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57화 (57/208)

057 내 집 마련

“끝난 건가요?”

“그런 것 같네. 아으, 힘들어.”

데카드는 온몸이 땀으로 축축해졌을 때쯤 4서클에 오를 수 있었고 엘리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잡아주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부축을 받지 않으면 일어나기도 버거울 정도로 4서클을 넘어가면 공사의 후유증이 장난이 아니게 된다.

“그걸 왜 네가 해!”

요르는 서클을 올리는 게 잘 됐다는 것에 기뻐하다가 어느새 엘리스가 데카드에게 붙어있자 급하게 달려왔다.

“일단 샤워부터 해야겠어.”

이대로 잘 순 없으니 피곤하더라도 샤워는 해야 했다.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이만 방에 돌아가도 돼. 오늘 저녁 엄청 맛있고 고마웠어.”

“아니에요. 데카드가 데려다준 놀이공원이 훨씬 더 좋았어요.”

“자자, 마수왕님! 일단 샤워부터 해요!”

요르가 길어지려는 둘의 대화를 끊기 위해 데카드의 등을 떠밀며 샤워실로 들어갔다.

15분 정도가 지나자 샤워기의 물이 꺼지고 수건으로 몸을 닦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몸이 좀 풀리네!”

샤워실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꽉 차 있던 습기가 밖으로 쏴아 빠져나오며 데카드가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수건을 두른 채 나왔다.

“설거지해 놨어? 내가 하려고 했는데.”

“이런 것도 저의 의무입니다.”

짹짹이는 데카드가 샤워를 하며 몸의 땀을 씻어낼 동안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마지막 식기까지 거품을 닦아내고 새것같이 만들자 설거지는 끝이 났다.

“엄청나게 강해진 것 같아.”

마법사가 서클을 한 단계 더 올렸다는 건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강해진 것이 맞았다.

그리고 데카드에게는 그것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맞습니다! 이 고오른의 이두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습니까!”

“저도 훨씬 강해졌어요!”

“티이라! 쎄졌다!”

“…….”

데카드 뿐만이 아니라 마수들 또한 서클을 올리면서 눈에 띄게 파워업을 해버리니 체감으로 느껴지는 강함은 과연 엄청났다.

“이제 조금씩 본연의 힘과 가까워지고 있군요.”

처음 1서클 때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강해진 것이 맞으나 마수계에서 있을 때의 힘과 비교하면 아직 엄청나게 약한 것도 맞았다.

“이제 절반 좀 안 되게 온 거지.”

4서클과 9서클의 화력은 천지 차이지만 전투 센스와 마나 지배력은 달라지지 않았다.

“천천히 하셔도 괜찮으니 몸을 먼저 생각해 주십쇼.”

서클을 올리는 속도는 여타 마법사들보다 말도 안 되게 빠르니 그렇게 조급해할 필요 없었다.

오히려 몸의 부작용을 생각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서클을 올렸다가 폐인이 되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렇기에 짹짹이는 데카드가 후유증이 회복될 한 달간은 무리한 싸움이나 소환을 가급적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무리일 것이다.

“왜 그렇게 쳐다보냐?”

데카드가 침대로 기어들어 가다가 짹짹이의 시선을 느끼며 말했다.

“주인님의 인생이 힘들어 보여서 그랬습니다.”

“크큭. 뭘 새삼스럽게.”

마탑을 다닐 때부터 여러 사건 사고가 있었어도 데카드는 모두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이겨내고 탈출하며 끝까지 버텨냈다.

“너희들이 있으니까 무섭지 않아.”

마수계로 떨어지고 그곳에서 짹짹이를 만나고 네 마리 마수들을 만나는 모든 과정이 험난하기 그지없었으나 후회하지 않았다.

“이리 와라, 내 새끼들.”

대실에 있는 침대답게 매우 넓은 사이즈의 침대에 마수들이 통통 올라오며 데카드의 곁으로 왔다.

제일 먼저 요르가 데카드에게 폭 안기고 반대편 쪽에는 레오와 고오른이 그리고 요르의 뒤에는 티이라가 올라왔다.

자신보다 몇만 살은 더 먹은 자식들을 두게 됐지만 지금 와서는 참으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놈들이다.

그렇게 마수들과 부대끼면서 데카드의 하루는 마무리됐다.

* * *

데카드는 루비아의 시내를 거닐고 있었다.

딱히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서클 상승의 후유증을 조금이라도 빨리 넘기려면 약간의 운동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굳이 뭘 하러 가는 것도 아니기에 엘리스도 없이 혼자서 설렁설렁 길을 걸었다.

상인들이 시끌시끌 물건 파는 소리와 가게의 현관 벨이 울리는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서로 어우러졌다.

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을지 모르나 그와 동떨어져 있는 데카드의 눈에는 참 평화로워 보였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다가 상점가를 벗어나 민가들이 많은 곳으로 온 데카드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집이나 하나 살까.”

사실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긴 하다.

돈도 많고 언제까지 여관에서만 살 수도 없었는데 지금까지 이렇게 긴 휴가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저희도 드디어 레어가 생기는 겁니까?]

[좋다! 집!]

[마수왕님과의 신혼집!]

[…….]

마수들은 전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았지만 결국은 모두 찬성인 것 같았다.

“부동산에 한번 가보자.”

루비아의 살인적인 집값과 땅값을 거의 모두 알고 있을 공인 중개사에게 데카드는 걸음을 옮겼다.

[집을 사시는 건 좋지만 어떤 집을 사실 겁니까?]

짹짹이의 질문에 데카드는 흐음 하며 생각에 잠겼다.

‘일단 마수계에서의 집보다야 좋아야겠지.’

마수계에서는 적당한 산에다가 직접 동굴을 만든 후에 그곳을 거처로 삼았었다.

돌과 이끼로 나름 푹신한 침대도 만들고 의자도 만들었으며 돌과 나무만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곳이 마수계였다.

나름 마수계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거지와 다름없었다.

‘그래도 자연 친화적이면 좋겠어.’

1000년간 자연 친화적이다 못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서 그런지 이런 루비아 같은 곳은 살짝 숨이 막혔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게 장땡이지.’

자연 친화쯤이야 데카드가 마수들로 몇 번 마법을 부리다 보면 덩굴이고 나무고 쑥쑥 자라난다.

‘집 안쪽은 완전 최신식으로 갈까?’

인테리어로 할 수 있는 돈지랄의 끝을 보고 싶다면 방법이야 얼마든지 많다.

자동문에다가 실내 엘리베이터 등등 할 수 있는 것이야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많았다.

다만 돈이 엄청나게 깨지고 터져나갈 뿐.

물론 돈 걱정은 안 된다.

지금도 자신의 재산은 은행 연리로 불어나고 있으니.

원래 맡긴 돈이 천문학적이어서 1%만 받아도 그 금액이 웬만한 귀족의 연봉 저리 가라다.

“다 왔네.”

그렇게 남들이 한번쯤 해볼 법한 집에 대한 고민을 하며 걷자 어느새 루비아 부동산이 눈앞에 있었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위에 달려있던 종이 울리면서 손님이 온 걸 알려주었다.

“어서 오십쇼!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곳에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직원들도 뒤로 빼놓고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귀족이다!’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깃털 코트에다가 부티 나는 얼굴은 딱 봐도 귀족

같았다.

귀족같이 큰돈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들은 일반 직원이 아닌 이렇게 제일 경력자가 나와서 맞는 게 예의였다.

“집 좀 보려고 하는데요.”

“아휴! 예의가 참 바르십니다! 절 따라오십쇼!”

귀족이라면 그 나이가 뭐든 평민한테 반말이 가능한데 눈앞에 귀족은 존댓말을 쓰는 걸 보아하니 진상을 부릴 것 같진 않았다.

데카드는 갑자기 예의가 바르다는 칭찬을 들으며 남자가 안내하는 자리로 움직였고 그쪽에는 루비아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제 이름은 리온입니다!”

“데카드입니다.”

둘의 손이 마주 잡히고 리온은 펼쳐진 지도에다가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다.

“어떤 집을 보러 오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남은 집들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각 구역마다 사람들이 나가거나 곧 나갈 예정인 사람들의 집을 리온은 체크했다.

어떤 장부나 서류들을 보고 한 게 아닌 그저 머릿속에 있는 기억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남은 집들을 골라내는 모습은 과연 대단했다.

“남은 집은 일단 이 정돈데 혹시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십니까?”

“텔레포트 기계 근처였으면 좋겠어요.”

데카드는 며칠 있다가 어차피 마탑으로 가야 하기도 하고 워낙 바깥으로의 이동이 잦아 기계는 가까이 있는 게 좋았다.

“흐음…… 그럼 이곳들은 일단 후보에서 제외해야겠군요.”

루비아의 텔레포트 기계는 총 열두 개가 있는데 각 구역마다 최소한 한 개씩은 존재했다.

리온은 기계에서 먼 집들을 X 표시하며 물었다.

“다른 조건은 또 없으십니까?”

“집이 크면 좋을 것 같아요.”

마수들에게도 각자 방을 한 개씩 주고 싶기도 하고 애초에 데카드가 좁은 집을 좋아하지 않았다.

리온은 또다시 기준에 맞지 않는 집들을 지워나갔고 그러자 남은 집은 세 채 정도였다.

“말씀하신 대로라면 기준에 부합하는 집들은 이렇게 세 채입니다!”

각자 C구역, D구역, B구역에 있는 집들을 이렇게 지도로 보니 어떤 집인지 제대로 판단이 가질 않았다.

“이렇게 보면 잘 모르실 테니까 제가 설계도를 가져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리온이 잠시 방을 나가더니 직원들에게 뭐라 왁왁거리며 소리 지르는 게 들려왔다.

그러자 직원들이 우당탕탕 어딘가로 달려갔고 리온은 오래 걸리지 않아 설계도 세 개를 손에 들며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이것이 그 집들의 설계도인데 이걸 보시면 대략적인 집의 구조를 아실 수 있습니다.”

리온은 책상 위에 놓인 루비아 지도를 치워버리고 첫 번째 설계도를 펼쳤다.

“먼저 이 집은 3층 집입니다. 집 주변에 상점가가 많아서 뭘 사기도 용이하고 식료품점도 있어서 장을 보기도 좋습니다.”

리온의 말대로 설계도에서 나타난 집은 3층이었고 방과 주방이 있는 평범한 집으로 보였다.

“이 집의 특징이 있나요?”

“별다른 특징은 없고 무난하다는 게 장점인 집인데 굳이 꼽자면 방음이 잘 된다는 점 같습니다.”

정말 굳이 꼽아야 할 정도로 티 나는 장점은 아니었다.

“그럼 다음 집으로 넘어가시죠.”

“알겠습니다!”

다음 두 번째 집의 설계도가 위로 올라왔다.

“이 집은 2층 집이지만 한 층 한 층이 넓어서 공간만 보자면 3층 집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설계도로 보이는 집은 자잘자잘한 방이 없고 전부 큼직큼직하게 공간을 나눠놨다.

“지금 보시는 집의 특징이라고 하면 주방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주방이요?”

리온은 설계도에서 주방이 나타나 있는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거실과 주방이 연결돼 있고 그 공간이 워낙 넓어서 요리를 좋아하신다면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요리라…….”

자신은 모르겠는데 요리를 즐기는 엘리스라면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집 주변에는 뭐가 있을까요?”

“딱히 편의성과 관련된 곳은 그다지 없습니다. 민가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 주변에 큰 광장이 있다는 것 정도가 특징 같군요.”

광장이야 있든 말든 딱히 상관이 없었고 민가가 많다면 이웃과의 트러블 같은 게 생길 수도 있어 살짝 민감해 보이는 집이었다.

“다음 집을 보여주시겠어요?”

“물론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집은 설계도에서부터 드러나는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집 중에 가장 큰 집입니다.”

설계도에서의 집은 5층이었고 각층의 넓이도 부족할 것 없이 넓어 보였다.

“집이야 보시는 대로 넓고 코앞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 상가들도 많아 편의성도 좋은 곳입니다. 다만…….”

“다만?”

리온이 뜸을 들이자 데카드는 뭔가 커다란 단점이 있나 하고 설계도에서 눈을 떼 리온을 바라보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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