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전투력 측정
“흠흠…….”
마탑의 3학년, 렌달 펜하우저가 진저백 교수의 개인 업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가볍게 목을 풀었다.
똑똑-
“교수님, 렌달입니다.”
“아아, 들어오세요.”
렌달이 업무실의 문을 열자 의자에서 빙긋 웃으며 앉아있는 진저백이 보였다.
“여기 앉으세요.”
진저백이 마련해 놓은 자리에 렌달이 앉았다.
“차 좋아하십니까?”
“네, 좋아합니다.”
진저백은 업무실 벽면에 있는 찻잔과 찻잎을 꺼내서 차를 우려냈다.
“당신을 부른 이유는 알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용병들의 측정을 도와달라는 이유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진저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우려낸 차를 두 개의 찻잔에 나눠 담았다.
“감사합니다.”
진저백이 준 찻잔을 받아들고 천천히 한 입을 마신 렌달은 진저백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왜 그 사람이 저인지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렌달 펜하우저.
현재 마탑 3학년에서 전투력 톱을 달리는 인물이며 전투력 평가에서도 1학년과 2학년때는 무패.
3학년으로 올라와서도 패배한 횟수가 한 손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유능한 인재였다.
그런 렌달에게 다른 3학년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측정 도우미를 맡긴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후훗, 항상 확실한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용병 중에는 자네가 아니면 그 실력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그 2학년을 쓰러뜨렸다던 용병 말입니까?”
렌달도 소문으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검은색 깃털 코트의 용병이 2학년 학생을 아주 큰 차이로 가지고 놀 듯이 이겨버렸다는 얘기.
원래 소문이란 믿을 것이 못 되니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진저백의 반응을 보니 그것도 아닌가 보다.
“그래도 고작 용병입니다.”
렌달은 흙바닥에서 구르는 용병과 자신을 비교하는 진저백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듯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렌달의 반응은 상관없고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진저백은 그 용병의 대한 강함을 늘어놓았다.
“그 용병이 루비아에 있을 때는 흑마법사를 잡았다는군요. 또 유물 조사에서도 꽤나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뭡니까.”
렌달이 들고 있는 찻잔에 무의식으로 마나를 퍼트려 살얼음이 끼고 차는 얼어붙었다.
“그런 실전 경험이 풍부한 용병한테 당신이 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제가 그 용병에 대해서 잘 아는 건 아니지만, 하나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데에 아주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겁니다.”
렌달은 이제 꽁꽁 얼어서 늘어난 부피 때문에 깨져나가는 찻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진저백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 용병한테 너무 큰 기대는 안 하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제가 목숨만 붙여놓고 온몸의 뼈를 부숴놓을 것이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진저백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평소답지 않게 웃고 있는 환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어딘가에 결점이 분명 존재했다.
인형이 억지로 실로 턱이 꾀어져 늘 웃을 수밖에 없는 것같이 그의 웃음은 작위적이었다.
렌달은 그의 웃음을 보고 팔에 살짝 소름이 돋은 채 업무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좋아, 좋아. 렌달은 예상대로 행동하는군.”
항상 포식자의 위치에 있던 자는 자존심을 한 번만 살짝 긁어주면 그다음부터는 자기 혼자 미쳐서 행동하기 마련이다.
진저백은 찻잔에 남은 마지막 차 한 입을 마저 마시고 창문 밖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 * *
주말이 지난 월요일.
나이를 불문하고 직장인과 학생 모두가 싫어하는 요일이다.
그래도 학생들은 오늘이 그렇게 싫지 않았다.
왜냐하면 오늘은 용병들의 전투력 측정이라는 명목으로 수업 몇 개가 날아가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가 전투력 평가장인가?”
학생들이 줄여서 전평장이라 부르는 이곳은 마탑 안에서도 가장 두꺼운 항마력 소재를 사용했고 코끼리가 연신 들이받아도 안전하게 내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콜로세움처럼 빙 둘러싼 관객석까지 마법이 미치지 않도록 결계까지 준비해 두어서 아주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 앉아 있죠.”
용병들은 각 팀끼리 앉아 있었고 제이미 팀은 적당히 안쪽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아서 앉았다.
주변에는 의무적으로 이 측정을 봐야 하는 마탑의 학생들이 듬성듬성 앉아있었다.
그 수가 많지 않음에도 뭔가 데카드를 향하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데카드가 2학년을 이겼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카드는 일절 관심 없었고 주머니에 넣어둔 아침거리를 꺼냈다.
“드실래요?”
“오오! 토스트구만! 감사히 먹겠소!”
엘리스와 팀원들에게 하나씩 토스트를 나눠 주었다.
이렇게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줘야 힘이 막히지 않고 잘 나오는 법이다.
“데카드 씨, 잘할 수 있겠어요?”
제이미는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아직 그녀의 귀에까진 소문이 안 들어갔는지 제이미는 데카드가 측정을 통과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최대한 열심히 해볼게요.”
오늘까지 열심히 지켜온 ‘나 응애 마법사예요.’ 컨셉이 무너지겠지만 이런 곳에서 지는 건 죽어도 싫었다.
관객석의 사람이 어느 정도 채워지고 시계가 9시를 가리켰을 때 전평장에서 기계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럼 지금부터 전투력 측정을 시작하겠습니다. 호명하면 경기장으로 내려와서 측정에 성실히 임해 주십쇼.
“오랜만이네.”
데카드가 학생 시절 전투력 평가 날에 매일같이 들었던 그 음성과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경기장에서는 측정을 도와주기로 한 3학년 학생 먼저 나타났다.
“레, 렌달 펜하우저가 도우미로 나왔어?”
“와아…… 미쳤다.”
그가 나오자마자 젼평장 자체가 웅성웅성거리며 놀라는 게 느껴졌다.
저 렌달이라는 학생이 꽤나 유명한지 측정에 관심 없던 학생들도 눈을 빛내며 경기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스카 리우스. 경기장으로 나와주십쇼.
첫 번째 순서를 맡게 된 스카라는 용병은 긴장으로 잔뜩 표정이 굳으며 경기장으로 나왔다.
스카는 마법사가 아닌 무투파 용병.
애초부터 상성이 불리하니 이 대련에서 이기는 건 고사하고 접근이라도 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시작.
렌달은 기회를 주려는 듯 마나도 일으키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스카는 한 손 검과 방패를 꽈악 잡으며 달려갔다.
용병으로 생활하는 동안 헛물만 켠 건 아닌지 특유의 보법을 밟으며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이대로 스카의 한 손 검이 렌달에게 직행하나 싶었지만, 그의 입이 달싹이며 시동어를 외쳤다.
“프로스트.”
쩌저저저적-
렌달이 딛고 있는 땅을 시작으로 스카의 목 아래가 전부 얼음에 휩싸여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한 손 검의 칼날이 아주 살짝 렌달의 대련용 조끼를 스치면서 데미지가 들어갔다.
조끼를 입음으로써 모두가 볼 수 있게 높이 떠 있는 렌달의 HP바가 1% 줄어들었다.
-통과.
기계의 음성이 결과를 말하자 학생들의 반응은 딱히 나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선전했네.”
“그러니까.”
“1%라도 깎은 게 어디야.”
마법도 안 쓰는 용병이 마탑 3학년 전투력 톱의 HP를 깎았다는 것에 학생들은 인정하는 눈치였다.
“이 정도면 평가가 그렇게 빡빡하지는 않은가 보네요.”
제이미를 비롯해 다른 용병들도 한시름 놓은 듯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 이후로 다른 용병들이 나와서 저마다의 장기를 펼치며 렌달을 압박하려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30분 정도가 흘렀을 때 절반가량의 용병들이 측정을 끝마쳤고 통과에 실패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제이미 플라. 경기장으로 나와주십쇼.
골렘 마법사인 제이미의 이름이 나오자 볼텍과 빅터는 모두 손을 흔들며 그녀를 응원해주었다.
“다치지 말고 갔다 오십쇼.”
“응원하겠소!”
“고마워요.”
데카드와 엘리스도 같이 손을 흔들며 심심한 응원을 보내주었다.
“후우…… 떨지 말자. 하던 대로만 하면 통과할 수 있어.”
이전에 왔던 용병 마법사들도 전부 통과했는데 자신이라고 못할 게 없었다.
오히려 제이미는 더욱더 자신이 있었다.
-시작.
“하압!”
제이미가 코어를 허공에 던지고 아공간 주머니를 활짝 열자 돌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코어에게 달라붙었다.
“오오, 골렘 마법사야?”
“용병이 골렘을 다룬다고?”
“이번 건 좀 재밌겠다.”
마탑의 학생들도 골렘의 등장에 흥미로워하며 제이미를 눈여겨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빠르게 스톤 골렘이 완성되었고 사람보다 두 배는 커다란 키의 골렘은 쿵쿵 걸으며 렌달을 향해 전진했다.
“흐음…….”
렌달도 이번 측정은 살짝 힘을 써야겠다고 느꼈는지 마나룸을 이전보다 조금 더 열었다.
“가라! 스톤 골렘!”
우워어!
육중한 몸이 달리기 시작하자 지진이라도 난 듯 전평장이 쿵쿵 울리기 시작했다.
“아이스 볼트.”
얼음의 쇠뇌들은 골렘에게 맞자마자 부서져 큰 타격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부분이 얼어붙어 관절의 가동을 조금씩 막아내고 있었다.
“더 빨리 달려!”
제이미의 명령대로 골렘은 더 급하게 속도를 냈고 마침내 렌달의 코앞까지 오는 데 성공했다.
워어어!
스톤 골렘은 그대로 펀치를 날렸다.
금방이라도 그 엄청난 골렘의 무게에 눌려 렌달이 압사할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관객석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데카드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꽤 하네.”
“네?”
갑작스러운 데카드의 칭찬에 엘리스가 잠깐 그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골렘과 렌달을 보았다.
“골렘! 왜 공격하지 않는 거야!”
스톤 골렘의 주먹이 나가다 말고 렌달에게 닿기 전에 허공에서 완전히 멈춰 버렸다.
제이미는 갑자기 말을 듣지 않는 골렘에 대고 명령을 외쳤지만 골렘은 지금 그걸 들어도 행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까 날린 아이스 볼트. 별 효과 없이 끝난 것 같지만, 그것들이 관절 안쪽까지 깊숙이 녹아들어 완전히 얼려버린 거야.”
데카드는 렌달이라는 학생의 대처에 살짝 감탄하며 재밌겠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데카드는 어떻게 잠깐 보고 그걸 알아요?”
엘리스가 빅터와 볼텍이 듣지 못하게 속삭이며 말했다.
“쟤 스타일이 그렇더라고.”
힘의 우위를 이용해 상대를 찍어 누르는 건 렌달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대련으로 데카드가 파악한 렌달의 방식은 최소한의 마나와 움직임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효율 중시형.
그런 렌달이 사용할 법한 아이스 볼트의 응용방식이었다.
-통과.
렌달에게 유의미한 피해는 주지 못했더라도 제이미는 측정에서 통과할 수 있었다.
“수고했소!”
“통과를 축하합니다.”
“수고하셨어요.”
제이미가 다시 관객석으로 돌아오자 팀은 그녀에게 여러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너무 아쉬워요.”
제이미의 입장에선 잘 가던 골렘이 절호의 일격을 먹일 기회를 놓쳤으니 아쉬울 만도 했다.
경기장에 부서진 얼음 잔해들을 치우고 렌달이 재정비를 마치자 다시 기계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데카드 아르마다. 경기장으로 나와 주십쇼.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