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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101화 (101/208)

101 구분이 안 가는 연기

고드윈의 질문에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두 명이 손을 들고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할게요.”

이번에도 겹친 대답에 둘의 눈이 허공에서 부딪쳤다가 다시 멀어졌다.

엘리스는 그렇다 쳐도 트리스가 자원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부원들은 입을 벌렸다.

“저, 전혀 상상이 안 가는데…….”

철없는 상단주 옆에서 온갖 아양을 떨어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트리스와는 매우 어울리지 않았다.

또 어쩔 수 없이 둘 사이에 끼게 된 데카드는 두 사람 간에 뜨거운 신경전 때문에 등이 다 축축해졌다.

“마지막으로 상단주의 비서가 필요합니다.”

“그건 제가 맡지요.”

고드윈이 자원하며 나섰고 트리스는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그럼 나머지 부원들은 행렬을 이끌 때 그 옆에서 보호하는 용병 역할을 해주십쇼.”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역할이 전부 정해지자 시간 끌 것도 없이 일행은 샤릴마로 다시 출발했다.

물론 이번에는 최대한 빨리 돌아가기 위해 낙타에게 헤이스트를 비롯한 온갖 버프를 걸어주었다.

그러자 반나절이 걸리던 거리가 두 시간으로 뚝 줄어들었다.

힘은 좀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직 해가 쨍쨍할 때 도착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저희는 며칠간 이 샤릴마를 돌며 물건을 사들일 겁니다. 소문이 멀리 퍼지도록 말이죠.”

일행이 전부 이해한 것 같자 트리스는 자신의 차림새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역할에 비해 너무 옷이 정갈했다.

“아스카.”

“네, 넵! 총장님!”

“먼저 샤릴마 안으로 들어가서 저희가 입을 옷을 사다 주시겠습니까? 고드윈을 제외한 나머지도 같이 들어가십쇼.”

“알겠습니다!”

“네.”

그녀가 한 말의 뜻을 어렵지 않게 파악한 아스카는 샤릴마 안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고드윈은 비서 역할을 위해 남았다.

샤릴마의 입구 앞에서 수통의 반을 비울 동안 저 멀리 아스카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게 보였다.

“왔어?”

“헉……! 허억……! 네! 아마 깜짝 놀라실걸요?”

아스카는 자신의 의상 선택에 큰 자신감을 갖고 있는 듯 보였고 그걸 입어야 할 트리스와 엘리스는 왠지 불안해졌다.

트리스가 잠시 흙벽으로 간이 탈의실을 만드는 동안 아스카가 주머니에서 방금 사온 따끈따끈한 옷을 꺼냈다.

“……다 꺼낸 거야?”

“응! 언니! 완전 예쁘지!”

아스카가 꺼낸 옷은 두 명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잘 쥐면 양손 안에 전부 들어올 만큼 그 면적이 좁았다.

가려야 하는 부분은 다행히 전부 가리긴 했지만 정말 그것밖에는 가린 게 없었다.

나머지는 살결이 은은하게 비치는 실크 소재가 나풀거리며 맨살이 유감없이 드러났다.

탈의실을 전부 만들고 온 트리스도 잠시 아스카가 가져온 옷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 역할의 콘셉트에 완벽히 부합하는 옷이었기에 트리스는 옷을 받아들고는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헤헷! 뭘요! 아! 그리고 두 사람이 또 해야 할 게 있어요.”

아스카는 주머니에서 작은 가방 하나를 꺼내더니 그곳에서 화장 도구를 손에 들었다.

아스카가 보기엔 아직 둘은 부족했다.

“화장…… 알겠습니다.”

“처음 해보는데…….”

둘은 화장과는 딱히 인연이 없는 인생을 살아왔고 그래도 될 만큼 본판이 너무 뛰어났다.

엘리스의 걱정에 아스카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팡팡 두드리며 말했다.

“나만 믿어! 언니!”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트리스가 흙을 뭉쳐 의자를 만들고 그 위에 둘이 앉았다.

아스카는 캔버스 위에서 자신의 예술혼을 마음껏 불태우는 화가처럼 화장 도구들을 제 몸같이 편안하게 움직였다.

“대단한데?”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던 데카드가 혼잣말로 작은 감탄을 터뜨릴 만큼 아스카는 각자의 개성까지 살려 화장을 해주고 있었다.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사람당 십 분 정도가 지나자 평소보다 훨씬 눈이 부시는 외모를 갖게 되었다.

[이 정도면 마법 아니야?]

[마법이다! 마법!]

[허헛! 인간 여자의 그림 실력이 보통이 아닙니다!]

[…….]

마법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람이 평소 내뿜어 내는 그 분위기와 인상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차가운 강철 같았던 트리스는 가만히 있어도 요염한 눈빛을 내뿜으며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못 남성의 애간장이 타는 듯하게 변했다.

엘리스는 부끄럼이 많고 낯을 많이 가리지만 본인이 내색만 하지 않는다면 화장의 효과로 굉장히 도발적인 이미지를 갖추게 됐다.

“그럼 이제 옷 입고 오세요!”

아스카가 준 옷을 받아들고 터덜터덜 탈의실로 들어가던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고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와아…… 존나 예쁘네.’

상대에게 밀렸다 생각한 둘은 이 옷으로 만회하겠다고 마음먹으며 탈의에 들어갔고 아스카는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뭐, 나도 화장해야 하는 건 아니지?”

“하하핫! 원하시면 해드릴게요!”

“……사양하지.”

데카드는 뭔 이유가 되었건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굳이 화장을 하고 싶진 않았다.

“여기 부장님을 위해 사온 물건들도 있거든요!”

“날 위해?”

데카드는 이미 짹짹이의 샤릴마 버전으로 귀공자의 분위기를 풀풀 풍기고 있지만 아스카는 아직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준비한 것이 사치품 가게에서 산 장신구 들이다.

“이거 하고 이걸 껴보세요.”

아스카가 준 것은 금반지와 금 목걸이.

보석으로 치장한 팔찌까지 아주 사치품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거 비쌀 텐데 어떻게 샀어?”

“총장님이 카드를 주셨어요!”

장신구까지 전부 착용하자 정말 샤릴마 어딘가에서 호의호식할 것 같은 대부호의 모습이 되었다.

데카드의 눈에는 지금 자신이 조금 과한 것 같게 느껴졌지만, 아스카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칭찬 세례를 했다.

“와아! 역시 우리 부장님! 이런 것도 다 소화…… 헙…….”

“왜 그래?”

데카드의 뒤를 본 아스카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고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짹짹이는 그의 뒤에서 걸어오는 둘을 보고는 작게 말했다.

[요르가 화병으로 쓰러질 수도 있겠군.]

짹짹이까지 이러자 데카드는 부풀어난 궁금증에 뒤를 돌아보았다.

데카드는 말을 잃었다.

지금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굉장히 얼뜨기 같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눈은 초점을 잃고 입을 헤 벌리고 있으니 좋은 표정은 아니겠지.

“데카드……?”

“선배, 좀 이상한가요?”

데카드가 말이 없자 의상을 입고 나온 둘은 자신의 어디가 이상한가 하며 옷을 매만져보았다.

“완전 여신님들 같아요!”

아스카는 자신의 결과물에 매우 만족한 듯 엘리스를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그, 그래? 다행이네.”

“이런 옷은 처음인데…… 확실히 시원하군요.”

트리스의 메마른 감상에 옆에서 듣고 있는 데카드가 헛웃음이 나왔다.

옆에서 잠자코 보고 있던 고드윈은 눈이 정화되는 느낌에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해도 믿겠군.’

모랫바닥에 걸터앉아 있던 고드윈은 곧 출발할 것 같은 분위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스카는 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뒤지더니 거울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 번 보세요!”

그제야 자신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된 둘은 잠시간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평생 할 일 없을 것 같았던 화장으로 인한 진한 눈매와 붉은 입술.

피부 톤도 전보다 조금 밝아진 게 티가 났다.

“대단하군요. 아스카.”

“칭찬 감사합니다!”

“이제 샤릴마로 들어가서 어떤 대부호가 물건을 막 사들인다고 소문을 내세요.”

“넵!”

아스카는 다시 샤릴마로 들어가고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은 고드윈이 옆에 섰다.

그런 그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데카드는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두어 개 빼서 고드윈에게 주었다.

“이거 껴.”

“아, 알겠습니다.”

그래도 대부호의 비서인데 이 정도 반지는 껴줘야 하지 않겠는가.

“좋아. 드디어 준비가 끝났어.”

“들어가요.”

“손은 좀 더 과감해지셔도 좋습니다.”

망나니 대부호는 여자를 이렇게 매너 있게 대하지 않는다.

트리스는 데카드에게 딱 달라붙어 그의 오른손을 자신의 허리에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왼손은 데카드의 허리에 밀착시켜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럼 저도 해야겠네요.”

엘리스는 지지 않겠다는 마음 반, 사심 반으로 트리스와 똑같이 데카드의 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벨트처럼 감았다.

드르륵 하고 엘리스의 11자 복근이 손가락에 걸렸다.

위험한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떼려 했으나 그걸 눈치챈 엘리스가 자신의 손으로 막아버려 그럴 수가 없었다.

“크흠…… 크흠…… 그럼 가볼까!!”

목소리도 본래보다 조금 가볍고 무게 없이 내며 변조를 마친 데카드는 자연스럽게 원래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게 샤릴마로 들어갔다.

그의 걸음에 옆에 붙어 있는 트리스와 엘리스도 속도를 맞췄고 그의 품에 머리를 파묻거나 귓불을 깨물며 애정행각을 펼쳤다.

고드윈 또한 쫄래쫄래 데카드의 뒤를 따라다녔다.

넷, 정확히는 고드윈을 제외한 셋의 등장에 시끌시끌하던 샤릴마의 입구 주변 거리가 정적에 빠졌다.

사막의 여신이라 해도 믿을 만한 여자 두 명을 끼고 철없는 목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부자가 상점의 물건을 보고 있었다.

모세의 기적처럼 셋이 지나갈 때마다 길이 쩌억 갈라지다 못해 전용 도로가 생긴 듯했다.

“스읍…… 반응이 이상한데……?”

데카드가 작은 목소리로 곁에 있는 둘만 들리게끔 말하자 엘리스도 잘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그러게요? 저희의 연기가 이상한가요?”

“조금 더 붙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더?”

트리스는 그의 의사와 관계없이 아예 하나가 될 것처럼 밀착을 넘어 흡착시켰다.

그러면 그럴수록 갈라진 길은 더욱 폭을 넓혔으나 둘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였다.

“고드윈!”

“네, 넵! 데카 님!”

데카는 잠시 사용하기로 한 임시 이름이다.

“우리가 처음엔 뭘 해야 하지?”

“물건을 담을 낙타와 마차를 구매하셔야 합니다!”

“낙타? 그런 건 품위에 맞지 않지. 코끼리로 준비해라!”

사람들이 다 듣도록 일부러 코끼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한 데카드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웅성웅성-

역시, 하나에 집 한 채 값이라는 코끼리를 끌고 가겠다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의 반응이 남달랐다.

“아앙! 데카 님! 저는 루비 목걸이 사주시면 안 될까요?”

목소리에 잔뜩 들어간 미성으로 아양과 애교를 떨며 보석을 조르는 모습.

원래 트리스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자신의 뺨을 후려치게 만들 만큼 충격적이었다.

“그, 그럼! 뭐든 사주마! 뭘 갖고 싶으냐!”

“저는 루비가 박힌 목걸이와 데카 님의 마음이 갖고 싶어요!”

허리를 감고 남은 손으로 데카드의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끝 쪽의 문장에 얼굴까지 붉히는 모습에 등골이 오싹오싹거렸다.

“고드윈! 그럼 자네는 마차와 코끼리를 준비하게! 우리는 보석 가게에 갈 테니.”

“넵! 알겠습니다!”

고드윈이 부리나케 어딘가로 뛰어갔다.

‘밀리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은 트리스처럼 저런 아양이나 애교가 나오지 않았다.

엘리스는 고민하다가 그냥 자신이 평소 그에게 하고 싶었던 걸 마음껏 하기로 마음먹었다.

‘에잇! 모르겠다!’

엘리스가 움직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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