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68화 (68/208)

068 사과의 선물

“뭘 찾고 계신가요?”

가게에 들어와서 바구니에 뭘 담지도 않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 넓은 가게를 전부 돌아보고 있는 엘리스에게 종업원이 물었다.

“아, 아…… 그게 여기서 제일 맛있는 디저트를 찾고 있는데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 말을 걸어오자 엘리스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종업원에게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저를 따라와 주십쇼.”

친절한 종업원은 뒤를 돌며 엘리스를 어딘가로 안내했다.

“1층은 보통 디저트들을 진열해 놓은 곳이고, 이곳 2층은 저희 페로쉐 가게가 보증하는 최고급 디저트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디저트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라 할 수 있는 엘리스도 1층과 2층의 디저트가 다른 것을 확연하게 느낄 정도로 그 외관과 풍미가 전혀 달라 보였다.

“그리고 최고의 디저트를 찾고 계신다면 저희가 추천해 드리는 이 디저트가 어떠신지요.”

“와아…….”

조각 케이크 모양의 디저트는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고귀함과 아름다움이 뚝뚝 흘러나왔고 심지어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이 디저트는 저희 본점에서 탈리스 황제 폐하에게 직접 진상하는 아주 특별한 디저트이지요. 그래서 이 디저트의 이름도 엠페러입니다.”

“엄청 예쁘네요.”

이 정도 모양과 명성이면 용서와 함께 내미는 선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손님은 운이 좋으신 겁니다. 원래라면 이 디저트는 나오자마자 누가 사가거든요.”

“이거 주세요.”

엘리스는 그 말에 누가 채갈까 급하게 엠페러를 주문했다.

“좋은 선택이십니다.”

종업원은 오늘 계 탔다는 표정으로 싱글벙글 엠페러를 들고 비닐에 포장해 엘리스에게 넘겨주었다.

“계산은 카드로 하시겠습니까?”

“네, 여기요.”

저번에 데카드가 선물해 준 지갑에서 체크 카드를 꺼냈다.

삑-

“계산 완료되었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엠페러가 담긴 디저트를 들고 가는 엘리스의 발걸음이 이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졌다.

“지금쯤이면 데카드가 깼으려나.”

그가 깨어나야 이 선물을 직접 전해줄 수 있을 텐데 아직 그는 자고 있을 확률이 높아 보았다.

“짹짹이 님께 물어볼까.”

짹짹이라면 자지 않고 깨어있을 거라는 생각에 엘리스는 그에게 데카드를 깨워달라고 부탁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탑의 도시를 걷고 있을 때 아주 커다란 게시판에 누군가가 공지문을 테이프로 붙이고 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응? 뭐야 저게?”

“가보자!”

그 주변에 있던 마탑의 학생들도 새로 올라온 공지문에 우르르 게시판 앞으로 몰려들었다.

공지문에는 알록달록한 바탕에 대문짝만한 공지의 제목이 쓰여 있었다.

[마탑의 용병들은 과연 우리들을 지킬 수 있을까?]

‘이게 무슨 소리지?’

멀찍이서 제목을 확인한 엘리스가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공지문의 앞까지 왔다.

최근 용병들이 마지아 섬에 거주하면서 우리들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그 능력이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은 상태다.

해서 이번 행사로 용병들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보여준다면 더 수월하게 학생들을 보호하고 흑마법사들의 위협에서 마탑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용병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전투력 측정은 마탑의 3학년생들이 도와줄 것이다.

공개적으로 측정을 오픈해야 공인성이 생기니 마탑의 학생들은 이 측정 장면을 꼭 보러 와야 한다.

“나름 재밌겠는데?”

“그러게! 솔직히 용병들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긴 했어.”

공지를 다 읽은 마탑의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당사자인 엘리스는 침음을 삼켜야 했다.

“데카드에게 말해 보자.”

그라면 반드시 해답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엘리스는 숙소로 엠페러를 들고 뛰어갔다.

한편 여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따뜻한 이불 속에 콕 박혀있는 남자가 있다.

“아아, 어제 먹은 거 치워야 하는데.”

“제가 나가봤는데 이미 누군가 치우고 난 후였습니다.”

“그래?”

“아마도 엘리스가 치운 것 같더군요.”

데카드의 머릿속에 순간 주마등처럼 어제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어제 일 기억할까?”

“흐음…….”

짹짹이는 어제의 엘리스를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그 물이랑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액체를 조금 마셨다고 사람이 그렇게 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안 하는 게 나아 보입니다.”

“그렇지? 나도 내가 어제 그랬으면 차라리 누가 내 머리를 세게 쳐서 기억 상실이 걸리길 기도했을 것 같아.”

데카드가 침대에서 일어나며 자리를 정리하고 짹짹이를 입으려는 그때, 문을 벌컥 열고 엘리스가 돌아왔다.

“왔어?”

데카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평소처럼 엘리스에게 인사를 건넸고 그녀는 원래 하려고 준비했던 말을 다 까먹고 입을 달싹였다.

그리고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한 가지 일이 그의 입술로 시선이 향하며 함께 떠올랐다.

‘내, 내가 데카드랑…….’

자신이 침대에서 완전히 잠들기 전에 데카드를 끌어와 입맞춤을 했던 게 이제야 기억이 났다.

갑자기 사과의 선물로 준비한 엠페러가 너무나 부족해 보이기 시작했다.

동의도 없이 그냥 힘으로 입을 맞췄는데 얼마나 당황스럽고 불쾌할까.

“손에 든 건 뭐야?”

엘리스의 손에 들린 봉지에서 아까부터 진하고 달콤한 향기가 흘러나와 좁은 방을 가득 채우다 못해 젖고 있었다.

얼굴이 시뻘개진 채로 봉지를 급하게 감춘 엘리스는 데카드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열나는 거 아니야? 얼굴이 너무 빨간데?”

데카드가 가까이 다가와 손으로 엘리스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엘리스는 데카드가 지금보다 더 자신을 만지게 된다면 심장이 터질 것 같아 뒷걸음질 치며 양손으로 든 엠페러를 내밀었다.

“어, 어제 일은 죄송했어요!”

“어제 일? 그거 가지고 아침부터 선물을 사온 거야?”

엘리스가 내민 봉지를 받아 들은 데카드는 책상에 올려 포장을 뜯어 보았다.

“오오! 케이크네!”

그것도 굉장히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극상의 조각 케이크였다.

“마, 맘에 드세요?”

“물론이지!”

포장 안에 든 플라스틱 포크로 살짝 찌르자 케이크가 부드럽게 잘려 나가며 탱글탱글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대로 입 쪽으로 직행한 케이크는 거품처럼 데카드의 혀에 닿자마자 녹아 사라졌다.

“진짜 맛있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정색할 정도로 케이크의 맛은 환상 그 자체였다.

구름을 씹는 것 같이 부드러웠고 빵은 ‘침대는 과학’이라고 부르짖는 그 회사의 침대처럼 푹신했다.

“엘리스도 먹어 봐!”

“이건 제가 잘못해서 사 온 건데 어떻게 제가 먹어요.”

“안 먹으면 용서 안 해준다?”

“네?! 그건 안 돼요!”

엘리스의 잠잠하던 눈이 동그랗게 변하고 토끼처럼 화들짝 놀란 모습에 데카드가 푸흡 하고 웃음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집어 넣었다.

“그러니까 어서 먹어 봐. 진짜 혼자 먹기엔 아까워서 그래.”

“그럼 조금만 먹어볼게요.”

데카드가 준 포크를 받아들고 엠페러를 조금 자른 엘리스는 앙 하고 포크를 물었다.

순간 몸에 퍼진 전율과 소름에 엘리스는 그 맛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기 위해 씹는 것도 멈춘 채 계속 혀를 굴렸다.

“진짜 맛있네요…….”

똑같은 둘의 반응에 식탐 많은 마수들이 안에서 길길이 날뛰었다.

[마수왕님! 티이라도 한 입만!]

[크흠…… 이 고오른도 한 입만 먹도 되겠습니까?]

[이 돼지들아! 너흰 많이 먹었잖아!]

[…….]

‘알았으니까 너희 전부 나와 봐.’

안에 있던 마수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오자 두 명이서 잘 수 있게 딱 짜인 방이 순식간에 좁아졌다.

“가위바위보 해서 순서 정한 다음에 너희끼리 다 먹어.”

“알겠습니다!”

“네! 마수왕님!”

좁아진 방을 피해 데카드와 엘리스는 잠시 숙소 바깥으로 나와 바람을 쐬었다.

“응? 뭐가 새로 생겼네?”

숙소 건물 외벽에 붙은 게시판에 새로 붙여진 공고문을 확인한 데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이거?”

“아, 방에 오면 말씀드리려 그랬는데 마탑에서 저런 측정을 해야 하나 봐요.”

“자기들이 뭔데 날 평가해.”

데카드의 입장에선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선배를 몰라보고 반말이나 찍찍 싸대는 후배 새끼들도 그렇고 이 공지문에 쓰인 한 이름 때문에 더욱 기분이 잡쳤다.

“진저백.”

“저번에 길에서 마주쳤던 그 교수 말인가요?”

“그래.”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지만, 왠지 이 측정은 데카드 자신을 겨냥하고 만들었다는 의도가 물씬 느껴졌다.

저번 마탑의 2학년생들과 대련을 시킨 것도 그렇고, 진저백에게는 웃는 얼굴 뒤에 데카드를 향한 무언가가 있었다.

“원한…… 인가?”

하지만 자신은 그 진저백이란 놈을 처음 봤다.

얼굴은 1000년이 지나 까먹을 순 있어도 진저백이란 이름은 정말 처음 들어봤단 말이다.

데카드의 눈에는 측정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도 전부 억지에다가 좋은 말은 전부 갖다 붙인 걸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마탑의 용병들이 해야 한다고 하니 할 수밖에 없었다.

“그까짓 거 해주지.”

마탑의 3학년생이 측정 상대라면 마수들의 무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힘들어질 수 있긴 했다.

마탑의 3학년쯤 되면 거의 프로 마법사들도 웬만해선 찍어 누르고, 자신의 스타일과 길을 확립했을 때라 잡기술도 잘 통하지 않는다.

이론과 실전이 적절하게 조합되어 만들어지는 게 마탑의 3학년.

평균 서클도 5서클 정도로 데카드보다 더 높다.

아무리 데카드라도 마수들의 힘을 직접 빌리지 않는다면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상황 봐서 하면 되겠지.”

옛날에 자신은 그 흉흉한 3학년들 속에서도 전투력 톱을 찍었던 남자다.

“오랜만에 건방진 후배 놈들 기강이나 한번 잡아야겠네.”

마수들의 무기를 꺼내면 살짝 곤란해지지만 질 생각 따윈 없었다.

자신은 그렇게 넘어간다 해도, 문득 옆에 있는 엘리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괜찮겠어?”

“측정이요?”

“어.”

아무리 갈까마귀 암살단원 조장이라고 하나 마법사도 아닌 엘리스에게 3학년생들은 솔직히 어려울 수 있었다.

그것도 암습을 할 수 없는 탁 트인 평가장에서라면 더더욱.

“잘 모르겠어요.”

엘리스는 마탑의 3학년생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측정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러고 보니 공지문에서는 실패 시 어떤 조치가 이루어진다는 문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측정 기준 또한 적혀있지 않았는데 데카드는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마 통과하지 못한다고 특별한 처벌이 있지는 않을 거야.”

“왜요?”

“이건 그냥 날 엿 먹이려고 만든 것 같거든.”

“데카드를요?”

데카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다가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희는 적당히 처발리지만 않아도 통과할 거고 나한테만 아주 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기준을 들이밀 거라고.”

“하지만 데카드는 그것도 통과하겠죠?”

엘리스는 신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데카드를 보았다.

자신을 주머니에서 꺼내주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믿음을 저버린 적 없었고 약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은 남자였다.

“당연하지.”

[마수왕님! 저희 왔어요! 저 없는 사이에 암컷이 막 들이댄 건 아니죠?]

[케이크 맛있다!]

[너무 달아서 이 고오른의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

측정 날짜는 다음 주 월요일.

다른 데로 빼지도 못하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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