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77화 (77/208)

077 퇴마부장

짧게 살펴본 책의 내용은 이러했다.

태초에 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떨어져 나간 힘의 파편들이 모여서 유물을 만들었다.

그것들은 자연의 생태계를 바꾸고 대륙의 제패를 논할 힘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다섯 개의 유물이 모두 모이는 순간…….

“뭐야, 여긴 왜 찢어져 있어?”

제일 중요한 파트 같은데 이 부분이 누가 손으로 찢은 것처럼 잘려나가 있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데카드는 책을 턱 하고 덮으며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어쨌든 신화가 적혀있는 책의 말대로라면 유물은 총 다섯 개라는 거네.”

하나는 슬레이 썩은 쥐의 보스가.

또 다른 하나는 데카드가 찾아내 마법부로 이송했다.

다른 유물의 위치는 데카드가 바이퍼의 보스 금고 안에서 찾아낸 정보에 있다.

어디 대륙 정도에 있다는 약한 정보였지만 남들보다 정보의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일단 모으고 봐야겠네.”

흑마법사들은 유물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찾는 속도 또한 절대 마법부에 비해 뒤처지지 않았다.

가만히 두다간 흑마법사가 나머지 유물을 모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맙다, 짹짹아.”

“별말씀을.”

짹짹이는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독서 모드에 들어갔다.

* * *

호텔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디저트까지 즐기고 나자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선배. 이제 마법부로 갈 시간이에요.”

“오케이.”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데카드.”

엘리스는 아사이드로 오는 건 상관이 없었지만 마법부 안으로 들어가는 건 다른 문제이기에 호텔에 남아야 했다.

“심심하지 않겠어?”

짹짹이를 걸치고 신발을 신으며 엘리스에게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아니면 경매장이나 그런 데 놀러 갔다 올래?”

“그, 그럴까요?”

“그래! 가서 놀다 와. 우리는 살짝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집에 아이를 오랫동안 둬야 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데카드는 엘리스가 심심하지 않게 경매장을 추천해 주었다.

그렇게 엘리스는 경매장 쪽으로, 데카드와 트리스는 마법부 쪽으로 몸을 틀었다.

“나중에 봐요!”

“그래!”

손까지 파닥파닥 흔들어주자 그녀는 후드를 쓰고 경매장으로 출발했다.

“……엘리스랑 많이 친하신가 봐요.”

“그럼!”

보면 볼수록 귀여운 면이 있는 게 아마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암살자일 것이다.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

트리스는 잠시 혼자만의 파이팅을 한 후 마차도(馬車道)를 향해 손을 들었다.

그러자 사람이 타도록 만든 마차를 끄는 마부가 일행의 앞에 멈춰 섰다.

“타십쇼.”

“마법부까지는 머니까 이걸 타고 갈 거예요.”

“좋네.”

루비아에서 시행하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법에 걸려 결국 통과되지 못한 마차 이동 시스템은 이런 게 참 편리했다.

아무 때나 보이는 빈 마차라면 이렇게 타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는 점.

“마법부로 가주십쇼.”

“아, 알겠습니다.”

마법부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마부가 긴장된 손짓으로 박차를 가했다.

“이랴.”

히이이잉-

말 두 마리가 콧김을 내뿜으며 출발했고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이 서서히 달라져 갔다.

“마법부에 도착하면 아마 마법부 장관을 만날 것 같아요.”

“……진짜?”

“네.”

마법부 장관은 마법부를 통솔하고 그 밑에 있는 여러 가지 조직들을 총 지휘하는 자로서 하늘의 선택을 받아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세상의 마법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권력이 있고 개인으로도 뛰어난 마법사다.

“나는 초면……은 아닌가?”

데카드가 집행관에 합격했을 때 집행관 뱃지를 마법부 장관이 달아주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그분은 은퇴하셨고 지금은 더 젊은 분이 부임하셨어요.”

“하긴, 그렇겠다.”

데카드가 기억하는 마법부 장관은 하얀 수염을 배까지 기른 산신령의 스타일이었다.

처음에는 보고 웃음이 터질 뻔한 걸 겨우 참았었다.

“다 왔습니다! 손님!”

트리스가 마부에게 값을 지불하고 둘은 마차에서 내렸다.

“오랜만이네, 마법부는.”

“딱히 달라진 건 없어요.”

“그럼 다행이고.”

지금은 트리스가 자신보다 훨씬 높은 상급자니 그녀가 앞에 서고 데카드는 살짝 촌놈처럼 연기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그가 심심한 게 이유였다.

주변도 막 두리번거리고 ‘와! 이건 뭡니까?’ 하는 대사도 가끔 날려주었다.

그 모습을 본 몇몇 마법부의 직원들은 낄낄거리며 그를 한 번 보고 지나쳤다.

트리스는 철혈이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표정과 눈빛으로 데카드를 비웃고 가는 직원들을 노려보았다.

“허헙…….”

“죄, 죄송합니다…….”

직원들은 바로 꼬리를 말고 깨갱 하며 어딘가 급히 일이 있는 사람처럼 뛰어갔다.

‘감히 누구를 비웃는 거야.’

트리스가 잠시 뒤를 돌아보자 심하게 고개를 돌리며 이것저것 눈에 담으려 하는 데카드가 보였다.

‘연기…… 맞으시겠지?’

아는 사람이 봐도 살짝 의심하게 할 만큼 데카드의 연기는 뛰어났다.

아마 마법사가 되지 않았다면 사기꾼이 됐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을 것이다.

“신분증 좀 보여주십쇼.”

데카드의 연기가 어찌 됐든 일단 트리스는 자신의 신분으로 절차를 모두 착착 실행해나갔다.

마탑 총장이라는 신분도 굉장히 높아 마법부 장관과의 만남도 어렵지 않게 이뤄질 수 있었다.

애초에 거기서 부른 탓에 여기까지 온 것이니 당연한 일이리라.

똑똑똑-

“장관님. 트리스입니다.”

“어어. 들어오시게.”

트리스가 문을 열고 그 뒤를 데카드가 따라 들어갔다.

방 안에는 회색빛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넘기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은 중년인이 있었다.

이렇게 늙은 모습에서도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젊었을 때는 이름난 미남이었을 것 같았다.

“자네가 그 유명한 용병 크큭……이로군. 내 이름은 젠킨스라고 하네.”

젠킨스는 용병이라는 대목에서 살짝 웃은 다음 다시 표정을 고치며 자기소개를 했다.

[왜 웃나? 이 할아버지.]

‘나도 몰라.’

원래 마법사들이 한 가지씩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성향이나 또라이 기질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여기 앉으시게. 트리스, 데카드.”

젠킨스가 권유한 자리에 앉자 푹신한 가죽의 질감이 엉덩이부터 시작해 등까지 잘 느껴졌다.

“트리스는 자네를 데려오라는 이유로 불렀고, 데카드 자네를 부른 이유가 궁금할 거야. 아니면 트리스가 말을 해주던가?”

“그렇습니다.”

“이상하군…… 트리스가 다른 건 다 좋아도 말주변이 있는 성격은 아닌데.”

트리스는 여전히 무표정으로 책상 위에 놓인 차를 끓여 데카드에게 한 잔을 먼저 따라주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젠킨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둘과 가까운 의자로 옮겨 앉았다.

“그럼 이야기가 편해지겠어. 그렇지만 자네에게 줄 상은 얘기하기 전에 먼저 확실히 해야 할 게 있어. 자네…….”

젠킨스가 살짝 뜸을 들이자 트리스가 타준 차를 홀짝 마시던 데카드의 눈이 그와 마주쳤다.

“옛날 처형인이라 불리던 그 집행관이지?”

“……어떻게 아셨어요?”

“이렇게 화려한 전적을 쌓은 용병인데 그 과거가 너무 궁금해서 살짝 캐보았네.”

“그렇군요.”

마법부의 정보라면 데카드의 행적이 비정상적이란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10년 동안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실종되었고, 실종자와 똑같은 이름에다 소환사라는 직업도 같았다.

“일단 난 자네의 팬이네. 흑마법사를 자비 없이 때려 부수던 모습은 그때도 참 인상적이었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상을 주기 전에 내가 자네의 정체를 밝힌 이유는 상과 자네의 정체가 관련이 있기 때문이네.”

젠킨스는 책상에 올려져 있는 파일을 가져와 내밀었다.

“새로운 비밀 부서를 만들려고 하네.”

[퇴마부]

“자네가 이곳 부장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

“……이게 상입니까?”

만약 이것이 상이라면 데카드는 당장에라도 상을 엎을 준비가 돼 있었다.

“이 자리를 받아들임으로써 나오는 모든 이익이 자네의 상이자 우리가 부탁할 일이지.”

“말은 잘하시네요.”

순간 이득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젠킨스의 화법은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이 퇴마부가 뭐 하는 곳입니까?”

제일 중요한 질문을 트리스가 해주었다.

“퇴마부는 말 그대로 흑마법사와 관련된 모든 것을 섬멸하는 것이네.”

“흑마법사 퇴치는 집행부의 일 아닙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이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네. 나는 오직 흑마법사를 잡기 위한 부서를 만들고 싶어.”

데카드는 한숨을 푹 쉬며 다시 한 번 젠킨스의 말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저에게 흑마법사 퇴치 부서의 부장을 맡아라. 이 말씀이시네요?”

“정답이네.”

“하아…….”

“자네가 이 부서 최적의 인물이야.”

데카드는 집행관 때 수많은 흑마법사들을 흙으로 돌려보내고 그들의 공포로 등극했다.

그가 잡지 못하는 흑마법사는 없었으며 그를 죽이기 위해 흑마법사가 꾸린 암살대도 모두 사이좋게 저승으로 보내주었다.

어떤 저주도 데카드는 버텨냈으며 그 대응법과 치료법을 전부 익힌, 흑마법사 최대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남자였다.

젠킨스가 생각하기에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런 인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자네가 꼭 맡아주었으면 하네.”

“이득.”

“응?”

“제가 얻는 이득이 뭡니까.”

오직 이득 하나로 움직이는 데카드는 딱 말만 들어보면 손해만 왕창 볼 것 같은 퇴마부장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마음을 움직일 만한 대답이 젠킨스에게서 나오지 않는다면 데카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법부를 나갈 것이다.

“먼저 돈이네. 부장들 중 가장 높은 월급은 물론이고 혜택도 최고 수준으로 챙겨주지. 자가용 집과 마차 하인, 시녀 등등등. 부장의 혜택은 차고 넘친다네.”

“저에게 물질적인 것은 딱히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중에 있는 돈 자체가 너무 많아서 돈으로는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그럼 이것은 어떤가. 만약 자네가 퇴마부장 자리를 수락한다면 앞서 말했던 혜택은 물론, 원하는 대로 업무를 짜게 해주겠네.”

“원하는 대로요……?

“그렇네! 원하는 대로! 쉬고 싶으면 쉬게! 전혀 신경 쓰지 않겠네. 보고서나 그런 거 올릴 필요도 없어! 그냥 자네 마음대로 하게! 대신! 흑마법사만 잡아주면 된다네.”거의 프리랜서나 다름이 없어진 퇴마부장의 자리는 이렇게 보니 나름 매력적이었다.

기껏 산 집이 별장이 되어버리는 건 좀 슬펐지만, 필립의 집을 떠올리니 그런 생각도 사라졌다.

데카드가 살짝 고민하는 티를 내자 젠킨스는 여기서 화룡점정을 보여주었다.

“저기 햇볕 좋고 날씨 좋은 바다에 섬이 하나 있거든? 그곳에 저택을 하나 지을 생각인데 원하면 그 섬까지 주겠네.”

“바로 계약하시죠.”

데카드가 손을 내밀고 그 손을 반갑게 마주 잡은 젠킨스는 당장 서랍으로 달려가 계약 문서를 꺼내왔다.

그리고 자신이 말한 혜택들을 모두 적어내자 종이의 한 면이 꽉꽉 차 있었다.

데카드의 사인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젠킨스도 도장을 찍으면서 계약은 완료되었다.

“자네는 이제 정식으로 퇴마부장이 되었네.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해 주게. 트리스도 마찬가지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건 퇴마부의 팀원에 대해서 말인데.”

앞으로 흑마법사를 같이 잡으러 다녀야 하는데 어중이떠중이로는 어렵다.

팀 안에서 서로 손발이 맞아야 하는데 그런 당연한 것도 못하는 이가 팀원이라면 혼자 싸우는 것만 못하게 된다.

“내가 몇몇 뽑아둔 사람이 있는데 한번 보게나.”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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