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52화 (52/208)

052 황제의 선물

황가가 자신들을 불렀다고 적혀있는 문서를 기사들에게 내밀자 그들의 살짝 적대적이었던 태도가 귀중한 손님을 대하듯 바뀌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상부에 보고하겠습니다.”

기사중 한 명이 보고를 위해 황궁 안으로 들어가고 5분이 지나지 않아 기사는 옆에 다른 한 명을 데리고 온 채 일행에게로 다가왔다.

“어서 오십쇼, 저는 폐하의 신하인 코빌라라고 합니다. 저를 따라와주십쇼.”

자신을 코빌라라고 소개한 이 남자는 고급스러운 비단옷에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신사의 모습이었다.

“황궁은 말로만 넓다고 들어왔는데 그 소문보다 훨씬 넓은 것 같습니다.”

헤칸이 처음 보는 황궁을 두리번거리며 바깥과는 사뭇 다른 색다른 모습에 신기해했다.

“그러게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요.”

루비아는 기본적으로 통일된 건축 양식이라는 게 있었다.

하지만 황궁의 건물들은 다 제각각이어서 텔레포트 기계라도 타고 온 듯 아예 환경이 바뀌어버린 느낌이었다.

[숨바꼭질하면 재밌겠다! 여기서!]

술래가 고생 좀 꽤나 할 것 같은 장소이지만 도망치는 사람도 까딱하다간 길을 잃을 것 같았다.

“한눈팔지 마시고 저를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처럼 행동하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찾으러 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데카드는 코빌라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아까부터 헤칸과 벨린다와 같이 두리번거리는 엘리스를 바라보았다.

“여긴 암살자가 보기에 어때?”

코빌라가 듣지 못하도록 엘리스에게 다가와 속삭이며 말하자 그녀가 깜짝 놀란 듯 어깨를 크게 한 번 들썩였다.

“아읏……! 놀랐잖아요……!”

“크흠…… 미안.”

애초에 놀랄 줄을 모르고 한 짓인데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이쪽이 더 놀라고 말았다.

“암살자가 보기에 어떻냐고요?”

“어.”

황궁은 암살자의 침입과 침입자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이렇게 길을 꼬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일류 중에서도 탑 급 암살자인 엘리스의 의견이 문득 궁금해져서 한 질문이었다.

“흐음……. 아까부터 쭉 관찰해보긴 했는데 마땅한 도주로가 떠오르지 않아요. 내부자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힘들 것 같네요.”

“건축가들이 기뻐하겠네.”

이 황궁을 지은 건축가들은 인생 업적에 적어놔도 좋을 것이다.

무려 갈까마귀의 암살단원이 힘들다고 말할 만한 장소를 만들어냈으니.

일행끼리 잡스러운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드디어 황궁의 본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눈이 부시군요.]

벽을 도배한 수많은 황금과 보석.

곳곳마다 심심할 틈 없이 놓아진 조각상과 아름다운 명화들.

딱히 지금의 황제는 폭군이나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군주가 아니었음에도 이런 부가 자연적으로 축적이 될 만큼 탈리스는 강대국이었다.

거의 대륙 하나를 차지한다는 탈리스의 위상이 이곳을 보면서 더욱 실감이 났다.

[꽤나 대단한 사람 같은데 그런 사람이 주는 선물은 또 뭐일지 기대가 됩니다!]

‘너도 그러냐?’

고오른이 하고 있는 기대처럼 곧 황제를 만날 데카드도 기대가 충만해 선물을 받을 손이 근질거렸다.

황궁 또한 워낙 넓어 10분 정도를 걷고 나서야 황제가 있는 알현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기는 모두 이곳에 맡겨주십쇼.”

집행관들이 마법부의 소속이긴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따라야 했다.

그렇기에 헤칸과 벨린다는 무기가 들어있을 만한 아공간 주머니를 전부 꺼내놓고 몸수색을 받았다.

“…….”

엘리스는 무장을 해제하라는 말에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그래도 옆에 있던 데카드가 군말 없이 주머니를 내놓자 자신도 몸에 품고 있는 단검들을 꺼냈다.

‘짹짹이하고 너희들이 있으니까 상관 없겠지.’

당장 옷의 형태로 입고 있는 짹짹이는 물론이고 자신 안에 있는 마수들 또한 각자 세계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로 변신이 가능했다.

일행에 몸수색이 끝나자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코빌라는 문 앞에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폐하, 손님들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오시오.”

거대한 문을 양옆에 있는 기사들이 쭉 밀자 그 중앙 단상 위에서 고고하게 앉아있는 황제가 보였다.

‘황제가 바뀌었나?’

데카드가 알고 있던 황제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이제 곧 60살이 넘어가는 나이였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황제는 주름 하나 없는 얼굴과 매력적인 적발의 소유자였다.

일행이 예의를 갖추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자 황제는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들을 보고 싶었다.”

따로 황제가 질문하지 않는다면 말하는 것 또한 예의에 어긋나기에 일행은 입을 열지 않았다.

“고대의 문헌이나 신하들에게서만 들어왔던 유물을 탈리스가 얻어 마법부에게 전달하다니. 이로써 나라의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황제같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말은 서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끝이 좋아지는 꼴을 보지 못했다.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그 답례로 선물을 주고 싶어 이곳까지 불렀네.”

‘오오, 드디어!’

지겨운 프롤로그에서 드디어 메인 스토리로 넘어가자 데카드는 어떤 선물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먼저 집행관들에게는 훈장을 주도록 하겠네.”

집행관들은 승진할 때 여러 실무 업적들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황제가 주는 훈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큰 가산점이었다.

“또 훈장과 더불어 금화까지 주지.”

거기에다 보너스까지 준다고 하자 헤칸과 벨린다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그리고 용병들은.”

황제가 뒷말을 이으려 할 때 일행이 들어온 문 말고 황제가 들어오는 또 다른 문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빠!”

낭랑한 소녀의 목소리가 알현실을 메꾸고 기품있던 황제의 얼굴이 당황하는 얼굴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틴젤, 지금은 일하고 있잖니.”

“오늘 놀아주기로 했잖아!”

황제라는 무거운 직함을 달고 있어도 한 아이의 아빠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듯 쩔쩔매는 황제의 모습이 퍽 희귀했다.

황제는 아파오는 머리에 의자에다가 몸을 맡기면서 한쪽 손으로는 이마를 문질렀다.

틴젤은 또 약속을 안 지키려는 황제에게 뭐라 하려는 순간 알현실 중앙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데카드가 보였다.

“그럼 저 사람이랑 놀래!”

“저 용병 말이니?”

‘네?’

알현실 안에 있던 기사들과 황제, 황제의 딸 틴젤을 비롯해 일행들의 시선까지.

이 공간 안에 있는 모두의 이목이 데카드에게로 쏠렸다.

황제는 다시 무게를 잡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데카드에게 말했다.

“그대에게 퀘스트를 신청하겠다.”

“…….”

이미 악화된 상황은 좋아질 생각을 하지 않고 순조롭게 나빠져만 갔다.

“퀘스트의 내용은 우리 틴젤을 오늘 내 업무가 끝날 때까지 아주 성심성의껏 놀아주는 것.”

데카드는 입을 열지 못하고 침묵만을 할 뿐이었다.

집행관의 신분이었다면 뭐라 반항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저 한낱 용병이다.

“그럼 수락하는 것으로 알겠네. 물론 보상은 내가 확실히 챙겨주지.”

“이제 나랑 놀러 가자!”

아빠를 닮아 적발을 물려받은 소녀의 모습이 데카드의 눈에는 방금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 같았다.

틴젤이 데카드의 팔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자 데카드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움직이며 일행에게 말했다.

“……나는 좀 있다 갈게.”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데카드를 향해 측은한 눈빛을 보내주었다.

그건 황제와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어쩌다보니 이곳에 있는 모두가 데카드를 응원하고 있었다.

틴젤이 데카드를 이끈 곳은 황궁 건물 안에 어딘가였다.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틴젤은 집의 지리를 다 알고 있어 거침없이 복도를 뛰었고 데카드는 끌려다니기만 했다.

‘하아…… 차라리 흑마법사에게 끌려가는 게 낫겠어.’

만약 그렇다면 당장 흙으로 돌려보낼 줄 텐데.

[마수왕님! 고생 많다!]

[그냥 제가 삼킬까요? 그러면 아무도 못 알아챌 거예요!]

‘그럼 탈리스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거야.’

이 세상 즐거워 보이는 황녀님에게 손가락 하나라도 댄다면 그날로 처형장의 불이 켜질 것이다.

“너는 이름이 뭐야?”

“데카드입니다.”

갑자기 데카드의 이름을 묻던 황녀는 커다란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좋아 데카드! 여기가 내 방이야!”

틴젤이 문을 쾅하고 열어젖히자 그 안에는 여러가지의 고급진 인형들이 즐비했고 아름다운 드레스 또한 많았다.

집행부보다 넓어 보이는 틴젤의 방은 한쪽 구석에 옷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고 중앙에는 여관 1인실만 한 침대가 놓여져 있었다.

‘……무슨 거인족이 눕는 침대야?’

자신의 키에 절반 밖에 오지 않는 황녀가 누울 거라고는 상상도 안 되는 크기의 침대였다.

“우리 이제 뭐 하고 놀까?”

“글쎄요.”

데카드가 노는 방식하고 틴젤이 노는 방식은 확연히 다를 것 같아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잘생겨서 데려왔는데 놀 줄을 모르는구나?”

“…….”

자신은 그냥 잠을 자거나 마수들과 떠들거나 하는 게 노는 거였기 때문에 이런 걸 황녀에게 추천해줄 순 없었다.

“그럼 너는 뭐 할 줄 알아?”

“소환 마법을 할 줄 압니다.”

필립의 아들이나 이 황녀나 남이 뭘 잘하는지가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

“오오! 마법? 보여줘! 보여줘!”

마법이란 말에 눈에 띄게 흥분한 틴젤은 데카드의 바지를 붙잡고 흔들며 졸랐다.

“알았으니까 그만 흔드세요.”

데카드는 어린 소녀가 좋아할 만한 귀여운 마수 한 마리를 방에 불러냈다.

우우-

탐스러운 털의 레드 폭스가 총총 뛰며 데카드에게로 다가왔다.

“와아! 귀여워!”

날렵해 보이는 몸에 비해 풍성한 꼬리털은 베개처럼 푹신푹신하다.

“다른 거 또 없어?”

“물론 있죠.”

마수들 중에 못생긴 마수는 거의 없었고 있더라도 차례차례 뜯어본다면 매력이 충분했다.

“소환.”

이번에 소환한 마수는 프로스트 펭귄.

통통한 배와 살짝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마수다.

“이것도 귀여워!”

키가 거의 자신만 한 프로스트 펭귄을 보고도 전혀 무섭지가 않은지 틴젤은 펭귄을 꽈악 인형처럼 안았다.

펭귄이 짧은 두 날개를 펄럭이며 숨이 막힐 때쯤 틴젤은 펭귄을 놓아주었고 다시 봐도 신기한 듯 두 마리의 마수들을 바라보았다.

“나도 마법 배우고 싶어!”

“네?”

“이런 마법은 어떻게 하는 거야?”

황녀님께서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계시는 게 분명하다.

“으음…….”

먼저 마나룸을 열고 서클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고통이 상당하고 쓰지 않아서 더러워진 마나 회로도 청소를 해주어야 했다.

그렇다고 지금 속으로 생각한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또 아까처럼 하루 종일 조를 것이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다 해도 정말 마법을 쓸 수 있게 서클을 만들어 준다고 하면 그 고통을 곱게 자란 황녀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럼 황제가 자신을 가만 안 두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데카드는 황녀가 포기하도록 안 되는 이유를 말했다.

“마법에는 나이 제한이 있는데 황녀님은 너무 어리셔서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게 있어?”

“네.”

당연히 거짓말이었지만 틴젤은 아쉬워하더니 다행히 넘어가는 눈치였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조금 더 커서 배워야지.”

“후우…….”

황녀한테 거짓말을 한 셈이 되어버렸어도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봐야 하지 않겠나.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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