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유물의 유혹
‘얼마나 기절한 거지?’
무거워진 눈두덩을 힘겹게 열어보자 덜커덩거리며 움직이는 마차의 천장이 보였다.
[마수왕님이 일어나셨어!]
[괜찮으십니까! 마수왕이시여!]
[티이라! 걱정했다! 흑흑!]
[…….]
[하루를 넘게 잠만 자셨습니다.]
마차 안은 사람 한 명 정도가 누울 수 있게 특별 제작한 환자 이송용 마차였다.
“으윽, 머리야.”
[마나를 무리하게 사용하셔서 많은 피로가 몸의 누적된 상태입니다.]
자신의 마나룸 뿐만이 아닌 마수들의 마나까지 전부 탈진해버리자, 마나 고갈 현상은 더욱 심하게 데카드를 찾아왔다.
그래서 평소라면 아무리 마나를 다 썼더라도 멀쩡하게 걸어 다녔을 데카드가 기절까지 한 것이다.
데카드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을 치웠다.
“깨어나셨어요?”
마차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엘리스가 귀신같이 알고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응, 여긴 어디야?”
“루비아로 가기 위해 가장 가까운 도시로 이동 중이에요.”
“그렇구나.”
아직 몸의 기운이 조금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데카드는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위해 마차 안에서 나오려 했다.
“조금 더 누워계셔야 한댔어요.”
환자용 마차와 함께 온 사제가 데카드를 진찰하고는 며칠간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말해놓은 상태였다.
그렇기에 엘리스는 마차의 입구를 수문장처럼 막으며 데카드가 나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나 이제 정말 괜찮아.”
“그렇진 않아 보이는데요?”
하루간 먹지 못해 조금씩 들어간 볼살과 퀭한 눈, 그 밑으로 내려와 있는 다크 서클을 보면 딱 봐도 환자가 맞았다.
[저 암컷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저 암컷의 말이 맞아요.]
[마수왕님! 쉬어라!]
[경계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
[주인님이 빠르게 회복하셔야 저희들도 빠른 회복이 가능합니다.]
소환사가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 하는 소환은 마수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그 마수가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지금 데카드가 상시 소환 중인 마수들도 그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데카드가 아직 완벽하게 회복을 하지 못해 마수들 또한 덩달아 조금씩 약해져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하지만 마수들은 그딴 이유가 아닌 순전히 데카드의 건강을 생각해서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우러나온 의미의 만류였다.
“……알았어.”
데카드 본인도 고집이라면 어디 가서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쇠고집인데 자신이 길들인 마수와 옆에 둔 친구는 그보다 더한 고집의 소유자들이었다.
얌전히 옆으로 치워났던 이불을 덮으면서 눕자 엘리스는 이제야 안심한 듯 마차 안에 무언가를 놓으며 말했다.
“사제님이 주신 환자용 음식이에요. 배고플 때 드세요.”
“나이스 타이밍.”
잠에서 막 깨어날 때는 몰랐는데 슬슬 하루 동안 공복이었던 배가 울부짖으려던 참이었다.
“죽이네.”
일회용 팩 안에 들은 죽은 다른 곳에서 파는 죽보다 훨씬 많은 영양분을 한꺼번에 섭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두었다.
죽과 함께 들은 숟가락으로 한 입씩 퍼서 입 안에 넣자 그 따뜻한 온기가 몸 전역에 퍼져 순식간에 몸이 따뜻해졌다.
“맛있네.”
배고파서 그런진 몰라도 평소에는 거들떠도 안 보던 죽이 참 먹을만했다.
죽을 반쯤 먹었을 때 데카드는 문득 품속에 있는 유물이 생각났다.
손을 안쪽에 주섬주섬 넣어 단상에 있던 유물이 담겨있는 주머니를 꺼냈다.
“꺼내봐도 되겠지?”
유적 안에서는 그냥 아무렇게나 만지고 주머니에 넣어도 별다른 거부반응 같은 게 일어나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자 딱딱하고 사람 머리만 한 큐브가 만져졌다.
그대로 유물을 잡으면서 꺼내자 기하학적인 문양과 뜻을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불규칙하게 적혀있는 유물이 나왔다.
“세이칼도 이런 모습의 유물을 본 걸까?”
슬레이에서 그가 했던 설명을 들어보면 썩은 쥐의 보스가 가지고 있는 유물과 이 유물은 모양이 같았다.
[마수왕님! 그래서 이게 뭐냐?]
“나도 그게 의문인데.”
이게 대체 뭘까?
슬레이에 있는 유물은 다른 사람의 생명력을 뺏어서 다른 사람에게 이전해주는 권능 같은 힘을 갖고 있었다.
“이것도 비슷하려나?”
똑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 유물에 못지않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거라 추정됐다.
한 손으로는 계속 죽을 퍼먹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유물을 뒤집어보며 관찰하던 도중 유물에서 요사스런 빛이 흘러나왔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색깔의 빛은 아니었어도 무언가 계속 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의 빛.
시야가 좁아지고 오직 이 유물만을 볼 수가 없게 되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물건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데카드의 눈이 충혈되고 유물을 들고 있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수왕님 괜찮으세요……?]
“으아악!”
데카드가 유물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시선을 겨우 때고선 들고 있던 유물을 당장 주머니 속으로 거칠게 처넣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선배님! 괜찮으세요?”
“데카드!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마차 안에서 데카드가 비명 같은 포효를 내지르자 마차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입구로 고개를 내밀었다.
“데카드 얼굴이…….”
분명 치료를 받고 아까보다 상태가 더 좋아져야 정상인데 지금 데카드의 눈은 붉게 충혈되고 앙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하아…… 하아…….”
그리고 유적에서 막 나오고 난 이후의 데카드를 보는 것처럼 눈에 띄게 힘들어하고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유물이 주인님을 홀리려 그랬군요.]
짹짹이의 말대로 어떻게 한 것인지 유물은 데카드를 자신에게 홀리게 하여 자신밖에 모르는 폐인으로 만들려 했다.
데카드가 1000년간 살아오면서 쌓은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뿌리치지 못하고 유물의 노예가 됐으리라.
“유물을 절대 만지지 마.”
겨우 회복된 정신력으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말하자 엘리스가 물었다.
“유물을 꺼내보신 거예요?”
데카드는 고개를 끄덕였고 벨린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제는 정말 쉬세요, 선배님.”
“맞습니다. 이제 달렌까지는 얼마 안 남았으니 선배님은 지금이라도 쉬시는 게 좋겠습니다.”
“알았으니까 나가 봐.”
다시 조용해진 마차 안에서 데카드는 벽면에 등을 기대고 품 안에 잠들어있는 유물을 느꼈다.
고대의 보물이라고는 하지만 고작 물건이 이렇게 강한 흡입력과 최면을 걸 수 있다는 게 놀랍고 한편으로는 섬뜩했다.
‘그 빛에 한번 빠지면 벗어날 수 없어.’
세상을 구한 구세의 성자도 이 빛을 맛보면 유물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자신이 유물에 홀렸을 때 유물과 자신과의 연결감이 느껴졌다.
“으으, 소름 끼쳐.”
데카드는 더 이상 유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그냥 드러누웠다.
[이 고오른은 믿고 있었습니다! 고작 이런 물건 따위에 마수왕님이 질 리가 없다고 말이죠!]
‘하마터면 질 뻔했어.’
일반인은 유물을 만지자마자 홀릴 것이고 마법사 정돈되어야 조금 버틸 것이다.
‘필립에게 말해야겠다.’
유물은 아마 중립지대 아사이드에 있는 마법부로 이송될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쪽에서 멋모르고 유물을 만졌다간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무지막지하게 높았다.
[일단은 주무십시오. 정신력이 많이 고갈되셨습니다.]
‘그래야겠어.’
안 그래도 방금 누웠는데 잠이 솔솔 쏟아졌다.
[마수왕님! 잘 자라!]
[제가 자장가라도 불러 드릴까요?]
[빠져라, 요르! 너보단 내가 더 잘 부른다!]
[…….]
잠자기엔 조금 많이 시끄러웠지만 그렇기에 무언가 더 집 같고 안정되었다.
그렇게 데카드가 유적 다음으로 꿈나라를 향해 두 번째 여행을 떠났을 때 마차는 달렌의 도착하고 그곳의 기계를 이용해 루비아로 텔레포트 했다.
* * *
“하암…….”
이번에는 일어나도 몸이 피곤하거나 지치는 게 아닌 정말 완벽히 회복되어서 나오는 하품과 함께 데카드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누가 옮겨준 거지?”
잠이 들었던 곳은 마차였는데 일어나보니 여관 같아 보이는 방 안에 침대였다.
[헤칸이라는 집행관이 주인님을 들어서 이곳까지 옮겼습니다.]
“그래?”
커다란 커튼을 젖히고 넓적대대한 창문을 연 데카드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짹짹아, 여기 여관아니었냐?”
창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넓은 정원과 그것을 가로지른 산책길.
중간중간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 분수대는 하늘 높이 물을 뿌렸다.
그 속을 즐겁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얼굴은 어쩐지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많이 닮아 있었다.
[주인님의 친구분이 이곳으로 안내하더군요.]
그렇다면 여기는 필립의 집이라는 소리가 된다.
창문으로 본 집은 대충 봐도 대저택이었고 필립의 깔끔하고 자연 친화적인 성격이 많이 묻어났다.
“이 새끼 엄청 성공했네.”
집행부장이라는 자리에 오른 것부터가 이미 전혀 남 부럽지 않은 엄청난 성공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물질적인 것을 직접 보고나니 그 성공이 더욱 와 닿는 게 사실이다.
“그럼 쟤들이 필립의 아이들이겠네.”
아까부터 유난히 어디선가 본적이 있던 얼굴의 아이들은 다행히 아빠를 닮지 않고 엄마를 닮은 것처럼 보였다.
덜컥-
데카드는 방문을 열고 나가 꾸며졌다기보단 잘 정돈된 저택의 복도를 걸었다.
중간마다 마주친 메이드들은 하나같이 데카드를 보며 고개를 숙였고 집사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중년이 데카드에게 다가왔다.
“저는 이 저택의 1등 집사 하인즈라고 합니다, 필립님께서 깨어나시면 자신의 방으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아는 필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필립님이라는 호칭에 데카드는 순간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가면 되죠?”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하인즈는 절도 넘치는 모습으로 발소리를 전혀 내지 않고 필립의 방까지 움직였다.
보통 집사들이나 메이드같이 귀족의 집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그들의 업무에 방해가 될까 이렇게 조용히 걷는 것이 습관화 돼 있다.
똑똑-
“필립님, 하인즈입니다. 손님을 모셔왔습니다.”
“들어오세요.”
하인즈가 문을 두들기며 말하자 안 쪽에서 짐짓 무게를 잡는 필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다시 터질뻔한 데카드는 필립의 이미지를 위해서 테이프라도 입에다 붙여야 하는지 고민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하인즈가 연 문을 데카드가 들어가고 그는 다시 조용히 문을 닫았다.
“왔냐?”
하인즈를 비롯한 제 3자도 사라지고 둘 밖에 남지 않자 필립도 격식 없이 데카드를 대했다.
“집 좋더라?”
“집행부장에게 그냥 공짜로 주는 집이라 해서 별 기대는 안 했는데 괜찮더라고.”
“그런 혜택이 있었어?”
집행부장이라는 자리가 가지고 있는 힘 중에서 그런 게 있는지는 난생 처음 알았다.
“솔직히 이렇게 뼈 빠지게 일하는 데 이 정돈 줘야지.”
필립은 양손 가득 들고 있는 서류 더미와 아예 박스채로 쌓여있는 서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워우, 그래서 형수님은 어디 계셔?”
“방에 있을 거야.”
“얼굴 한번 보고 싶은데.”
모쏠인 자신의 친구를 결혼까지 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사람인데 친구로서 감사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다.
“나중에 저녁 먹을 때 보게 될 거야.”
말하면서도 필립의 눈은 서류에 집중돼 있었다.
“아, 그리고 네가 유물 가지고 있지?”
제일 급한 걸 까먹고 있었다는 듯 필립이 펜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당연하지.”
데카드는 유물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꺼내 보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