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74화 (74/208)

074 둘의 첫 만남

“데카드!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이제 상황이 정리되고 용병들이 다시 돌아온 숙소 안에서 엘리스가 잠도 안 자고 데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 자고 있었어?”

“너무 늦게 오니까…… 조금만 기다렸어요.”

크라켄을 잡아 죽였을 때는 해가 떠 있었고 지금은 달이 떠 있는데 조금만 기다렸을 리가 없다.

“오랜만에 만난 후배하고 얘기 좀 했어.”

“후배요?”

“어, 저번에 내가 구해 줬다는 후배가 마탑 총장을 하고 있더라고.”

상상이 잘 안 가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말하는 데카드를 보고 엘리스가 말을 더듬으며 반문했다.

“초, 총장이요?”

“나도 놀랐어.”

마법사와는 전혀 관련 없던 일을 하던 엘리스도 이렇게 놀랄 정도로 마탑 총장의 자리는 대단했다.

그런 자리에 자신이 아끼던 후배가 올라갔다고 하니 기특하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둘이 얘기하다 보니까 시간이 막 가더라고.”

“그 총장이라는 후배 분은 예쁜가요?”

“그게 궁금해?”

“네.”

엘리스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듯 몸을 덮던 이불을 걷고 데카드의 대답을 기다렸다.

“트리스가…… 예쁘긴 하지.”

그렇게 진한 적발은 어디 가서 흔하게 보지 못하고, 강렬한 카리스마와 강한 인상이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쉽게 말해 범접할 수 없는 느낌과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지만, 자신한테는 잘 늘어나는 볼살을 가진 귀여운 후배일 뿐이다.

“흐음…… 그렇군요.”

엘리스는 고개를 주억이며 방 벽면에 걸린 작은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언젠가 그분을 꼭 한번 뵙고 싶네요.”

“만나게 될 거야.”

그냥 직감이었지만 왠지 트리스와는 내일 또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으, 삭신이야.”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도끼로 격렬하게 싸웠더니 안 쓰던 몸이 놀라 제대로 근육이 뭉쳐버렸다.

세상 다 산 할아버지처럼 엉금엉금 허리를 잡으며 침대로 올라간 데카드는 따뜻한 이불 속으로 몸을 맡겼다.

[…….]

눈치 좋은 레오가 마나를 더 확장하고 퍼뜨려서 회로뿐만이 아닌 근육으로 범위를 넓혀 마사지를 해주었다.

‘으으, 고마워.’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전신 마사지를 받은 데카드는 기분 좋은 느낌으로 잠들 수 있었다.

* * *

지하실을 벗어난 흑마법사를 쫓기 위해 보내진 추격대는 별다른 성과를 건지지 못한 채 돌아와야 했다.

마치 누가 뒤를 봐준 것처럼, 마지아 섬의 초행길일 흑마법사들이 어디로 가야 추격대를 따돌릴 수 있을지 아는 것 같았다.

흑마법사들은 유유히 섬을 빠져나가 후일을 기약했고 마탑은 자신들의 역사에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그 점에 대해서 마탑으로 막 복귀한 트리스에게 기자 회견 요청과 인터뷰 요청 등등 언론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총장님, 그래도 한 번은 입장 표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탑의 부총장 슈헤이가 의자를 뒤로 돌린 채로 바깥을 바라보고만 있는 트리스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저는 그딴 거 할 생각 없습니다.”

이런 대박 기삿거리를 찾은 기자들에게 함부로 회견 같은 걸 했다간 피라냐 떼에 몸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물리고 뜯겨서 마지막에서는 살점 하나 남지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 여론이 너무 안 좋습니다……! 몇몇 가문들에서는 자신의 자식들을 돌려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있고요!”

“그럼 돌려보내세요.”

고작 이딴 걸로 떠나겠다고 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마탑에 맞는 인재가 아니다.

“저희 주가도 점점 내려가고 있는 거 아십니까? 이렇게 규모가 큰 침입도 미리 방지하지 못하고, 심지어 테러리스트들을 놓쳤다고 난립니다! 난리!”

“흑마법사들을 놓친 건 저희의 잘못이 맞습니다.”

트리스는 그때 본 진저백의 태도를 잠시 머릿속에서 떠올리다가 다시 원래대로 몸을 돌려 책상 위에 놓아진 에스프레소 한 입을 마셨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마법부에서 날아온 이 메시지예요!”

이것만큼은 대놓고 무시할 수 없어 트리스는 잠깐 한숨을 쉰 후에 손을 내밀었다.

“줘 보십쇼.”

예전 방식 그대로 스크롤에 적힌 마법부의 명령을 읽어본 트리스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

“시, 심각한 겁니까?”

도통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트리스가 불편하다는 기색을 직접 내보였다.

아직 메시지의 내용을 보지 못한 슈헤이는 그녀의 반응을 보며 손에 땀이 맺혔다.

스크롤을 끝까지 읽은 트리스가 그대로 손에서 불꽃을 일으켜 태워버렸다.

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하는 과정이니 문제 될 게 없었다.

“흐음…….”

깍지를 끼고 책상 위에 올리며 그대로 턱을 괸 트리스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 중인 듯 보였다.

“뭐, 뭔데요? 총장님을 강제 해임하겠대요?”

“그런 거라면 제가 이렇게 생각을 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럼 뭔데요!”

“잠시 선배가 좋아할 만한 맛집을 생각하던 중이었습니다.”

자기 할 말만 끝낸 트리스가 그대로 방을 나가 어딘가로 향했다.

같은 시각에는 아침 일찍 깨서 순찰할 준비를 끝낸 용병들이 있었다.

“오늘도 열심히 해요!”

“네.”

“네!”

지루한 순찰을 돌기 위해 볼텍, 빅터, 제이미가 먼저 자신의 구역으로 가고 데카드와 엘리스는 조금 더 붙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선배!”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가 여유로운 거리에서 데카드를 부르는 낭랑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배, 여기 계셨네요.”

데카드 쪽으로 뛰어온 트리스가 옆에 있는 엘리스를 살짝 쳐다보며 물었다.

“누구예요? 혹시…… 여자 친구는 아니죠?”

“아, 아니에요! 여자 친구라뇨! 전혀! 전혀 아니에요!”

데카드가 뭐라 입을 떼기도 전에 엘리스가 먼저 나서서 그가 할 얘기까지 다 해주었다.

“어쩐지. 둘은 잘 안 어울립니다.”

“…….”

엘리스는 조용히 입을 꾹 다물었고 이 적발의 여자가 트리스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둘은 묘한 경계심과 약간의 살의가 담긴 눈빛을 서로 주고받으며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 나갔다.

“크흠…… 둘이 일단 통성명부터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 말에 자신이 너무 대놓고 경계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트리스가 살짝 헛기침하며 손을 내밀었다.

“마탑의 총창, 트리스 아드리안이라고 합니다.”

“용병, 엘리스예요.”

둘의 손이 마주 잡히자 그녀들의 팔에서 힘줄이 돋아나고 근육이 긴장하는 게 보였다.

갑작스레 벌어진 악력의 자존심 싸움은 데카드가 둘의 손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끝이 났다.

[마수왕님! 얘네 왜 싸우냐?]

[흐음…… 이 고오른은 연애에 대해 잘 모르겠군요.]

[그냥 둘 다 마수왕님이 품으세요! 어차피 저 암컷들도 그걸 원할걸요?]

[…….]

[참으로 의미 없는 싸움 같군요.]

짹짹이만이 제대로 된 통찰로 이 싸움이 아무 의미 없는 진흙탕 싸움임을 알아보았다.

“잠시 선배한테 할 얘기가 있는데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무슨 일인데?”

“그냥 선배하고 둘만 얘기하고 싶어요.”

엘리스는 잠깐 똥 씹은 표정으로 트리스를 쳐다보고 고개를 살짝 숙여서 인사한 후 자신의 순찰 구역으로 갔다.

“꼭 그랬어야 했어?”

“친하게 지내긴 이미 글렀어요.”

트리스는 데카드의 옆자리를 꿰차며 자신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말했다.

“마법부에서 선배를 찾아요.”

“나를?”

“이 정도 공적이면 찾을 만도 하죠.”

루비아에서 누구의 지원도 없이 단독으로 흑마법사를 잡아내고.

유적 조사에서 유물을 찾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마탑에서 일어난 흑마법사들의 침입에 함께 나타난 크라켄을 처치한 남자.

한 사람이 인생에서 하나만 하기도 힘든 일을 데카드는 연속으로 성공에 성공을 거두었다.

마법부에서는 이런 데카드에게 궁금증이 생긴 것이다.

“근데 크라켄은 나 말고 교수들의 힘이 컸다고 하는 게 더 신빙성 있지 않았나?”

“그곳에 있었던 거의 모든 교수들이 크라켄 처치에 선배가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인정했어요.”

혼자 크라켄의 다리를 모두 자르고 마지막엔 머리까지 자르는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을 교수들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진술서들이 모두 선배를 치하하고 있으니 마법부도 믿을 수밖에 없죠.”

“쓸데없이 양심적이네.”

한낱 용병의 공에 힘을 실어주는 교수들이 착하다고 해야 할지, 참 애매했다.

“그래서 마법부로 뭐 하러 가는 건데?”

“공을 세웠으니 당연히 보상을 받을 거고, 마법부 개인적으로 부탁할 것도 있나 봐요.”

“부탁?”

“네. 뭔지는 적혀있지 않았어요.”

마탑 총장에게도 공개하는 걸 거부할 정도로 극비인 모양이다.

“그럼 언제 가면 되는데?”

“선배가 준비되는 대로 저랑 같이 가시면 돼요!”

“알았어.”

마법부도 안 간 지 오래됐는데 한 번쯤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마법부가 있는 중립지대 아사이드는 마지아 섬처럼 어느 나라의 국토도 아니기에 좋게 말하면 여러 문화가 어울리는 곳, 나쁘게 말하면 합법적인 버전의 슬레이였다.

아사이드에선 어떠한 나라의 법도 통용되지 않았고 마법부가 정한 규칙이 전부였다.

그걸 교묘히 피해서 장사를 하는 블랙마켓들도 아사이드에서 가장 큰 성행을 이루고 있다.

온갖 희귀한 물건들이 오고 가는 경매장도 아사이드에 있으니 심심풀이로 그곳의 물건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그럼 내일 아침 이 시간에 텔레포트 기계 앞에서 만나자.”

“알겠어요.”

“그리고 다음부턴 비서 시키고. 네가 이렇게 직접 나한테 오면 눈에 너무 띄잖아.”

“사람도 없는데 뭐 어때요.”

지금은 학생들이 없는 한가한 시간이긴 했다.

“내가 말했잖아. 마탑은 사방에…….”

“눈과 귀가 있다. 알아요, 선배가 한 말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어요.”

“기억하면서 그래?”

데카드가 딱 밤으로 트리스의 이마를 콩하고 쳤다.

“아앗!”

“어디 새지 말고 마탑으로 가.”

“치이…… 알았어요. 내일 봐요, 선배!”

“그래.”

트리스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만큼 가볍고 발랄한 발걸음으로 그녀는 마탑까지 갔다.

“나도 이제 그럼 다시 월급 루팡이나 하러…….”

데카드도 몸을 돌려 순찰은 까마귀한테 맡기고 자신은 어디 한가롭게 앉아서 칵테일이나 한잔하려는 순간 엘리스가 떠올랐다.

“둘이 왜 그렇게 싸우는 거지?”

데카드는 모르는,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었다.

* * *

“칵테일 두 잔 주세요.”

자신 혼자 마시려 했던 맛 좋은 칵테일 두 잔을 사서 상큼한 과일 향을 풀풀 풍기며 데카드는 엘리스의 구역으로 갔다.

그리고 여기, 괜히 땅바닥에 모난 돌을 차며 엘리스가 화풀이하고 있었다.

“쳇, 뭐야. 그 여자.”

엘리스도 직감적으로 느꼈으니 아마 트리스도 느꼈을 것이다.

지금 두 사람의 목적은 같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솔직히 자신보다는 트리스처럼 아름답고 양지에서 자란 사람이 데카드와 더 어울렸다.

“하아…….”

작은 한숨을 짧게 내쉬며 땅바닥만 보고 가던 엘리스의 그림자 뒤로 하나의 그림자가 더 생겨났다.

“얘기는 다 끝나셨어요?”

뒤도 안 돌아보고 정체를 알아차린 엘리스는 그가 주는 칵테일을 받았다.

“응. 아무래도 잠깐 출장 비슷한 걸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저도 가면 안 되나요?”

마법부 안으로 들어가는 건 안 되더라도 아사이드라면 거부당할 것 같진 않았다.

그곳은 마법부의 영역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었으니까.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같이 가자.”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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