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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53화 (53/208)

053 황녀와 놀아주기

틴젤은 손에 들고 있던 인형도 바닥에 집어 던질 정도로 마수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얘는 이름이 뭐야?”

꼬리로 불꽃을 만들어 내는 레드 폭스의 재롱에서 틴젤은 눈을 떼지 못했다.

“레드 폭스입니다.”

“레드 폭스!”

프로스트 펭귄보다 체형이 강아지 같고 얼굴도 멋있는 레드 폭스가 더 좋은 건지 틴젤은 폭스를 껴안고 들어 올리며 귀여워했다.

틴젤은 마수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고 그동안 데카드는 방에 있는 쇼파로 가 앉았다.

“후우…….”

“데카드!”

잠깐 주어진 쉬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고 틴젤은 레드 폭스를 품에 안은 채로 데카드를 불렀다.

“네?”

“이제 인형 놀이 하자!”

인형 놀이?

고아원에서 자랐을 때 몇몇 여자애들이 다 헤진 인형으로 놀던 걸 데카드는 기억해 냈다.

그때도 저게 그렇게 재밌나 하는 생각 밖에 안 들었는데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일단 이 인형을 잡아!”

데카드는 그때부터 3시간에서 4시간 동안 인형만 붙잡은 채로 틴젤과 놀아 주어야 했다.

“…….”

“이제 그만할까?”

흑마법사의 저주에서도 멀쩡하던 데카드가 틴젤과의 인형 놀이에선 혼이 빠져나간 채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수왕님! 피곤해 보인다!]

‘맞아, 피곤해. 그것도 엄청.’

애하고 놀아주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데카드는 처음 알았다.

지금 자신도 이렇게 지치고 힘든데 이 황녀의 얼굴에서는 지친 기색이 단 하나도 없었다.

“폐하는 언제쯤 일이 끝나십니까?”

황제가 오늘의 업무를 마치는 순간이 데카드의 일이 끝나는 시간이라 그때만을 간절히 기다려야 했다.

“아빠? 맨날 달라서 모르겠는데 항상 밤늦게 왔어!”

아직 바깥은 해가 쨍쨍한 오후였고 그 말은 해방되는 시간까지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아빠가 안 오면 좋겠어! 데카드가 더 잘 놀아 주는 것 같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틴젤은 지옥에 떨어뜨린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해맑게 웃었다.

“인형 놀이는 질렸으니까 이제 바깥으로 나가자!”

틴젤은 데카드의 손을 붙잡고 한쪽에는 레드 폭스를 든 채로 문을 또다시 쾅하고 열었다.

황궁은 어찌나 넓은 건지 가도 가도 바깥으로 나가는 곳은 보이지 않고 그저 창문만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쪽이야!”

틴젤의 안내대로 골목을 몇 번 휙휙 하고 지나가자 환하게 문이 열려있고 그곳은 기사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기사들은 멀리서 틴젤이 보이자마자 허리를 곧추 펴고 오른손을 심장에 갖다 대며 한쪽 무릎을 꿇는 것으로 예의를 갖췄다.

틴젤은 이런 광경이 익숙한 듯 아무런 위화감 없이 그들의 사이를 지나쳐 바깥으로 나왔다.

“냄새 좋지 않아?”

틴젤이 데카드를 데려온 이곳은 꽃밭.

꽃들로 이루어진 바다에 온 듯 다양하고 향기로운 냄새의 꽃들이 바닥에서 천지를 뒤덮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렇게 많은 꽃들이 있으니 굳이 허리를 굽혀 코를 꽃들에게 가까이하지 않더라도 그 냄새가 자연스럽게 올라왔다.

“여긴 아빠가 선물해 준 곳이야!”

이 꽃밭은 황제가 틴젤에게 준 선물로 평소 꽃을 좋아하는 틴젤을 위해 황궁 뒤편에다가 정원을 만들어 주었다.

“선물 사이즈가 장난이 아니네요.”

누가 이런 걸 선물로 줄까.

엄청나게 넓은 부지에다가 그곳을 꽃으로 가득 채운다는 건 웬만한 부와 노력이 없이는 힘든 일이다.

데카드와 틴젤은 이 꽃밭 속을 걸으면서 냄새를 맡거나 좋은 날씨를 보았다.

잘 가던 틴젤이 중간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먼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데카드도 고개를 돌리자 이곳 성벽이 비교적 낮아서 황궁 바깥의 루비아 시내가 보였다.

“부럽다.”

그곳에서 열심히 떠들고 놀며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던 틴젤은 무심결에 이런 말을 툭 하고 내뱉었다.

“황녀님은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으세요?”

“응, 황녀는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니까.”

틴젤은 만나 이후로 가장 눈에 띄게 침울해 보였다.

아직까지 살아온 날이 짧다고 해도, 황궁이 루비아처럼 넓다고 해도 평생을 이곳에서 있어야 한다는 건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매일 또래의 친구들도 없이 혼자 놀아야 했고 황녀를 놀아 줄 사람은 황제밖에 없었지만, 그는 항상 바빴다.

“조금 더 루비아를 자세히 보고 싶진 않으세요?”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틴젤은 몸을 확 틀며 놀람으로 무척이나 커진 눈을 한 채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물론입니다.”

데카드는 틴젤 쪽으로 다가와 그녀의 팔에 손을 갖다댔다.

“잠깐만 실례할게요.”

“으, 응.”

황녀의 몸을 데카드가 양팔로 단단히 잡고 깃털 코트에서 그대로 짹짹이의 날개가 튀어나왔다.

펄럭- 펄럭-

“꺄아악!”

갑자기 반전되는 풍경과 귀를 때리는 바람 소리에 틴젤은 새된 비명을 내지르다가 발이 땅에 닿자 눈을 조금씩 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이곳은?”

“황궁의 지붕이에요.”

성벽보다야 당연히 높고 루비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 할 수 있는 황궁에서 최고로 높은 곳일 지붕은 루비아가 한눈에 보이는 듯했다.

“아름다워…….”

틴젤은 감상에 빠진 듯 데카드의 팔을 꼬옥 붙잡으며 조금이라도 더 많은 루비아를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언젠가 바깥으로 나가시면 이것보다 더 아름다울 겁니다.”

이렇게 먼발치에서 구경하는 것보다야 그 안에서 숨을 쉬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더욱 자신이 이 안에 소속되어있다는 기분이 든다.

“고마워, 데카드. 나한테 이런 경험을 하게 해줘서.”

“감사의 인사는 고맙게 받겠지만, 폐하에게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해요.”

황녀를 끌고 지붕 위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을 황제가 알면 그 뒤에 일은 어떻게 될지 뻔했다.

이건 거의 납치에 가까운 행동이었고 지금 납치한 대상은 무려 황녀였다.

“이제 내려가실까요? 다른 사람들이 볼 수도 있습니다.”

탁 트인 지붕에 사람 두 명이 올라가 있는 모습은 눈에 잘 띄었기에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굉장히 난처해진다.

“알았어!”

“그럼 내려가겠습니다.”

올라올 때와 똑같이 황녀를 잡고 바닥의 꽃밭으로 내려왔다.

“들어가자!”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 틴젤은 처음처럼 세상 아무 걱정 없이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인형놀이 할까?”

“…….”

방으로 돌아온 후에는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인형 놀이가 시작됐고 데카드는 눈을 감으며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빌었다.

* * *

“틴젤? 잘 놀고 있니?”

드디어 오늘 업무가 끝난 황제가 문을 조심스럽게 열며 방 안으로 들어오자 그 안에는 녹초가 된 데카드와 팔팔한 틴젤이 있었다.

“아빠!”

킨젤이 황제에게 안기자 데카드는 이제야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뒤에 황제가 있었기에 이렇게 드러누워 버리면 안됐다.

“오셨습니까.”

데카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순간 몸의 힘이 빠져 잃을 뻔한 중심을 겨우 잡으며 예를 갖췄다.

“그래, 수고가 많구나.”

황제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잠깐 용병은 바깥으로 나와 보아라.”

황제의 말에 따라 데카드가 방문 밖으로 나오자 그곳에는 수많은 수행원과 기사들이 쭉 서 있었다.

“생각보다 틴젤을 그대가 아주 잘 놀아준 것 같아 보상을 조금 더 올려서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당연히 그래야지.

데카드는 지금 틴젤과 인형 놀이를 하는 동안 머리가 다 빠지는 줄 알았다.

황제는 품에서 증서가 담긴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그대의 부탁이라면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나 탈리스 황제의 이름으로 들어줄 것을 맹세하겠네.”

한낱 용병에게 주는 것치고 엄청난 보상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눈이 화등잔만 해지고 몸을 부르르 떨며 놀라게 했다.

[그저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게 좋은 건가요?]

물론 보통 사람이 이런 증서를 보상으로 했다면 데카드는 당장에라도 그 사람의 머리를 두 쪽으로 갈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걸 준 사람은 다름 아닌 황제.

탈리스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 가능하며 세계의 신문물들을 가장 빠르게 상용화하는 것으로 유명한 나라의 지도자다.

이런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 데카드가 하는 부탁이라면 힘닿는 곳까지 돕겠다고 말하는 건 엄청난 보상인 것이다.

“마음에 드나?”

“물론입니다, 폐하.”

마음에 안 들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 데카드는 탈리스라는 거대한 나라를 아군으로 만들었으니.

이 증서로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해달라 같은 무리한 부탁은 당연히 안 되겠지만 있어서 전혀 나쁠게 없다.

“그럼 틴젤과 인사를 하고 그대는 퇴궁해도 좋네.”

“알겠습니다.”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데카드는 안에서 여전히 폭스와 놀고 있는 틴젤이 보였다.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가는 거야?”

틴젤은 눈에 띄게 가라앉은 표정을 지으며 폭스와 데카드를 바라보았다.

“막진 않을게. 데카드도 자신의 삶이 있으니까.”

방금까지 어린애들이나 하는 인형 놀이를 신 나게 즐긴 사람치고 굉장히 어른스러운 말을 입에 담자 데카드는 살짝 웃었다.

“언젠가 인연이 있다면 또 만나뵙겠습니다.”

“응! 난 이제 아빠랑 놀아야겠다!”

데카드는 황제의 무운을 빌어주며 마지막으로 틴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후 폭스와 함께 방을 나왔다.

“그럼 물러나 보겠습니다.”

“알았네.”

바통을 주고받는 것처럼 데카드가 나오자 이번에는 황제가 들어갔고 수행원 중 한 명이 대열에서 나와 데카드에게 왔다.

“바깥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수행원을 따라 걷다 보니 황궁의 어지러운 길도 이제 나름 눈에 익숙해졌다.

“이곳으로 곧장 나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수행원은 다시 황제에게로 돌아가고 데카드는 복도를 지나 황궁 바깥의 성문으로 나왔다.

[드디어 끝난 겁니까?]

[어우 살짝 졸았어요.]

[보는 내가 다 지루했다!]

[…….]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마수들이 전부 애같이 굴고 행동하긴 했어도 살아온 세월은 몇만 년이 넘어가는데 인형놀이에 흥미가 동하진 않았다.

“엘리스는 어디 있으려나.”

아마 여관에 있을 것 같았기에 데카드는 항상 엘리스와 자던 여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으! 피곤해!”

여관으로 가면 목욕탕 서비스부터 받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데카드는 밤늦은 시각 여관으로 돌아왔다.

“어서 오십쇼.”

해가 떨어진 지는 꽤나 오래 지났음에도 여관 주인은 1층을 빗자루로 쓸며 가게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도 대실로 드릴까요?”

매일 가장 비싼 방을 주문하는 데카드의 얼굴을 기억한 건지 이제는 여관 주인이 알아서 대실의 키를 건네주었다.

“물론이죠. 아, 그리고 이곳에 남색 머리에 허리에는 단검을 꽃은 여자 왔나요?”

“아아, 같이 다니는 그 여성분이요? 네, 아까 전에 올라가셨어요.”

“감사합니다.”

항상 엘리스는 데카드의 옆방을 주문하기에 똑같은 대실을 주문해왔던 데카드와 같이 엘리스의 방도 똑같을 것이다.

엘리스에게 돌아왔다는 인사라도 하려고 그녀의 방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자신이 예약한 대실의 문고리에 편지 봉투가 걸려 있는 게 보였다.

“이게 뭐지?”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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