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위기
“아주 충직한 노예로구나.”
진저백은 데카드의 앞을 가로막은 짹짹이를 보며 한껏 조소했다.
지지직- 지직-
짹짹이는 자신의 배에서 번개를 내뿜고 있는 푸른색의 벼락 화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고 그것을 손으로 잡아 뽑았다.
“…….”
인간의 몸은 아닌지라 특별한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육체의 손상은 위험하다고 볼 수 있었다.
아직 데카드가 9서클에 다다르지 못한 지금의 시점에서 짹짹이는 인간계에서의 마수화가 불가능했다.
그러니 보통 인간보다 훨씬 강한 피부 강도를 가지고 있는 짹짹이의 배가 뚫릴 정도로 강한 공격은 더 이상 허용하면 안 됐다.
“위험해 보이는구나?”
벼락 화살로 배에 난 구멍에서 푸른 마나 알갱이들이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인간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과다 출혈인 것이다.
“네놈의 정체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이제 곧 너와 함께 그 뒤에 있는 놈도 죽을 거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지.”
짹짹이는 배의 구멍을 손으로 막으며 몸을 이루고 있는 마나의 손실을 최대한 막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메꿔질 구멍이지만 데카드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지금은 그 속도가 더뎠다.
‘어쩔 수 없지.’
짹짹이는 뒤로 조금씩 물러서서 자신의 손과 기절한 데카드의 손을 마주 잡았다.
스아아아-
그러자 배의 구멍이 급속도로 메꾸어지기 시작했고 날개의 깃털도 훨씬 윤기가 있어지기 시작했다.
“……뭘 한 것이냐.”
“대출 받아왔다.”
짹짹이는 자신의 마나와는 완전한 정반대 성질의 마나들을 몸속에서 규합하느라 신음성을 흘렸지만 그것은 곧 잠잠해졌다.
데카드의 안에 갇혀있는 마수들이 나름 정제해서 뽑아준 마나임에도 각각의 개성이 워낙 강해 받아들이기가 힘들기 그지없었다.
“까마귀 폭풍.”
짹짹이의 몸에서 검고 작은 날개들이 푸드덕 일어나더니 그것들은 까마귀가 되어 진저백에게 달라붙었다.
까마귀들은 끝도 없이 진저백에게 날아가며 그의 몸을 쪼고 파내기 위해 날카로운 부리를 꽂아 넣으려 했다.
“하찮은 미물 따위가!”
당연히 진저백도 이를 두고 보지만은 않았고 번개를 갑옷처럼 둘러 까마귀들이 몸을 공격하지 못하게 보호했다.
파지지직-!!
까마귀들은 강력한 전류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어대다가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지금 이것이 짹짹이가 의도한 공격의 끝이 아니었다.
짹짹이는 오른팔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살짝 쥐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까마귀 폭발.”
퍼어어엉-!!
진저백의 몸에 붙어 있던 까마귀들이 전부 터져나가며 번개의 갑옷을 입은 그에게도 충격파로 그 피해가 조금씩 전해졌다.
‘폭발의 여파는 조종할 수 있다.’
폭발 소리나 진동이 너무 크면 아래층에서 올라올 수가 있어 짹짹이도 주의를 해야 했다.
밑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엉망인 총장의 집무실과 싸우고 있는 짹짹이와 진저백이 제일 눈에 먼저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진저백은 마탑 교수이기에 상관이 없었고 짹짹이는 침입자 취급을 받게 된다.
지금도 벅찬데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 방법은 진저백 또한 유용하게 쓸 수도 있지만, 지금의 그는 분노와 살의로 머릿속이 새까맣게 되어있어 다채로운 전략이 떠오르지 않았다.
“크윽…….”
진저백은 우웅거리는 고막과 더불어 흔들리는 뇌가 전해 주는 어지러움에 발을 살짝 헛디뎠다.
폭발로 그가 입고 온 고급스러운 옷은 군데군데가 찢어져 볼품이 없어졌고 얼굴은 그을음이 묻어있었다.
“한 번 더 맛보고 싶은가.”
짹짹이는 얼마든지 그래 줄 용의가 있었다.
다시 한번 그의 팔에서 까마귀가 솟아나기 시작했고 진저백은 그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번개속성 마법사의 헤이스트를 본 적이 있나.”
짹짹이가 본 헤이스트는 슬레이에서 데카드가 골목을 달려갈 때 썼었던 것밖에 없다.
그에게서 반응이 없자 진저백은 훗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보여주지.”
진저백의 몸을 두르던 번개가 더 날카로워지고 가늘어지며 뭔가 날렵해졌다는 감상을 주었다.
짹짹이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에 집무실 곳곳에 자신의 눈이 되어줄 까마귀들을 펼쳐 놓았다.
고오오오-
그 후 까마귀로 하는 공격보다 마나로 하는 공격이 더 나을 거라는 판단으로 짹짹이는 어둠속성의 마나를 일으켰다.
까마귀들은 눈치껏 집무실 창문의 커튼들을 모두 쳐놓으며 짹짹이의 어둠을 더욱 강화시켜 주었다.
“재밌군. 재밌어.”
진저백은 어깨나 팔에서 어둠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짹짹이를 보며 삐죽하게 웃었다.
“눈 똑바로 쳐들고 봐야 할 거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 빠르니.”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지금 데카드의 안에 있는 레오는 진저백과 같은 번개 속성 마수로 그 넓디넓은 마수계를 하루 만에 횡단하는 게 가능했다.
이보다 더 빠를 수 있다고?
그건 아직 우물 밖을 나와 보지 못한 개구리의 허세일 뿐이다.
짹짹이는 항상 그 속도를 옆에서 지켜봐 왔기에 몸은 그보다 느려도 볼 수 있는 눈만큼은 아직 확실했다.
파직-
스파클이 잠깐 튀는 것 같은 소리가 진저백에게서 들리더니 그는 이미 사라지고 난 후였다.
‘어디냐.’
지금 데카드의 곁으로는 전혀 다가오지 않고 있다.
자신이 이만큼 빠르다는 걸 보여주고 아무런 반응을 못 하는 짹짹이를 놀리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미세하게 보이고 있다.’
집무실 곳곳에 내려앉은 까마귀들은 그의 강력한 시야가 되었고 집무실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진저백을 포착할 수 있었다.
“그림자 칼날.”
어둠 속성 마법 중 하나인 그림자 칼날.
짹짹이는 특정한 진저백의 위치를 향해 검지를 살짝 들어 올렸다.
슈와아악-!
거대한 그림자의 낫이 전방위를 휩쓸었다.
자신의 속도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던 짹짹이가 펼친 기습은 그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크흑……!”
급하게 허리를 꺾어 낫을 피하는 것으로 임기응변한 진저백은 잠시 멈춰 짹짹이를 쳐다보았다.
어두워진 집무실과 짹짹이의 어둠속성 마나로 한껏 더 빛이 사라진 실내는 윤곽만 보일 뿐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조용하게 처리하려 했더니 안 되겠구나.”
진저백은 한숨을 쉬며 양손을 깍지 끼듯 마주 잡더니 번개를 작은 공처럼 압축시켰다.
그의 손으로 모여드는 번개의 양은 점점 많아졌고 짹짹이는 저것이 벼락 화살처럼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번에는 막아낸다.’
마른침을 삼키며 짹짹이는 곧 날아올 공격에 대비했다.
진저백 오리지널 - 벼락 찌르기
번쩍-!!
짹짹이의 시야가 푸른 광전으로 물들었다.
콰아아아아앙-!!!
* * *
“인페르노.”
“트리스! 제발!!”
마탑의 도시에서는 계속 전진을 방해하는 엘리스를 제압하기 위해 트리스가 마법을 쏟아내었다.
초고온의 화염으로 이루어지는 불속성의 마법들을 도시의 보통 건물들은 버텨낼 수가 없었고 반파되거나 재로 변했다.
“모두 대피하세요!!”
“꺄아악!”
“총장님이 왜 저러시는 거지?!”
근처 가게의 주인들은 모두 마탑으로 도망쳤고 엘리스는 목이 터져나가게 소리 지르며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인들을 도망치게 했다.
“페럴라이즈.”
부글부글부글-
엘리스는 바닥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감각에 곧바로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돌았다.
그와 동시에 바닥에서는 용암이 터져 나와 엘리스가 있던 자리를 덮쳤다.
가면은 엘리스의 전체적인 능력을 올려주었기에 평소라면 불가능했을 마법의 전조를 느끼는 것 또한 가능했다.
“트리스!! 정말 계속 이럴 거예요?”
“네가 계속 나를 방해하고 있어. 나를 내버려 둬.”
트리스는 이렇게 말하며 다시 헤이스트를 사용해 기계로 달려갔다.
엘리스야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고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때 만났던 흑마법사들을 천천히 태워 죽이리라는 생각뿐이었다.
‘조금만 참아요. 선배.’
트리스는 조금만 더 뛰어가면 나오게 되는 기계를 향해 발을 놀렸다.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가고 있는 엘리스는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웠다.
“멈추라니까요!!”
그녀를 멈추기 위해 가면의 검은 오라를 합쳐 전력으로 돌을 던졌다.
대포알처럼 날아간 돌은 무지막지하게 강력해진 완력과 가면의 오라를 만나 무시무시한 기세로 트리스에게 날아갔다.
콰아앙-!!
당연히 트리스가 상시 두르고 있는 베리어에 막혔지만 반 정도는 베리어 안을 뚫고 튀어나왔다.
“하아…….”
트리스는 깊은 한숨과 함께 헤이스트를 중단하고 엘리스의 말대로 멈춰 섰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 똑바로 엘리스를 마주 보았다.
“그래요. 그렇게 나를 보라고요.”
“기계에 가기 전에 너를 먼저 떼어놓는 게 순서에 맞겠어.”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거예요. 내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거니까.”
트리스는 이전보다 더 흉포해진 마나를 내뿜었다.
그 기세에 지붕 위에 있던 새들이 놀라 최대한 멀리 날아갔고 건물들은 조금씩 부서졌다.
가까이 있던 엘리스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신경이 곤두설 만큼 무서웠다.
그러나 물러설 수 없었다.
‘버텨야 해.’
엘리스가 억지로 공포를 떨쳐내고 있을 때 트리스는 한쪽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마나를 전부 이곳에 집중시켰다.
가지고 있는 마나의 절반을 오직 이 마법에 털어 넣었고 마나는 곧 화염이 되어 둥글게 뭉쳐졌다.
그것은 크기를 점점 불려 나갔고 곧 웬만한 건물보다 더 커다란 화염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마치 작은 태양을 한 손으로 높이 들고 있는 듯한 트리스의 모습은 전설이나 신화에서 나오던 여신이 강림한 것 같았다.
“어나더 선.”
화염구가 엘리스를 향해 떨어졌다.
* * *
“이제는 아예 생각할 틈을 안 주는 군.”
아까까지만 해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깜깜한 밤에, 빛이라곤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끝이었다.
데카드는 달밤의 거리를 걸으면서 이번에는 또 어떤 엿 같은 환상이 자신을 찾아올지 기다렸다.
“여길 빨리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별다른 상황이 없으니 데카드는 자신에게 언제나 심장처럼 존재했던 마나를 움직여 보려 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될 리가 없었고 마나가 없으니 소환이나 다른 마법들도 일체 사용이 불가능했다.
“뭔가 큰 고통을 줘야 하나?”
학생들은 졸리면 냉수로 세수를 하거나 찬물을 마시는 등 약간의 고통으로 정신을 깨운다.
그러니 자신도 뭔가 커다란 고통을 받아들이면 저주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주가 주는 정신적인 고통은 소용없었다.
물론 아까 환상에서 본 트리스를 떠올리면 머리가 어질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육체에 직접 가하는 엄청난 고통이 필요했다.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가능하려나?”
이 행동에는 마나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가능은 해서 어쩌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일 수 있었다.
데카드는 머리를 강하게 털며 이 방법을 사용함으로 인해 오는 부작용들에 대한 생각을 날려버렸다.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어.”
그렇게 데카드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 상태에 다시 한번 들어가려고 할 때 어딘가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