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 네가 팀장해!
“크흠……. 그럼 자기소개부터 각자 하는 게 어떻겠소?”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서로 눈치만 보던 용병 중 한 명이 드디어 입을 열며 말했다.
“본인을 먼저 소개하자면 골렘 제조부에 있었던 볼텍이라고 하오.”
근육질의 거대한 몸과 허리에는 메이스를 찬 볼텍의 모습은 한 마리의 골렘 같았다.
“저는 볼텍과 같은 부에 있었던 빅터라고 합니다.”
몸의 균형이 탄탄하게 잡혀있는 빅터는 허리춤에 꽂아 넣은 마공학 권총을 주력 무기로 쓰는 것 같았다.
“똑같이 골렘 제조부에 있었던 제이미예요.”
이 여자도 데카드같이 마법사인 듯 서클이 느껴졌고 골렘을 사용할 때 필요한 코어도 들고 있는 가방에서 느껴졌다.
‘골렘 제조부라.’
골렘 제조부는 코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들을 사용해 골렘을 만드는 걸 연구하는 마법부의 부서다.
[골렘이 어떤 거예요?]
‘있어, 엄청 커다랗고 나름 멋있는 거.’
골렘은 마법사의 취약한 근접 싸움을 유리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마탑에서 가르치는 골렘 제조학은 인기가 많다.
자기소개가 끝난 세 명은 이제 데카드와 엘리스를 바라보고 있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엘리스를 위해 데카드가 소개를 그녀의 몫까지 해주었다.
“저는 집행부에서 온 데카드라고 하고 이쪽은 같은 부서에 있었던 엘리스라고 합니다.”
엘리스는 후드를 쓴 채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렇군요.”
“하핫, 이쪽 숙녀분께선 쑥스러움을 많이 타시나 봅니다.”
엘리스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데카드의 곁에만 있었고 뻘쭘해진 볼텍은 다시 화제를 바꾸었다.
“지금 주어진 시간에는 아무래도 팀장을 정해야 할 것 같소.”
팀장은 팀원들의 포지션을 짜고 잡스러운 명령들을 내려야 하는 귀찮은 직책이다.
데카드의 기준에서는 굳이 할 필요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 중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팀장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빅터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힘센 놈이 형님이다'는 용병들의 주된 이론이었다.
같은 부서에서 왔고 서로의 실력에 대해 잘 알고 있을 세 명 중에서는 제이미가 손을 들었다.
“제가 여기에서 가장 강합니다.”
육체적인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나 골렘은 그런 것쯤이야 충분히 상쇄시킬 수 있었다.
아마 저 덩치의 메이스와 권총의 탄알은 골렘의 몸에 흠집도 내지 못하리라.
“이쪽에서는 누가 가장 강하시죠?”
“저희는 괜찮습니다. 딱 봐도 저희보다 강해 보이시는데 팀장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그래도 괜찮아요?”
팀장이 되면 마탑에서 주는 보너스 점수가 있는데 그걸 받고 원래 있던 부서로 돌아가면 혜택이 있다.
그걸 이토록 쉽게 포기하는 둘이 제이미의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쪽은 그런 거 다 필요 없다.
“정말 괜찮습니다.”
이쪽이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자 제이미는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호의를 감사히 받고 제가 팀장을 맡겠습니다.”
짝짝짝-
용병들의 박수가 짧게 이어졌고 제이미는 그대로 가방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냈다.
“저는 마법사입니다. 골렘을 조종하고 그걸로 전투를 하죠.”
팀장이 됐으니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제이미가 마나룸을 열고 회로에 마나를 순환시켰다.
제이미는 그 순간 코어를 들고 있던 손을 천천히 내렸는데 코어는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붕 떠있었다.
“신기하지 않소?”
“신기하군요.”
골렘을 보는 건 오랜만이라 데카드는 꽤나 기대가 되었다.
“이렇게 코어에다가 마나를 집중시킨 후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주면.”
제이미의 주머니가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돌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코어를 감싸기 시작했다.
저 돌들도 그냥 돌이 아닌 마나를 듬뿍 넣어 절여놓은 특수한 돌이다.
상급의 돌일수록 골렘의 등급도 올라가고 공격력이나 방어력에서도 천지 차이가 난다.
“호오.”
지금 제이미의 골렘은 중상급 정도는 되는 듯 돌의 균열이 적었고 크기가 상당했다.
“야야, 저기 봐봐.”
주변에 있던 다른 용병들의 시선이 제이미가 만들어내는 골렘에 집중되었다.
“이게 저의 스톤 골렘이에요.”
완성된 골렘의 모습은 투박했지만 매우 단단해 보였고 탱커와 딜러의 역할을 모두 잘 수행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다른 조에 가서도 팀장은 거저먹었겠는데?’
마법사의 힘은 그만큼 컸고 그것도 골렘을 다룬다면 더욱더 쉬울 것이다.
“잘 봤습니다. 대단하군요.”
“감사해요.”
스톤 골렘은 자리를 잡고 서며 위풍당당하게 자신을 자랑했다.
제이미는 살짝 지친 듯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그럼 둘의 능력도 뭔지 알려줄래요? 팀원의 역량을 파악해야 앞으로가 더 수월할 것 같거든요.”
타당한 말이지만 귀찮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의 귀찮음을 눈치 챈 엘리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며 뭔가 보여주려는 듯 단검을 뽑아 들었다.
한 손에 세 개를 잡아, 총 여섯 개의 단검이 엘리스의 손에 들려있었다.
데카드를 빼고 나머지 팀원들은 관심 있게 엘리스를 쳐다보았고 그녀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쓰레기 캔을 바라보았다.
슈우욱-! 챙-!
그대로 팔을 교차하며 단검들이 한꺼번에 캔을 향해 날아갔다.
엘리스의 단검이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치며 처음의 방향과 완전 다른 경로로 온갖 방향에서 캔의 몸통에 구멍을 냈다.
“…….”
“…….”
그걸 본 팀원들은 할 말을 잊은 채 입을 벌리며 캔과 엘리스를 쳐다보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주었기에 엘리스는 캔으로 가 던진 단검을 주섬주섬 다시 챙겼다.
“과연 대단하군요. 그런 암기술은 처음 봤어요.”
제이미는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오며 방금 전의 신기와도 같던 암기술을 다시 떠올려봤다.
“하핫!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구려!”
“총보다 나은 암기술은 처음입니다.”
다들 기예에 가까운 암기술을 뽐낸 엘리스를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데카드가 아는 그녀라면 아마 지금쯤 후드 속 얼굴이 쑥스러워서 빨개져 있을 것이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데카드의 차례예요.”
전에 능력을 보여줬던 엘리스의 존재가 워낙 컸기에 데카드는 묻힐 확률이 높았다.
데카드는 오히려 그걸 바라고 있었고 쓸데없는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지 않기를 바랐다.
“저도 부끄럽지만, 제이미처럼 마법사입니다. 특이한 점은 마수를 소환하는 마수 소환사라는 거죠.”
“오오! 마수 소환이라는 건 처음 보오.”
“마법사라고요?”
마법사였다면 제이미가 눈치 챘을 텐데 전혀 마나의 잔류를 느낄 수 없었다.
‘느끼지 못했겠지.’
마법사인 것을 감추기 위해 데카드가 작정하고 마나룸을 틀어막았기에 서클이 높지 않은 제이미가 느끼는 건 불가능했다.
같은 마법사로서 호기심이 생긴 제이미가 조금 더 가까이 오며 데카드의 마법을 관찰했다.
“소환!”
일부러 거창하게 시동어도 외쳐주며 데카드는 마나룸을 아주 살짝만 열었다.
그 이유는 전력으로 개방을 해도 나는 이 정도의 마나 밖에 풀지 못하는 마법사라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서이다.
소량의 마나로 소환할 마수는 1서클에서 효자 중의 효자.
우끼끼-!
우드 몽키였다.
“이게 마수로군요.”
“신기하구려!”
“만져 봐도 됩니까?”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며 만져도 되냐는 허락을 구하는 빅터에게 데카드는 우드 몽키를 내밀었다.
우드 몽키는 데카드의 팔에서 빅터의 팔로 넘어가며 재롱을 부렸다.
“하하! 마수들이 이렇게 귀여운 건지 처음 알았습니다.”
“대부분 귀여운 편이죠.”
제이미도 빅터의 곁으로 다가와 우드 몽키를 관찰했다.
“이건 1서클 마수인가요?”
“네.”
우드 몽키는 다시 빅터의 팔에서 데카드의 어깨로 넘어오며 머리를 비볐다.
“이 마수의 능력은 뭐예요?”
“덩굴을 뽑아내서 그걸로 상대를 묶거나 조를 수 있습니다.”
“한번 보여 주시겠어요?”
데카드는 일어서며 숙소 앞에 떨어져 있는 돌멩이를 가리켰다.
“묶어!”
우끼-!
명령과 동시에 우드 몽키가 발로 바닥을 한 번 구르자 덩굴이 솟아나더니 돌멩이를 잡고 한껏 조이기 시작했다.
더 강하게 힘을 주면 부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미지 관리 중이기에 힘이 모자라서 못하는 척 이쯤에서 그만두었다.
“후우…….”
그리고 힘들었다는 듯 이마에 땀을 훔치는 연기까지 아주 완벽했다.
[마수왕님! 사기 잘 친다!]
[마수왕님은 못하는 게 뭡니까! 이 고오른은 무서워지기 시작하는군요!]
[…….]
[이런 모습도 멋져요! 마수왕님!]
마수들도 감탄한 사기와 연기에 다른 팀원들은 깜빡 속은 것처럼 보였다.
“흐음…… 알겠어요.”
제이미는 생각 외로 너무 낮은 데카드의 능력에 침음을 삼키며 턱을 괴었다.
아마 이런 짐 덩어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 중일 것이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해산하는 게 어떻겠소?”
“좋습니다.”
데카드는 당연히 대찬성이었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좀이 쑤셨는데 이쪽에서 먼저 길을 만들어주니 그대로 나가기만 하면 됐다.
“그럼 내일 집합 시간 때 봅시다.”
데카드와 엘리스는 그대로 나와 마탑의 시내로 걸어갔다.
“아으! 드디어 끝났네.”
“그렇게 싫으셨어요?”
엘리스도 후드를 벗으며 오랜만에 말을 했다.
“싫은 건 아니고 별 쓸데도 없는데 오래 있어서 뭐 해.”
이렇게 도시를 걸어 다니며 먹을 거 먹고 놀 거 노는 게 훨씬 영양가가 높은 일이다.
“점심 먹을래?”
슬슬 시간이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배가 고파지는 시간이다.
“좋아요.”
마탑 도시에서 맛없는 음식점은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도시에 가게를 낼 때 철저한 심사를 거치기 때문인데 그 심사에는 맛에 관한 항목도 있었다.
그렇기에 맛의 기준점을 넘지 못한다면 이곳에 가게를 내기는커녕 발도 붙일 수 없었다.
마탑의 음식점을 가면 음식이 취향에 안 맞을지언정 맛이 없을 수는 없다.
다양한 지역과 나라에서 오는 학생들을 위해 각양각색의 특이한 음식도 많으니 참으로 놀고먹기 좋은 곳이다.
“오오, 코코넛 주스래. 먹어보자.”
말로만 듣던 열대 과일은 안에 물이 들어있다고 했다.
코코넛에 구멍을 뚫어 그대로 빨대를 꽂은 주스의 모습은 나름 그곳의 풍취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주스 두 개를 사서 부푼 마음으로 빨대를 넘어 올라오는 코코넛을 삼킨 순간 데카드의 표정이 썩어갔다.
“…….”
“괜찮은데요?”
“이게?”
데카드는 한 입 먹고 곧바로 땅에 뱉어버릴 정도로 싫은 맛이었는데 엘리스는 맛있게 잘 먹었다.
“안 드실 거면 제가 먹어도 돼요?”
“너 다 먹어.”
엘리스는 데카드의 것까지 잘 빨아먹고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데카드를 동그란 눈으로 마주 보았다.
“그렇게 맛없나요?”
“엄청.”
취향 차이는 맞는 것 같은데 이건 좀 심했다.
“나는 이거나 먹어야지.”
취향 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사이다를 구매한 데카드는 쪼옥쪼옥 사이다를 빨며 음식점을 찾아보았다.
“저기 갈래?”
데카드가 가리킨 곳은 수제 햄버거집이었다.
햄버거는 맛도 좋고 배도 적당하게 채워주고 지금 가려는 수제 햄버거 집은 안에 있는 재료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저는 좋아요.”
“오케이!”
딸랑-
안으로 들어가니 몇몇 마탑의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있었고 데카드와 엘리스가 들어가자 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