에 필요한 인원들은 충분하군요.”
트리스는 곧 보는 사람이 생긴다는 명목으로 연기를 위하는 것처럼 데카드에게 붙었다.
물론 엘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콰아아앙-!
사막의 땅에서 모래가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검은 전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행렬 주위를 빈틈없이 포위한 대형 전갈의 수를 보니 꽤나 그 위압감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존재가 있었다.
이 수많은 전갈들 중 가장 크고 거대하며 보석으로 치장한 거대 전갈.
그것을 조종하는 한 남자.
주변 도적들의 눈빛에서 선망과 존경이 느껴지는 게 낚시에 제대로 성공한 듯했다.
데카드가 씨익 웃었다.
“뭐가 웃긴가?”
그것을 본 남자, 가론은 의아한 듯 물었다.
“공포에 질려버린 것인가?”
하기야 심약한 성격이나 정신의 소유자는 이 도적들이 뿜어내는 살기를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크하하하하하-!!
가론의 한마디에 배꼽이 빠져라 다른 도적들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것에는 데카드를 향한 비웃음이 반, 조소가 반이었다.
둘 다 비웃었다는 것엔 변함이 없으니 데카드 역시 더더욱 입이 찢어지게 웃었다.
척-
가론이 도적들의 웃음소리를 손 한 번 들어 제지시켰다.
가론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이다가 그 옆에 있는 엘리스와 트리스에게로 시선이 옮겨졌다.
“호오…… 이건 귀하군.”
가론은 옆에 있는 수하에게 턱짓으로 둘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자신만 한 전갈에서 내리더니 쿵쿵 모랫바닥을 울려대며 다가왔다.
당장 둘은 연기를 하는 중이었기에 도적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어댔다.
“이리 와라!”
“왜, 왜 이러세요!”
“놔주세요!”
“크하하! 두목, 저희 횡재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재물보다 여자의 부분에서 횡재를 말할 정도로 이번에 얻은 수확이 대단했다.
저기 처 웃고 있는 얼뜨기에는 아까울 정도.
자신들이 데려가는 게 더 세상에 이로울 것이다.
반항하는 척하지만 순순히 잡혀 들어간 둘은 가론의 앞에 오게 되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군.”
이건 대사막에서 쓰는 절세미녀를 빗대는 말이다.
가론은 자신이 이 단어를 뱉어 본 지가 얼마나 됐지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금방 본론으로 돌아왔다.
지금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건 이 여자뿐만이 아니다.
저 낙타와 코끼리, 그리고 황금!
손만 뻗으면 취할 수 있었다.
“이 숫자가 보이느냐?”
“보인다.”
데카드가 대꾸했다.
“이것이 어딜 감히!!”
둘을 가론 앞에 데려온 수하가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허리춤에 있는 사브르를 뽑을 기세였다.
[마수왕님! 쟤네들 언제 공격하냐?]
[어허! 마수왕님은 지금 때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티이라가 조바심을 내는 사이 가론이 수하를 말리고 있었다.
“아니, 됐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보군. 네놈은 내가 친히 죽여주도록 하지.”
“네가 맞는 것 같긴 한데 확실히 좀 하자. 그래서 너는 누구냐?”
가론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입을 허 벌렸다.
수하들을 비롯한 근처에 있는 도적들은 그의 눈치를 보며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튀기진 않을까 걱정했다.
“대륙 무지렁이에게 이 위대한 이름 정돈 알고 죽을 수 있는 영광을 주지.”
가론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이 대사막에 있는 대도적단 검은 전갈의 수장이자 전설의 도적 가론…….”
푸화아아악-!!
가론이 말을 끝마치기 전에 핏물이 사방으로 튀겼다.
그와 함께 날아가는 사람의 머리.
그것은 하늘을 날다가 곧 힘없이 모랫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반쯤 모래 밖으로 드러난 그의 얼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암살자에게 뒤를 보이면 안 되죠.”
엘리스는 단검 날의 끝을 살짝 매만지며 싱긋 웃었다.
“두, 두, 두목님!!!”
전갈 위에서 목이 날아간 채로 앉아 있는 가론의 시체를 보고 나서야 도적들은 작금의 상황을 인지했다.
잠깐 여자에게서 눈을 돌린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도적들과 지근거리에 있는 트리스는 엘리스의 몸을 잡고 헤이스트를 사용해 다시 일행에게로 돌아왔다.
“뭔 일이 일어난 거야?”
“몰라?”
“무슨 문제가 있겠냐?”
수레 후방에 있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도적들은 저기 시끌시끌거리는 수레의 앞쪽을 보았다.
“뭔 일이 난 것 같긴 한데…….”
“우리는 명령이나 잘 따르면 되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전갈 위에서 가만히 있는 도적들의 귀로 함성과도 같은 데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쓸어버려!!”
“그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스카는 마나룸을 전격 개방해서 자신이 최근에 습득한 멀린 가문의 비전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락 온!”
무형의 마나가 시야에 들어오는 도적들을 감싸 안으며 조준 표시를 했다.
“실피드 에로우!”
조준이 끝났으니 남은 단계는 장전과 발사.
바람이 송곳처럼 모이며 실피드 에로우가 쏘아졌다.
푸슉-!!
“크아아악!!”
“커헉-!”
순식간에 열이나 되는 도적들 목에 바람 구멍이 뚫린 채 단명했다.
“오올~ 그게 멀린 가문의 비전이야?”
“네!”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어도 락 온만 걸어두면 무조건 대상에게 날아간다.
숲이나 난전 상황에서 정말 유용한 마법이다.
“제길!”
“마, 마법사입니다!”
“그래도 상대는 고작 일곱이야! 우리는 천이란 말이다! 밀어붙여!!”
부우우우웅-!!
공격 신호를 알리는 나팔이 사막을 진동시키고 주변을 둘러싼 전갈들은 빠르게 진격했다.
“우와아아!!”
“적들을 죽여 버려라!”
역시 천 명이 내뿜는 기세라 실로 대단했으나 여기 모인 이들은 일당백을 우습게 넘어선다.
마법사들은 마나룸의 예열을 끝낸 상태였고 엘리스는 가면을 써 전투력을 증강시켰다.
“소환!”
데카드는 5서클에 오른 기념으로 따끈따끈한 마수들을 소환했다.
아우우우우-!!
문 울프 열 마리가 마법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울프들이 일제히 울기 시작하자 극남쪽 도적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늑대의 출현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데카드가 울프에게 내린 명령은 단 하나.
“물어!”
울프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가까운 도적들에게 달려들었다.
“난 좀 떨어져야겠네.”
불로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스타일인 고드윈은 여기서 싸웠다간 다른 사람들도 같이 휘말릴 수도 있었다.
어차피 저들은 사방에서 몰려오니 이쪽도 누군간 막아야 한다.
고드윈은 팔을 쭉 펴고 스트레칭을 하며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전갈들을 보았다.
“어우 징그러워.”
얼른 이것들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기 위해 고드윈은 뒤로 팔을 쭈욱 당겼다.
“화권!!”
쿠과과과과과과-!!!
모래가 바삭바삭하게 태워지는 소리와 함께 전갈들이 순식간에 익어갔다.
그럼 그 위에 타고 있는 도적들은?
“끄아아아악!!”
“사, 살려줘!!”
“모두 전갈에서 내려!”
당연히 난리가 났다.
몸에는 불이 붙고 엉덩이는 타들어 가는 듯 뜨거웠으며 혼비백산 그 자체였다.
이게 모두 전황의 지휘자인 가론의 부재 때문!
수하들은 전술이나 이런 것을 제대로 할 줄 몰랐다.
그들이 아는 전술은 공격과 후퇴, 이 두 가지.
그러나 처음에 저들이 후퇴를 선택하지 않은 시점에서 결과는 정해졌다.
“저도 기분은 내보겠습니다.”
이런 전장은 트리스가 마음먹고 올 정도가 전혀 아니기에 그녀는 놀러 왔다는 마음으로 마법 한 가지를 준비했다.
엘리스에게 썼던 어나더 선보다는 절반 정도 작은 크기.
대신 수가 많다.
“저, 저기 하늘을 봐!!”
“벼, 별들이 떨어진다!!”
“모두 피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에 진형이고 뭐고 전부 작살이 나며 부서졌다.
“여윽시! 내 후배!”
멀지 않은 곳에서 울프들과 함께 고오른의 건틀렛으로 근접전을 치르고 있던 데카드는 그녀의 활약을 보고 칭찬해 주었다.
활짝 웃고 있는 데카드와 눈이 마주친 트리스는 두 뺨에 홍조가 물들었다.
그 모습에 엘리스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나도 칭찬받을래요.”
“뭐, 뭐라는 거야?”
“남의 것을 빼앗아서 살아온 인생이니 큰 미련은 없겠죠.”
자신에게 점점 다가오는 무면탈의 여자를 보며 도적은 칼도 내팽긴 채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도망쳤다.
그렇게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도적도 엘리스의 범위 안에 있었다.
소리 소문 없이 날아가는 무광의 단검.
가면의 힘이 담긴 단검은 도적의 심장을 뚫고 지나가 뒤에 있는 다른 도적의 팔까지 날려버렸다.
“크아아아!!”
가만히 있다가 팔이 날아간 도적은 괴성을 질렀고 엘리스는 무감하게 단검을 다시 회수했다.
그 과정에서 팔이 날아간 도적은 목도 날아갔지만, 엘리스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한편 카론은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좋은 전갈 무리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었다.
고드윈과 트리스의 광범위 공격으로 전갈을 잃은 도적들이 있는 곳.
카론은 일전에 데카드도 놓쳐버린 속도로 움직이며 도적들의 목을 꺾었다.
“이놈은 혼자다! 이 새끼를 먼저 잡아라!”
카론을 향해 개떼처럼 모여드는 도적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카론이 오히려 바라는 것이었다.
촤라라락-!
카론은 티이라가 알려준 아이언 커팅의 사용법 중 사슬을 만들어 내었다.
“이, 이게 뭐야!”
“잘라내!”
그것은 도적들의 몸을 칭칭 묶어 속박하기도 했고 카론의 팔에 감겨 장갑처럼 이용되기도 했다.
도적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칼을 들이댔으나 멍청한 짓.
그 일련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카론은 사슬을 움직여 자신의 몸에 칼을 박게 했다.
“크허억……!!”
불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얀 화염은 꺼질 줄 몰랐다.
고작 일곱 명이 천 명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우스운 농담 같은 상황에 데카드는 전황을 살펴보았다.
“다들 잘하네!”
방금 막 건틀렛으로 도적의 골통을 부순 데카드는 살짝 이마에 난 비지땀을 닦았다.
[으으! 쟤네 부럽다!]
[안에서 이렇게 보니 투기가 끓어오르긴 하는군요!]
[…….]
[나, 나는 별로!]
요르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가서 싸우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미안 얘들아. 지금은 부원들이 배운 걸 써먹어야 하는 때라 조금만 기다려 줘.’
마수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쩝 다셨고 건틀렛을 해제한 데카드는 점점 정리되어 가는 전황에 만족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