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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80화 (80/208)

080 하찮은 복수

“그런데 왜 엘리스한테만 가면이 반응하는 걸까?”

후에 돌아온 트리스에게도 가면을 씌워봤지만 데카드 때와 같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짐작 가는 거 있어?”

“그, 글쎄요…….”

엘리스는 데카드의 시선을 피하며 가면을 만지작거렸다.

“서클의 유무가 이유일 수도 있어요.”

“그런가?”

엘리스는 서클이 없는 일반인이고 데카드와 트리스는 서클이 심장을 감고 있는 마법사다.

“아, 그리고 단검 제작자는 내일 아침 9시에 이곳, 연무장으로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만나보시면 될 것 같아요.”

“들었지, 엘리스?”

“네!”

엘리스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힘을 감당하려면 어중간한 강도로는 어림도 없다.

그녀가 단검을 고르고 맞춤 제작 주문을 넣으면 그 뒤로는 퇴마부의 팀원을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동고동락을 같이할 팀인데 얼굴 정도는 일찍 봐야겠지.’

데카드는 퇴마부에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어 팀원들이 적당한 수준만 된다면 훈련이나 그런 것은 개인에게 맡길 생각이다.

개인 지도 훈련은 각각 팀원마다의 장점이나 단점을 파악해야 하고 그를 보완할 만한 대책을 마련해 주어야 해서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팁 정도만 알려주면 되겠지.”

퇴마부에 소속된 이들은 전부 사회 어디에 내놔도 한 가닥 하는 마법사들이다.

자신이 굳이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들 제 몫을 해낼 것이다.

연무장을 벗어나기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자 곧 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립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들어가 있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에는 익숙한 얼굴도 보였다.

“날 기억하나?”

“너는…….”

데카드는 최근 기억들을 훑어보며 저 얼굴과 비슷한 것을 찾아보려 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네가 누군데?”

“사라비의 셋째 왕자, 라지오다!”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사실에 라지오는 어금니를 깨물며 뒤에 있는 인원들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전부 황토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유령처럼 소리 소문 없이 셋의 주위를 포위했다.

“미안! 벌레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편은 아니라서.”

“크흐윽! 네놈은 끝까지 날 모욕하는구나!”

로브인들의 뒤에서 거칠게 발을 구르며 분노하는 라지오에게 트리스가 감정이 전부 빠져나간 눈으로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아아, 마탑의 총장은 빠지시오. 내가 관심 있는 건 저 깃털 코트의 남자일 뿐이니.”

“그럴 수 없습니다.”

트리스는 코웃음을 치며 오히려 데카드와 스리슬쩍 더 붙었다.

“그리고 말했을 텐데요. 전의 그 문제로 왈가왈부하면 마탑은 더 이상 사라비에 마도구를 공급하지 않겠다고요.”

“그 문제 때문이 전혀 아니오.”

“그럼 무엇입니까.”

라지오는 광기 어린 눈으로 데카드를 쳐다보며 비릿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저 왕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저놈의 면상을 짓이기려고 할 뿐.”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잠깐만 트리스.”

데카드가 트리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그녀를 제지했다.

“그냥 엘리스 데리고 올라가 있어.”

“저도요?”

엘리스는 자신들을 둘러싼 이들의 기도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며 무기도 없는 이때 가면을 써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아무리 데카드가 강하다고는 하나 이들도 절대 약해 보이지 않았다.

“저라도 남을게요.”

“트리스, 네가 남으면 이건 정말 국제적 문제가 되어버려.”

사라비의 3왕자하고 마탑의 총장이 마법을 써가며 싸웠다는 것이 호텔에 있는 모두에게 알려질 것이다.

세계 각국의 인사가 모여 있는 이 호텔에서 그런 소문은 또 각지로 퍼져 나간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레 이 작은 해프닝이 세상에 큰 이슈로 떠올라 버린다.

“그리고 엘리스는 그 가면을 통제할 수 있을 때까지는 너무 많이 쓰지 않는 게 좋아.”

어떻게 알았는지 데카드가 엘리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미리 차단했다.

“아, 알겠어요. 그럼 꼭 몸조심해야 해요!”

“걱정 마라.”

트리스도 한 번 데카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더니 그것은 곧 신뢰로 바뀌어 엘리스와 함께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후후훗! 스스로 방패 막을 걷어버리다니. 멍청한 놈이군.”

“내가 지금은 평소보다 많이 약해진 상태거든?”

지금 데카드의 안에는 마수들이 없어 그들의 마나만이 사용 가능할 뿐 무기는 쓸 수 없었다.

“그러니까 힘 조절이 좀 안될 거다.”

“네놈의 뼈를 잘게 부숴 사골로 끓여주지.”

라지오는 자꾸 개소리를 내뱉는 데카드의 입을 얼른 닥치게 만들기 위해 로브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놈의 무릎을 꿇려 내 앞으로 데려와라!”

“네! 왕자님!”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로브인들에게서 마력이 흘러나오며 그들의 마나 룸이 개방되었다.

서방의 마법은 데카드가 배우고 써왔던 운용 방식과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었다.

“샌드 웨이브!”

바로 모래 속성이라는 새로운 속성의 존재였다.

열 명의 사람이 단체로 펼치는 모래의 파도는 금방이라도 데카드가 휩쓸려서 압사당할 듯 그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고작 이것에 당할 거였다면 그간 헤쳐 온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이미 골백번은 죽었다.

“소환!”

데카드의 주위로 다섯 개의 크고 작은 마법진들이 열리더니 그 속에서 웨이브 돌핀 두 마리와 오비탈 스쿼드 두 마리, 포이즌 젤리피쉬가 나왔다.

끼기기긱-!!

부부부붕-

포이즌 젤리피쉬는 해파리를 닮은 마수로 닿게 된다면 강력한 피부 독을 일으키는 무서운 마수다.

이 마수들의 공통점은 전부 물 속성이라는 것.

연무장을 가득 채우는 모래 파도를 잠재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수들이 허공을 바다처럼 헤엄치며 마력을 뿜어낼 때마다 뽕글뽕글거리는 물방울을 시작으로 와류를 뿜어냈다.

데카드를 태풍의 눈처럼 중심으로 두고 그 일대를 와류가 회전하며 모래들을 쓸어버렸다.

물과 만나 눅진해진 모래는 늘어난 무게 때문에 빠른 행동이 불가능했다.

“이, 이런!”

로브인들은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처음 본 모래 속성의 약점을 대번에 파악한 적의 통찰력은 놀라웠다.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것은 혼자서 이 정도의 물을 만들어내고 또 자신의 몸처럼 여유롭게 다룬다는 점이었다.

세부적인 조종은 마수들이 하고 커다란 명령 체계만을 데카드가 조종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런 기예가 가능했다.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이 정도로 놀라면 곤란하다고!”

데카드는 물의 양을 훨씬 늘려 이제는 모래보다 물이 더 많도록 마수들을 컨트롤했다.

모래가 물을 쓸어버리는 게 아닌 이제는 물이 모래를 쓸어버리는 판국에 열 명의 로브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로브 때문에 재밌는 표정을 하고 있을 얼굴이 안 보이는 게 한이었다.

하지만 로브인들도 잔뼈가 굵은 마법사였다.

그들은 금방 멘탈을 회복하고 물속에 아직 남아있는 자신들의 모래를 모으고 모아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뭉치는 데에도 마나가 들겠지만 데카드의 물 덕분에 모래는 찰흙처럼 잘 합쳐졌다.

사람만 한 크기의 샌드 골렘들이 물을 헤치고 만들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중간에 코어는 없다고 하나 일일이 로브인들이 조종하며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고작 모래 뭉쳐놓은 걸로 나를 상대하긴 한참 멀었지.”

데카드는 기존에 소환해 놨던 마수들을 돌려보내고 전황을 바꿀 마수들을 불러냈다.

“소환!”

그들이 소환되자마자 바닥을 찰박찰박 적시던 물에 살얼음이 끼기 시작하며 온도가 훅훅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프리즈 씨 엘리펀트 세 마리, 블루 씰 두 마리가 통통한 배를 두드리며 전장에 나타났다.

씨 엘리펀트의 얼음 엄니는 보기만 해도 베일 듯 날카로웠고 하얀 몸집의 씰은 피부 주위에 성에가 껴 있었다.

“얼려버려.”

껑껑껑-

얼음 속성의 마수들은 입을 벌리고 바닥에 깔린 물을 향해 거센 입김을 불었다.

쩌저저저적-

그와 동시에 물들이 쩌저적 얼어붙기 시작하며 데카드 앞에 있는 물로 뭉쳐진 샌드 골렘들도 동상이 되어버렸다.

완전히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게 된 샌드 골렘들은 다시 모래로 쓰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이제 놀아주는 건 끝났다. 내가 너희 같은 잔챙이들 말고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또 이상하게 오래 걸리면 그 둘이 걱정할 게 뻔하니 슬슬 끝내야 했다.

“끝내자.”

낑낑-! 껑껑껑-!

씨 엘리펀트와 씰들은 이 앞에 깔린 빙판에 배를 쓸며 빠르게 로브인들을 향해 이동했다.

피슈우웅-!

중간에 어떤 방해 마법도 쓰지 못하게 데카드는 고드름을 계속 쏘아 마나 운용을 방해했다.

“이, 이런 악랄한 놈!”

“비겁하다!”

“에초에 열 명으로 한 명 조지러 온 놈들이 뭔 비겁이야.”

코앞까지 도달한 마수들이 꼬리와 지느러미를 한 번 스윽 스칠 때마다 로브인들이 안에 들어있는 냉장고가 완성되었다.

“다, 다가오지 마라!!”

“에휴…….”

이제 라지오만 남자 데카드는 한숨을 쉬며 마수들에게 손을 휙휙 저었다.

그러자 씨 엘리펀트와 씰들이 얼음 동상들을 치우며 데카드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할까?”

“나, 나를 건드는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대사 저번에도 치지 않았냐?”

데카드는 뒷머리를 긁으며 손바닥을 폈다.

“소환.”

마법진에서 데카드의 손바닥에 반 정도 되는 크기의 지네가 나왔다.

겉보기에는 굉장히 징그럽지만, 이것이 하는 일은 훨씬 더 징그럽다.

지네는 데카드의 손바닥에서 내려와 라지오에게 기어갔다.

“이, 이게 뭐냐!”

라지오는 놀라서 뒤로 넘어져도 도망치려는 듯 계속 발을 헛디뎠다.

쩌적-

그 부질없는 도망조차 씨 엘리펀트가 손발을 그대로 얼려서 땅에 부착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속박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라지오에게 다가간 지네, 페러사이트 세네피는 그의 드러난 맨살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끄아아아악!!”

커다란 연무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이 한차례 흘러나오고 세네피는 다시 데카드의 손 위로 올라가 애교를 부렸다.

“나,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생각보다 금방 가신 고통에 라지오는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세네피는 방금 너한테 알 수십만 개를 넣어놨어.”

“알……이라고?”

“그 알들은 너의 혈관을 돌 거고 알이 깨지면 방금 네가 봤던 세네피의 새끼가 나오게 될 거야.”

점점 더 공포스러워지는 이야기에 라지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새끼들은 너의 피를 빨아먹으며 자랄 거고 너무 커져서 심장의 혈관을 통과하지 못하는 크기가 되면 그대로 너의 심장을 갉아먹을 거야.”

라지오의 이마에서는 이미 식은땀이 폭포처럼 떨어지고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심장이 전부 없어질 때까지 너는 죽지 못할 거야. 그러다가 너의 의식이 흐려질 때쯤 너의 안에 있던 수십 마리의 지네가 피부를 뚫고 밖으로 기어나가겠지.”

“제, 제발! 살려줘!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

“뭐든지?”

“그, 그래! 뭐든지 할 테니까! 알들을 없애 줘!!”

라지오는 엉엉 울고 바지까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좋아.”

데카드는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종이와 펜을 꺼냈다.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

집행관 때부터 종이와 펜은 그냥 들고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던지라 그냥 들고 다녔는데 유비무환이란 말이 옳았다.

데카드는 선 채로 종이에 뭐라 쓰더니 라지오에게 내밀었다.

“서명해라.”

“아, 알겠어.”

라지오의 한쪽 손을 씨 엘리펀트가 해동시켜 주자 그는 한 손으로 엉거주춤 펜을 잡고 종이에 적힌 내용을 읽어보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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