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54화 (54/208)

054 암살단의 편지

문고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검은색의 봉투.

찌익-

자신의 방에 걸린 편지이니 뜯어봐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한 데카드는 밀봉된 편지 봉투를 뜯어서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편지 봉투이니 당연히 안에는 편지가 들어있었고 그것과 함께 검은색 깃털 하나가 추가로 있었다.

색깔로 보나 촉감으로 보나 정말 조류의 깃털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데카드의 상식으로는 이렇게 까만 깃털을 가진 새는 하나밖에 없다.

“까마귀?”

짹짹이도 어떻게 보면 까마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익숙한 이 깃털은 자신이 아는 한 집단과도 관련성이 깊었다.

“이거 설마.”

데카드는 봉투 안에 들어있는 깃털을 빼고 편지를 꺼내보았다.

[항상 당신을 지켜보고 있겠다.]

말재주가 있는 편은 아닌지 짧은 한 문장이 편지의 끝이었는데 오히려 이것으로 편지를 보낸 이들이 확실해졌다.

“얘들이 나한테 관심을 왜 갖지?”

이들과의 접점은 오히려 옆방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데 왜 애꿎은 자신이 표적이 되야하는지 모르겠다.

데카드는 편지를 들고 이것의 해답을 알고 있을 엘리스를 만나기 위해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똑똑-

“데카드 왔어요?”

한 번 두드려서 안 나오면 자나 보다 하고 갈려 그랬는데 몇 초 지나지도 않아 엘리스는 총알같이 등장했다.

“응, 돌아왔다고 인사만 하려 했는데 혹시 이거 뭔지 알아?”

엘리스는 데카드가 보여주는 이것을 알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데카드가 한 질문의 의의는 이것을 아는지가 아닌 이것이 왜 자신에게 와 있는지였다.

“하아…….”

엘리스는 깊게 한숨을 쉬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죄송해요. 걔내들이 이런 것까지 남겼을 줄은.”

엘리스는 데카드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를 보고 면목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아니 뭐 나는 괜찮은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지금 데카드가 받은 편지를 건넨 이들은 갈까마귀 암살단.

엘리스가 전에 소속 돼 있던 곳이자 암살 기계들의 모임이 데카드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엘리스는 이야기가 길어지겠다 싶어 데카드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이끌었다.

“안에서 말씀드릴게요.”

[감히 누구의 몸에 손을 대는 거야!]

안에서 요르가 난리를 치고 마수들이 그것에 좁다며 성질을 내고 있을 때 데카드는 엘리스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한 군데 어질러진 곳 없이 깔끔한 방 안에서 엘리스는 의자 한 개를 끌어와 데카드 앞에 주었다.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

엘리스는 침대에 앉았고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내쉰 한숨과 함께 정황을 얘기했다.

“저희가 흑마법사들과 처음으로 부딪쳤을 때 있잖아요.”

“그랬지.”

흑마법사들에게 잡힌 헤칸과 벨린다를 구하기 위해 흑마법사 하나는 엘리스가 잡고 또 하나는 데카드가 생포했었다.

“제가 죽인 흑마법사의 시체에서 누군가가 암살단의 기술로 죽였다는 걸 눈치챈 것 같아요.”

“소문들이 떠돌기 시작한거구만.”

“네.”

갈까마귀 암살단이 흑마법사들을 노린다.

이런 소문이 암흑계에서 떠돈다는 건 사실 이상한 일이다.

우는 어린이도 뚝 그치게 한다는 갈까마귀 암살단은 어느 한 쪽의 편에도 서지 않는 중립의 상태가 가장 강했다.

그런 집단이 흑마법사들을 적대한다는 소문은 발 빠르게 부풀려져서 암살단에게까지 닿았을 것이다.

“결국 암살단이 꼬리를 문 거죠.”

엘리스는 자신의 실책에 면목 없다는 듯 데카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자신들은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지.”

암살단은 최근 흑마법사를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지 않은 상태인데 이런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으니 그들은 조사에 들어갔다.

세계 최고 암살단은 데카드와 엘리스를 순식간에 추적해왔고 죽은 줄만 알았던 엘리스와 그 옆에 있는 정체 모를 남자를 발견했다.

“사실 데카드가 오기 전에 그들과 만났어요.”

엘리스는 원래부터 그들의 소속이었고 그중에서도 뛰어난 실력자였으니 그쪽에서 먼저 접근해온 것 같았다.

“뭐라고 했는데?”

“다시 암살단으로 들어오라고 하길래 거절했어요.”

암살단이 뛰어난 암살자를 잃기 싫어하는 건 당연했지만, 엘리스는 그럴 마음이 없었다.

“협박이나 강제적인 건 없었어?”

“그렇게 했다간 그들도 피해를 보니까 그냥 물러난 것 같아요.”

혼자라고는 하나 엘리스는 암살단의 정예 중의 정예였던 자.

함부로 건드렸다가 본전도 못 찾고 골만 아파져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저와 같이 다니는 데카드에게 화살이 돌아간 것 같은데 이 정도 편지는 그냥 무시하셔도 돼요, 죽이러 온다는 예고장은 아니니까.”

“…….”

섬뜩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한 엘리스는 편지를 찢어 쓰레기 통에 던졌다.

“혹시 데카드가 암살단의 표적이 되더라도 제가 지켜 드릴게요.”

엘리스는 방긋 웃으며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맹세 가지고 너의 목숨까지 다 던질 필요는 없어.”

어떤 이들에게는 맹세 한 번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우선이 되기도 하지만 그건 보통 기사들이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엘리스는 힘든 역경을 해치우고 왔는데 자신을 지키다가 죽어버리면 이쪽이 미안해진다.

“맹세 때문이 아닌데…….”

엘리스가 개미 기어가듯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지만 데카드는 그녀가 입을 달싹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에요.”

엘리스는 손사래를 치며 데카드를 곁눈질로 바라봤다.

암살단에서는 심장 박동까지 제어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고 항상 그것을 잘해왔는데 유난히 이 남자 앞에서는 통하질 않는다.

심장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심하게 요동쳤고 바라보면 볼수록 그것은 멈출 생각은커녕 더욱 빨라져만 갔다.

이러다가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그러면 나는 이제 가 볼게.”

데카드는 의문점도 풀렸고 밤도 늦었으니 엘리스도 자신만의 시간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늦게 자면 다음날에 또 12시는 넘어서 일어나기에 얼른 침대로 가야 했다.

“아, 맞다. 데카드가 오면 말해주려고 했던 건데 집행부로 오면 부장님이 방으로 들르라고 하셨어요.”

“필립이?”

무언가 뒤통수를 찌릿하게 울려오는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잘자.”

“데카드도요.”

간단한 밤 인사를 나누고 데카드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으으 저 암컷 너무 건방져!”

“그래도 나름대로의 강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티이라! 맘에 든다! 저 여자!”

“…….”

요르 빼고 다른 마수들은 엘리스의 대해 긍정적이었고 데카드는 얼른 겉옷을 벗어 던지며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일단 자자.”

이러다가 정말 눈 붙이기도 전에 해가 뜰 것 같았다.

* * *

짹짹이와 엘리스의 도움으로 겨우 늦지 않게 9시 전에 일어난 데카드는 집행부로 출근하고 자신을 불렀다는 필립의 방으로 곧장 왔다.

“어, 왔냐?”

“왜 부른 거야?”

이제 전속 용병도 그만둘 생각이니 그것도 말할 겸 데카드는 필립의 용건을 들으러 왔다.

“네가 저번에 용병일 그만두고 싶다 그랬잖아.”

“어. 그거 그만두겠다고 오늘 말하러 온 건데?”

필립은 목이 타는 듯 책상 위에 올려진 커피를 한 모금 쭈욱 들이켰다.

“조금만 더 오래 하면 안되냐?”

“나 없으면 집행부가 안 돌아가? 뭐만 하면 나를 찾아!”

데카드가 흥분하려는 걸 필립이 두 손을 들어 진정시키며 말했다.

“딱 한 건만 더! 한 건만 더 하자!”

“……뭔데?”

일단 들어나 보겠다는 심정으로 데카드는 자신을 진정시켰다.

“마탑에서 치안 담당으로 용병들을 필요로 한다는데 그 조건에 부합하는게 너희 둘밖에 없어.”

마탑은 데카드가 졸업한 마법 아카데미이자 전 세계에서 따라올 자가 없는 곳이었다.

차세대 마법사를 기르고 배출하는 곳인 마탑은 최근 흑마법사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고용하지 않았던 용병들을 방비 차원에서 고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용병이라고 아무 용병이나 무턱대고 고용할 수는 없기에 신분과 실력이 확실하게 입증된 이들만 가능했다.

마법부에서는 각 부마다 두 명씩은 꼭 차출하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였고 필립의 입장에선 후보가 데카드와 엘리스밖에 없었다.

“하아…… 미치겠다.”

파도처럼 하나의 일이 자신을 쓸고 지나가면 또 다른 일이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일하는 환경이 마탑이라 나쁘진 않은데.”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마탑은 그 주변에 문화시설이나 놀이동산 등 학생들을 위한 것들이 넘쳐난다.

즉, 용병 일을 대충 때우고 하루가 끝날 수 있다면 어떻게든 꿀을 빨 수 있었다.

이것도 마탑에서 3년을 지내면서 그곳의 지리와 숨겨진 통로까지 전부 꿰고 있는 데카드이기에 할 수 있는 배짱이다.

다른 용병들이라면 이런 건 생각도 못 하고 일만 열심히 하겠지.

데카드는 고심하다가 오랜만에 모교도 들리고 필립도 도와줄 겸 마탑에 가기로 결정을 끝냈다.

“알았어, 가줄게.”

“오케이! 진짜 너라는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럼 당연하지.”

필립이 벌떡 일어나 거만하게 앉아있는 데카드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마탑은 언제쯤 가면 돼?”

“1주일 뒤에 가면 돼.”

필립은 급한 건이 해결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아, 그리고 걔 기억나?”

“누구?”

필립은 막 생각난 듯 씨익 미소를 지으며 얘기를 꺼냈다.

“네가 차원문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구해줬던 마탑의 3학년생.”

“아아, 얼굴은 기억나는 것 같아. 이름은…… 트리스였나?”

기다란 적발에다가 해맑은 웃음이 매력적이었고 놀렸을 때에 반응이 재밌는 귀여운 후배였다.

그 반응 보는 맛으로 그날 하루 종일 놀렸던 게 기억이 났다.

“걔가 마탑의 총장이 됐어.”

“……총장?”

총장은 마탑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걸 결정하는 자로서 뛰어난 마법 실력은 당연하고 마탑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뭐든 익혀두어야 했다.

그 모든 걸 완벽히 해냈다고 해도 다른 1%의 무언가가 모자란다면 후보에서 탈락.

천운이 연속으로 몇 번씩이나 겹쳐야 오를 수 있는 게 마탑의 총장 자리다.

“대박이지!”

“대박이긴 하네.”

자신이 구해준 귀여운 후배가 그렇게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

필립이 집행부장으로 임명받는 취임식 때 참석했던 트리스를 본 적이 있는데 그녀의 상태는 좀 많이 안 좋아 보였다.

어디가 아파서 안 좋아 보이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문제가 커 보였다.

직설적으로 말해서 살짝 미친 것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정상이 아니었다.

아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 다른 차원으로 빨려 들어가 허우적대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이 조금씩 망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그 은인이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그렇겠네.”

데카드도 그녀에게 주었던 자신의 물건을 다시 받아가야 했다.

항상 데카드가 차고 있던 물건으로 마나를 담아 어지러운 차원 속에서도 인간계로 이정표를 잡기 위해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마탑의 총장이라면 하루가 매일매일 눈코 뜰새 없이 바쁠게 분명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아는 그 후배라면 잘살고 있을 것이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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