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85화 (85/208)

085 종식된 저주

아스카가 데카드를 따라 숙소의 거실로 들어왔다.

데카드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거실에 있는 소파나 의자를 모두 구석으로 밀었다.

그러자 꽤나 넓은 공간이 중앙에 드러났고 데카드가 손짓했다.

“앉아라.”

아스카는 살짝 긴장되는 마음으로 데카드가 말한 자리에 가부좌했다.

“후우…….”

긴장과 두려움을 이 한숨으로 모두 날려 보낸 아스카는 준비가 된 듯 눈빛에서 강인함과 용기가 엿보였다.

데카드는 정 자세로 앉아있는 아스카의 등에 손을 올리며 자신의 마나룸을 전면 개방했다.

이 수술과도 같은 해주(解呪) 과정에서는 엄청난 양의 마나가 필요하기에 마수들의 것까지 전부 열었다.

고오오오오-

푸른 마나 알갱이들이 반딧불처럼 거실을 부유하며 날아다녔다.

“예쁘네요.”

은하수가 눈앞에 있는 듯한 모습에 손을 뻗으니 알갱이들이 눈처럼 녹아서 사라졌다.

물론 사람이 이 정도의 괴물 같은 마나를 내뿜는다는 것에 놀라운 마음이 더 컸지만 놀라는 건 나중에 해도 된다.

“어떻게 해주하는지 말해 줄게.”

데카드는 자신이 흑마법사들의 기록에서 본 순서대로 읊어나갔다.

“먼저 처음에는 너의 몸을 전부 갈아엎을 거야. 그러니까 서클을 올릴 때와 똑같은 고통이 있을 거라는 거지.”

“각오하고 있어요.”

서클의 고통은 어떤 마법사라도 한 번쯤은 겪는 것이기에 이미 여러 번 그 고통을 겪어온 아스카는 이 정도면 대가가 싸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야.”

데카드는 이제부터가 진짜라는 듯 말의 뜸을 들였다.

“후세로 전해지는 저주는 사람의 골수 안에 들어있어. 그러니까 그 저주가 나올 때까지 내 마나로 골수를 후벼 팔 거야.”

“…….”

감히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크고 극심한 지옥의 고통일 것이다.

전신의 뼈에 있는 골수들을 긁어내서 그 안에 있는 저주를 제거하는 것.

데카드야 당연히 최대한 빨리 끝낼 생각이긴 하나 최소 30분이 걸린다.

그때 동안 아스카가 버텨 줄진 미지수.

“그리고……. 네가 왜 이 고통을 겪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머릿속에 계속 각인시켜. 그러면 고통이 좀 덜할 거야.”

“네.”

아스카는 심신 안정과 데카드의 마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위해 명상에 들어갔다.

“그럼 시작한다.”

허공을 떠다니던 마나 알갱이들이 모두 데카드에게 흡수되고, 그 또한 극도의 집중을 발휘했다.

[…….]

[…….]

[…….]

[…….]

마수들 또한 분위기를 보며 입 하나 뻥긋 열지 않았고 데카드의 마나는 부드럽게 아스카의 마나 회로를 질주했다.

빠르게 한 바퀴 돌은 마나는 곧바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크윽…….”

아스카의 작은 신음성과 함께 데카드의 마나는 아주 잘게 쪼개지고 분열해 마나 회로의 미세한 틈 사이로 전부 빠져나갔다.

‘어……?’

마나 회로를 거칠게 때리던 마나들이 갑자기 순식간에 어딘가로 사라진 것처럼 자취를 감춰 버렸다.

그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감각에 속으로 얼빠진 소리를 내던 아스카는 곧이어 따라오는 고통에 이를 악물어야 했다.

마나 회로를 빠져나간 마나들이 다시 뭉쳐져서 저주가 스며든 모든 장기를 훑고 있었다.

마나는 저주를 빨아들여 자신의 몸속에 저장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마나가 장기를 뚫듯이 지나가야 하기에 매우 고통스럽다.

아스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얼굴은 고통으로 시뻘게져 있었다.

‘조금만 참아라.’

10분이 지났을 때 골수를 제외한 장기들에 묻어 있는 저주들을 마나가 모두 흡수했다.

그러나 본 게임은 이제부터다.

데카드는 지체할 것 없이 뼈 안으로 마나를 밀어 넣었다.

“크으으읍……!!”

혀를 깨물고 죽을힘을 다해 입을 다물어서 비명으로 집중이 깨지는 걸 막은 아스카는 갈비뼈부터 시작해 전신의 뼈가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게 누군가가 뼈를 가루로 만들어주는 이 고통은 마나가 뼈 깊숙이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졌다.

“으으아으윽…….”

목젖까지 차오른 비명이 당장에라도 닫힌 입을 뚫고 나갈 것만 같았다.

그럴 때마다 아스카는 복수와 가문의 원통함만을 생각했다.

이 빌어먹을 저주만 없었더라도 자신의 가문은 번창했을 것이며 멸문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끝내는 거야……!!’

흑마법사들의 역겹고 구역질나는 저주는 자신의 대에서 끝이 난다.

아스카의 눈에 핏발이 서며 눈물은 피눈물로 바뀌었고 어금니는 너무 세게 깨물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15분…… 20분…… 25분…… 30분……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아스카의 표정은 천차만별로 달라졌다.

고통에 울부짖는 표정에다가도 흑마법사들에 대한 복수심에 살의가 가득 담긴 표정.

자신의 몸에서 항상 느껴지던 이물질인 저주가 사라져가는 느낌에 행복해하는 표정.

그리고 마침내 40분이 지났을 때 해주가 끝이 났다.

데카드가 아스카의 등에 손을 떼자 거무스름한 마나가 그녀의 등에서 딸려 나왔다.

“하아…… 하아…….”

뛰어난 마법사 다섯 명이 모여서 해도 시원찮은 일을 혼자서 해버렸으니 데카드에게 쌓인 피로도 엄청났다.

“이제 사라져.”

데카드의 손 위에서 거무죽죽한 빛을 띠고 있는 저주는 데카드가 주먹을 쥐자 완전히 소멸했다.

파스스스-

“이제…… 끝난 건가요…….”

비명은 한 번도 지르지 못했지만 전부 쉬어버린 목소리로 아스카가 바닥에 쓰러진 채 말했다.

“그래. 이제 멀린 가문의 저주는 사라졌다.”

“정말…… 감사하…….”

아스카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혼절했다.

전신의 골수를 파내는 작업을 맨정신으로 전부 견뎌냈으니 당연한 일이다.

데카드는 기특한 그녀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단한 정신력이야.”

오늘의 고통을 떠올리고 흑마법사와 싸운다면 그들이 거는 저주가 무엇이든 그녀의 정신력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데카드는 그녀를 들어 올려 소파에 가지런히 올려주고 베개와 이불을 가져와 편안히 잘 수 있게 도와주었다.

[주인님도 휴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맞아요! 너무 지치셨어요!]

[마수왕님! 쉬어라!]

[이 고오른이 어깨라도 주물러 드릴까요?]

[…….]

데카드도 상황이나 지금 몸 상태로 봐서는 쉬어야 하는 게 맞았지만, 그의 마음이 지금은 움직이라고 말했다.

데카드는 냉장고에 있는 차가운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하아…… 이제야 좀 살겠다.”

냉수가 몸 안으로 들어가자 정신이 번쩍 들며 피곤함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추가로 마나를 회로 안에서 빠르게 회전시켜 피곤을 억지로 몰아내었다.

덜컥-

문을 열고 나가자 아까 말해준 과제들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부원들과 그들을 열심히 보조 중인 엘리스가 눈에 띄었다.

고드윈은 내실을 다지기 위해 명상에 들어가 있었고.

카론은 책을 펴고 아이언 커팅이라는 마법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이 둘은 혼자 그럭저럭 잘하는 듯 보였으나 제일 큰 난항은 벨린다에게 찾아온 모양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보는 창백한 청색의 검을 들고 그 위에 물 잔을 올린 뒤 하늘로 띄웠다.

“호오…….”

띄우는 과정에서는 조금의 물방울도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벨린다의 검술과 균형 감각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검신 위로 물 잔이 떨어졌을 때 그 힘으로 안에 들어있는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검에 회전을 먹였다.

벨린다가 검무를 추듯 우아하고 아름답게 검에 회전을 가미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신 위에 물 잔이 턱하고 떨어졌다.

찰박-

그러나 물 잔 안에 들어있는 물들은 검신과 물 잔이 만났을 때 생기는 충격으로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후우…….”

벨린다는 다시 검신 위에서 물 잔을 치우고 엘리스가 호다닥 달려와 그녀의 빈 잔에 물을 따라주었다.

“고마워, 언니.”

“헤헷, 수련 열심히 해!”

“응.”

데카드는 마검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딱히 그녀의 자세나 검술에 대해 딱히 지적할 부분을 찾지 못했다.

그냥 이 수련도 레오가 가끔 하던 걸 던져주었을 뿐 인간계 검사 그 누구도 이런 수련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레오. 너는 어떻게 생각해.’

[…….]

데카드의 안에 있는 레오는 조용히 벨린다의 근육 움직임이나 힘의 분배 같은 것을 보았다.

누가 뭐라 해도 데카드와 마수들 사이에서 가장 오래 검을 휘둘러 온 건 리오였기에 제대로 된 조언은 아마 그밖에 해줄 수 없을 것이다.

“앗! 데카드 왔어요?”

다른 사람들의 수련을 보고 있던 엘리스가 숙소 바깥으로 나온 데카드를 보고 달려왔다.

“저주는 어떻게 됐어요?”

“잘 해결됐어.”

아스카도 멀쩡하고 저주는 완벽히 사라졌으니 이 정도면 대성공이다.

“다행이네요!”

엘리스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잘됐다는 듯 손뼉을 쳤다.

데카드는 그녀와 함께 조금씩 걸으며 바깥 공기로 정신을 조금 더 맑아지게 했다.

“애들은 어때?”

“마법은 잘 몰라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크게 어려워하는 사람은 벨린다 말고 없는 것 같아요.”

“그렇군.”

역시 벨린다에게 내준 과제가 아직 그녀에게는 일렀거나 세상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마수계에서의 레오도 열 번 하면 여덟 번 정도 성공할 만큼 난이도가 있는 수련이기 때문이다.

데카드는 벨린다를 바라보다가 다시 엘리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엘리스는 저거 할 수 있겠어?”

“글쎄요……?”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벨린다가 저렇게 어려워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안 될 것 같았다.

“한번 해볼래?”

“그럴까요?”

마침 엘리스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단검을 뽑기 위에 여느 때처럼 허리춤으로 손이 갔으나 손은 허공을 매만져야 했다.

“아직 단검이 없었네요.”

“하나도 없어?”

“저번에 부서지지 않은 단검이 하나가 있긴 있어요.”

아공간 주머니에서 처음 트리스에게 던진 단검을 꺼낸 엘리스는 이가 조금 나간 날을 스윽 문질렀다.

그리고 벨린다가 벤치 위에 놓은 여분의 물 잔에 물을 따르고 단검 위에 올렸다.

이 상태로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집중력과 절제력이 필요하다.

“흐읍.”

엘리스는 숨까지 참으며 몸의 진동을 최소한으로 했고 단검을 위로 들어 올려 물 잔을 띄웠다.

휘리릭- 후욱-

벨린다와 다른 빠르고 간결한 움직임으로 회전을 더한 엘리스는 암살자 특유의 보법을 밟으며 몸의 떨림을 없애나갔다.

눈을 감는다면 누가 잔디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를 만큼 사뿐사뿐 단검과 몸을 회전시킨 엘리스는 그대로 떨어지는 물 잔을 받았다.

찰랑-

“실패네요.”

벨린다보다는 많은 양의 물을 지켜냈지만, 이 역시 성공은 아니었다.

엘리스는 다시 단검을 집어넣었고 아직 남아있는 물 잔의 물을 들이켰다.

“이걸 성공한 사람이 있긴 한가요?”

“사람은 없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다면…….”

데카드는 머릿속으로 번뜩이며 떠오른 방법 하나를 곱씹으며 숙소 근처를 걸었다.

“나는 마수학밖에는 아는 게 없어서 속성 마법을 애들한테 정확히 알려주는 게 어렵지. 하지만 이 방법을 쓴다면…….”

[마수왕님! 그 방법이 뭐냐?]

[그러게요? 마법부에서 선생님이라도 불러오실 건가요?]

[…….]

[마수왕님의 방법인데 그냥 따르면 되지, 뭔 문제가 있겠나!]

데카드는 입꼬리 한쪽을 비집어 올리며 혀로 입술을 살짝 쓸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표정을 지을 때에 데카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번에 맞출 수 있다.

데카드를 천 년간 봐온 마수들은 당연히 이 표정이 뭔지 깨닫고 살짝 긴장했다

[마수왕님! 이상한 계략 짠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