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87화 (87/208)

087 수련

번개의 공명음이 공터를 시끄럽게 울렸다.

두 가지 색의 사나운 번개는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잔뜩 날이 서 있었다.

콰르르릉- 쿠릉-!

시퍼런 청색의 검이 레오의 목 지척까지 왔다가 곧바로 들어오는 레오의 반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빈틈이 없어……!’

언뜻 멍한 눈에다가 검은 한쪽으로 늘어뜨리고 제대로 된 자세도 잡지 않았는데 벨린다는 그에게서 작은 빈틈도 찾을 수 없었다.

항상 공격은 벨린다가 먼저 시작했다.

그러나 어떠한 공격도 레오에게 유효타를 입히지 못했다.

서로가 번개로 데미지를 줄 수 없는 지금, 승패가 갈리는 길은 검술뿐인데 레오는 화려한 기술 없이도 여유롭게 공격을 받아넘겼다.

‘이것도 받을 수 있을까!’

파란 뇌전이 방망이처럼 검에서 뭉치고 뭉쳐지며 그것이 뿜어내는 광전 때문에 가까이서는 눈조차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벨린다는 그대로 번개를 몸에 둘러 그 특유의 속도를 이용해 움직였다.

아니, 사라졌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번개를 두른 벨린다는 움직일 때마다 공기를 가르는 쇳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눈을 부릅떠야만 그 잔상이 겨우 보였다.

검에서 번개가 내는 빛 때문에 지금 벨린다의 모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과도 같았다.

레오가 자신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하도록 그 주위를 계속 혼란하게 움직이던 벨린다는 하늘로 높이 뛰어올랐다.

번개가 땅에서 하늘로 올려치는 듯한 그 모습은 가히 장관에 가까웠고 나지막이 벨린다의 입이 열렸다.

“성뢰(星雷).”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그야말로 한줄기의 번개 그 자체가 되어 벨린다는 레오의 가슴에 검 끝을 겨누었다.

그리고 그 순간.

벨린다는 마치 세상이 느리게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번개와 같은 공격 속도를 가진 자신은 지금 이중에서 제일 빠를 텐데 그와 동시에 제일 느리기도 했다.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속도로 움직이는 이가 있었다.

레오는 생전 처음 보는 보법과 함께 검을 유려하게 움직였고 보통이라면 사람의 관절이 주는 꺾임이 있을 텐데 그런 것 없이 강처럼 흘러갔다.

강과 같다는 표현이 틀린 것이 아니라고 말해 주듯 레오의 번개도 그 부드러움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번개는 곧 강물처럼 일렁거렸고 그것은 곧 항거할 수 없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벨린다의 검과 레오의 흐름이 격돌했다.

꽈아아아아앙-!!! 쿠르릉-!

충격으로 터져나가는 번개들이 사방을 뒤덮었고 그 속에서 군데군데 조금씩 타고 그을린 벨린다가 튕겨 나왔다.

“벨린다!”

가장 가까이 있던 엘리스가 받으러 가는 순간 환한 빛이 장내를 감싸 안더니 레오가 먼저 떨어지는 그녀를 안았다.

“콜록콜록…….”

벨린다가 마른기침을 토해 내며 자신을 안고 있는 레오를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알겠어요…… 선생님이 가르쳐주려 했던 것…….”

끄덕끄덕-

그러면 됐다는 듯 레오는 살짝 웃어 보였다.

“하핫…….”

벨린다는 그대로 기절했고 레오는 다시 그녀를 들어 올려 데카드에게로 데려갔다.

“벨린다는 괜찮아요?!”

아스카가 급하게 뛰어나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고 데카드는 맥을 짚어주며 내상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굳이 안 해보아도 레오가 알아서 힘 조절을 했을 테지만 아스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한 행동이었다.

“괜찮아. 조금 그을렸을 뿐이야.”

“휴우…… 다행이네요.”

“너는 네 걱정이나 해! 빨리 따라와!”

친구의 안위를 확인한 아스카는 다시 요르에게 뒷덜미가 잡혀 끌려가야 했다.

레오와 벨린다의 대결을 공터 한구석에서 전부 바라본 고드윈은 감탄을 내뱉었다.

“분명 벨린다도 굉장히 잘한 것 같은데 레오 선생님이 어떻게 기술을 튕겨내신 거죠? 딱히 별다른 마법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마법이 아니다.”

고오른 또한 전투광으로서 마수계에서 자신의 힘과 견줄 만한 다른 지배자급 마수들과 여러 번 싸웠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싸우고 또 싸워도 인간형의 상태로는 레오를 이긴 적이 손에 꼽았다.

계속 자신의 힘이 전부 전해지지 않고 공중으로 분해되는 것 같은 더러운 느낌.

“저건 레오가 억겁에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 깨달은 것을 모두 담은 기술이지.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

“그렇군요…….”

억겁이니 기술이니 뭔 얘기인지 고드윈은 단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벨린다가 기절해서 시간이 널널해진 레오에게 데카드가 다가왔다.

데카드가 가까이 오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갖추려는 레오를 남들이 보기 전에 간신히 일으켰다.

“여기서는 무릎 안 꿇어도 돼.”

“…….”

레오는 죄송하다는 뜻으로 고개를 짧게 꾸벅 숙이고는 다시 하늘에 높이 뜬 태양을 바라보았다.

잠시 데카드도 레오가 보는 것을 따라 하늘을 바라봤지만 구름 말고는 딱히 보이는 것이 없었다.

“벨린다는 어땠어?”

레오는 말을 안 하는 대신 눈으로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지금 레오의 눈이 날카롭지 않고 포근한 성격을 띠는 게 어지간히 벨린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떤 스승이나 유능한 제자를 좋아하는 법.

몇 번의 검합 만으로도 레오의 뜻을 파악한 벨린다는 제자로서 아주 우수했다.

“벨린다에게 검술을 알려주는 게 어때?”

“…….”

레오의 검술은 데카드도 몇 번 배워보다가 취향에 맞지 않아서 포기했었던 적이 있다.

그의 검술은 거대한 힘을 흘려버리거나 보존해서 다시 상대에게 되돌려주는 특성이 있다.

번개의 파괴적인 성격과는 180도 다른 검술이지만 그의 검술은 그런 번개마저 포용하며 받아들였다.

“네가 검술을 사용해서 아까 벨린다의 마지막 공격도 허무하게 끝이 났잖아.”

강에 돌을 던지면서 생겨난 파문이 그 흐름까지 바꿀 수 없듯이.

레오가 만들어낸 거대한 흐름에 벨린다라는 작은 파문이 들어와도 전부 튕겨 내거나 흘려버리는 것이다.

“물 잔 받기 훈련도 사실 그 검술을 위한 훈련이었지? 아마?”

허공에서 떨어지는 물 잔을 온전히 검신으로 받아내는 것은 레오의 힘을 분산시키는 검술을 배우기 위한 고급 훈련이었다.

“벨린다에게는 너의 검술도 어울리는 것 같아.”

“…….”

레오는 검술을 알려줄 거냐는 데카드의 말에 살짝 고민이 됐다.

그런 눈빛을 읽은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래. 천천히 생각해 봐.”

다시 데카드는 레오를 남겨두고 다른 팀원들을 보기 위해 공터로 움직였다.

* * *

“집중해라. 이 힘을 온전히 자신의 힘이라고 생각해라.”

“크윽…….”

공터 뒤편에서 가면을 쓴 엘리스가 명상을 하고 짹짹이가 그 보조를 서고 있었다.

가면의 힘을 길들이고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 엘리스는 짹짹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루라도 빨리 이 힘에 익숙해져서 데카드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되고 싶었다.

사아아아-

그녀의 주위를 감싸던 흑무가 서서히 사라지더니 곧 말끔하게 사라졌다.

“후우…….”

엘리스는 작은 한숨으로 긴장을 덜어냈고 짹짹이는 공터 구석에 떨어져 있는 조약돌 하나를 주웠다.

작은 조약돌은 우스워 보일 수 있는 무기이지만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힘을 가지고 있는 마수가 쓴다면 총알과도 같다.

피융-!!

별다른 언질도 없이 눈을 감고 있는 엘리스를 향해 짹짹이가 조약돌을 던졌다.

정확히 그녀의 이마를 향해 날아간 조약돌은 거센 파공음을 내며 날아갔지만 끝내 목표에게 다다르지 못했다.

“대단하군.”

조약돌이 엘리스의 두 개의 손가락 사이에 끼어 있었다.

날아오는 궤도나 속도, 힘을 오직 기감만으로 정확히 알아챘다는 것이다.

짹짹이가 심심한 감탄을 보낼 만큼 엘리스의 전체적인 능력치가 크게 상향되었다.

“이 정도면 데카드를 확실하게 지킬 수 있을 거예요.”

엘리스의 손에서 검은 오오라가 흘러나왔고 짹짹이는 혼탁한 느낌의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을 조종해 볼 수는 없겠나.”

“네?”

“그 검은 오라. 왠지 사용자가 조종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이런 마도구를 잘 아는 것은 아니기에 그저 단순한 짹짹이의 직감이었다.

하지만 엘리스는 짹짹이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손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오라를 제어해 보았다.

“팔을 감싼다…….”

입을 달싹이며 오라로 하고 싶은 것을 이미지화해서 머릿속에 입력시키자 그것은 곧 현실이 되었다.

손만을 덮고 있던 오라는 엘리스의 명령대로 잠식 부위를 팔까지 확장했다.

“진짜 되네요?”

“그렇군.”

직감대로 검은 오라는 엘리스의 명령대로 모양이나 일렁이는 부위를 바꾸는 것이 가능했다.

“이제 앞마당으로 가지. 오랫동안 안 보이면 주인님이 걱정하실 거다.”

“얼른 가요!”

가면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엘리스와 짹짹이는 다시 일행들이 있는 앞마당으로 왔다.

앞마당에서는 마수들과 부원들이 지금까지 배운 것을 펼치기 위해 대련을 하고 있었고 그 열기가 뜨거웠다.

“얼씨구! 배운 거 다 까먹었냐!”

“죄, 죄송합니다!”

요르는 계속해서 아스카를 압박해 가며 하늘에서 고드름 장대비를 내리게 했다.

“으아악!”

아스카는 그것을 얼음 방패로 막아내기에 여념이 없었고 또 요르의 왁왁거리는 잔소리 아닌 조언이 쏟아졌다.

“아니! 거기서는 살짝 빗겨 막아야지! 이걸 전부 온전히 받으면 방패가 버텨내질 못 한다고!”

“알겠습니다!”

요르가 아스카를 조이면 조일수록 그녀는 더욱더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해냈다.

또 멀린 가문의 마나 운용법은 아스카를 지치지 않게 하며 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한편 요르의 반대편에서 카론이 아이언 커팅을 사용해 강철 단검을 티이라에게 계속해서 날렸다.

“강철 속성은 좋다! 공격에도!”

그러나 티이라의 강체화된 피부에는 조금의 흠집도 내지 못했다.

이를 악문 카론이 강철 건틀릿을 만들어 자신의 빠른 이동속도를 사용해 티이라를 때렸지만, 그녀는 평온했다.

“으으! 거기 근육이! 뭉쳤는데! 고맙다!”

보통 사람이라면 내장이 진탕되어 곤죽이 되었을 카론의 주먹은 티이라에겐 안마 도구밖에 되지 않았다.

티이라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의 배를 갈기고 있는 카론을 보며 말했다.

“아이언 커팅은! 강철 속성 중 가장 높다! 범용성!”

콰앙-! 쾅쾅-!!

사람의 피부를 때리는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가 계속해서 티이라에게 흘러나왔고 카론은 자신의 손이 더 아파오는 걸 느꼈다.

두들겨 맞으면서도 티이라는 아무렇지 않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한 가지 모양만! 안된다! 고집하면! 알아야 한다! 다양하게!”

설명을 마친 티이라가 처음으로 카론의 주먹을 피하며 복부에 카운터를 꽂아 넣었다.

“크허헉……!!”

그대로 풀썩 무릎을 꿇은 카론은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입에 고인 침을 퉤 뱉었다.

“추천한다! 사슬을!”

아이언 커팅의 추천 사용 방법까지 알려준 티이라는 똘똘한 인간인 카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자기 딴에는 쓰다듬는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힘이 너무 들어가 그냥 사람의 머리를 치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고오른과 고드윈은 세상 무식한 방법으로 수련을 진행했다.

“우오오!! 더욱더 불타올라라!!”

“알겠습니다!!”

불 속성의 두 명은 괴성을 지르며 서로에게 불길을 마구 쏘아 보내고 있었다.

파도처럼 서로를 밀어붙이고 있는 불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밀리지 않는 힘 싸움을 계속했다.

“크하하핫!”

고오른은 고드윈의 상태를 봐가며 막을 수 있을 정도로만 화력을 조절했다.

“으으윽……!!”

그 덕에 고드윈은 힘이 빠져 죽을 맛이었다.

조금만 힘을 빼면 고오른의 불길이 자신을 덮쳐버릴 것이니 계속 최대 출력을 유지해야 했다.

“불타올라라!!!”

그렇게 마수들은 오랜만에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었고 부원들은 전에 없이 강해져 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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