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룸서비스
“룸서비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형식상 상단주인 데카드가 직접 가는 것은 말이 되지 않으니 트리스가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벌컥-
그리고 문을 열자 그곳에는 거의 헐벗은 것과 다름없는 아주 아름다운 극남쪽 미녀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대륙어에 능통한지 자연스레 인사하며 문을 막고 있는 트리스를 제치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냥 막을까 하고도 생각해 본 트리스지만 그건 자신이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룸서비스로 온 극남쪽의 미녀는 구릿빛 피부에 선명한 근육들이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데카드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허리를 숙였다.
“샤나라고 합니다.”
“……?”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 자기소개부터 해버리는 이 모습에 데카드는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트리스에게 눈빛으로 설명을 요구했다.
그 눈빛을 받은 트리스는 다시 연기를 시작하기 위해 요염한 눈으로 데카드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아까 그 스웬이라는 분이 보내주신 선물 같은데요?”
“맞습니다.”
엘리스는 샤워를 마치고 가운을 입은 채 거실에 있는 데카드를 부르려다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웬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자가 방 안에 있었다.
‘그, 그럼 다시 아까처럼 해도 되는 건가?’
마음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엘리스는 살짝 가운의 앞섬을 열어젖힌 후 모두가 있는 거실로 걸어갔다.
샤나는 망설임 없이 데카드의 옆에 앉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 모습을 뒤에서 보고 있던 엘리스는 잠시 자신의 배낭에 있는 단검을 뽑고 싶었으나 살의를 억지로 눌렀다.
“데카님? 이분은 누구예요?”
그래서 양팔로 살포시 데카드의 목을 감싸 마음을 진정시키며 엘리스가 물었다.
“샤나라고 스웬이 보낸 여자야.”
“후훗.”
샤나는 데카드의 한쪽 팔을 자신에게 끌어오고 밀착시키며 입을 맞추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엘리스와 트리스가 뜨악 하며 순간 임무 중이라는 것도 잊을 만큼 눈에서 강한 살기를 방출했다.
“아니.”
그러나 종이 한 장 차이로 데카드가 샤나의 입술이 오기 전 고개를 틀어 피해 버렸다.
샤나가 의아한 눈빛으로 데카드를 보기 전에 트리스와 엘리스의 눈이 먼저 보였는데 전신에 오한이 들었다.
그 느낌도 잠시 데카드는 샤나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이만 나가라.”
전혀 예상치 못한 축객령에 샤나는 고개를 푸욱 떨구며 문으로 걸어 나갔다.
“샤나, 잠깐만 멈춰 볼래요?”
갑자기 트리스가 자신을 멈춰 세우자 퍼뜩 놀라 뒤를 돌아봤다.
트리스는 데카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어차피 저 여자가 가면 또 다른 여자를 보낼 거예요. 그러니까 저 여자는 그냥 여기 두는 게 좋겠어요.”
“그렇군.”
데카드는 다시 손짓하며 샤나를 이쪽으로 불렀다.
다시 활짝 웃으며 데카드에게 다가온 샤나.
데카드가 그런 그녀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아 들며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럽게 이어지는 전개에도 이런 상황의 프로인 샤나는 당황하지 않고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침대에 조심스레 샤나를 눕힌 데카드는 그대로 이불을 잘 펼쳐 샤나를 덮어주었다.
“에?”
“잘 자라. 스웬에게는 잘 놀았다고 전해 주고.”
데카드는 샤나의 이마에 검지를 대며 마나로 뇌를 헤집어 놓았다.
이렇게 되면 뇌가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몸을 잠에 빠뜨린다.
“쿠우울…….”
샤나는 금세 곯아떨어져 눈을 감았다.
불을 끄고 방문까지 닫고 나온 데카드는 다시 거실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거실로 나오자 이미 둘은 평상복으로 환복을 끝내고 화장을 지운 상태였다.
“이제야 내가 알던 둘이네.”
“헤헷.”
“힘들었어요.”
트리스는 온몸에 힘을 주고 다니느라 그 뻐근함과 근육통에 말이 아니었다.
엘리스의 경우엔 사람들의 노골적인 시선이 부끄러웠던 것만 빼면 나쁘지 않은 하루였다고 할 수 있었다.
데카드랑 마음껏 스킨십도 하고 그에게 하고 싶었던 건 거의 다 해본 것 같았다.
“읏차.”
엘리스는 데카드의 허벅지를 베개 삼아 소파에 누웠다.
“지금은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데?”
“그냥요. 제가 하고 싶어서요.”
엘리스는 싱긋 웃으며 눈을 뜨면 바로 위에 있는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주인님, 고드윈이 호텔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끼리랑 마차들은?’
[고드윈이 자신을 주인님의 수행원이라고 소개한 모양입니다. 호텔의 인원들이 알아서 코끼리를 적합한 곳으로 움직여주고 있군요.]
‘그럼 여기 최상층에 있다고 고드윈에게 알려줘. 아, 그리고 나머지 부원들은 뭐 하고 있어?’
짹짹이는 부원들에게 붙여놓은 까마귀로 시야를 옮겼다.
[그들은 하루 종일 주인님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고 각자 여관에 가서 잠이 들었군요.]
‘다들 잘하고 있네.’
데카드는 누워서 졸린 듯 눈을 끔뻑끔뻑 거리는 엘리스의 머리가 눈을 찌르지 않게 쓸어주었다.
[쳇! 저건 원래 내 자리라고!]
[지금은 잠자코 있어라! 하얀 뱀아.]
[너나 조용히 해! 덩치만 커다란 산양이!]
데카드의 안은 늘 시끌벅적했고 슬슬 배가 고파 잠시 엘리스의 머리를 치우고 일어서려는 사이 트리스가 손에 무언갈 들고 왔다.
“이것 좀 드세요.”
트리스는 부엌에서 간단한 음식들을 식탁에 깔았다.
그곳에는 샤릴마에서 파는 캔 요리도 있었고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즉석요리도 있었다.
“오오, 땡큐.”
데카드가 캔 요리의 뚜껑을 마저 뜯으려 할 때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또 샤릴마의 미녀는 아니겠지.”
엘리스의 머리를 잠시 들어 소파에 잘 눕히고 데카드가 문을 열자 미녀 대신 고드윈이 서 있었다.
“야아…… 방 좋네요?”
“샤릴마에서 제일 큰 호텔이라는 데 좋겠지, 뭐.”
명목상 수행원이자 비서 역할인 고드윈은 여기서 자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이 없다.
상급자와 비서가 같은 방에서 잔다는 건 의아할 수 있으나 이상한 것은 아니니까.
데카드가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넵.”
“그래서 사람들 반응은 어때?”
고드윈은 그 주제에 대해선 할 말이 많은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헛. 말이 많다는 걸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지나갈 때마다 온통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난리라니까요.”
“잘 되고 있네. 물건은 잘 샀지?”
“당연하죠. 근데 코끼리가 끄는 마차라서 엄청 큰데 들어가는 물건은 좀 적은 것 같아서 제가 임의로 몇 개 더 샀어요.”
“돈은?”
“제가 줬습니다.”
트리스는 자신의 카드 중 하나를 고드윈에게도 주었었다.
“수고했다. 네가 제일 고생했네.”
“제가 뭘요. 고생은 부장님이 제일 많이 했죠.”
철혈이라고 소문난 트리스의 애교나 아양을 자연스레 맞받아쳐야 하는데 자신이라면 살이 떨리고 공포에 정신이 물들어서 도망쳤을 것이다.
그럼 자신은 산 채로 불태워졌겠지.
안 봐도 뻔한 미래에 고드윈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것 좀 드십쇼.”
“네, 넵!”
트리스가 건넨 즉석요리를 받아든 고드윈은 마침 배가 고파 있어 젓가락질에 힘이 넘쳤다.
엘리스는 그대로 소파에서 잠이 들었고 데카드는 두 번째 캔 요리를 뜯으며 문득 든 생각을 말했다.
“근데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동안 유적이 팔리면 어떡해?”
“그럴 일은 없습니다.”
트리스는 절대 그럴 일은 없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백금화 만 개는 정말 천문학적인 액수였고 그걸 사려는 이들은 유물의 힘에 대해선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엄청난 힘을 지닌 무기나 보물이라고 생각할 뿐.
그것이 가진 부작용에 대해선 일절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샤릴마는 분위기로 봐선 절대 가격을 내릴 생각이 없고 그걸 사러온 세력들은 그 많은 돈을 다 지불할 생각이 없다.
“적어도 저희가 검은 전갈을 물리칠 때까진 결착이 나질 않을 겁니다.”
“다행이네.”
만약 검은 전갈을 다 잡았는데 유물이 이미 팔려 있다면 그것만큼 기운 빠지는 일이 어디 있겠나.
내일 오후까지 물건을 사들이고 소문이 충분히 퍼졌다고 판단되면 상단을 출발시킬 것이다.
그럼 냄새를 맡은 검은 전갈이 달려올 터.
‘짹짹아, 부원들에게 용병으로 보일 만한 옷하고 벨린다에게는 황색 로브까지 추가로 준비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황색 로브는 따로 쓸데가 있다.
아마 이것이 검은 전갈들의 긴장감을 좋은 수준까지 톡톡히 높여줄 것이다.
“그럼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을 준비하자.”
“넵.”
“안녕히 주무시길.”
* * *
오전 8시.
데카드의 기준으로는 매우 일찍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아침은 대충 바나나 몇 개로 때우고 엘리스와 트리스는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다가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그런데…… 저희 화장 누가 해줘요?”
“……!!”
미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화장 담당이었던 아스카가 지금은 부재중이었다.
트리스는 자신이 한 번 시도해 보기 위해 호텔에 있는 화장 용품을 집어 들었다가 곧장 포기했다.
잡긴 했는데 이게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도통 감이 안 왔다.
“화장하시게요?”
잠에서 깨어난 샤나가 화장대 앞에서 서성이는 둘을 보고 물었다.
트리스는 샤나의 진한 화장을 보고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희 화장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렇게 화장 문제도 빠르게 해결됐고 아스카와는 뭔가 다른 느낌의 화장이었지만 이건 이거대로 만족스럽다.
그렇게 바깥 1층 로비로 나오자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스웬과 눈이 딱 마주쳤다.
“벌써 가십니까?”
“아, 예. 오늘이 출발 날짜라서요.”
“흐음…… 아쉽게 됐군요. 샤나는 마음에 드셨는지?”
샤나 이야기에 순간 인상이 찌푸려질 뻔한 데카드는 겨우 그것을 감추고 빙긋 웃었다.
“물론입니다. 그녀의 스킬이 대단하더군요.”
“하하핫, 그런 여자는 수없이 많으니 또 놀러 오십쇼.”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게 될 것입니다.”
데카드가 어물쩍 넘기고 호텔의 회전문을 따라 나갈 때 그의 뒷모습을 보며 스웬이 입을 달싹였다.
“그래, 당신과는 또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
스웬은 굳이 떠나가는 데카드를 잡지 않고 다시 자신의 업무에 집중했다.
바깥으로 셋이 나와 있을 때는 미리 나온 고드윈이 코끼리를 이끌며 바깥에 나와 있었다.
“야아, 저 의외로 코끼리 운전에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드윈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코끼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감탄했다.
코끼리의 뒤로는 낙타가 끄는 마차가 세 개 정도 더 있었다.
이렇게 보니 커다란 상단 행렬이라는 위세가 잘 느껴졌다.
‘짹짹아, 부원들한테 한 시까지 샤릴마 북문으로 모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셋은 코끼리를 조종하는 운전석이 아닌 뒷자리 경치가 잘 보이는 쪽에 앉았다.
코끼리의 덩치가 워낙 커서 올라가는 데도 사다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럼 출발합니다.”
“이 명단에 있는 것만 사면 되니 이곳으로 출발하거라.”
데카드가 미리 짜놓은 상품 명단을 전달받은 고드윈은 그걸 받고 능숙하게 행렬을 이끌었다.
트리스와 엘리스는 또 서로에게 질세라 옆에서 데카드를 가만두지 못했다.
이 피곤한 나날도 오늘이면 막을 내린다.
물건의 구입을 전부 끝내는 한 시가 되면 이제 전갈을 사냥할 시간이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