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61화 (61/208)

061 섬에서 생긴 일

지금은 마탑의 점심시간이라 학생들도 밥을 먹기 위해 도시로 나온 듯하다.

학생들은 갑자기 또래로 보이는 훤칠한 외모의 둘이 들어오자 먹던 감자튀김도 내려놓으며 그들을 관찰했다.

“시선이 부담스럽네.”

그 시선들을 피해 창가 구석에 자리를 잡은 데카드와 엘리스는 메뉴판을 펼쳐 들었다.

“저 사람들이 오늘 온다는 용병인가?”

“용병할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본인들 생각으로는 귓속말로 속닥거리며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엘리스의 청각은 일반인의 범주를 넘어섰기에 소용없었다.

“저희에 대해서 말이 많네요.”

데카드도 굳이 듣고 싶지 않아서 흘려보냈지, 주변이 온통 자신들 얘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이곳이 좀 폐쇄적인 곳이라 뉴페이스 한 명 들어오면 이렇게들 신나 해.”

방학이 아니면 섬을 나갈 수 없는 학생들이라 새로운 것을 보면 다들 관심이 쏠리게 되는데 그것도 며칠이다.

마탑에 용병이 들어온 건 굉장히 오랜만이라 학생들이 신기해하는 거지 곧 있으면 잠잠해진다.

그렇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둘에 대한 말에 엘리스는 후드라도 써야 하나 고민 중인 것 같았다.

“괜찮으니까 우린 메뉴를 고르면 돼.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그냥 내 뒤에 있어.”

“네, 네…….”

저 한마디가 왜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것인지 엘리스는 커다란 메뉴판으로 붉어지기 시작하는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으음…… 나는 치즈 버거 세트.”

데카드는 치즈 버거를 고르고 그 안에 들어갈 토핑까지 체크를 완료했다.

“엘리스는?”

“저는 연어 버거로 할게요.”

안에 고기패티 대신 연어가 들어간 연어 버거는 부드러운 연어의 속살과 그와 어우러지는 소스 그리고 그와 대비되는 바삭한 빵이 일품인 메뉴다.

띵동-

벨을 누르자 여타 가게처럼 종업원이 나와서 주문을 받았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까 둘이 어떤 햄버거와 토핑을 먹을지를 체크한 전용 종이를 종업원에게 넘겨 주면 주문 끝이다.

기다리는 동안 데카드는 창문 밖에 보이는 마탑을 바라보면서 사이다를 쭈욱 빨았다.

“하나도 안 변했네.”

데카드가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던 마탑은 그의 체감상 100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흔들림 없이 건재했다.

“저 탑에 추억이 많으신가요?”

“추억까지는 없고.”

뼈 빠지게 공부만 하느라 추억이라 부를 만한 건 없어도 나름대로 정은 들었던 곳이다.

그렇게 데카드가 창문 너머를 계속 보고 있을 때 사람들이 보기 힘든 골목으로 한 무리에게 안경을 쓴 누군가가 잡혀가고 있었다.

“불쌍하다.”

“그러니까 왜 하필 저놈 패거리에 찍혀가지고.”

조금 전 무리와 끌려가는 남자 모두 마탑의 교복을 입고 있는 걸로 보아 학생 같은데 방금 그 모습은 전혀 놀러 가는 게 아니었다.

“요즘도 왕따 같은 게 있어?”

세상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근본적으로 썩어있는 것은 바뀌지 못했나 보다.

“왜 그러세요?”

메뉴판의 다른 음식들을 보던 엘리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카드를 보며 물었다.

“잠깐만 여기 있어.”

처음 보는 사람을 굳이 도와줘야 하는 의무는 없으나 그래도 살짝 옛날 생각이 나서 그의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딸랑-

햄버거집의 문을 연 데카드는 방금 먹은 탄산으로 올라오는 트림을 뱉으며 아까 그들이 들어간 골목으로 향했다.

“어딜 나대고 있어!”

“마탑이 그냥 지 거인 줄 아나!”

학생들이 아까 잡아온 안경 쓴 학생을 발로 걷어차며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에휴, 양아치 새끼들.”

데카드는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조용히 짹짹이의 힘을 사용했다.

[은밀하게 하시려는 겁니까?]

‘얼굴 알려져서 좋을 건 없거든.’

지금 자신은 용병의 신분이기에 마탑의 재학생에게 손을 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은 꼴은 보지 못한다.

[그럼 최대한 어둠을 전개하겠습니다.]

데카드가 4서클에 오르면서 더욱 강력해진 짹짹이와 마수들의 힘은 확장 공사를 마친 마나룸을 양껏 열어젖혔다.

고오오-

“뭐, 뭐야 저거!”

원래도 어두웠던 골목이었지만 그래도 하늘을 바라보면 푸르렀는데 지금은 이 골목 자체가 커다란 어둠에 감싸져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인 학생들은 말 그대로 괴물 같은 양의 마나를 뿜어내면서 다가오는 어둠의 존재를 보았다.

“흐, 흑마법사인가?”

“흑마법사가 저런 깨끗한 마나를 어떻게 내!”

한 학생의 말을 완전히 씹어버린 다른 학생은 저 정체 모를 것의 등장으로 일이 완전히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어느 정도 해볼 만하다고 보이면 싸움이라도 걸어보겠는데 자신들의 수준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사이즈였다.

이런 위압감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단 말인가.

최소 마탑의 교수급인 것이 틀림없다.

‘팔다리 하나씩은 부러뜨려야 무서운 줄을 알겠지?’

[여러 명이 한 명에게 저리 못살게 굴다니! 전사의 마음가짐이 없습니다!]

“젠장! 도망쳐!”

결국 아까 안경 쓴 학생을 걷어차던 다른 학생들은 모두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골목을 달려 나갔다.

“흥이 좀 돋우어 나나 했는데 그냥 도망쳐 버리네.”

도망친다고 하나 데카드는 저들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데카드가 양손을 들어 올리자 어둠들이 잘게 찢어지면서 하나하나의 까마귀로 변해갔다.

“쫓아가서 괴롭혀.”

거대한 까마귀 떼는 도망치는 학생들을 따라가며 새똥을 뿌려댔다.

데카드는 전개했던 어둠을 다시 흡수하고 자신을 두려움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학생을 쳐다봤다.

“뭘 쳐다봐.”

“……?”

이 학생에게는 얼굴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데카드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지 살피다가 손을 내밀었다.

학생은 금이 간 안경을 고쳐 쓰면서 데카드의 손과 눈을 번갈아 쳐다봤다.

“빨리 잡고 일어나. 뻗은 손 민망하니까.”

“아, 아저씨는 누구세요?”

학생은 데카드의 손을 붙잡으며 겨우겨우 일어났다.

“……형이라고 불러.”

아직 자신이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었다.

그것도 방금 구해준 사람에게는 더욱이.

“어쨌든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레이크라고 해요.”

“그래, 레이크. 네가 어쩌다 괴롭힘을 당했는지는 별로 궁금하지 않으니까 물어보지 않을게.”

레이크는 순간 뭔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데카드가 자신을 쳐다보자 다시 발 빠르게 표정을 감췄다.

“뭐, 내가 네 사정을 안다고 도와줄 수도 없으니까 말이야.”

이번에는 데카드가 멋진 영웅처럼 등장해 레이크를 도와줬어도 학교생활은 지금 이 순간이 끝이 아닐 것이다.

“그건 그렇죠.”

레이크와 데카드는 같이 어두운 골목에서 나와 밝은 바깥으로 나왔다.

“아까 그놈들이 또 괴롭히면.”

데카드는 손을 꽈악 쥐어서 마나를 집중시켰다.

그러자 약간의 어둠이 모여들면서 부드러운 흑색 깃털 하나를 만들어냈다.

“이거에 마나를 흘려 보내. 그러면 아까처럼 어둠이 전개되면서 그놈들은 내가 오는 줄로 착각할 거야.”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어둠이 갑작스레 전개되면 시야가 확연히 좁아지니 그 틈을 타 도망칠 수 있으리라.

“일회용이니까 네가 버틸 수 있는 건 그냥 버티고.”

“가, 감사합니다.”

데카드는 뒤도 안 돌아보며 대충 손만 흔들어 대답해 주고는 레이크와 헤어졌다.

“잘 해결하셨어요?”

햄버거 가게로 돌아오자 데카드가 주문해 놓은 치즈 버거 세트가 먹음직스럽게 놓여있었다.

“아마 그럴걸?”

자신은 잘 해결했다만 레이크에게는 그저 한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게 눈 감추듯이 햄버거를 먹어 치운 데카드는 마지막 감자튀김을 입에 넣으며 식사를 마쳤다.

“아아, 배부르다.”

“이제 일어날까요?”

먼저 먹고 있던 엘리스도 마침 연어 버거 한 개를 깔끔하게 클리어한 상태였고 둘은 계산을 마친 후 바깥으로 나갔다.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면서 다시 도시를 걷던 와중에 마탑의 학생들이 누군가에게 계속 인사를 하고 있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점심 드셨어요?”

“이제 먹으러 가는 길입니다.”

주변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마탑의 교수인 것 같은데 교수는 세계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자 한 명의 마법사다.

이들은 모두 사회에 뛰어난 업적이 있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천재라고 칭송받던 자들.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이들이 바로 마탑의 교수들이다.

“새로운 교수인가 보네.”

데카드가 재학 중일 때에 교수들은 몇 없고 이제 거의 다 새로운 교수들로 바뀐 상태였다.

지금 눈앞에서 걸어오고 있는 교수 또한 데카드가 처음 보는 교수였다.

[느껴지는 마나의 양이 심상치 않아요!]

[마나! 차갑다!]

얼음처럼 차가운 인상과 같이 마나 또한 마수들이 느끼기에는 차가운 얼음물 같았다.

큰 관심은 없었기에 곁눈질로 교수를 한 번 본 둘은 도시를 구경할 생각으로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렇게 교수와 마주쳐서 이제 서로 지나치려는 찰나 교수가 데카드의 어깨에 갑자기 손을 올렸다.

그 행동에 데카드가 걸음을 멈추고 자신보다 살짝 낮은 키의 교수를 내려다보았다.

데카드는 지금 마탑의 학생은 아니기에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없어서 저자세로 나가지 않았다.

“뭡니까?”

교수가 데카드를 멈춰 세우자 주변에 있던 모든 학생이 여길 보고 있었다.

‘아아, 나도 교수님이 아는 척해 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주변 모든 학생들에게 데카드의 반응은 충격이었다.

정중 따위는 치워버리고 용건만 묻는 ‘뭡니까?’라는 말은 그들이 듣기에 아주 예의 없기 짝이 없었다.

“학생입니까?”

“그럴 리가요.”

지금 데카드는 교복도 입지 않았고 학생증도 당연히 없을뿐더러 학생으로 보일 만한 건더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 마법사인가요?”

“……그런데요.”

[어떻게 알아챈 거죠?]

지금 데카드는 제이미에게 정체를 숨길 때처럼 모든 마나룸을 틀어막고 마나 회로에 남아있는 잔류 마나까지 싹싹 긁어모아 없앤 상태였다.

그런데 교수는 잠깐 흘끗 본 것만으로 데카드가 마법사라는 걸 눈치 챈 것이다.

“어떻게 눈치 챈 건지 궁금한 표정이군요.”

“…….”

순간 자신이 이렇게 표정 관리를 못 하나 생각할 만큼 교수는 데카드의 속을 꿰뚫어 보았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교수가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길 가는 사람을 이리 붙잡은 채 목적도 밝히지 않는 태도에 데카드는 이제 슬슬 불쾌해지려 했다.

“아아, 실례했습니다. 분명 마법사인 건 틀림없는데 교복은 입고 있지 않아서 신기한 마음에 그만.”

교복을 입고 있지 않았기에 학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당연히 교수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다른 여타 학생들보다 훨씬 강한 마나를 보여 주는 데카드에 교수는 흥미로웠다.

“혹시 이번에 들어왔다던 용병이십니까?”

대화를 할수록 신상이 까발려지는 느낌이라 데카드는 웬만하면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마탑의 교수가 물어보는데 숨길 것도 아니고 대답은 해주어야 했다.

“그렇습니다.”

“하핫, 그렇다면 앞으로 자주 보게 되겠군요.”

교수는 그대로 살짝 미소 지으며 데카드의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린 후 다시 자신의 갈 길을 갔다.

[……기분 나쁘군요.]

‘그러게 말이야.’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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