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98화 (98/208)

098 여러 가지 방법

‘백염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내가 백염을 조종한다.’

지금까지는 백염을 한 번 쏘면 이 파괴적인 불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다르다.

미세한 변화까지 전부 통제 아래에 두어서 자신이 주인이라는 것을 똑바로 각인시켜야 한다.

“저, 저거 마법 아닙니까?”

“마, 마법이라고?!”

고드윈의 손에서 일어난 하얀 불꽃을 본 도적들이 주춤거리며 겁을 먹기 시작했고 지금 당장 도망가야 되는지 갈등했다.

도적 모두가 대장의 눈치만 보고 있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화권!!”

고드윈이 백염이 담긴 손으로 앞쪽을 크게 휩쓸자 폭발적인 기세로 주변을 포위하던 전갈들과 함께 도적들을 한꺼번에 구워 버렸다.

원형으로 불길이 치솟는 그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후우…….”

고드윈은 이마에서 흐른 땀을 닦으며 전갈과 함께 모두 생을 마감한 도적들을 보았다.

이 백염의 열을 견딜 수 있는 존재는 적어도 이 도적단 안에는 없었고 고드윈은 다시 낙타에 올라탔다.

“전보다 더 깔끔해졌는데?”

데카드와 싸웠을 때는 주변의 영향을 주면서 무관한 파괴를 일삼던 문제아 백염이 지금은 아주 모범생이 따로 없었다.

고드윈은 그간의 수련이 빛을 발한 것 같아 자신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럼 다시 출발하죠.”

바삭하게 구워진 전갈들과 도적들을 뒤로하고 트리스는 다시 낙타를 몰았다.

쨍쨍한 태양은 그 기세를 줄일 생각이 없었고 맨살로 이 햇빛을 계속 받는다면 화상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쿨링 버드와 마나를 계속 순환시킴으로써 더위를 많이 쫓을 순 있었지만 땀이 주는 축축함은 어쩔 수 없었다.

“얼마나 남았어?”

데카드가 조용히 트리스의 옆으로 다가와 묻자 그녀는 지도를 펼치면서 얘기해 주었다.

“절반 정도요.”

“아직도?”

낙타라서 어느 정도 이동 속도가 느릴 줄은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느렸다.

헤이스트를 사용해서 달리면 훨씬 빠르게 도착하지만 그러면 마나에 너무 큰 무리가 간다.

발도 푹푹 빠져서 효율도 별로 나오지 않을 것이고 여기에서 마나를 소모해 버리면 정작 유적에서 쓸 마나가 사라진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는데도 답답한 이 기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냥 내 마수들로 갈 걸 그랬나?’

괜히 트리스에게 맡긴 것 같다.

적당한 마수 하나 뽑아서 달려가도 괜찮았을 거리 같은데 트리스가 자신에게 무리하게 하지 않으려고 이 낙타를 선택한 것이 틀림없다.

[마수왕님! 그 냄새 난다!]

[맞아요! 그놈들 냄새가 나요!]

[여길 저희보다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

[부딪히는 건 피할 수 없겠습니다.]

다른 일행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마수들은 자연의 본능으로 흑마법사들의 마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흑마법사들 또한 샤릴마에서 이쪽 길로 유적을 향해 갔는지 그 냄새가 진했다.

‘흑마법사…….’

그 새끼들에게는 갚아줘야 할 빚이 있다.

같은 놈들은 아니겠지만 연대 책임이라는 좋은 단어가 있지 아니한가.

딴 놈이 잘못했어도 이놈을 족치면 그만이다.

데카드는 혼자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흑마법사들을 위한 작전을 몇 가지 짜두었다.

* * *

반나절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낙타만 타며 유적 근처 베이스캠프까지 도착했다.

곳곳에 다른 캠프들도 처져 있는 것을 보니 저들 모두가 유적과 유물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고 허리야.”

낙타 위에만 주구장창 앉아 있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허리에 알이 안 배길 수가 없다.

온몸이 쑤시는 고통을 스트레칭이라도 하며 푼 데카드는 캠프 너머로 보이는 유적을 바라보았다.

피라미드 모양의 유적은 이 거친 사막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살아 왔을 텐데 무뎌짐 하나 없었다.

“그럼 수고하십쇼!”

“알겠습니다.”

저쪽에서는 트리스가 캠프를 지키고 있던 마법부 직원들에게 간단한 인수인계를 받았다.

직원들은 드디어 이 지루한 사막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샤릴마로 낙타를 타고 부리나케 뛰어갔다.

살짝 저들이 부러워졌지만, 이내 낙타에서 짐을 풀었다.

“여러분들이 잘 곳은 이쪽입니다.”

베이스캠프라지만 천 쪼가리 몇 개로 지어 놓은 조악한 곳이 아닌 마도구로 점철된 현대 문명의 극치였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냉장고 또한 구비되어 있으며 공간 마법으로 각 방도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방이 많지는 않아서 한 방당 몇 명씩 자야 할 것 같습니다.”

방은 총 세 개, 사람은 일곱 명.

두 명씩 방에 들어가고 한 방은 세 명씩 들어가야 수가 맞았다.

“그럼 나랑 카론, 고드윈이 한 방 쓸게.”

“괜찮으시겠어요?”

“나는 괜찮아. 너희는?”

카론과 고드윈도 나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좋습니다.”

“그럼 우린 먼저 짐 풀러 가자.”

셋이 방으로 들어가고 이제 남은 트리스, 아스카, 엘리스, 벨린다는 방을 정해야 했다.

트리스야 별로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았고 엘리스도 누구와 방이 되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러나 아스카와 벨린다는 달랐다.

까딱 잘못하면 저 철혈의 트리스와 같은 방을 써야 한다는 공포!

그것도 다른 사람이 없는 단둘이서 말이다.

그런 상태로 유물을 찾을 때까지 쭉 한방을 써야 하는데 기 빨려서 못한다.

“제가 총장님이랑 한 방 쓸게요.”

이런 눈치 싸움 와중에 구세주같이 등장한 엘리스가 먼저 트리스와 한 방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저, 정말이야? 언니?”

“응.”

“저도 좋습니다.”

트리스와 엘리스는 저번에도 호텔에서 같은 방에서 잔 경험이 있기에 그렇게 어색한 느낌은 없었다.

둘이 그렇게 방으로 들어가고 아스카와 벨린다는 엘리스가 안쓰러워 졌다.

“크흑……! 언니가 우릴 위해 희생을 했어!”

“다음번에는 너랑 나 둘 중에 하자.”

“그래! 크흡…….”

아스카와 벨린다는 은혜에 보답을 맹세하며 남은 방으로 들어갔다.

각자 짐을 푸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많은 짐을 싸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각자가 정리나 청소에 취미가 있는 타입도 아니었다.

“후우…… 일단 에어컨 좀 켜겠습니다.”

“그러자.”

쿨링 버드가 사라지자 방 안은 찜통과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찜 기계 안에 있는 랍스터의 기분을 알아가고 있을 때 고드윈이 빠르게 에어컨 전원 버튼을 눌렀다.

곧 시원한 공기가 들어오면서 방 안이 빠르게 시원해졌다.

“이제야 살 것 같습니다.”

카론은 아예 에어컨 앞에 서며 그 바람을 즐겼다.

“그럼 먼저 나가 있을 테니까 준비 다 되면 나와라.”

“넵!”

“알겠습니다.”

데카드가 방 밖으로 나오자 트리스와 엘리스가 먼저 와 있었다.

엘리스는 마법사도 아니라서 지금 굉장히 더울 텐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있었다.

[트리스가 마법을 써준 것 같군요.]

짹짹이는 엘리스의 안에 흐르는 트리스의 마나를 느끼며 말했다.

‘역시 둘이 친해진 게 맞다니까?’

원래라면 저런 호의는커녕 서로 째려보기만 할 텐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데카드는 그녀들의 옆에 서며 말했다.

“뭐 하고 있었어?”

“그, 그냥 잡담이요.”

“맞습니다.”

“그래?”

데카드는 그리 멀지 않은 유적을 바라봤다.

또 유물 하나 두고 박 터지게 싸울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목이 뻐근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각 나라와의 정치 싸움이나 외교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게 많아 머리까지 복잡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 부수고 싶은데 그런 행동으로 인해 걸리는 제약들이 너무 많았다.

데카드 개인적인 행동으로 마법부도 곤란해지고, 트리스는 요즘 징계로 평판이 안 좋은데 그녀에게까지 해를 끼치긴 싫다.

“저 사람들은 뭐야?”

피라미드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저번에 라지오가 대동했던 황톳빛 로브를 입은 자들과 복장이 비슷했다.

“샤릴마의 마법사들이에요. 유적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고 있죠.”

이 사막은 엄밀히 말해서 샤릴마의 땅 안에 있는 것이기에 유적 또한 샤릴마의 것이다.

“샤릴마가 유물을 얻을 생각은 없는 거야?”

“그들은 유물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유적은 상품을 보관하는 포장지고요. 그들이 주관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이 유적을 정당하게 얻어내는 방법이 제일 깔끔하죠.”샤릴마는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는 유물보다 돈이 더 강한 힘을 가졌다고 믿었다.

그들은 각지의 세력들이 알아서 유물의 가격을 높여주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곳 어딘가에 흑마법사도 있는데…… 걔네들이 돈을 내고 유물을 얻을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흑마법사라면 어떻게든 샤릴마의 마법사들을 죽이고 유적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건 데카드도 생각하고 있는 방법이었기에 아까부터 샤릴마 마법사들의 진형이나 마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몰래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왜?”

“그들이 밟고 있는 모래를 잘 보세요.”

트리스의 말대로 마법사들이 밟고 있는 모래를 느껴보자 알 수 없는 진동과 파동이 느껴졌다.

모래를 감싼 마나가 아주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뭐가 느껴지세요?”

“떨림.”

“맞아요. 그들은 피라미드 주위의 모래를 밟는 순간 침입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요.”

“대단하네요.”

엘리스도 순수히 감탄할 만큼 뛰어난 방범 시스템이었다.

모래 하나하나에 마나를 담을 만큼 뛰어난 컨트롤을 지닌 마법사도 물론 대단했으나 데카드도 방법이 있었다.

“땅을 파면되지.”

“땅…… 이요?”

“어.”

하지만 이 방법은 최후의 방법이고 평화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그편이 가장 좋다.

데카드도 굳이 죽을 가능성이 높은 걸 머릿속에 염두하고 싶지 않았다.

“협상 시간은 언제래?”

“매일 오후 아홉 시입니다. 저쪽 중앙에 있는 텐트에서 샤릴마의 협상가와 각 세력들의 인사가 와서 소유권을 갖기 위해 전쟁을 하죠.”

정말 전쟁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서로를 깎아내리기 위한 공격이나 자기 과시 등 협상 테이블에선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

현재 시각은 오후 일곱 시.

슬슬 해가 지고 있는 시간이다.

사막은 일교차가 커서 지금부터는 에어컨이 아니라 히터를 틀어야 한다.

또 이런 밤을 틈타 움직이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 있어서 데카드는 만만의 준비를 했다.

‘짹짹아.’

[알겠습니다.]

이제는 척하면 척.

부가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데카드가 입고 있는 실크 코트에서 까마귀가 솟아나더니 사막의 하늘을 날아다니며 흑마법사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상공을 비행 중인 까마귀들은 밤이 되면 주변과 동화해 맨눈으로도 보기 힘들다.

“야…… 이거 사진이라도 찍어야 되는 거 아니야?”

저기 지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데카드가 말했다.

아사이드나 루비아에서의 노을과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주변에 다른 건물이나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깔끔한 태양은 방금 전까지 그렇게 일행을 괴롭혔던 그것이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저녁 드세요!”

아스카가 해맑게 방 밖으로 나오며 인원수대로 준비한 캔 요리를 가져왔다.

사사삭-

그리고 그 모습을 모래 속에서 눈만 내밀며 조용히 보고 있는 전갈 한 마리가 있었다.

평범한 전갈은 아닌 듯 기계 장치를 달고 있던 전갈은 다시 땅속에 들어가려던 찰나 트리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바로 검지를 들어 올렸다.

촤악-!

그러자 지면에서 흙을 뭉쳐서 만든 검이 솟아나오며 전갈의 배를 꿰뚫었다.

“응? 왜 그래?”

“벌레가 있어서.”

트리스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스카가 준 캔 요리를 받아들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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