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94화 (94/208)

094 억지로 끊은 악연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오직 서로를 죽이기 위한 싸움이 집무실을 휩쓸었다.

리바이어던이 간발의 차로 진저백의 수염을 쓸며 지나가고.

진저백의 뇌류가 데카드를 바삭바삭하게 튀길 뻔했다.

‘회오리 송곳니!’

데카드는 리바이어던을 양손에서 빠르게 회전시켜 바람을 충전시켰다.

휘오오오오-!!

바람이 순식간에 데카드 쪽으로 모여들면서 생긴 인력에 진저백이 잠깐 정신을 못 차린 사이 끌려갈 뻔했다.

“어디서 잔재주를……!!”

진저백은 양손을 뻗어 다시 한번 응축된 벼락 화살을 날리려 했지만 데카드 쪽이 조금 더 빨랐다.

“이거나 먹어라!!”

리바이어던의 가득 충전된 바람은 세상 그 무엇도 자를 준비가 끝난 최상의 상태였다.

데카드는 그것을 크게 휘둘러 집무실에 있는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

물론 그 모든 것에는 진저백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는 급하게 벼락 화살을 취소하고 번개의 갑옷을 만들어 입었다.

카가가가가각-!!!

집무실의 벽면이 리바이어던의 바람에 긁히고 뜯어져 나가는 소리가 섬뜩하게 들리면서 진저백의 갑옷 또한 넝마로 변해 버렸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한 집무실에서 오직 데카드의 주변만이 폭풍의 눈처럼 안전했다.

“크헉……!! 커헉…….”

진저백은 심한 내상을 입은 듯 울컥거리며 피를 바깥으로 쏟아냈다.

데카드가 마무리를 위해 리바이어던을 다시 어깨에 메고 걸어갈 때 짹짹이가 끼어들었다.

“주인님. 아무래도 빨리 끝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것 말고도 처리할 문제가 가득합니다.”

“알겠어.”

짹짹이가 부서진 외벽으로 머리를 내밀며 바깥을 바라보고는 말했다.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리바이어던의 섬뜩한 날을 진저백의 목에 갖다 댔다.

“어쩌면…… 우린 아마 좋은 친구가 됐을지도 몰라.”

“크크큭…… 웃기는 소리군.”

데카드는 한쪽으로 리바이어던을 치켜든 후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그대로 쓸어내렸다.

스걱- 툭 투둑-

진저백의 머리가 부드럽게 잘려 집무실의 난장판이 된 바닥으로 떨어졌다.

“시체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주인님은 빨리 저쪽으로 가보셔야겠군요.”

“무슨 일인데?”

짹짹이가 가리키는 쪽을 따라 고개를 돌린 데카드는 눈을 의심했다.

마탑의 도시가 반파되고 불에 타오르며 기계 주변의 건물들은 아예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 * *

“갈 수…… 없어요…….”

가면을 쓴 엘리스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불타고 찢어진 옷으로 엉금엉금 기어가서 트리스의 발목을 잡았다.

“…….”

트리스는 거머리보다 수백 배는 질긴 엘리스를 잠시 내려다보더니 발을 굴러 손을 떨어뜨렸다.

엘리스의 손은 힘없이 공중을 날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금방이라도 두 눈이 감길 것처럼 위태로웠지만, 그 사이로 트리스가 기계에 가까이 가는 것이 보였다.

“가지 말라고…….”

엘리스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서 조약돌을 트리스의 등에다가 던졌다.

툭-

큰 힘이 담긴 돌도 아니었기에 조약돌은 트리스의 등에 맞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튕겨 나갔다.

그렇게 기계에 도착한 트리스가 레버를 당기고 직접 아사이드로 갈려고 할 때 하늘에서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깃털들은 하늘을 수놓으며 천천히 하늘하늘 떨어졌다.

“어디 여행이라고 가려고?”

“선배……?”

“여행은 같이 가야지!”

평소의 능청스러운 모습으로 다시 바닥에 안착한 데카드는 바닥에서 기절 직전 상태인 엘리스를 들어 올렸다.

짹짹이에게 전후 사정은 모두 들었기에 지금 엘리스가 왜 이런 상태인지는 데카드도 알고 있었다.

“수고했어.”

“헤헷…… 저 근데 조금만 잘게요…….”

“푹 자.”

엘리스가 그대로 곯아떨어지고 데카드는 그녀의 가면을 벗겨 주머니에 넣어 주었다.

뒤에서 타닥거리며 트리스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주의 환상 속에서는 이 소리가 들린 이후에 배에 칼이 꽂혔기에 괜히 오한이 들었다.

“정말 다행이에요…… 선배. 저는 선배가 영영…….”

“내가 고작 흑마법사들에게 죽을 것 같아?”

트리스는 뒤돌아선 데카드를 세게 안았고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들은 다시 한번 바닥을 적셨다.

그렇게 데카드가 다시 살아 돌아왔음을 트리스가 확인하는 사이,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황량해진 도시를 바라보았다.

“근데…… 이거 네가 한 짓이야?”

그제야 트리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데카드에게서 떨어져 도시를 눈에 담았다.

트리스의 어나더 선으로 완전히 부서진 도시는 다시 회복되려면 몇 달은 걸릴 것 같았다.

“선배가 흑마법사들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엘리스가 막아서 그랬다는 변명은 하지 않았다.

그녀 덕분에 자신이 더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게 되었고 총장의 자리에서도 물러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만큼은 데카드의 품에 안겨 잠들어 버린 엘리스가 고마웠다.

데카드는 품에 안은 엘리스를 다시 한번 고쳐 안고 황량해진 도시를 넘어 다시 마탑으로 걸어갔다.

“일단 엘리스를 양호실에 맡겨야겠다. 아, 그리고.”

데카드는 트리스에게 진저백과 자신의 사이에 있었던 과거와 그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두 말했다.

명목상 마탑의 교수가 웬 평민한테 죽은 것이니 깔끔한 뒤처리가 필요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트리스는 알겠다는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선배는 걱정 마세요.”

“역시 트리스야.”

이런 상황에서 트리스의 업무 능력과 카리스마는 빛을 발한다.

웬만한 문제는 그녀가 전부 알아서 깔끔하게 처리해 줄 것이고 이번 사건은 트리스도 진저백에게 쌓인 원한이 많았다.

“그런 줄 알았다면 제가 먼저 그놈을 찢어 놓았어야 하는 건데.”

트리스는 이미 죽은 진저백을 향한 살의를 불태웠다.

[문이 열립니다.]

양호실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데카드는 집무실에 있을 짹짹이를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짹짹이 덕분에 몸에는 별 탈이 없어.”

짹짹이가 목숨을 걸고 공격을 맞아가며 지켜내었기에 몸은 아무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서클을 한 단계 더 올림으로써 몸 상태는 더 좋아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먼저 내릴게.”

“기다릴게요.”

데카드가 양호실 층에서 내리고 트리스는 다시 자신의 업무실로 올라갔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트리스는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찬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건……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인데…….”

갑자기 위층에서 들리는 굉음에 급히 올라온 아래층 마탑의 직원들은 터져나간 업무실의 외벽에 거대한 손톱으로 누군가 긁고 지나간 것 같은 바닥 그리고 중간 중간 성한 데가 하나 없는 가구들을 보며 말했다.

“저기 도시도 총장님이 그러신 겁니까?”

“저의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트리스가 고개를 숙였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 행동을 마탑의 총장, 그것도 트리스가 했다면 그 무게는 상상 이상이 된다.

“초, 총장님이 고개를 숙였어……!”

“와아…… 미친…….”

“살면서 트리스 총장님이 고개를 숙이는 것도 다 보네.”

직원들은 하나둘 감상평을 내놓았고 트리스는 자신의 잘못을 깔끔히 인정했다.

“뒷감당은 모두 제가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야근을 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야근 면제 소식에 몇몇 직원들은 기뻐했다가 옆구리를 얻어 맞았다.

“그럼 모두 제 업무실에서 물러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넵!”

“그럼 편히 쉬십쇼!”

직원들이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며 내려가고 트리스는 돌 하나를 주어 한쪽에 유독 그늘진 곳에 던졌다.

그곳에선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등장으로 몸을 숨기고 있던 짹짹이가 나타났다.

“화려하게 저질렀더군.”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나마 멀쩡한 소파에 몸을 뉘인 트리스는 엉망진창으로 부서진 자신의 업무실을 보았다.

“이쪽도 꽤나 화려하군요.”

“칭찬으로 듣지.”

짹짹이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벽에 등을 기댔다.

“진저백의 시체는 어디 있나요?”

“까마귀들이 살점은 모두 쪼아 먹고 이제는 뼈만 남았다.”

“혹시 그 뼈, 저 주실 수 있나요?”

어렵지 않다는 듯 짹짹이는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진저백의 유골을 꺼냈다.

아주 깔끔하게 모든 살과 장기를 뜯어 먹은 까마귀들은 살점 하나 남기지 않았다.

트리스는 이 저주스러운 놈의 뼈 앞에 서더니 그대로 양 손바닥에 열을 집중시켰다.

굳이 범위를 확장시키지 않고 그 영역은 오직 손바닥으로 한정했다.

충분한 열이 모인 트리스의 손바닥은 진저백의 유골을 한 번 스윽 쓸고 지나갔다.

사르르르-

그럴 때마다 뼈들은 여름날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고 그것들은 보글보글 끓어오르며 완전히 소멸했다.

“이래도 분이 안 풀려요.”

“시체조차 남지 못했으니 사후 세계에서도 좋은 대접은 못 받을 것이다.”

트리스가 바닥에 눌어붙은 녹은 뼈들을 보며 분을 삭이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어우…… 휑하네.”

싸울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바깥에 있다가 다시 들어오니까 많이 부서지고 망가졌다는 게 느껴졌다.

“선배만 무사하면 됐어요.”

평소와 같이 이쪽을 향해 배시시 웃는 트리스를 보며 데카드는 정말 저주를 깨고 나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그 느낌에 조금 더 트리스를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살짝 눈을 피했다.

“그렇지. 이게 트리스지.”

데카드는 유일하게 멀쩡한 소파에 누우며 몸을 안정시켰고 트리스는 멀쩡한 문서들을 모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선배와 엘리스의 마탑 전속 용병 퇴출서는 아직 살아있네요.”

“다행이네.”

그것을 또 만들려면 여간 귀찮은 게 아닌데 운이 좋게도 마탑을 빨리 떠날 수 있게 됐다.

트리스는 남은 파일들을 정리하다가 곧 퇴마부장으로 세상에 나가게 될 데카드가 눈에 밟혔다.

“선배.”

“응?”

데카드가 고개를 살짝 들어 트리스와 눈을 마주쳤다.

“몸조심하세요.”

“그래, 그래.”

자신은 언제나 몸조심 중이다.

이제 이 저주에 대한 파훼법도 알았고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도 알았으니 두 번 이상 당해 줄 일은 없다.

* * *

“대, 대장님!”

“왜 그러냐.”

“저주가 깨졌습니다!”

“푸흡…….”

대장 흑마법사는 갑작스런 부하의 보고에 먹고 있던 커피를 뿜었다.

급하게 휴지로 입을 닦은 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그 저주는 완벽하단 말이다!”

“하, 하지만 저주의 빛이 약해지다 못해 아예 꺼졌습니다! 이걸 보십쇼!”

흑마법사는 저주와 동기화해 놓은 스크롤을 펼치며 안에 있던 마법진의 불빛이 꺼져있음을 보여주었다.

“정말이군…….”

“그 저주의 파훼법이 있었습니까?”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저주임을 직시하는 게 일단 전제 조건이고 마음과 정신이 무너져선 안 되며 머리를 후려칠 만한 고통이 있어야 한다.

“진저백 그놈이 무언가를 빼먹었겠지.”

“하, 하지만 저희는 제대로 전달을 했는데…….”

“저주를 보강해라! 더 큰 고통을 줄 수 있도록!”

“아, 알겠습니다!”

대장의 호통에 보고하러 온 흑마법사는 헐레벌떡 방을 나갔다.

다시 조용해진 방에서 대장은 남아 있는 커피를 마셨다.

“이 저주마저 부수다니…… 과연 대단하군, 처형인.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장은 훗날을 기약하며 어두워진 바깥을 바라보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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