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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72화 (72/208)

072 다시 만난 후배

기숙사 뒤편에 있는 숲에서 독물로 웅덩이를 만들 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요르의 장궁으로 날린 화살에 맞기만 하면 흑마법사들은 그 즉시 맞은 곳부터 시작해 처참하게 젤리처럼 녹아내렸다.

“기숙사로 오는 애들은 너희가 끝이냐?”

“크아아악!!”

하반신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는 흑마법사는 대답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 흑마법사를 마지막으로 열 명의 정예원은 시체도 없이 생을 마감했다.

“역시 너무 사기 템이라니까?”

마수계에서는 가끔 심심할 때마다 썼던 요르의 활이었는데 인간계에 와서 직접적인 표적을 두고 쏴보니까 더욱 그 위력이 느껴졌다.

[에헴! 저의 독이니까요!]

요르가 자신 있게 헛기침을 하며 어깨가 한껏 높아졌다.

“짹짹아, 느껴지는 흑마법사는 또 없어?”

[숲 동쪽에서 똑같은 인원으로 후발대가 오는 것 같습니다.]

“알았어.”

오늘은 아무래도 많은 양의 송장을 치워야 할 것 같다.

* * *

“크흐흑! 지금 정도면 먼저 간 애들이 싹 쓸어놨겠지?”

“저주 스크롤이랑 마비 포션 같은 건 다 챙겼는데 멍청이들이 아니고서야 그랬겠지.”

“아아! 마탑의 여학생들이 그렇게 예쁘다던데! 추릅…….”

“얘는 같은 편인데도 역겹냐.”

흑마법사들은 기숙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저마다 행복한 상상을 했고 그들의 꿈은 점점 부풀어 올랐다.

“어우! 냄새! 뭐야 이게?”

“물웅덩이? 라기엔 색깔이 이상한데?”

액체는 맞았는데 젤리처럼 점성이 있고 거무죽죽한 색깔에다가 시체 썩는 역한 냄새가 풍겨왔다.

잠시 웅덩이 근처에서 모여 있던 흑마법사들 중 한 명이 허리를 펴기 위해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자 초록빛 무언가가 쏟아지고 있었다.

“모두 피해!!”

근처에 있던 흑마법사들을 손과 발로 밀치고 자신도 바닥을 떼굴떼굴 구르자 겨우 화살 비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흑마법사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온몸에 독화살이 꽂혀야 했다.

“운이 좋네?”

데카드는 나무 위에 숨어 있다가 털썩하며 바닥으로 내려왔다.

“이게 웅덩이의 정체였나……?”

화살을 맞은 흑마법사들이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아까 바닥에 깔려 있던 핏물과 똑같이 되어버렸다.

“이 개새끼가!! 정체가 뭐냐!”

“너희 나이로는 나 모를걸?”

최소 활동한 지 20년은 넘어야 처형인인 자신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금 흑마법사들의 액면가는 그렇게 오래 활동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마수계로 끌려간 공백기 동안 생겨난 흑마법사 같은데, 모른다면 지금 알려주어도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된다.

“뭔 개소리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를 것 같이 생긴 게!”

데카드의 몸은 마수계에서 20대에 멈춰 있다가 이제야 시간이 흐르기 시작해 원래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그러니 흑마법사들은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데카드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되고 우스운 것이다.

“별 미친놈이 다 있구나. 너의 별 의미 없는 인생을 끝내주도록 하지.”

흑마법사들은 도주보다 교전을 선택했는지 가방에 있던 독 포션들을 꺼냈다.

“그거 독 세냐?”

말의 의미를 생각할 수 없는 데카드의 질문에 흑마법사들은 잠시 벙 쪘다가 광소했다.

“크하하학! 그건 네가 직접 체험해 봐라!”

독 포션이 데카드의 앞에서 쨍그랑 하고 깨지며 독물이 산소와 만나 급속도로 기화하기 시작했다.

그 독 안개 속에 있는 데카드는 그냥 평소 숨 쉬는 것처럼 흐읍 하고 독을 들이마셨다.

“크하하하! 멍청한 놈! 그건 들이켤수록 폐를 마비시키고 숨을 못 쉬게 해 질식하게 만든다!”

“잘 가라! 미친놈! 캬캬캬캭!”

보랏빛 독 안개 속에서 잠깐씩 흐릿하게 데카드의 모습이 보였다.

“뭐, 뭐지? 너무 멀쩡한데?”

“야! 너 제대로 가져온 거 맞아?”

“당연하지!”

시간이 지나 독 안개가 걷히고 그 안에서는 멀쩡히 살아있는 데카드가 나왔다.

“이게 다냐?”

[어딜 나의 주인께 독살을 하려 해!]

일찍이 인간계에 없는 극독을 다루는 요르는 온갖 독성에 완벽 내성이 있다.

그런 요르와 계약한 데카드도 당연히 만독불침의 몸을 갖게 되었다.

흑마법사들이 독초로 짓이겨 만든 이런 독 안개쯤이야 몇백 번을 들이마셔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

“젠장! 모두 도망쳐!”

즉발적으로 저주를 쓸 수 있는 스크롤을 선발대가 다 가져가 버렸다.

그렇다고 지금 저주를 영창하기에는 저 미친놈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남은 방법은 줄행랑을 치는 것뿐이다.

“으아악!”

“비켜! 비켜!”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는 흑마법사들을 귀찮다는 표정으로 바라본 데카드는 땅을 발로 굴렀다.

“헤이스트.”

이 버프용 마법은 적을 쫓기 위함이 아니다.

[뭔가 힘이 더 늘어난 게 느껴져요!]

데카드는 활시위를 당기면 나타나 걸리는 화살에 헤이스트를 사용했다.

“남은 흑마법사들은 네 명.”

시위에서 한 개를 넘어 네 개의 화살이 차례대로 걸렸다.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버프가 걸린 화살들이 한꺼번에 쏘아졌다.

슈와아악-!

헤이스트가 걸린 화살들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바람도 갈라버리며 흑마법사들을 향해 날아갔다.

“모두들 나무 뒤에 숨어! 그러면 화살을 피할 수 있어!”

한 흑마법사가 머리를 굴려서 낸 아이디어에 다른 이들이 옳다구나 하며 모두 나무 뒤로 숨었다.

“과연 그럴까?”

데카드의 화살은 직선으로만 날아가지 않는다.

화살이 다른 곳에 박힐 때까지 버티고자 나무 뒤에 있던 흑마법사들의 눈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났다.

푸우욱-!

뱀이 구불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듯 직선으로 날아가던 화살이 방향을 꺾어서 자신에게 날아온 것이다.

화살은 흑마법사들의 심장을 꿰뚫었고 서클을 부숴버렸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유언 같은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데카드는 기숙사를 점거하려는 흑마법사 선발대와 후발대를 모두 정리했다.

활을 집어넣고 이제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던 중 티이라가 마나를 느끼며 말했다.

[마수왕님! 지고 있다!]

“뭐가?”

[마탑 교수들!]

* * *

“쯧, 항마력 점액을 도저히 뚫을 수가 없군.”

로베네가 양손에 거칠게 타들어 가는 푸른 화염을 털어내며 아직 멀쩡한 크라켄을 올려다보았다.

“그래서 포기하실 겁니까?”

시안이 손을 들어 올려 나무들과 함께 크라켄의 다리 몇 개를 얼려버리며 말했다.

“그럴 리가 없지!”

속성이 너무 대척점이라 그런지 평소 잘 맞지 않았던 로베네와 시안은 지금만큼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싸워 나갔다.

“쯧, 그놈의 최후를 볼 기회였는데.”

진저백은 아직도 아까 그 측정의 마무리를 내지 못한 게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서 자신의 목표를 망쳐버린 이 크라켄과 흑마법사들에게 온갖 화풀이를 다 하는 중이다.

“주피터.”

한 줄기의 거대한 벼락이 하늘에서 쿠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크라켄을 두 쪽으로 쪼갤 듯 내리쳤다.

“크하핫! 어림없다!”

물론 이 번개도 크라켄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나름 회심의 공격이라 할 만한 게 막혀버리자 진저백은 혀를 찼다.

다른 교수들도 각자의 속성을 살려 마법 공격을 해보았지만, 크라켄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었다.

“물리적인 공격을 줘야 해.”

트리스도 할 수 있는 최대한 초고온의 맹염을 크라켄과 흑마법사들에게 퍼부었다.

하지만 움찔조차 안 하는 크라켄은 거칠 것 없이 다리를 휘둘러 방어막을 두들겼다.

마법으로는 크라켄을 쓰러뜨릴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 모인 이들은 마탑의 교수들.

평생을 마법만 써오고 다른 건 거들떠 보지도 않은 사람들인데 지금부터 칼을 휘두르기엔 늦었다.

“방법을 생각해.”

트리스는 침착하게 다시 방어막의 보강을 하고 점점 밀려나는 전선을 보았다.

아까는 분명 해안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지금은 벌써 도시 근처에 있는 숲 절반을 넘어왔다.

녀석들이 도시까지 넘어오게 해서는 절대 안 됐다.

“총장님! 위험합니다!”

잠시 한눈팔고 있는 사이 크라켄 다리에 난 날카로운 가시들이 방어막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크하하하!!! 이만 죽어라!!”

여기서 마탑의 총장을 죽인다는 사실에 대장은 광소하며 그분이 어떤 선물을 주실지 벌써부터 기대하고 있었다.

크라켄의 다리가 무방비한 트리스를 찍어 누르려는 순간.

서걱-!!!

섬뜩한 절삭음과 함께 크라켄의 다리가 잘려나갔다.

“나 없으면 진짜 뭐가 안 된다니까?”

[우우! 티이라! 드디어 나선다!]

거대한 도끼를 어깨에 걸친 데카드가 그보다 더 거대한 크라켄을 올려보았다.

“너 오랜만이다?”

“으으으!! 유적의 소환사놈!!!”

대장은 유적에서의 데카드를 기억하며 분노에 찬 괴성을 질렀다.

“선……배……?”

트리스가 멍한 표정으로 겨우 몇 마디를 내뱉으며 떨리는 두 다리로 일어섰다.

허상인지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보였다.

자신이 매년 무덤에 가서 울고, 돌아오길 빌었던 남자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너도 오랜만이야, 트리스. 많이 컸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훌쩍 커진 트리스의 머리를 데카드는 손으로 쓰다듬으며 헝클어주었다.

“그, 그동안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

“할 말이 많은 건 알겠는데 일단 저것부터 처리하자.”

데카드가 인생에서 몇 안 되게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크라켄을 노려보았다.

“마탑의 교수들도 못한 일을 네놈이 어찌하겠다는 거냐!”

한 흑마법사가 그렇게 말하며 다리 하나를 움직여 파리를 잡는 파리채처럼 데카드를 쳐내려 했다.

“잠깐 실례.”

펄럭-!

그 공격 범위에는 트리스도 포함되어 있어 데카드는 그녀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안은 후 짹짹이의 날개를 펼쳤다.

공중을 날고 있는 데카드를 보고 트리스가 여전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선배는 변함없으시네요.”

“당연하지.”

트리스를 다시 땅에 내려주고 데카드는 다시 한번 티이라의 무기를 뽑아 들었다.

리바이어던.

3M가 넘어 보이는 길이의 양날 도끼.

도끼날 부분이 과도하게 큰 이것은 그저 도끼의 무게만으로 눌러도 무엇이든 성둥성둥 자를 수 있다.

마법적 능력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힘!

그것이 티이라가 가진 무기의 원초적 성질이었다.

마법 공격이 전혀 먹히지 않는 크라켄에게는 아주 꼭 맞는 무기이다.

“죽어라!!”

크라켄이 가지고 있는 여덟 개의 다리가 모두 데카드를 짓이기기 위해 날아왔다.

[어림도 없다!]

도끼가 가로로 크게 휘둘러지자 여덟 개의 다리가 모두 잘렸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대장 흑마법사는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머리를 쥐어뜯었다.

“크라켄이 이런 물리 공격에는 엄청 약하거든!”

소싯적 흑마법사를 잡기 위해 괴수들도 몇 번 잡아봤던 데카드에게 이런 거대 문어쯤이야 이렇게 좋은 무기 하나만 있어도 충분했다.

데카드가 짹짹이의 날개로 빠르게 날아다니며 서걱서걱 크라켄을 잘라갔다.

문어를 손질하듯 다리를 여러 조각으로 토막 내고 곡예를 부리며 흑마법사의 마법들을 피했다.

“렌달과 싸우던 그 용병이군요.”

시안이 데카드를 알아보고 크라켄과 거의 1 대 1로 싸우고 있는 말도 안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말도 안 돼…… 저런 힘을 숨기고 있었단 말인가?”

진저백은 허망함에 입을 벌리고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마지막이다!”

머리를 잘라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크라켄 해체 쇼는 막을 내렸다.

“아케인 블록.”

고서클의 속박 마법으로 모든 흑마법사가 도망치기 전에 결박한 트리스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는 데카드에게 달려갔다.

한 번도 트리스가 급하게 어딘가로 뛰는 걸 본 적 없는 마탑의 교수들은 그 희귀한 장면을 보고 있었다.

“선배.”

“다친 데는 없어?”

4서클 마법사가 7서클 마법사한테 할 말은 아니었지만 트리스에게 지금 그딴 것은 중요치 않았다.

와락-

트리스는 결국 참지 못하고 데카드를 자신의 품속으로 끌어안았다.

“선배가 환상이 아닌 진짜라면 제발 떠나지 마요. 그때는 선배가 날 잡았지만, 이제는 내가 잡을 거예요.”

“알았으니까 이제 좀 놔줄래?”

숨이 막혀올 것같이 강하게 들어오는 포옹은 데카드의 의사와 관계없이 계속되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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