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근무하면서 노는 법
“저 사람은 누구예요?”
“마탑의 교수.”
엘리스는 멀어져 가는 교수를 보며 곱지만은 않은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둘은 잠깐 방해꾼같이 나타난 교수는 잊고 도시를 오후 동안 돌아다니며 관광객처럼 실컷 구경했다.
용병들의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마탑 학생들도 기숙사로 전부 돌아갔을 시간인 밤 10시.
마수들이나 엘리스에게도 마탑의 소개해 주고 싶은 명물이나 맛집들이 많아 전부 돌아보니 어느새 이렇게 시간이 늦어버렸다.
“내일부터는 그래도 일을 조금씩 해야 하니까 잘 쉬고 내일 보자.”
“네, 데카드도 잘 자요.”
루비아의 여관이었으면 이쯤에서 서로 다른 방으로 갈라져 침대에 누웠겠지만, 지금은 같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다.
“크흠…….”
데카드는 헛기침을 하며 입고 있던 짹짹이를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두고 간단하게 외투나 그런 것만 벗은 후 침대에 누웠다.
[방이 왜 이렇게 좁은 거야!]
[이곳엔 이 고오른 한 명만 나와도 꽉 차겠습니다!]
[차라리! 넓다! 마수왕님 안쪽이!]
[…….]
방이 더 넓었으면 마수들을 불러서 같이 눕는 건데 쓸데없이 싱글 사이즈 침대에다가 정말 필요한 정도로만 있는 방 크기였다.
“엘리스, 자?”
“아, 아직 안 자요.”
바로 위에서 엘리스의 떨리는 대답이 들려왔다.
“그냥 궁금해서.”
이렇게 2층 침대에서 누군가와 함께 잔 적은 처음이라 뭔가 색다른 기분에 불러보았다.
“커어어…….”
약간의 어색함도 있었지만 그런 것과 무관하게 데카드는 여전히 잘 잤고 위에 있는 엘리스만 몸을 웅크리며 밤새 떨림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
* * *
“자, 모두 모이셨습니까?”
“네!”
“네엡!”
저번에 숙소 앞에서 모이기로 했던 시각인 아침 여덟 시에 용병들이 인원 체크를 받고 있었다.
“괜찮아, 엘리스?”
드러나는 엘리스의 얼굴에 다크서클도 조금 내려와 있고 피곤하고 졸린 듯 수척해 보였다.
“그냥, 어제 잠을 잘 못 자서…… 헤헤.”
“잠을 잘 못 자?”
데카드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잠을 잘 못 자다니…… 거의 말세에서나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할 것이다.
데카드가 이런 잡생각을 하는 동안 팀장인 제이미는 오늘 팀이 수행해야 할 업무가 담긴 파일을 가져왔다.
“어디 보자…… 오늘은 서남쪽 구역을 저희가 순찰하면 되네요.”
“또 순찰이야?”
집행부에서 용병으로 뛸 때 툭하면 했던 게 순찰이었던지라 데카드는 순찰이 참 귀찮고 힘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 서남쪽을 다섯 개로 쪼개서 한 명당 한 개씩 맡기로 하는 게 어때요?”
“으음! 좋은 것 같소!”
볼텍이 제이미의 의견에 찬성하고 각자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건지 다른 사람들도 크게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데카드도 혼자 다녀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맡겨만 주십쇼!”
내가 아마 제일 잘할 거다! 이놈들아!
데카드의 감춰진 실력을 맛본 제이미, 볼텍, 빅터는 뭔가 걱정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데카드의 얼굴에서는 긴장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후우…… 그럼 일단 저희끼리 서남쪽으로 출발하죠.”
제이미는 한숨을 한 번 짧게 쉬며 오늘 순찰할 구역인 서남 방향으로 출발했다.
마지아 섬 전체를 순찰하는 게 아닌 도시 구역만 순찰하면 되기에 혼자 다니면 꿀도 빨고 재미도 있을 것이다.
데카드는 지금 자신이 가는 방향에서 어떤 놀 거리가 있을지 떠올리며 실실 웃고 있었다.
“이쪽부터 이제 서남쪽이에요.”
아직 학생들이 없어 여전히 텅 빈 도시의 거리는 데카드 혼자만의 놀이터다.
“그럼 이제 순찰을 시작할까요?”
이 넷 중에서 유난히 기뻐 보이는 표정으로 밝은 데카드의 말에 제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중에 숙소에서 봐요.”
“네! 엘리스도 나중에 보자!”
“조심하세요.”
마탑에 처음 들어온 용병들을 위해 본인의 위치를 표시해 주는 지도의 모습을 한 마도구를 지급받았으니 엘리스가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종종걸음으로 뛰며 자신이 오늘 순찰할 구역으로 온 데카드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짹짹이의 힘을 꺼냈다.
까악- 까아악- 까악-
까마귀들이 코트가 펄럭일 때마다 한 마리씩 나오며 30초 정도가 지나자 건물의 옥상 하나를 까마귀들이 덮을 만큼 무리를 형성했다.
“나 대신 너희가 일 좀 해라!”
까마귀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데카드의 순찰 구역을 바쁘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역시 소환사는 이런 게 편해!”
이 정도 수준까지 오기에는 힘이 들지만 오기만 한다면 힘든 건 마수한테 맡기고 자신은 그저 탱자탱자 놀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돈까지 벌 수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월급 루팡.
“이 근처에 젤라토 가게가 있대! 얘들아!”
마탑에서 나눠준 마도구는 지금 그저 데카드의 맛집 탐방 지도로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데카드가 이렇게 마수들과 한창 디저트 타임을 즐기고 있을 때 마지아 섬 주변 해역에서는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내려준 마지막 기회다. 어서 움직이도록.”
“예! 알겠습니다!”
이곳은 깊고 깊은 바닷속.
어딘가에서 본 듯한 익숙한 얼굴의 흑마법사들이 거대한 바다 괴물의 사체를 앞에 두고 무릎을 꿇은 채 이상한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이놈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 괴물의 이름은 크라켄.
표면적인 모습은 문어지만 거대한 상선도 단숨에 부서뜨리고 잡아먹을 만큼 매우 커다란 괴물이다.
이 괴물을 찾고 죽이느라 그들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흔들어질 정도다.
“이걸로 섬을 뒤흔들고 코흘리개들을 납치해 간다.”
흑마법사들이 직접 섬 안으로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이런 괴물들로 먼저 사전 작업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마탑의 교수들이 하나같이 뛰어난 실력자라고는 하나 이 크라켄은 피부에서 항마력이 있는 진액을 내뿜기 때문에 마법 방어력이 매우 높다.
이 정도의 S급 시체를 가지고 펼치는 작전에 실패한다면 이미 유물 사건에서 한 번 찍힌 이상 이다음의 기회는 없다.
자신이 아는 그분은 그렇게 자비롭지 않으셨다.
“그 소환사놈…….”
정체불명의 건틀렛을 장착할 때 전혀 그렇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마수들을 소환할 때와 같은 형태의 마나가 느껴졌다.
“그런 소환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약한 마법사와 약한 마수라고만 생각했거늘.
‘다음에 만나면 꼭 산 채로 몸을 하나하나 썩게 만들어주겠다.’
늙은 흑마법사의 차가운 복수심이 안 그래도 추운 바닷속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으음? 누가 내 얘기하나?”
달콤한 젤라토를 맛나게 핥으며 거리를 걷던 데카드가 순간 간지러워진 귀를 후비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인님을 노리는 자가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짹짹이가 조용히 한마디를 덧붙이자 데카드는 그런가? 하고 생각하며 곧 이해했다.
갈까마귀 암살단과 흑마법사들 그리고 잠재적으로 적이라 할 수 있는 바이퍼와 썩은 쥐까지.
이런 거물들이 주목할 정도로 의도치 않게 많이 나대며 살았다.
“어쨌든 내 잘못은 아니라고.”
세상이 데카드를 싫어하다시피 이런 거지 같은 시련을 던져주는데 자신은 그걸 자기 식대로 풀어나간 것뿐이다.
[그냥 피해 가는 방법도 있지 않았습니까?]
“아아! 몰라! 아무튼 그런 거야!”
젤라토의 바삭한 콘 부분까지 깔끔하게 먹어준 데카드는 걷다 보니 도시의 끝부분까지 오게 되었다.
“너무 많이 걸었나? 여기까지 와버렸네.”
도시 바깥으로 나가면 숲이 나오는데 그곳은 아직 뭐가 있을지 모르는 미개발 지대다.
[저 바깥에는 뭐가 있는데요?]
“저기 바깥? 나도 몰라.”
이곳 마지아 섬은 마탑을 어느 나라의 땅에도 세우기 싫다는 초대 총장의 고집으로 찾아낸 섬이다.
처음 발견한 섬은 당연히 어떤 인간의 영토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섬에다가 마탑을 짓기만 하면 끝인 줄 알았으나 미궁들이 정말 많은 몬스터 소굴이었다.
미궁은 미로 같은 길에 까딱하다간 길을 잃고 객사할 수 있으며 안쪽에서 사는 괴물들도 만만치 않았다.
집행관들의 임무에는 미궁 토벌도 있기에 데카드는 이쪽 방면에서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마탑 애들이 미궁 치운다고 엄청 바쁘게 뛰긴 했는데 혹시 모르지? 아직 남아있을지도.”
미궁의 보스 몬스터를 죽이면 그와 동시에 미궁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보상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보상이 또 달콤하기는 했지.”
언젠가 미궁을 부수고 보석이나 금화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그것이 이 젤라토보다 훨씬 달달했었다.
“한번 가볼까?”
이곳에 더 있다고 할 일도 없고 까마귀들이 순찰을 해주고 있으니 자신은 관심 가는 일만 하면 됐다.
데카드는 그대로 도시를 벗어나 미개발 지역 숲으로 들어섰다.
현대 문명의 상징과도 같아 보였던 마탑의 도시에서 멀어지자 이곳이 정말 야생의 숲이라는 게 바로 느껴졌다.
“이렇게 온도 차이가 심할 수 있나?”
도시와 숲 간에서 생기는 기분의 온도 차도 분명 있었지만 도시 안쪽은 선선한데 이곳은 찌는 듯이 더웠다.
아마도 도시를 덮고 있는 마력 결계가 햇빛까지 조금 차단해 주었던 것이 이유인 듯하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얼음 성질의 마나를 가진 요르가 마나를 순환 시켜주자 무더운 여름날 얼음 팩을 이마에 올린 듯 순식간에 몸이 시원해졌다.
“고마워, 요르!”
[마수왕님의 칭찬…… 히히.]
그렇게 데카드는 한 20분 정도 풀들을 가로지르며 숲을 걸어 다녔다.
“역시 이미 다 처리하고 없나?”
조금 더 숲을 돌아보며 아쉬워하던 그때 데카드의 코로 물 냄새가 흘러들어 왔다.
“호수인가?”
이렇게 사람이 맡을 정도로 강한 물 냄새를 풍기는 것이면 작은 개울은 아닐 것이다.
“이 섬이 또 자연 경관은 끝내주거든.”
어디서 뭘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그림일 만큼 자연의 모습이 아름다워서 사진가들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오고 싶어 하는 게 마지아 섬이다.
그렇게 점점 강해지는 물 냄새를 따라가자 아니다 다를까 커다란 호수 하나가 나왔다.
“야아! 여기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었나?”
마탑의 재학생 때는 도시 바깥으로 나가면 교칙 위반이라 조금은 자중했어도 나름 많이 숲을 쏘다녔는데 이런 호수는 처음 보았다.
깨끗한 색깔의 물과 잔잔한 표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끔 물고기들도 입을 뻐금거렸다.
“와아! 호수 물이 엄청 깨끗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수영이나 한번 하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
근처에 사람도 없겠다, 마수들은 바깥으로 튀어나와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 차갑다!”
티이라는 호수에 한 번 손을 집어넣어 보고 바로 올라오는 오한에 멀찌감치 떨어졌다.
“후후! 이 정도는 그냥 들어가 줘야 남자지!”
고오른은 물이 차갑고 어떻고 전혀 상관없다는 듯 몇 번의 도약으로 점프해 호수까지 다이빙했다.
첨벙-!
고오른 같은 거구가 다이빙을 하자 물보라가 커다랗게 일며 잠잠하던 호수가 시끄러워졌다.
“하핫! 시원합니다! 마수왕님!”
“그래그래.”
마수들이야 몸이 젖든 말든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어 상관없었지만 데카드는 축축해서 찝찝한 건 싫었다.
그래서 호수 바깥에 앉아 마수들이 노는 걸 부모처럼 지켜보았다.
“어어? 마수왕님! 여기 밑에 이상한 게 있어요!”
요르가 호수 아래에서 사람이 들어갈 만한 입구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외쳤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