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82화 (82/208)

082 증명

데카드가 카론을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정확하다.”

본인이 직접 맞다고까지 하자 카론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데카드를 더 자세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뭔가 강대한 기운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고 얼굴도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으며 분위기도 강자의 것은 아니었다.

가볍고 경박한 느낌의 말투와 행동거지는 ‘정말 이 사람이 맞을까?’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퇴마부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젊은 것 같은데.”

고드윈이 아몬드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며 의문을 제기했다.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데카드는 이 이상의 쓸데없는 의심을 없애기 위해 젠킨스에게서 직접 받은 임명장을 그들의 앞으로 던졌다.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읽어봐라.”

누가 흑마법사 전문 부서 아니랄까 봐 의심은 더럽게 많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은 마음에 들었다.

흑마법사와의 싸움에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야 하기에 데카드의 마음속에서 이들은 꽤나 괜찮은 점수를 받고 있었다.

“정말이네.”

아스카가 임명장과 데카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프로필 사진과 맞는지 대조해 보았다.

두 번 보고 세 번 보아도 데카드가 퇴마부장이 맞자 이제는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젠킨스의 도장까지 떡하니 박혀있으니 눈앞에 이 남자는 정말 퇴마부장이 맞았다.

“선배님이 퇴마부장이라니, 굉장히 잘 어울리시네요.”

데카드의 집행관 시절 과거를 거의 다 알고 있는 벨린다는 납득하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녀는 유물 조사가 끝난 이후로 필립에게 끈덕지게 매달려 데카드에 대해 알려달라고 졸랐다.

필립은 그걸 또 좋다고 하루 종일 그가 본 데카드의 업적을 얘기해 주었는데 얘기만 들어도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과거를 알지 못하는 나머지 부원들의 표정은 이러했다.

네가 뭔데?

대충 이런 느낌의 아니꼬운 눈빛과 표정을 하고 데카드를 쳐다보는 데 무슨 생각을 하는지 데카드에게 전부 읽혀왔다.

“야아…… 눈빛 봐라.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읽힌다.”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3류 악당 같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데카드가 입을 열었다.

“이런 게 무슨 퇴마부장이냐, 실력도 없어 보이는데. 붙으면 내가 이긴다. 뭐, 이런 생각들 하고 있지?”

자신들의 마음이 정확히 읽혔음에도 아스카, 고드윈, 카론은 그렇게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데카드가 말한 대로 그들은 데카드의 실력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흑마법사와의 싸움에서 자신의 등을 맡겨도 될 만한 존재인지.

자신들을 이끌고 지휘할 수 있는 존재인지.

그것은 젠킨스의 임명을 받았다는 것으로는 전혀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따라 나와.”

데카드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순간적으로 180도 변하며 완전히 가라앉았다.

거실 구석구석 빈틈없이 메꾼 살기는 꾸덕하게 부원들을 감쌌고 데카드는 코트를 펄럭이며 먼저 밖으로 나갔다.

“좋다, 이거야.”

고드윈을 시작으로 카론, 아스카가 차례로 일어나 데카드를 따라갔다.

“후우…… 그냥은 안 끝나겠네요.”

허리에는 검을 찬 벨린다가 앞으로 벌어질 광경을 상상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핫. 데카드 성격에 어쩔 수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죠.”

벨린다와 엘리스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화악 들어오는 햇빛에 눈이 부시고 곧 시야가 완전히 돌아올 때, 공터에는 데카드와 아스카가 멀찍이 떨어져 서 있었다.

보라색 머리의 아스카는 로브의 후드를 뒤집어썼다.

저 로브는 마법부에서 만든 전투용 로브로 항마력 소재를 얇게 면처럼 펴서 옷으로 만든 신기술의 종합체였다.

젠킨스의 지원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 증거다.

“저는 남의 사정까지 챙겨주는 재주는 없어요. 그러니까 위험한 마법들은 알아서 피하시길 바라요.”

데카드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마나룸을 개방했다.

렌달과 싸울 때처럼 전면 개방을 하지는 않았고 데카드의 마나룸만 열어젖혔다.

그것만으로도 주변에서 대련을 구경하던 이들은 살짝 긴장 해야 했다.

“대단한 마나의 양이군.”

“흥, 저 정도 마나룸은 아스카도 갖고 있다고.”

데카드의 개방을 보고 아스카 또한 마나룸을 개방했다.

데카드보다 조금 더 많은 양을 수용할 수 있는 마나룸이 느껴졌고 이것은 멀린 가문의 몇 안 되는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덤벼라.”

대놓고 선공을 양보하자 아스카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마법을 시전했다.

“플레임 캐논, 블로우 커터.”

“호오…… 더블 캐스팅?”

양손에 한 가지씩 마법을 시전하는 것을 본 데카드가 살짝 감탄하며 흥미롭다는 듯 아스카의 마법을 바라봤다.

[마수왕님! 그게 뭐냐?]

[…….]

레오가 옆에서 얘는 왜 이렇게 무식하냐는 투로 한 번 쳐다보았고 짹짹이가 설명을 해주었다.

[더블 캐스팅이란 한 번에 두 가지 마법을 동시에 시전하는 것을 말한다.]

[아아! 대충 이해했다!]

티이라의 개념 확인이 끝났을 때 아스카의 마법도 준비가 끝이 났다.

“맞고 죽지나 마세요!”

“그런 걸 맞고 누가 죽겠어?”

끝까지 입을 터는 데카드를 보며 입술이 파르르 떨린 아스카는 플레임 캐논과 블로우 커터를 발사했다.

투콰아아아앙-!! 휘리릭-!

거대한 대포알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사람만 한 화염구가 일초지적처럼 다가왔다.

양옆으로 다가오는 초승달 모양의 삭풍은 금방이라도 목을 벨 듯 가까워져 왔다.

보통의 마법사라면 바로 쇼크에 빠질 정도로 위험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지만 지금 아스카 앞에 있는 소환사가 누구인가.

“소환!”

데카드의 주위가 강렬한 빛무리에 휩싸이며 멀리서도 눈에 띄는 푸른 색깔의 마법진들이 형형하게 나타났다.

콰아아아아앙-!!

화염구가 목표를 정확히 강타하고 삭풍 또한 스걱 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폭발로 만들어진 흑안개가 주변을 자욱하게 감싸 데카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상태 역시 보이지 않았다.

“데, 데카드?”

설마 하는 생각과 함께 좋지 않은 상상까지 하여 당장에라도 뛰어가려던 엘리스를 벨린다가 붙잡았다.

“선배님을 믿어요.”

푸스스-

곧 흑안개가 걷히고 그 안에서 강철 외피를 두른 크롬 코모도에게 보호받고 있는 데카드가 드러났다.

그을음 없이 멀쩡한 데카드는 옆에서 혀를 날름거리는 코모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마수들이 보호해 준 건가요?”

“그렇지.”

아스카로서는 나름 공들인 공격이었는데 그것이 일체의 타격을 주지 못하자 약간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데카드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소환.”

소환과 함께 그의 명령을 받은 아쿠아 돌핀이 튀어나와서 물길을 만들었다.

물길은 도로처럼 아스카에게까지 쭉 이어져 있었고 코모도들은 곧바로 몸을 튕겨 그 물길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내 차례다.”

코모도들의 약한 기동성을 허공에 일렁이는 물길로 대체하자 코모도들은 아까의 플레임 캐논처럼 빠르게 다가갔다.

“프리지…….”

“늦어.”

마법의 위력이나 캐스팅 속도는 다 좋은데 반응 속도가 살짝 아쉽다.

아스카의 마법이 완전 발현되기 전에 코모도들은 그녀에게 달라붙어 긴 꼬리와 엄청난 근육량으로 조였다.

뼈에서 우두둑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고 고드윈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뭐가? 안마해 주는 건데.”

하루의 고된 수련으로 굳은 관절들을 풀어줬을 뿐 뼈를 부러뜨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코모도들이 사사삭거리며 물러서고 아스카는 겨우 일어나 일행이 모여있는 벤치에 겨우 앉았다.

“괴물이야…….”

그 한마디를 끝으로 아스카는 기절한 것처럼 누워버렸다.

“다음은 나야.”

고드윈이 자리를 박차고 데카드의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갔다.

데카드는 잠시 코모도들로 파헤쳐진 땅을 덮고 있었고 그가 오자 마수들을 역소환시켰다.

“너는 좀 기대가 되네.”

백염 사용자는 일생에서 보기가 흔치 않아 볼거리는 될 것이다.

“기대보다는 긴장을 하셔야 할 겁니다.”

“그럴 실력은 되고?”

[참으로 건방진 놈입니다!]

[쳇! 인간들은 너무 자기 주제를 몰라요!]

데카드는 이번에도 선공을 양보했다.

“먼저 해라.”

“그러죠.”

앞에 아스카가 어떻게 당했는지 봤기에 고드윈은 아까의 도마뱀들로 절대 막지 못할 공격을 팔에 담아냈다.

눈처럼 하얀 불꽃이 손바닥을 시작으로 팔에 휘감기며 곧 전신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그 새하얀 불꽃을 두른 고드윈의 모습은 문헌이나 전설에 나오는 성자와 같아 보였다.

“뜨겁네.”

꽤나 먼 거리임에도 화끈한 열기가 세포 단위로 전해질 만큼 뜨거운 온도였다.

“백화일권(白火一拳)”

전신에 퍼져있던 백염이 주먹에 모이고 고드윈은 그대로 스트레이트를 내질렀다.

화아아아악-!!!

눈사태가 일어난 것처럼 백염이 공터를 휩쓸며 전 방위로 데카드를 감싸 안으려 들었다.

공터의 잔디를 전부 바짝 태우고 닿지도 않는 강철 표지판을 열만으로 녹여버리는 백염의 위력에 뒷골이 오싹해졌다.

“재밌네.”

백염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는데 확실히 보통의 불에서는 느껴질 수 없는 위압감이 들었다.

그러나 딱 그 수준이었다.

이건 백염의 공격이지 고드윈 빌리의 공격이 아니다.

개인의 특성과 차별점이 들어있지 않은 공격에 맞아줄 정도로 데카드는 상냥하지 못했다.

“소환.”

일전에 나왔던 니트로 바이슨들이 여섯 마리로 나오며 데카드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바이슨들이 생성해 내는 열이 차단막을 만들어 백염이 이 원 안까지 들어오지 못했다.

바이슨들이야 불에서 태어나고 불을 먹는 마수들이기에 백염조차 살짝 뜨거운 온탕에 지나지 않았다.

고드윈도 온종일 백염을 뿜을 수는 없었고 그 기세가 약해졌을 때 빙글빙글 돌던 바이슨 중 하나가 튀어 나갔다.

두두두두두-

거친 발굽 소리가 공터를 울려대고 백염을 정면에서 뚫어내며 바이슨이 마침내 끝에 다다랐다.

무어어-!!

콰아앙-!

바이슨이 뿔을 사용해 고드윈을 아주 살짝 밀쳐내어도 달리면서 생긴 힘 때문에 그는 2M를 날아가며 철푸덕 쓰러졌다.

“기절했나?”

생각보다 바이슨의 위력이 강했던 탓인지 아니면 고드윈이 약골이라 그런지 쓰러진 고드윈은 약간의 미동만 할 뿐 별 반응이 없었다.

로브의 방어로 내상이 있지는 않겠지만, 며칠간은 쉬어야 할 거다.

아스카가 데카드의 실력과 고드윈도 별다르지 않은 결과에 혀를 내두르며 기절한 그를 업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은 누구냐?”

“접니다.”

이 정도면 의심을 접을 만도 한데 카론은 자신의 눈과 이 피부로 직접 겪어봐야만 직성이 풀렸다.

자신들을 그 저주스러운 흑마법사와의 싸움에서 지켜내고, 또 같이 싸우고 지휘할 자가 자격 미달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일 생각이었다.

아스카와 고드윈을 상대한 것을 보면 그리 만만한 자가 아니고 젠킨스가 왜 추천을 했는지도 알 것 같다.

카론은 앞선 둘의 패배로 데카드를 보는 자신의 눈이 달라진 것을 알았다.

지금 대련이라는 틀 안에서 서서 그를 바라보니 언뜻 풀어져 있고 빈틈 투성이로 보이나 뜯어보면 틈이라 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흑마법사가 자신을 고문하고 실험하면서 웬만한 두려움과 공포는 아예 느끼질 못하는 몸이 되었는데 저 사람 앞에선 지금은…….

“두렵다.”

천적을 마주한 동물처럼 몸이 굳어갔다.

카론이 데카드를 들여다볼 때 데카드도 카론을 들여다보았다.

“수라의 삶을 살아왔군.”

저런 눈빛은 일반인에게서 나올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일생을 싸우고 투쟁해 온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분노와 살심의 눈.

“가겠습니다.”

후욱-!

카론의 몸이 사라졌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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