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루비아 랜드
“너랑 엘리스의 1주일치 업무는 전부 빼줄 테니까 놀다가 가.”
“알았다.”
다행히 마탑까지 가는 데 남은 시간 동안은 마음껏 놀거나 미뤄뒀던 일을 마음 편히 할 수 있게 됐다.
데카드는 그대로 나와서 1층에 있는 엘리스에게갔다.
“얘기는 잘하고 오셨어요?”
“한 1주일 뒤에 마탑으로 가야 할 것 같아.”
“마탑이요?”
엘리스는 데카드와 어울리는 동안 참 다양한 곳을 가본다고 문득 생각했다.
그와 붙어 다니면 암살자였을 때보다 더 다양하고 가기 어려운 곳들을 아무렇지 않게 가는 느낌이었다.
고대의 보물이 잠들어있는 유적이나 황궁의 알현실을 넘어 이제는 마탑까지.
“제가 알고 있는 그 마탑이 맞나요?”
“그래, 그 아카데미 마탑 맞아.”
신세대 마법사들의 요람이자 모든 마도구들의 시작이자 끝.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발 한 번 붙여보려고 잠도 안 자고 노력하는 곳이었다.
“그곳의 치안을 위해 우리 같은 용병들을 모으고 있는데 집행부에서는 아무래도 우리가 가야 할 것 같아.”
“그렇군요.”
엘리스는 별 상관없는 듯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대신 마탑에 가기 전 동안의 업무는 없으니까 마음껏 휴가를 즐기면 돼!”
1주일 정도인 길지도 짧지도 않은 휴가였지만 데카드는 만족했다.
“평소 해보고 싶던 걸 해보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쉬는 것이나 노는 것에 대한 개념이 생소한 엘리스는 버퍼링이 걸린 기계처럼 어버버거리며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거 없어?”
“으음…….”
암살자로 살아오면서 항상 양지에 있던 사람들이 부러웠었다.
하지만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그들이 어떤 짓을 하면서 노는지 몰랐었다.
엘리스가 고민에 빠지자 데카드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바깥으로 끌었다.
“그렇게 생각이 안 나면 날 따라올래?”
놀라서 살짝 커진 눈으로 데카드를 바라보던 엘리스는 반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데카드는 노는 것에는 꽤나 일가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마수계에서 지루한 생활을 어떻게든 빨리 보내기 위해 아무것도 없는 숲속에서 1000년 동안 질리지 않게 논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도 재밌게 놀았는데 그보다 훨씬 먹거리와 놀 거리가 넘치는 루비아에서 놀지 못할 리가 없다.
“내 기억으로는 루비아의 D구역으로 가면 놀이동산이 있었어! 그쪽으로 가보자!”
놀이동산은 마도구들을 민간인이 사용하기 쉽도록 바꿔놓아서 평소 사람들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즐기도록 만들어 둔 루비아의 명물이다.
“놀이동산은 한 번도 안 가봤지?”
“네.”
놀이동산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삶을 살아와서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는 단어의 뜻으로만 알고 있었다.
“가보면 절대 잊을 수 없을 거야.”
D구역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 나가는 데카드의 미소가 엘리스에게는 뒤에서 암습하는 단검보다 더 위험했다.
쿵쿵-
‘가만히 좀 있어!’
어떻게 하면 진정시킬 수 있는지, 심장은 제 분수를 모르고 또 나대기 시작했다.
“얼른 가자! 아침 일찍 가야 사람이 별로 없어!”
데카드는 그녀의 속도 모르고 덥석덥석 손을 잡으며 뛰어갔다.
집행부에서 D구역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둘이 뛰어서 가자 얼마 안 있어 놀이동산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루비아 랜드!”
황궁의 대문만 한 간판에 써진 이곳의 이름을 크게 한 번 읽은 데카드는 옆에서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하는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너도 기대되는구나? 얼굴이 되게 빨가네.”
“너, 너무 기대돼서…….”
엘리스는 오는 내내 데카드가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아서 자신이 오른발을 내미는지 왼발을 내미는지도 모를 만큼 달리기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 한번 놀아보자!”
티켓을 끊기 위해 매표소로 가서 가장 비싼 프리패스 이용권을 두 개 끊은 데카드는 엘리스의 팔에 하나를 걸어주었다.
“이게 여기서는 짱이거든? 이것만 들이밀면 돼.”
데카드가 산 프리패스권은 이곳에 있는 음식들도 돈을 내지 않고 사 먹을 수 있기에 말 그대로 엄청난 권력을 가지는 것이었다.
[여기는 인간들이 엄청 많습니다!]
[많다! 인간!]
[으으! 암컷들이 너무 많아!]
[…….]
마수들이 놀랄 정도로 루비아 랜드 안쪽은 사람들로 붐볐다.
집행부로 아홉시에 출근해서 업무가 없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뛰어서 왔는데 사람들은 그것보다 더욱 빨랐다.
“뭐부터 해볼래?”
롤러코스터는 기본이고 무중력을 체험할 수 있는 무중력 공간, 마법사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등등 현실에서는 못하는 게 여기선 가능하다.
“저, 저거요.”
하지만 엘리스의 원픽은 정해져 있었다는 듯 떨리는 목소리로 중앙에 있는 놀이기구를 가리켰다.
“……정말 이거야?”
“어릴 때부터 꼭 타보고 싶었어요.”
정말 이게 맞는 듯 엘리스는 기대된다는 게 얼굴로 잔뜩 나타나 있었다.
“자, 입장해 주세요.”
“와아!”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이 차례차례 들어오고 데카드와 엘리스 또래로 보이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헤헷.”
엘리스는 놀이기구 위에 가뿐하게 올라탔고 데카드도 그 옆에 올라탔다.
“회전목마라니, 나도 어렸을 때 한 번 타본 것 말고는 진짜 오랜만이네.”
그녀가 고른 건 회전목마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놀이기구에서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출발합니다!”
어린이들을 많이 대하는 일인 만큼 직원의 상큼한 목소리와 함께 목마들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정말 말을 타는 것처럼 위로 내려갔다 올라갔다만 하는 게 아닌 정말 목마들이 움직이면서 원형의 판 위를 걸어 다녔다.
이 목마들도 잘 만들어진 마도구들이기에 이런 실감 나는 승마가 가능한 것이다.
데카드는 별 감흥 없이 목마를 탔지만 슬쩍 옆에 있는 엘리스의 얼굴을 보니 그녀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헤헤헤.”
‘타러 오길 잘했네.’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위험한 일도 많았고 잡일도 많이 했는데 즐거워해 주니 다행이었다.
우웅-
10분 정도가 지나자 목마는 천천히 멈췄고 직원의 안내 인사가 들렸다.
“벨트를 풀어주시고 이번에는 아쉽지만 여기까지일 것 같습니다! 다음에 또 회전목마를 찾아와 주세요!”
데카드와 엘리스는 내려서 먹을 것을 파는 점포들이 깔려있는 곳과 즉석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많은 곳으로 왔다.
“여기에서 먹는 간식이 참 맛있어.”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사는 음료수나 음식들은 항상 맛있고 특별했다.
데카드는 계란 토스트 하나를 사고 엘리스는 과일 주스 하나를 산 다음에 게임 점포들을 둘러보았다.
“저거 해볼래?”
데카드는 계란 토스트를 와구와구 먹으며 한 게임 점포를 가리켰다.
“아아! 아쉽게도 상품은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통과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 저 점포는 다트를 던져서 기준점 이상의 점수를 넘으면 상품을 주는 것 같았다.
“좋아요.”
주스의 빨대를 물고 있는 엘리스의 얼굴이 먹잇감을 발견한 포식자처럼 변하며 점포로 걸어갔다.
“어우! 오늘은 아름다운 선남선녀 커플이 오셨네. 다트 한번 던져보실라우?”
“어떻게 하면 돼요?”
점포 주인은 거의 5M가 넘어 보이는 거리에 있는 다트판에 손짓하며 말했다.
“저 다트판의 중앙을 3번 이상 맞추면 최고 상품이 있소!”
최고 상품은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유니콘 인형이었고 데카드는 자신에겐 별 쓸모가 없어 시큰둥했다.
그러나 엘리스는 매우 관심이 있어 보였는데 인형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주인이 주는 다트를 말없이 집었다.
“그렇게 갖고 싶어?”
엘리스의 눈을 본 데카드가 살짝 웃음을 터뜨리며 묻자 그녀는 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데카드는 그녀가 집중 상태에 들어갔다는 걸 알고 조용히 입을 다물어주었고 엘리스는 총 5개의 다트를 한 손에 전부 쥐었다.
“그걸 한 번에 다 던지시게?”
엘리스는 점포 주인의 말에 대꾸도 없이 자세를 잡았고 갈까마귀 암살단 최정예의 암기술이 뿜어져 나왔다.
후두둑-!!
빛살처럼 날아간 다트들이 정중앙의 자리가 미어터질 정도로 꽉꽉 채워졌다.
“저, 전부 중앙에…….”
점포 주인은 자신이 맞게 본 건지 믿기지가 않는 듯 연신 멀쩡한 두 눈을 비볐다.
“그럼 상품은 가져갈게요!”
엘리스가 정정당당하게 얻은 상품을 꺼낸 데카드는 인형의 포장을 뜯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게 그렇게 갖고 싶었어?”
“어렸을 때 이런 유니콘 인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인형보단 단검과 더 가까웠던 암울한 유년에는 이런 커다란 유니콘 인형 같은 건 꿈도 못 꿨다.
“다른 것도 더 보러 갈까?”
“좋아요!”
인형을 얻은 이후로 한껏 밝아진 엘리스는 인형을 가득 품속에 안으며 데카드를 따라갔다.
그 뒤로 데카드와 엘리스는 루비아 랜드에 있는 모든 놀이기구를 타볼 생각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질리도록 놀았다.
폐장 시간이 될 때까지 논 둘은 아공간 주머니에 상품으로 딴 물건들이 가득 있을 만큼 게임도 많이 했다.
프리패스권이 다 닳아버릴 만큼 놀고 나자 도리어 몸은 피곤해졌지만, 기분만큼은 전에 없이 상쾌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엘리스는 어렸을 때에 한을 오늘 전부 풀어버린 듯 기쁘고 즐거워 보였다.
“나도 좋았어!”
피곤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난 오늘은 꿀같이 달콤해서 영원히 이런 시간만 반복됐으면 좋을 것 같았다.
루비아 랜드를 나와서 여관까지 걸어가던 중 데카드가 무언가를 보며 생각난 듯 말했다.
“아아, 난 잠깐 살 게 있어서 그런데 여관에는 먼저 가 있을래?”
“알겠어요, 그런데…….”
엘리스는 또 무언가 말하기 망설여지는 듯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며 손은 가만히 두질 못했다.
“뭔데 그래?”
“오늘 저녁은 데카드에게 제가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러다가 결국 말해 버린 속마음에 엘리스가 부끄러워하고 데카드 안에 있던 요르가 길길이 날뛰었다.
[어딜 감히! 마수왕님과 겸상을 해!]
[나름 이 여자의 도움도 많이 받았는데 밥 정도야 괜찮지 않겠나! 요르!]
[카악! 절대 안 돼!]
고오른의 말대로 엘리스에겐 고마운 게 많았기에 이런 부탁 같지도 않은 것쯤이야 데카드는 당연히 오케이다.
“알았어. 그럼 물건을 사고 바로 엘리스의 방으로 갈게.”
“네! 준비해 놓고 있을게요!”
엘리스는 식재료를 사기 위해 부리나케 어딘가로 뛰어가고 데카드는 아까 봐뒀던 상점을 향해 들어갔다.
[이곳에는 왜 오신 겁니까, 주인님?]
마법사들이 주로 쓰는 물품들을 파는 이곳은 데카드에게 필요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마탑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가기 전에 한 번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데카드가 고른 것은 마나 분필. 사용자의 마나를 써서 허공이나 바닥에 글씨를 쓰는 물건이다.
보통 마법진을 그릴 때 많이 쓰는 분필인데 그 범용성이 좋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혹시 4서클에 돌입하시려는 겁니까?]
분필만을 사고 나오는 데카드를 보고 짹짹이가 그의 의중을 알아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