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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04화 (104/208)

104 미끼를 던지다

샤릴마를 한 바퀴 돌며 코끼리와 낙타에 실을 수 있는 상품이란 상품은 전부 꽉꽉 채워 넣었다.

근 몇 년간 이렇게 큰 규모의 상단 행렬은 처음인지라 사람들의 화젯거리는 단연 데카드였다.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신흥 대부호에 샤릴마의 사람들은 그의 정체를 궁금해 했으나 알아내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한 시.

부원들과 샤릴마 북문에서 합류하기로 한 시간이다.

부원들은 이미 약속 장소에 도착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저 멀리 보이는 코끼리에 위상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핫, 내가 퍼뜨린 소문이 영 헛소문은 아니었네!”

아스카는 최대한 소문을 부풀리며, 아마 샤릴마 역사상 최대 규모의 행렬일 것이다 등등 별 망상에 가까운 소문을 퍼뜨렸었다.

그러나 지금 이 행렬을 보니 나름 진실만을 말한 게 아닌가 싶다.

“저거 고드윈인가?”

“어? 그러네?”

코끼리 위에 고삐를 들고 행렬을 지휘하는 고드윈이 보였다.

이제는 아주 전문가처럼 능숙해 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 정도는 우습게 피할 수 있었다.

코끼리 위에 있는 데카드는 부원들과 손으로 간단한 인사를 마친 후 큰 소리로 거리가 떠나가라 외쳤다.

“출발한다!!”

사막 굴지에 숨어 있는 검은 전갈에게도 다 들리도록 큰 소리로.

데카드의 신호에 맞춰 부원들은 수레 주변에 자리를 지키며 용병의 역할을 했다.

행렬이 샤릴마를 빠져나오자 가까이 있던 벨린다가 데카드에게 다가왔다.

“부장님. 이걸 가져오긴 했는데 뭐에 쓰시려고 그러세요?”

“오오, 잘했어.”

벨린다가 던진 황토색 로브를 코끼리 위에서 받아낸 데카드는 그것을 쫘악 펼쳐 보았다.

펼치고 보니 깊게 생각하지 않고 슥 지나친다면 충분히 착각할 가능성이 있었다.

“좋아.”

데카드는 그대로 코끼리가 끄는 메인 수레 위로 올라갔다.

거기서 로브를 구기지 않고 넓게 핀 데카드는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짹짹아.’

[알겠습니다.]

짹짹이는 데카드의 생각대로 움직이며 까마귀들로 로브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자 데카드가 손을 떼도 멀쩡하게 사람이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로브의 후드까지 깊게 눌러주자 코앞에서 보지 않는다면 전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트리스는 지금 데카드가 표현한 것이 뭔지 단박에 알아챘다.

황토색의 로브는 지금 피라미드 유적 주위를 지키고 있는 샤릴마 마법사들의 것.

검은 전갈의 피라미들은 이 로브만을 보고도 이쪽에 접근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 행렬은 마법사의 위협을 감수하고도 충분히 먹음직스러운 것.

결국 검은 전갈의 두목이 직접 나서야 할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기다림이야.”

샤릴마에서 가장 가까운 민간 마을인 해쉬까지는 이 속도라면 이틀이 걸린다.

승부수를 던진 이 이틀 동안 미끼를 물어주길 기다릴 뿐이다.

***

“야야, 저거 보이냐?”

“눈이 있으면 저 큰 게 어떻게 안보이겠냐.”

굳이 멀리서 망원경을 쓰지 않더라도 행렬의 규모가 워낙 커서 어디서 어디로 가는지 잘 보였다.

검은 전갈의 정찰원들은 입맛을 싸악 다시며 행렬을 지키는 용병들이나 병사들을 살펴보았다.

“행렬에 크기에 비해 너무 적은데?”

“……저기 수레 위를 봐봐.”

다른 한 정찰병이 어깨를 툭 치며 코끼리가 끄는 수레를 가리켰다.

친구의 핀잔에 망원경의 시야가 잠시 코끼리의 뒤에 탄 트리스와 엘리스에게 우뚝 멈췄다.

“와아…… 시바, 대륙에서 왔나 본데? 미쳤다 미쳤어.”

“아니 그걸 보지 말고 등신아. 수레를 보라고 수레를!”

“수레? 허억……!”

숨이 입을 벌린 채로 턱 막혀서 순간 모래가 입안으로 들어가 사레가 걸릴 뻔했다.

그럴 만큼 저 로브인은 이 사막을 살아가는 도적들에게 공포의 대상.

“샤릴마의 마법사가 행렬을 보호하는 거였어? 그럼 못 건들겠네.”

“아니, 후우…….”

정찰원은 오늘따라 돌처럼 굳어진 친구의 머리를 세게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억눌렀다.

몇 번의 심호흡과 함께 정찰원은 행렬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조 사이즈로 못 먹을 것 같으면 윗선에 연락을 해야지. 잘만 하면 우리도 검은 전갈 본체에 들어갈 수 있다고!”

“그렇겠네! 저 정도 재물과 코끼리, 여자라면!”

“그러니까 빨리 매 날려.”

정찰원은 행렬의 크기와 경호 규모를 적어놓은 후 매의 다리에 묶어 검은 전갈의 본진영이 있는 곳으로 날렸다.

카아아악-!

매는 창공을 자유로이 비행하며 하늘을 누볐다.

“심심하네.”

흔들거리는 코끼리 위에 타는 것도 처음엔 재밌었지만, 이제는 질렸다.

블루 버드를 소환해 부원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할 일이 없어진 터였다.

“사라졌네요.”

“뭐가?”

“저희를 멀리서 누가 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사라졌어요.”

데카드는 아무것도 못 느꼈으나 암살자의 감이니 허투루 여겨서는 아니 된다.

“아마 검은 전갈인 것 같군요. 저희의 행렬을 본 것 같습니다.”

조금 심심해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에 데카드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사막의 바람을 쐬자 나름 힐링하는 것 같고 기분이 좋았다.

매일 전투에 전투를 이어나가던 삶에서 갑자기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부자의 느낌!

데카드가 목표로 하고 있는 삶이기도 하다.

“…….”

눈을 감은 데카드에게서 쌔근쌔근한 숨소리가 들려온다.

설마 이대로 잠든 건가 싶어 눈앞을 손으로 왔다갔다 해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뒷자리를 본 고드윈은 혀를 내둘렀다.

설마 이런 흔들거림 속에서도 잠을 잘 수 있다니.

‘저 양반은 아마 불구덩이에 던져놓아도 따뜻하다며 누울 거야.’

엘리스는 곤히 잠이 든 데카드를 바라보다가 그의 허리에 감은 손을 이용해 조심스레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데카드는 잠에 빠져 이를 전혀 느끼지 못했으나 같이 허리를 감고 있는 트리스는 당연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라는 눈빛이 트리스에게서 쏘아져 나왔다.

그 눈빛을 애써 피한 엘리스는 자신도 데카드 쪽으로 조금 더 이동해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이대로 잠에 빠지고 싶다.’

하지만 엘리스는 암살자의 생활로 잠을 쉽게 자지 못한다.

자더라도 언제나 정신만은 깨어있어 혹시 모를 암습에 대비하도록 훈련이 되어 있었다.

결국 눈만 붙인 엘리스는 귓가로 들려오는 데카드의 숨결을 가만히 들었다.

그런 엘리스의 행태를 바라보던 트리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이 이렇게 나온다면 저도 방법이 있습니다.’

트리스는 조금씩 데카드의 목으로 손을 옮겨갔다.

슬그머니 등을 타고 오르는 손은 한 마리의 뱀같이 유연하고 정확했다.

목까지 손을 올리는 데 성공한 트리스는 데카드의 목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자고 있던 데카드의 몸은 속절없이 쓰러졌고 그의 머리가 트리스의 다리 위에 있는 형상이 되었다.

졸지에 데카드의 어깨를 베개 삼고 있던 엘리스는 뚱한 표정으로 트리스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제가 트리스의 총장 자리를 지켜준 걸 잊으셨어요?”

“그건 물론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 은혜는 당연히 갚을 생각이고요. 하지만 그걸 선배로 갚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둘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갈 듯 서로를 사납게 쳐다보았고 따끔따끔한 살기가 서로를 견제했다.

‘아…… 뜨겁다.’

사막의 햇빛보다 지금 자신의 등 뒤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더 뜨거웠다.

고드윈은 데카드의 블루 버드를 품 안에 넣고 물을 들이켰다.

‘아아, 다 마셨네.’

둘의 쟁탈전을 신경 쓰다 보니 그러면서 한두 모금 마신 게 벌써 다 마셨나 보다.

트리스는 데카드의 머리를 잘 쓸어 옆으로 넘겨주며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

엘리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 모습을 침묵으로 바라보았다.

당연히 트리스는 엘리스의 눈빛을 눈치채고 있었고 씨익 웃으며 그의 머리를 강아지 쓰다듬듯 살살 만져주었다.

“선배는 제 겁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아니요. 절대 저도 양보할 수 없어요.”

트리스는 가소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비집어 올리며 살짝 턱을 들어 엘리스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엔 누가 웃을지 지켜보도록 하죠.”

“제가 할 말이에요.”

자꾸 귀로 들리는 말소리에 데카드의 눈이 반쯤 떠졌다.

아직 잠이 덜 깨 시야가 흐릿했고 코로는 사람의 살 냄새가 들어왔다.

곧 완전히 돌아온 시야로 자신이 지금 트리스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은 데카드는 얼른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미안, 트리스.”

“아니에요. 좋았는데, 쯧.”

뒷말은 들리지 않게 속으로 삼킨 트리스는 다리를 꼬았다.

“데카드.”

“응?”

“다음에는 제 쪽으로 쓰러지세요.”

그게 뭔 소리냐는 눈으로 엘리스를 쳐다보았지만, 딱히 그녀는 뒤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 *

하늘을 비행하던 매가 쉽고 빠르게 옮길 수 있는 캠프들이 대거 모여 있는 장소에 내려앉았다.

매를 발견한 남자가 다리에 묶여 있는 쪽지를 보고는 허겁지겁 가장 큰 캠프로 달려갔다.

대형 캠프 앞에는 입구를 지키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 둘이 있었다.

“이걸 전해야 하오! 한시가 급한 일이란 말이오!”

“우리가 전해드리겠다.”

“여기 있소! 빨리 가서 전해 드리시오!”

쪽지를 받아든 남자가 캠프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흑색 도포를 입고 턱 전반으로 짧은 수염을 기른 남자 하나가 사막의 지도를 보고 있었다.

“두목님, 여기.”

“이게 무엇이냐?”

“어떤 단원이 급하게 전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검은 전갈의 두목, 가론은 남자가 책상 위에 올려놓은 쪽지를 펼쳐보았다.

그 속에 적힌 정보를 찬찬히 읽어보던 가론은 흥미롭다는 듯 작은 탄성을 흘렸다.

“호오…… 나쁘지 않군.”

코끼리가 선두로 행렬을 이끈다는 것은 보통 대부호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코끼리가 끌 수 있는 수레가 더 크고 많이 실을 수 있다고 해도 낙타 무리만 못하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매우 안 좋다는 뜻.

그런 걸 감수하고 코끼리를 이용한다는 것은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정도면 다시 내 이름을 세상에 떨칠 수 있겠어.”

벌써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듯하다.

검은 전갈 단원들이 자신을 칭송하는 모습과 밤새 이루어질 축제.

그것들을 현실로 만들려면 정확한 조사는 필수다.

가론은 사막의 지도에서 정보에 적힌 행렬의 위치에 금화 하나를 올려 표시했다.

그러고는 자를 이용해 주변 마을이나 도시와의 거리를 재던 가론은 판단을 마쳤다.

“해쉬를 거쳐서 다른 도시로 가려는 것 같은데…… 시간은 충분하군. 오늘 하루 동안 이 행렬에 대해 조사해라.”

“알겠습니다!”

쪽지에 담긴 정보만을 믿다간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최대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목숨을 오래 부지할 수 있는 게 이 업계.

가론은 그동안 도적으로 살아오면서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다.

쪽지만 보면 위협적인 것은 샤릴마의 마법사 한 명뿐이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순 없었다.

이번 출정은 그 명성을 위해 자신이 직접 지휘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한 번에 쓸어버리고 재물을 챙긴다.”

검은 전갈의 주둔지에서 샤릴마에 있는 검은 전갈들에게 직접 명령을 내리기 위해 매가 또다시 하늘을 날아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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