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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79화 (79/208)

079 가면의 힘

상자가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활짝 뚜껑이 열렸다.

“……가면?”

꽤 커다란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자칫 잘못 보면 그냥 지나칠 뻔한 손바닥 크기의 가면이었다.

엘리스가 상자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 가면을 꺼내 보았다.

“뭔가 생긴 게 범상치 않네요.”

흑색의 무면(無面)탈 모양을 한 가면은 햇빛에 반사되지 않는 무광이었고 몇 번 손가락으로 두드려보니 평범한 나무 같지는 않았다.

“제가 항의라도 하고 올까요?”

트리스는 당장에라도 이런 저급한 상술로 660골드를 받아 처먹은 경매장 관리인들에게 따지러 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마 트리스가 관리인들에게 간다면 원금을 가져오는 건 쉬운 일일 것이다.

“아니야. 굳이 안 그래도 돼.”

그러나 데카드는 트리스를 말렸다.

왜냐하면 그의 직감이 이건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계속 신호를 보내왔기 때문이다.

[주인님. 가면에서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마수들도 뭔가 반응이 왔는지 가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짹짹이의 말이 맞아요! 뭔가 흑마법사들처럼 더러운 건 아닌데…… 오묘하네요.]

데카드의 마나처럼 순수한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흑마법사들처럼 타락한 마나는 아니었다.

그 애매한 경계선에 있는 혼탁한 느낌의 가면은 엘리스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건 잠깐 엘리스가 가지고 있어.”

“넵.”

셋은 경매장을 빠져나와 이제 호텔로 돌아가고 있었다.

원래도 트리스의 외모 때문에 사람들의 눈이 이쪽으로 쏠렸었다.

거기에 후드를 벗은 엘리스까지 합류하자 사람들의 시선이이 몇 배로 늘어났다.

가는 길마다 거리의 사람들 중 절반이 이쪽을 쳐다봤고 엘리스는 그것이 부끄러운지 아까부터 땅바닥만 바라보았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으로 도착한 데카드는 마수들을 자신의 방으로 들여보냈다.

[마수왕님! 빨리 오셔야 해요!]

[고기 꺼내 먹는다!]

[…….]

[이 고오른도 이제 배달을 시킬 줄 아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한층 염려가 깊어지는 고오른의 한마디를 뒤로하고 데카드는 가면을 확인하기 위해 엘리스와 트리스의 방으로 왔다.

“흐음…….”

“어디 문헌에서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잠깐 탄산음료 가져올게요.”

가면을 책상 중간에 올려두고 트리스와 데카드는 깊이 있게 이것을 관찰했고 엘리스는 커다란 잔에 얼음을 붓고 사이다를 따라왔다.

“땡큐.”

마침 목이 마르던 데카드는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다.

“가면이니까 그냥 써보면 알겠지.”

트리스도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써보는 것뿐이었다.

“뭔가 있는 건 확실한데…….”

마법이 걸린 가면이라는 것은 마수들과 자신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마법이 저주일 가능성도 존재는 했기에 데카드는 섣불리 써보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에이 몰라.”

그동안 다져진 강철의 정신력을 믿으며 데카드는 가면을 확 집어 들어 얼굴에 써보았다.

“뭐가 달라진 느낌이 오나요?”

“괜찮아요, 데카드?”

데카드가 가면을 쓰고 아무 말이 없자 트리스가 손에 마법을 두르고 가면을 떼어내기 위해 다가왔다.

“가면을 떼어낼게요.”

항상 멈추지 않던 데카드의 입이 가면을 쓰자마자 다물어져 트리스는 뭔가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데, 데카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놀란 엘리스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같이 데카드에게로 다가왔다.

“가만히 계십쇼.”

트리스가 가면에 손을 갖다 댄 순간.

“와아아아악!”

“꺄아아!”

“…….”

데카드가 과장되게 두 팔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엘리스는 역시 반응 좋게 뒤로 넘어졌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트리스는 싸악 얼어붙은 표정으로 데카드를 노려만 볼 뿐 다른 반응이 없었다.

“안 놀랐어?”

장난 좀 쳤는데 둘의 반응이 너무 달라 데카드는 가면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엘리스는 풀린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어 다시 의자에 앉았고 트리스도 다시 착석하며 말했다.

“앞으로는 그런 장난치지 마세요. 저는 선배가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정말 미쳐버리니까.”

이미 세간에서는 마탑의 총장이 광인에 가깝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이보다 더 미칠 수 있다고 트리스는 공언했다.

“미, 미안.”

“후우…… 어쨌든 가면을 썼을 때에 느낌은 어땠어요?”

“아무 느낌 안 들었어.”

그냥 보통의 가면을 쓴 것처럼 뭔가 마법적인 일이 발현되지않는 평범한 가면이었다.

“꽝인가?”

아직 자신의 직감은 이것에 무언가 더 있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 특별한 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제가 한 번 써 봐도 될까요?”

가만히 가면을 바라보던 엘리스가 말했다.

“그래.”

어차피 평범한 가면일 가능성이 컸고 저주에 걸려있을 위험도 없어졌으니 엘리스가 써 봐도 괜찮다.

가면을 턱하고 한 손으로 집어 엘리스가 주먹만 한 얼굴로 가면을 뒤집어 써보았다.

고오오오오-

“뭐, 뭐지?”

갑자기 엘리스의 주위로 흑무(黑霧)가 끼기 시작하더니 파지직거리며 전류가 튀었다.

데카드가 썼을 때는 아무런 반응이 없던 가면이 엘리스한테는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가면을 부술게요.”

트리스는 바로 고온의 불을 한 점에 집중 시켜 가면을 부술 생각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자, 잠깐만요!”

가면을 쓰고 있는 엘리스가 다급하게 말해왔다.

“뭔가 저를 해치려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조금만 더 지켜봐 주세요.”

“정말 괜찮아?”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그 자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들어갔다.

흑무는 점점 더 반경을 넓혀 거실의 바닥을 가득 메꾸었고 엘리스의 몸에서 스멀스멀 흑색의 기운이 떠올랐다.

“흑마법은 아닌데…….”

흑마법에 뿌리를 둔 느낌은 맞는 것 같았으나 절대 흑마법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쓰는 동시에 사용자의 몸을 파괴하고 온갖 해괴한 저주가 정신을 헤집어 놓았을 게 뻔했다.

하지만 이 가면은 착용자를 도와주는 물건에 가까워 보였다.

전투력 증강을 위한 마도구라고 정의하는 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리라.

곧 흑무가 다시 엘리스에게로 빨려 들어가고 흑색 기운 또한 다시 잠잠해졌다.

엘리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하아…… 하아…….”

그럴 때마다 주먹에서는 우드득우드득하며 괴력의 사내가 힘을 주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몸이 달라진 것 같아?”

엘리스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주 많이요.”

* * *

“크흠…… 그럼 일단 파워 테스트를 해볼까?”

갑작스럽게 펼쳐진, 가면을 착용한 엘리스의 파워 테스트는 호텔 지하에 마련된 연무장에서 진행됐다.

트리스가 말하길 이곳은 항마력 소재가 기본으로 깔려있고 내진 설계에 헬 파이어가 날아와도 버틸 수 있는 곳이라 했으니 안전하다.

“그럼 제가 방어막을 켤 테니 공격해 보세요.”

트리스가 하이 프로텍터와 다른 방어 마법으로 이중 삼중으로 결계를 쳤다.

엘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매일 사용하고 한 몸처럼 다뤄왔던 단검을 손에서 빙글거리며 회전시켰다.

엘리스의 첫 공격은 간단한 단검 투척술.

단검 한 개를 손에 쥐고 그대로 트리스를 향해 날렸다.

엘리스의 투척술답게 궤도나 낙차 계산이 정확했으나 데카드가 놀란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콰아앙-!!

거대한 대물 마력 저격총의 탄알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날아간 단검은 튕겨져 바닥에 절반 정도 박혀 들어갔다.

“미친 거 아니야?”

“……완력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해졌군요.”

트리스는 감상 평을 말하며 아주 살짝 금이 간 방어막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단검을 총알처럼 쏘아낼 속도를 만들어내려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할지 감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심지어 방금 전의 공격은 기본 중의 기본인 단검 하나로 하는 투척술이었다.

아직 엘리스의 장기는 나오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한 손에 다섯 개씩, 총 열 개의 단검이 엘리스의 손에 들렸다.

엘리스는 갑자기 늘어난 자신의 힘을 머릿속에 넣으며 시뮬레이션을 여러 번 돌렸다.

파아아앙-!

엘리스의 손이 순간 여러 개의 잔상으로 보일 정도로 늘어나더니 열 개의 단검이 트리스를 향해 파공음을 내며 날아갔다.

단검에 담긴 힘으로 바람을 무시해가며 날아간 단검들은 이제 서로에게 부딪쳐 경로를 바꾸려 했다.

와장창창-!!

하지만 단검들이 맞부딪쳐진 순간 그것들은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힘을 버티지 못하네.”

단검들이 부딪쳤을 때에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부서지고 만 것이다.

단검들은 루비아 최고 무기 상점에서 산 것으로 상등급의 품질을 자랑하는데 저리 쉽게 수수깡처럼 부러져버렸다.

“흐흑…… 흑…….”

잠시 엘리스의 늘어난 완력과 가면의 힘에 대해 감탄해하고 있을 때 엘리스에게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왜 울어? 어디 아파?”

데카드가 다가와서 어디 단검이 날아가면서 베인 곳은 없는지 살펴보았다.

“그, 그게 흑흑! 아니라…… 데카드 사준 흐흐흑…… 단검들이 부서졌어요……. 흑흐흑! 죄송해요! 흐아아앙……!”

“아, 아니 그거 가지고 울 필요는 없는데.”

엘리스는 가면을 벗고 겉옷으로 남은 눈물을 닦아내더니 조금씩 그쳐갔다.

“저것보다 더 좋은 단검을 사줄 테니까 너무 울지 마.”

“제, 제가 살게요…… 또 데카드에게 빚을 질 수는 없어요…….”

“뭔 빚이야. 친구끼리의 선물이지.”

“친구……요?”

“그래. 친구.”

데카드는 그 말을 끝으로 부서진 단검들을 보며 신기해했다.

“그냥 다시 쓰지도 못하게 박살이 났네.”

트리스는 저 단검들이 자신의 방어막에 전부 박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한 개 정도는 뚫었을지도.”

트리스는 인정하기 싫은 엘리스의 힘을 애써 받아들이며 그녀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트리스, 여기 주변에서 좋은 단검 살 수 있는 데 없어?”

“당연히 있죠. 맡겨주세요.”

잠시 트리스가 단검 주문을 위해 연무장 바깥으로 나가고 울음을 다 그친 엘리스는 자신의 손에 들린 가면을 바라보았다.

가면을 썼을 때에 느껴지는 충족감과 뼛속 깊이 느껴지는 만족감은 마약이라 할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힘도 조절할 수가 없었고 아직까지는 가면의 힘을 전부 제어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잠깐만 실례할게.”

데카드는 엘리스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마나로 엘리스의 몸 안을 구석구석 훑어나갔다.

“아읏…… 간지러워요.”

“조금만 참아.”

어디 내장 기관에 저주가 걸렸으면 아주 골치 아파진다.

이렇게 정밀하게 검진을 해줘야 데카드가 안심할 수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나가 돌았는데도 엘리스의 몸은 이상한 점 없이 건강하기만 했다.

“저주는 없네.”

“그런 것 같아요.”

“가면은 너한테만 반응하는 것 같으니까 엘리스 네가 가져.”

“그, 그래도 될까요?”

가면은 데카드가 660골드나 주고 산 엄연히 그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방금 엘리스가 입증했듯이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강한 힘을 가면에게서 얻을 수 있는 귀한 보물이었다.

그런 것을 자신에게 선뜻 주겠다고 하자 엘리스는 방금 그쳤던 눈물이 또 차오르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받기만 하면…….”

자신은 그에게 이미 목숨을 구원받았고 자신이 그것을 갚아나가야 하는데 터무니없이 계속 받기만 하고 있다.

“이걸로 날 지켜주면 되지. 내가 죽지 않도록 엘리스가 지켜주는 거야.”

곧 있을 수도 있는 흑마법사와의 싸움에서 마법을 쓰지 못하는 엘리스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 가면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이걸로 엘리스도 퇴마부에서 겉돌지 않고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것이다.

‘제 목숨을 다 바쳐서 지켜 드릴게요.’

엘리스는 이 한마디를 심장에 새기며 가면을 꽈악 붙잡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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