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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75화 (75/208)

075 아사이드

“……그래서 엘리스가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저는 데카드를 지켜야 해요.”

트리스와 데카드가 마법부로 떠나기 위해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엘리스도 와 있는 것을 보고는 트리스가 말했다.

“선배를 지키는 거라면 제가 더 잘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마탑의 총장이니까요.”

“암살자의 맹약은 깰 수 없어요. 데카드의 아공간 주머니 안에라도 들어가겠어요.”

“암살자의 맹약……?”

트리스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사실 내가 엘리스가 죽을 뻔한 걸 구해 준 적이 있거든. 엘리스는 갈까마귀 암살단으로서 맹약을 지키기 위해 날 따라다니는 거야.”

“정말 그것뿐인 게 맞습니까?”

트리스는 그것뿐이 절대 아니라는 것에 자신의 손목을 걸 만큼 자신 있었다.

엘리스가 데카드를 따라다니는 이유에는 맹약 말고 무언가가 더 있었다.

설령 전에는 없었다고 하더라도 생겨버린 게 틀림없다.

“마, 맞아요.”

트리스의 추궁에 엘리스는 눈빛을 피하며 긍정했다.

“흐음…… 갈까마귀 암살단이라는 건 놀랍네요.”

“그것도 조장급 위치에 있던 암살자야.”

트리스의 눈이 커지며 엘리스의 대한 평가를 다시 내리는 듯 그녀를 보는 눈을 달리했다.

“그렇다면 짐은 안 되겠네요.”

“그건 걱정 마세요.”

다시 엘리스와 트리스 간의 불꽃이 몇 번 튀기더니 둘은 서로 노려보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제 가시죠. 마법부는 기다리는 것을 엄청 싫어해서요.”

마법부의 성격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트리스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텔레포트 기계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어, 엇! 총장님!”

기계 담당 마법사는 트리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풀렸던 동공과 어깨, 허리가 부서질 정도로 힘이 잔뜩 들어가며 칼 각을 취했다.

“편히 쉬세요.”

“어디로 가십니까!”

군기가 바짝 든 이 모습에서 굳이 트리스가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음에도 오직 분위기만으로 마법사를 움츠리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사이드로 갑니다.”

“뒤에 분들은 일행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세 분 모두 위로 올라가 주십쇼!”

마법사는 누가 섬을 빠져나가고 어디로 가는지 적기 위해 몇 번 펜을 움직인 후 레버를 당겼다.

‘아사이드로 가는 기계 신호는 뭘까나.’

데카드는 기계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갈 때마다 자신이 기계를 조종할 날을 대비하기 위해 신호를 전부 외워두고 있었다.

곧 보게 될 아사이드로 갈 수 있게 해주는 이 신호는 가장 쓸모가 있으리라.

“출발합니다!”

마법사가 신호를 정확한 타이밍에 불어 넣음과 동시에 시야가 환해지면서 세 명이 아사이드로 텔레포트 됐다.

“오랜만이네.”

아사이드는 이제 막 낮이 되기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직업 비율을 자랑하는 상인들이 바쁘게 물건을 진열하고 있었다.

[엄청 시끌시끌합니다!]

[맛있는 냄새!]

[마수왕님 좀 그만 쳐다 봐! 암컷들아!]

[…….]

[주인님이 얘기하셨던 모습과는 살짝 다르군요.]

트렌드에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인 만큼 언젠가 데카드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래도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

이곳이 어떤 곳인지만 알면 뒤바뀐 외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약해 둔 숙소로 가시죠.”

트리스를 따라 번잡한 상가를 통과한 일행은 향기로운 냄새와 신기한 볼거리를 뒤로 한 채 아사이드의 도심지로 나왔다.

“저곳입니다.”

“와아…… 엄청 크다.”

그란시아 호텔.

크라켄보다 더 커 보이는 높이와 넓이의 호텔은 어디 나라의 왕은 되어야 올 수 있을 곳 같았다.

실제로 그 정도의 위치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하루 숙박비를 받는 곳이다.

하지만 그만큼 최상의 서비스와 방을 자랑한다.

“너무 비싼 데 예약한 거 아니야?”

“마법부에서 지원해 주는 돈이기에 상관없습니다.”

안 그래도 바쁜 마탑의 총장을 오라 가라 그러는 마법부의 작은 사과다.

“그런데…… 제가 방을 두 개만 예약했습니다.”

엘리스가 올 줄 모르고 데카드의 것과 자신의 것만 예약한 트리스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방을 한 개 더 사면 안 돼?”

“두 개도 겨우 예약한 거여서 방이 없을 거예요.”

이 비싼 방을 누가 사나 할 수 있지만 의외로 그란시아 호텔에 방은 비어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방 두 개도 트리스가 총장이라는 직함으로 밀어붙여 얻어낸 것이었다.

“엘리스가 내 방에서 잘 수는 없으니까, 트리스의 방에서 둘이 같이 자면 되겠네.”

“안 돼요!”

“그건 싫어요!”

둘이 만난 처음으로 의견이 겹치는 순간이었다.

트리스와 엘리스도 그걸 의식하고 고개를 돌려 서로를 마주 본 후에 다시 홱 하고 틀었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해주면 안 돼?”

“으으…… 그렇게 바라보면 다 해주고 싶잖아요.”

쓸데없이 똘망똘망한 데카드의 눈을 바라보자 트리스는 무장 해제당하며 어쩔 수 없이 수락했다.

“……그럼 엘리스가 제 방에서 자도록 하세요.”

데카드의 반응을 보아하니 절대 엘리스를 다른 여관에 재울 생각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계속 거부하다간 자신의 방에 들어올 거라고 할 것 같아 트리스는 최악보단 차악을 택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장님. 저희 호텔에서 좋은 밤 보내시길 바랍니다.”

로비에서 키 카드를 받고 엘리베이터로 방이 있는 층까지 올라가면서 트리스가 이것저것 설명을 했다.

“밥은 수정구로 주문하면 올려다 줄 거예요. 여기 호텔에서 하는 모든 서비스가 저희에게 무료니까 마음껏 즐기세요.”

“그렇군.”

최상층에 도착하고 트리스가 마지막으로 주의할 점에 대해 말했다.

“이곳은 그란시아 호텔에 최상층이에요. 여기 이 층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저만큼의 지위를 갖고 있거나 어쩌면 더 이상이죠.”

“그러니까 괜히 눈에 띄는 짓 하거나 싸우지 말라는 거지?”

“맞아요.”

이 호텔에서 왕족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돈 많은 대상인이나 거상도 많았다.

한마디로 거물들이 천지에 깔려 있다는 말씀.

데카드와 엘리스는 트리스의 경고를 이해하고 방으로 갔다.

“그럼 쉬었다가 나중에 보자.”

“네!”

“쉬세요, 선배.”

엘리스가 옆방에서 잔다는 건 여관 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곳에 사람 한 명이 더 추가되었다.

트리스는 누가 봐도 언짢은 표정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고 그건 엘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쟤네 둘이 싸우겠네.”

분위기만 보면 다른 투숙객들보다 저 둘이 먼저 싸울 것 같았다.

살짝 걱정되는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자 잠시 그 기분을 밀어버릴 만큼의 감탄이 터져 나왔다.

“미치긴 했다.”

“여기 엄청 크다!”

“와아! 지금까지 봤던 방 중에 가장 커요!”

“이 고오른보다는 아니지만, 만족할 만한 크기입니다!”

“…….”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마수들이 밖으로 튀어나오며 자신들만의 감탄을 내질렀다.

방이 넓은 건 둘째 치고 그걸 채우는 가구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그 배치와 선택이 아주 뛰어났다.

최대한 많은 투숙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장 호불호가 없는 스타일을 선택한 게 보였으며 방 안에 2층이 따로 존재했다.

“냉장고도 있네?”

주방에 비치된 커다란 냉장고를 열어보자 자신이 직접 요리를 할 수 있게 각지에서 운송된 싱싱한 요리 재료들이 즐비했다.

그 귀하다는 3대 진미 재료도 한 칸을 꽉 채운 걸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재료를 하나하나 쓸 때마다 추가로 돈을 내야 했지만 트리스의 말로는 이런 것들 또한 자신들은 무료라 했다.

“그러니까 부담 없이 먹어도 되겠지.”

데카드는 한 병에 10골드나 한다는 미친 생수 에이비앙을 따서 벌컥벌컥 들이켰다.

“스읍…… 그냥 물인데?”

처음 먹어본 에이비앙은 명성이나 돈에 비해 그냥 물이었다.

너무 큰 기대와는 달리 너무 큰 평범함을 가진 에이비앙을 들고 데카드는 잠시 방 구경을 했다.

“침대 엄청 넓다!”

“푹신해요!”

침실로 가보자 여관에 대실만 한 침대에서 트램펄린처럼 방방 뛰고 있는 마수들이 보였다.

마수들이 재밌게 놀도록 내버려두고 침실에서 조금 더 걸어가자 오크 통들과 와인 진열대가 보였다.

“엘리스가 이런 거 집어먹질 말아야 할 텐데.”

양주는 도수가 센데 심지어 맛도 좋아서 멋모르고 그냥 마셨다간 자신도 모르게 취해 버린다.

딱히 술에는 취미가 없던 데카드는 별 감흥 없이 진열대를 지나쳐 야외 테라스로 나왔다.

“오오, 경치 봐라.”

[일출이 멋있는 곳입니다.]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장면이 사람들을 비추면서 희망찬 느낌을 주었다.

“너는 여기 구경 안 해도 되겠어?”

[주인님을 지키는 게 우선입니다.]

“아까 보니까 서재도 있던데.”

[…….]

짹짹이는 매우 끌리는 듯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괜찮으니까 너도 가서 애들이랑 놀아.”

[……그렇다면 실례하겠습니다.]

코트로 변해 있던 짹짹이가 깃털로 산화하며 그림자밟기를 사용해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근데 살짝 춥네.”

최상층이라 고도가 높아서 찬바람이 쌩쌩 불어왔다.

“들어가야겠다.”

추위 때문에라도 딱히 오래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다시 안으로 들어간 데카드는 냉동실을 열어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그의 안목은 그중에서 뭐가 가장 비싼지를 판별해 주었고 데카드는 그것만 골라서 소파에 앉았다.

“입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네.”

아이스크림이란 게 원래 다 그렇지만 이건 진짜 그랬다.

한 숟갈씩 맛나게 퍼먹던 데카드는 갑자기 단 게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늘 아침도 못 먹고 나온 것이 생각났다.

“얘들아! 너희 뭐 먹을래?”

방 곳곳에 떨어져 있는 마수들에게 소리치자 각각 대답이 들려왔다.

“고기!”

“양이 많고 맛있는 고기로 부탁드립니다!”

“마수왕님이요!”

“…….”

중간에 이상한 대답이 끼어있었지만 다들 고기를 원하는 분위기였다.

주문용 수정구로 가서 육류를 찾은 데카드는 그중에서 고기류 음식들을 열 개씩 눌렀다.

“이런 데는 양을 너무 적게 준단 말이지.”

비싼 레스토랑은 그릇 위에 고기 한 덩이만 덜렁 내주는 게 다반사라 마수들의 식욕을 따라갈 수 없다.

그러니 지금 한꺼번에 많이 시키는 것이다.

“주문 확인.”

데카드가 한 주문은 호텔 주방으로 직행했고 이제 남은 일은 고기가 방으로 배달 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띠링-!

그렇게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소파와 한 몸이 되려던 찰나 아까 주문을 넣은 수정구에서 알림이 떴다.

“뭐지?”

다가가서 확인해 보자 수정구에는 로비에서 보낸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손님,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가 지금 여덟 시 이전에는 음식을 방까지 배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덟 시가 되면 저희가 바로 음식을 올려드리겠습니다.

최상층에서 한 주문을 만족하지 못했다는 걱정과 심려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문장이었다.

“그냥 받으러 가면 안 되나?”

데카드는 답장 버튼을 눌러 받으러 갈 수 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다시 보내보았다.

띠링-!

-아! 그러시다면 저희가 음식이 담긴 카트를 마련해 두겠습니다. 지하 1층으로 내려오셔서 받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얘들아! 가위바위보 하자!”

* * *

그란시아 호텔 최상층, 데카드의 방 거실에서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었다.

“진 사람이 지하 1층까지 내려가서 음식을 받아와야 해.”

이 말을 들은 마수들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으으! 귀찮아!

하지만 여기서 가장 강한 귀차니즘 병에 걸린 데카드는 소파에 누워 꼼짝도 안 했고 결국 마수들만 남았다.

“그럼 간다!”

“준비됐어!”

서로의 눈치를 보던 마수들은 주먹을 뒤로 길게 빼며 외쳤다.

“안 내면 진 거 가위바위보!”

다섯 마리의 마수들이 손을 내밀었고 승패는 생각보다 빠르게 갈렸다.

“아, 왜 나야!!”

결과는 요르의 패배.

요르는 씩씩 콧김을 뿜더니 서리 같은 백발을 휘날리며 호텔 슬리퍼를 신고 방 밖으로 나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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