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드라운드의 미궁
“뭐가 있다고?”
“문 같은 게 있는데요?”
“문?”
호수 밑바닥에 웬 문이란 말인가.
문이라면 누가 살고 있기라도 하다는 거야?
그렇게 생각한 데카드는 호수 근처에서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요르가 가리킨 호수 밑바닥을 보기 위해 눈을 크게 떠봤지만 보이지 않아 볼 수 없었다.
“들어가 보긴 해야겠네.”
문의 정체에 대해선 뭔지 감이 어느 정도 잡혔지만 그래도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소환!”
푸르르-
4서클 물 속성 마수인 오비탈 스퀴드를 호수 속에 소환했다.
보통 오징어와 다르게 몸집도 훨씬 큰 스퀴드는 데카드가 물에 젖지 않고 호수에 들어갈 수 있게 커다란 공기 방울을 만들어주었다.
“읏차.”
방울 안에 들어오자 물 안에서 숨도 쉴 수 있었고 움직이는 건 스퀴드가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었다.
“저건가?”
“네, 맞아요!”
어느새 방울에 들어온 마수들이 데카드의 주위로 몰려들며 문을 바라보았고 짹짹이가 의심스러운 듯 말했다.
[저게 주인님이 말씀하시던 미궁 아닙니까?]
사람을 상대로 만든 것은 아닌 듯 입구가 커다랗게 뻥 뚫려있으며 돌로 장식돼 있었다.
“맞아.”
그럼 여기서 선택지가 나뉜다.
첫 번째는 위험을 감수하고 안으로 들어가서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보물을 얻어낼 것인가.
아니면 마탑에 미궁이 있다는 신고를 하고 포상금을 챙길 것인가.
두 가지 답 중 데카드가 무엇을 고를지는 너무나 뻔했다.
“보물은 못 참지!”
데카드는 그대로 방울을 굴려 호수 밑바닥에 있는 문까지 도달했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네?”
이 정도 문의 크기면 안까지 물이 들어차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데카드의 곁에 있는 마수들도 처음 보는 미궁의 모습에 신기해했다.
“여기에 그 몬스터라는 것이 살고 있다는 거군요!”
고오른은 몬스터라는 것들을 전부 재로 만들어버릴 생각에 기뻐했고.
“몬스터! 먹어도 되나?”
티이라는 배가 고팠다.
“…….”
레오는……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마수왕님, 이 안에 어떤 몬스터가 있나요?”
요르가 미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데카드에게 질문을 했다.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위험한 몬스터는 없을 거야.”
위험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미궁이라면 뿜어내는 사특한 기운들이 장난 아닐 텐데 이곳은 엄연히 마탑과 가까운 곳이었다.
그렇기에 위험한 몬스터들이 있다면 마탑의 인원들이 느끼지 못하고 정리를 안 했을 리 없다.
그러니 이곳은 데카드가 들어가도 충분히 상대할 만한 몬스터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
“들어가자.”
안으로 들어가자 데카드의 예상대로 어느 순간부터 물이 없어지고 숨을 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해양 몬스터는 아닌가 보네.”
오비탈 스퀴드는 이쯤에서 역소환하고 방울에서 나온 일행들은 미궁의 복도를 천천히 걸어갔다.
마수들은 복도도 넓고 해서 데카드의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 나와 있는 상태였다.
“안이 꽤 넓습니다!”
지금 코트로 변해 있는 짹짹이를 제외하면 데카드와 마수들을 비롯해 다섯이 지나가고 있는데 복도는 아직 넓었다.
찌직-
여기 안까지는 어떻게 들어온 건지 쥐들이 사람을 보고 구석에 있는 구멍으로 숨어들었다.
“케에엑-!”
“케엑-!”
잘 걷던 와중에 갑자기 목젖을 철 수세미로 갈아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몬스터 두 마리가 겁 없이 달려 들어왔다가 멈칫했다.
“드라운드네?”
생김새가 꼭 물에서 익사한 사람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마디로 끔찍하게 생겼다는 뜻으로 보는 사람마다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외형을 하고 있다.
“마수왕이시여! 죽여도 됩니까?”
“미궁만 부수지 말고 마음대로 날뛰어.”
맨날 안에서 데카드에게 마나만 나누어 주다가 드디어 몸을 쓸 기회가 생긴 마수들은 짹짹이를 빼고 너도나도 드라운드에게 달려들었다.
“케엑?”
괜히 소리를 듣고 제일 먼저 달려왔다가 비명도 지르지 못 한 채 한 줌의 핏물로 돌아가고 말았다.
“후우! 이 정도로는 아직 몸풀기도 되지 않습니다!”
“내가 치려고 한 걸 뺏어놓고 그런 소리가 나오냐!”
“티이라! 아쉽다!”
“…….”
레오도 손맛이 못내 아쉬운지 양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었다.
“이 드라운드 말고도 안에 들어가면 많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미궁이 괜히 미궁이겠는가.
길이 미로 같고 까딱하면 미아가 될 수도 있어서 미궁이란 말도 있지만 몬스터들의 집이자 레어이며 안식처다.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몬스터는 많아질 테니 마수들의 굶주린 전투 본능을 마음껏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부하들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열의가 넘치는데 상사로서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이다.
“소……!”
데카드가 소환 마법을 펼치려는 찰나 레오가 다가와 데카드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진중한 눈빛을 마구마구 보내왔다.
1000년의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던 건지 이제는 레오의 눈빛을 보면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혔다.
“싸우지 말고 가만히 쉬고 있으라고?”
끄덕끄덕-
“레오의 말이 맞습니다! 요즘 마수왕님은 너무 과로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쉬어라! 마수왕님! 싸운다! 우리가!”
“그래요! 마수왕님은 지금 휴식을 취해야 해요.”
데카드가 마수계에 있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건 맞다.
그때는 9서클에 오르고 수련만 하다가 잠을 자는 과정을 반복했으니까.
그렇기에 그들의 눈에는 지금 데카드가 과로로 쓰러질 것만 같은 것이다.
“알겠어. 뒤에서 따라만 갈게.”
그제야 레오는 눈을 치우며 다시 앞으로 마수들과 전진했다.
[주인님의 게으른 모습이 이럴 때는 득이 되는군요.]
‘……나 정도면 엄청 부지런하거든?’
지나가던 아이언 독이 코웃음을 치고 지나갈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 데카드는 다시 마수들의 호위를 받으며 미궁을 뚫어갔다.
“으랴! 더 와라! 더!”
“티이라! 재밌다!”
육체파인 티이라와 고오른은 개인의 마법을 쓰지 않고 오직 육체의 힘으로 드라운드를 비롯한 몬스터들을 분쇄해 나갔다.
파직-!! 콰지직-!
뼈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미궁을 울렸고 몬스터들의 두개골을 마지막으로 모든 뼈가 부서졌다.
“다음은 누구냐!”
“케헤헥-!”
아직 몬스터들은 많이 남아있었다.
보스 몬스터에게 가기 전까지 항상 이렇게 잡스러운 것들이 발목을 잡고 끌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언제 다 죽일래!”
요르도 물론 가진 육체적 힘은 둘 만큼이나 뛰어나지만 그런 것보다는 실용성 있는 마법을 훨씬 선호한다.
“후우!”
요르 특유의 맹독이 섞인 얼음 입김이 뿜어져 나오자 몬스터들은 얼어 죽거나 독에 중독되어 죽어버렸다.
“레오가 싸우는 건 또 오랜만에 보네.”
데카드가 이렇게 말할 만큼 레오도 마수계에서는 어지간한 잠꾸러기였다.
자는 걸 좋아하고 그것이 거의 일상일 만큼 많이 자서 레오의 싸우는 모습은 정말 희귀했다.
마수들이 서로 대련할 때나 몇 번 봤었지 그때 말고는 아예 눈에다가 접착제를 붙여놓은 것처럼 잤기 때문이다.
서걱-! 스걱-!
깔끔한 절삭음과 함께 몬스터들의 머리가 허공에서 춤을 추며 날아가고 있었다.
빛으로 만들어진 황금색의 장검은 벨린다처럼 마검사인 레오의 주 무기다.
마수계에서는 당연히 검술을 가르쳐줄 사람도, 교본도 없어 인간계에 갔다 온 마수들을 붙잡고 심문을 해 그들의 검술을 베껴왔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고 거쳐 정립해 낸 게 레오만의 독립 검술, 사자왕검이다.
“…….”
레오가 움직일 때마다 빛이 만들어내는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고 검은 하나에서 두 개로 어떨 때는 세 개로 늘어나며 몬스터들을 도륙해 냈다.
“길은 내가 찾을게!”
이제는 슬슬 길이 갈라지고 있어서 마수들의 마음대로 갔다간 미아가 되기에 십상이다.
“이것도 나름의 공식이 있단 말이지.”
집행관으로 살아오면서 흑마법사와 미궁, 흑마법사가 사는 미궁을 다양하게 격파해 본 경험이 있는 데카드에겐 요령이 있었다.
“길은 세 갈래로 나뉘네.”
지금까지는 하나의 복도로만 왔다면 지금은 총 세 개의 복도가 새로 생겼다.
“소환.”
잘못된 길이라면 중간에 막혀있거나 아니면 기상천외한 함정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이 중 하나는 무조건 보스에게 이어주는 활로가 있다.
치익-!
슬레이에서 한 번 소환해 봤던 스파이더즈가 한 마리씩 실을 한 줄로 길게 뿜어내며 복도로 달려갔다.
“이렇게 하면 세 마리 중 한 마리만 살아남을 거야.”
소환사이기에 할 수 있는 요령이자 미궁에서 자신이 유리한 이유였다.
“대단해요! 마수왕님!”
“그냥 다 부술까 생각했었는데 이런 방법도 있군요!”
마수들도 그의 잔머리에 감탄하며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른쪽과 중앙으로 가던 스파이더즈들의 신호가 끊겼다.
“길은 왼쪽이야!”
이런 방식으로 계속 길을 통과하면 적어도 길을 잃어서 헤매다가 아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시 몬스터 떼가 몇 번을 덮치고 늘어난 길들을 다시 마수들로 통과하자 전에 없이 훨씬 넓은 방이 일행을 맞이했다.
“저놈인가 보네.”
외형은 지금까지 봐 왔던 드라운드와 비슷하지만, 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고 머리에는 썩은 해초로 만든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왕관……?”
이 미궁의 보스는 드라운드 킹.
모든 인간을 자신과 같은 익사체로 만들고 싶어 하며 그렇게 해서 만든 모든 드라운드들의 통솔자다.
한 종족의 왕은 꽤 희귀한 개체로서 강한 면모를 보이는데 데카드 혼자 왔다면 긴장을 해야 했을 만큼 강단이 있는 상대다.
하지만 소환사는 혼자인 듯 보이나 혼자가 아니다.
언제나 든든한 마수들이 앞과 뒤를 보호해 주었고 지금은 그런 마수들이 분에 넘칠 만큼 있었다.
“놈의 삼지창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게 조심해.”
저 몬스터의 삼지창에는 닿으면 잠수병을 인위적으로 걸리게 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
드라운드 킹 본인이 아니라면 다루지 못하는 물건이기에 저 삼지창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다.
지금 굉장히 탐스러워 보이는 것은 드라운드 킹이 앉아있던 옥좌 옆에 있는 상자.
저 안에 미궁에서 주는 보상이 있으리라.
“가자!”
“네!!”
“네!!”
마수들이 전투 모드에 들어가며 방 안으로 달려들자 드라운드 킹이 창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방구석에 있던 물웅덩이에서 드라운드들이 튀어나오며 마수들과 데카드를 둘러싸 포위했다.
“후훗! 겨우 이 정도로 이 고오른이 겁낼 것 같으냐!”
고오른은 그대로 양팔에 뜨거운 불꽃을 둘러 직접적인 타격의 피해를 증가시켰다.
파앙-!!
고오른의 주먹에 맞은 드라운드들은 그대로 몸이 터져나갔고 맞은 부위는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너는 멍청하게 물 속성 애들 앞에서 불을 쓰고 앉아있냐?”
비교적 물 속성 우위에 있는 얼음 속성의 요르는 고오른의 전투 방식을 보며 혀를 차고 그대로 허공을 사선으로 그었다.
쩌저저저적-!!
그러자 수분으로 촉촉한 드라운드들의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고 살짝만 건드리자 모두 와장창 깨져나갔다.
“티이라! 재밌다!”
땅 속성과 강철 속성의 티아라는 강체화라는 마법을 사용해 몸을 딱딱하게 만들었다.
“케헥-!”
후방이 빈 티아라를 급습한 드라운드도 있었지만, 그 결과는 좋지 못했다.
와작-!
드라운드의 이빨이 강체화로 딱딱해진 티이라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턱까지 부서진 것이다.
“티이라! 딱딱해! 딱딱해!”
뛰어난 갑옷은 뛰어난 무기가 되기도 하는 법.
티이라는 강체화로 단단해진 주먹을 사용해 드라운드들을 망치로 두들기듯 다진 고기로 만들어주었다.
“안 되지! 안 돼!”
한편 데카드도 짹짹이와 함께 드라운드들과 싸우는 중이었는데 갈까마귀 암살단의 암기술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쓰면 쓸수록 암기술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날아간 깃털들은 처음에는 단 하나도 드라운드를 조준한 게 없었지만, 방향을 세심하게 틀어주면 모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날아오는 필살의 암기가 된다.
“…….”
구석의 드라운드를 처치하던 레오는 요르처럼 물 속성에게 유리한 번개 속성을 품고 있었다.
그의 검은 황금색 광전으로 변하며 어두운 방 안을 밝게 비췄다.
콰지지지-
전류가 서로를 잇고 이어서 전부 튀겨버리는 체인 라이트닝이 유감없이 드라운드들에게 들어가며 바짝 익은 고기가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혼자 고고하게 옥좌에 앉아있는 드라운드 킹 하나.
“야! 한판 뜨자!”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