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회복
도시의 재건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마지아 섬으로 밤낮없이 재건에 필요한 목재들이나 콘크리트 등, 화물선들이 줄을 이으며 섬 안까지 배달해 주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듣고 나오자 갑자기 폐허가 된 도시를 보았을 때 눈을 의심했다.
흑마법사의 재침공인가라는 생각까지 할 때 마탑의 방송으로 트리스의 사과가 흘러나왔다.
일개 한 명의 사람이 도시의 절반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학생은 경악했다.
고서클 마법사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것이다.
트리스는 이후로도 아주 바빴다.
부서진 도시 재건을 위한 서류들을 눈코 뜰 새 없이 정리해야 했고, 소실된 서류들은 다시 작성해야 했다.
직원들에게 떠넘기지 않다 보니 해야 할 일은 두 배, 세 배가 되었다.
이렇게 일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부서진 가게 주인들을 한 명 한 명 찾아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사죄의 인사를 했다.
“그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총장의 이름을 걸고 꼭 재건시켜 드리겠습니다.”
한 개인의 삶의 터전을 막무가내로 개인의 감정에 치우쳐 부서버렸으니 트리스는 뺨이라도 한 대 맞을 각오까지 했다.
“아니에요! 무슨 이유가 있으셨겠죠. 애초에 갈 곳 없는 저희를 받아준 건 총장님인걸요.”
“맞습니다! 그리고 재건되는 가게들을 보니까 전보다 더 좋아졌던데요? 이런 재시공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죠. 허허허.”
아예 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시 지을 때는 최신식 설비를 갖추어 짓는 중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트리스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고 한 명씩 돈이 담긴 주머니를 건넸다.
“이, 이게 뭔가요?”
“저 때문에 장사를 하지 못하게 생겼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돈주머니는 그들의 매출을 대신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가게 주인들을 향한 사죄가 끝이 나자 이번에는 마법부에서 스크롤 하나가 전달됐다.
트리스가 가게 주인들을 향해 간 사이 재건되고 있는 업무실 책상에 덩그러니 놓은 스크롤이 보였다.
휘이이잉-
아직 막지 못한 채 뻥 뚫려 있는 외벽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이 트리스의 다리를 시리게 했다.
그런 것쯤이야 마나를 두르면 쉽게 차단할 수 있지만 트리스는 하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부총장, 슈헤이가 저번에 말했던 강제 해임의 내용이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사적인 이유로 도시 절반을 불태웠는데 최악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었다.
트리스는 지금 당장 자신이 총장에서 해임된다고 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다만 데카드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없어 안타까울 뿐.
스르륵-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자 마법부의 편지가 나왔다.
마탑의 총장, 트리스 아드리안은 사적인 이유로 마지아 섬의 도시를 파괴했다.
그 이유로 트리스 아드리안에게 징계를 내린다.
징계의 내용은 이러하다.
-월급 감봉
-휴가 박탈
-진급 시험 박탈
내년까지 위 징계는 계속 이행된다.
-마법부-
“귀엽네.”
이 정도 징계 수준이면 아주 귀엽기 그지없었다.
트리스가 생각한 건 강제 해임이나 정직이었는데 월급 감봉이나 다른 징계 사항들은 별 타격이 오지 못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마법부에서 온 스크롤은 태워 버리려고 할 때 무언가 이상한 마나가 스크롤 중간에서 느껴졌다.
“장관님……?”
이 마나는 젠킨스의 것.
트리스는 그 마나를 자신의 마나로 잡고 쭉 밖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학 모양으로 예쁘게 접힌 편지 하나가 쑤욱 딸려 나왔다.
“하여간 종잡을 수 없는 분이라니까.”
편지라면 따로 보내면 되지 굳이 왜 이렇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트리스는 학을 차례대로 펼쳐 그 안에 젠킨스가 쓴 편지를 읽었다.
-트리스에게-
서론이나 그런 건 각설하고 일단 본론부터 말하겠네.
극남쪽 대사막에서 유물의 위치를 우리 쪽 인원들이 파악한 것 같아.
하지만 그 유적을 노리는 주변 왕국 세력이나 용병 세력들이 많은 모양이야.
자네가 출장을 가서 그 유적에 대한 소유권을 얻거나 비밀스럽게 유물을 탈취해 왔으면 좋겠어.
이 일의 적임자로 자네밖에 도통 떠오르질 않더군.
아, 퇴마부를 대동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그 유적의 냄새는 흑마법사들도 맡았을 테니 말이야.
몸조심하게.
-젠킨스-
“이 할배도 참,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장관님에서 할배로 바뀐 호칭에서 트리스의 미약한 살기가 느껴졌다.
생각나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고 갑자기 대사막으로 덜렁 보내버린다니.
만약 데카드와 같이 가도 된다고 하지 않았다면 당장 마법부로 달려가 꿀밤이라도 한 대 치고 왔을 것이다.
트리스는 살짝 미소 지으며 젠킨스의 것과 같이 마법부의 편지를 태워 버렸다.
뚫린 외벽으로 보이는 달이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었다.
* * *
“그동안 어디 갔다 왔어요!”
“하핫…… 저기 아사이드에 잠깐.”
용병 숙소로 돌아온 데카드와 엘리스를 보고 볼텍, 빅터, 제이미가 한달음에 달려 나와 반가움에 포옹을 했다.
반가움도 잠시 이제는 보지 못하게 될 얼굴이니 작별의 인사가 필요했다.
퇴마부는 비밀 부서이니 적당한 이유를 갖다 붙여 앞으로는 용병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하자 남은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죠.”
“참 재밌었는데 아쉽게 됐구려.”
데카드와 엘리스가 빠지면 어차피 새로운 팀원들이 그 자리를 채울 테니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보고 싶을 거예요.”
“저도요.”
제이미와 엘리스는 다시 한번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고 볼텍과 데카드는 악수를 했다.
“그때 끝까지 술을 먹지 못한 게 한이구려.”
“그러게 말입니다.”
두 주당은 다음을 기약했고 한 명씩 인사가 끝났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온 둘은 이제 숙소에서의 밤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침대가 더 정겹게 느껴졌다.
“이제 마탑도 오랫동안 못 볼 텐데 아쉽지 않으세요?”
“흐음…….”
마수계와 더불어 정말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마탑이었기에 트리스의 말을 들으니 조금은 그립거나 아쉬울 것 같기도 하다.
마탑에서 한 거라곤 코피 흘려가면서 한 공부.
매일매일 부딪쳐서 이겨야 하는 경쟁.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도시 속 거리에는 추억들이 한 올 한 올 맺혀있다.
“괜찮아. 영원히 못 오는 것도 아닌데.”
원래라면 관계자 외 출입금지인 마지아 섬이지만 어쩐지 이 섬과는 또 다른 인연이 있을 것 같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너도.”
[마수왕님! 자장가 불러줄까?]
[잠시 청각을 차단시켜야겠군.]
[크하하하! 짹짹이! 오랜만에 맞는 소리를 하는구먼!]
[…….]
[마수왕님! 제 꿈 꾸세요!]
데카드가 빛의 속도로 잠에 빠지고, 저주로 쌓인 몸의 피로 때문인지 눈 감았다가 떴는데 아침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물론 데카드는 눈을 뜨는 시간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엘리스는 창문 틈새 사이로 비치는 햇빛 때문에 눈이 따가워 허리를 일으켰다.
밑을 잠시 바라보자 아직 새근새근 자는 데카드가 보였다.
저렇게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게 꼭 아기 같아 엘리스는 아주 조심스럽게 2층 침대에서 내려왔다.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온 엘리스는 조금씩 데카드에게 다가왔다.
“…….”
혹시라도 깰까 심장의 박동까지 하나하나 조심해가며 데카드에게 다가간 엘리스는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의 코앞까지 와 있었다.
데카드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마, 마수님들이 보고 계시려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엘리스는 급하게 뒤로 후진하며 데카드와 멀어졌다.
이 방에는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데카드와 생사를 함께하는 다섯 마리의 마수.
안에서 그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
“괜찮다.”
“아흣……! 깜짝이야. 놀랐잖아요.”
옷걸이에 코트 형태로 걸려있던 짹짹이가 인간형으로 변하면서 말했다.
짹짹이는 다른 마수들과 다르게 잠을 많이 자는 편이 아니기에 엘리스의 행동을 전부 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마수들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 모습에 짹짹이는 괜찮다고 한 것이다.
“지금 나를 제외한 다른 마수들은 어차피 자고 있다.”
“그, 그런가요?”
짹짹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눈치 좋게 숙소의 부엌으로 빠졌다.
엘리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제 정말 둘밖에 없어진 방에서 데카드에게 다시 다가갔다.
평생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사람 옆에서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엘리스는 조금씩 다가가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 나 뭐 하는 거야....!!’
정신을 놓고 잠시 감상에 빠져있다 보니 몸이 움직이는 것을 뇌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남다른 촉감에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서로의 입술이 맞닿은 후였다.
당장 이 입술을 떼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몸이 또 뇌의 말을 듣지 않았다.
‘조금만 하는 거야, 조금만.’
그렇게 자신의 몸과 극적으로 타협하고 엘리스는 정말 연인이 된 것처럼 눈을 감고 그 감정에 정신을 맡겼다.
10초가량이 지났을 때, 이제 정말 입술을 떼려고 눈을 뜨자 반쯤 졸린 눈을 뜨고 있는 데카드와 딱 하고 마주쳤다.
엘리스의 발끝에서부터 등골을 지나 머리끝까지 소름이 쫘악 돋으며 어쩌면 가면을 썼을 때보다 더 빠른 반응 속도로 데카드에게서 떨어졌다.
콰앙-!
“아얏……!”
그렇게 뒷걸음질 치다가 뒤통수가 벽하고 부딪쳤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좋았다.
‘데카드가 봤겠지……?’
당연히 봤을 것이다.
그 순간 눈까지 마주쳤는데 만약의 가능성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하아암…… 너무 잘 잤네.”
그러나 데카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기지개까지 쭉 켜고 일어나며 목을 긁었다.
“아침 대령했습니다.”
“으응…… 고마워.”
아직 잠긴 목소리로 대답한 데카드는 책상 위에 짹짹이가 올려놓은 간단한 토스트를 와구와구 씹었다.
“엘리스의 것은 여기 있다.”
“가, 감사합니다.”
센스 좋게 엘리스의 토스트까지 준비한 짹짹이는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언제나처럼 데카드의 어깨에 코트로 안착했다.
침대에 앉아 토스트를 먹는 데카드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엘리스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왜 아무런 반응이 없으시지? 잠결에 눈치채지 못하신 건가? 아니면 그냥 나를 배려해 주시는 건가?’
토스트가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도 구분이 가질 않을 때 데카드의 입이 열렸다.
“그러고 보니까.”
꿀꺽-
엘리스가 침음을 삼키고 있을 때 데카드는 우물우물 토스트를 씹어 삼켰다.
“잘 잤어?”
“네……?”
예상과는 너무 다른 질문에 엘리스의 얼이 빠졌다.
“얼굴이 너무 창백하길래.”
“자, 잘 잤어요! 저는!”
“그래? 그럼 다행이네.”
토스트를 깔끔히 처리한 데카드는 봉지를 꾸겨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주인님, 창문을 보십쇼.]
짹짹이의 말에 침대 뒤쪽에 있는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부리로 유리를 톡톡 두드리는 전서구 한 마리가 있었다.
익숙한 붉은 편지지를 매고 온 전서구는 그 주인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조그마한 편지지를 완전히 펴보자 트리스의 필체로 편지가 적혀있었다.
-선배에게-
오늘 제 업무실에서 만나실 수 있으실까요?
엘리스도 함께요.
언제든 좋으니까 기다리고 있을게요.
-트리스 아드리안-
“뭔 일 있나?”
따로 트리스가 자신들을 불러낼 일이라면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