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 유적 탈출

흑마법사의 발걸음은 단상 앞에서 멈추고 말았다.

유물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 어떠한 것도 없이 먼지만 날릴 뿐이었고 바보 같은 부하 놈들은 황금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빠드득하며 이빨 갈리는 소리가 조각상 뒤에 숨어있는 일행에게 닿을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저자가 흑마법사 무리의 대장인가 봅니다.]

[이 고오른이 볼 때도 꽤나 힘 좀 쓰는 녀석입니다!]

마수들이 인정할 정도로 지금 분을 삭이고 있는 흑마법사는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적보다 강해 보였다.

‘6 아니면 7서클.’

웬만하면 아니기를 빌고 있지만 7서클이라면 대마법사라 불릴 수준이다.

그들의 힘은 마법 하나로 자연 생태계를 바꿀 수 있고 절대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되는 이들 중 손꼽히는 자들이다.

[옥체의 안전을 위해서 싸움은 피하시시는 걸 권장 드리겠습니다.]

지금 데카드로선 저 대장급의 흑마법사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았다.

마수들의 무기화와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고 팔다리중 한두 개 잃는 걸 각오한다면 그나마 쓰러트릴 가능성이 생긴다.

이것도 낮은 가능성에 한해서지 운이 안 좋다면 싸우러 가자마자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

그만큼 고서클 마법사와의 싸움은 데카드에게도 위험했다.

데카드는 판단을 마치고 조각상 뒤편에 숨어있는 일행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눈에 안 띄게 나가야 해!’

그 말에 다른 동료들도 동의하는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들어온 통로까지는 대략 20M 정도.’

가는 길마다 조각상이 놓여져 있어 몸을 숨기면서 나가는 게 타이밍만 맞는다면 허황된 소리는 아니었다.

‘내가 신호를 줄 테니까 모두 한 조각상씩 움직여!’

수신호로 명령을 내린 뒤 다시 적들을 살펴보았다.

아직 흑마법사는 단상에서 사라진 유물에, 허탈감과 분노에 빠져 지금 일행에게 신경 쓸 정신이 없어 보였고 다른 흑마법사들은 황금에 빠져 있었다.

‘그 나침반을 쓰기 전에 얼른 나가야 해.’

유물의 위치를 알려주는 나침반.

그 물건 또한 매우 갖고 싶었지만, 지금은 목숨을 최우선으로 챙겨야 할 때다.

데카드가 내리는 신호에 따라 일행은 조각상과 조각상 사이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케헤헥! 우린 부자다!”

“어딜 손대! 다 내 거야!”

자신들의 아공간 주머니를 활짝 열고 금화와 보석들을 털어 넣기 바쁜 흑마법사들은 지금 대장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 닥쳐라!!”

““…….””

찢어져 버린 성대가 억지로 소리를 내는 것처럼 불협화음의 목소리가 유적을 가득 메웠다.

‘깜짝이야.’

그 고함에 몰래 걸어가고 있던 일행들이 더 놀라 움찔거리면서 멈칫했다.

‘잠깐 정지.’

갑자기 대장 흑마법사가 눈에서 불을 뿜으며 몸을 훽하고 돌리는 탓에 더 움직였다면 모습이 보일 뻔했다.

“이런 쓰레기들을 부하라고 두고 있다니.”

사실 이 황금과 보석들은 유물을 보호하는 장치였다.

아무리 유물만을 목적에 두고 온 자들이라 해도 이렇게 산으로 쌓인 금화와 보물들을 보게 된다면 눈이 돌아가서 조금이라도 더 챙기려 한다.

거기서부터 금화의 저주는 시작된다.

금화를 자신의 배 안으로 넣으면 넣을수록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게 유물을 보호하고 있는 황금의 저주다.

이 저주에 걸린 자들은 지금의 흑마법사들처럼 본래 가지러 온 유물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렇게 금화만 탐하게 되는 것이다.

“흑마법사란 놈들이 겨우 이딴 저주에 걸려?”

이건 실책이다.

금화 속에 이런 저주가 걸려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야 했는데.

상부가 입수한 문헌에는 함정들의 파훼법은 나와 있었어도 저주에 대한 말들은 쏙 빼먹고 있었다.

흑마법사 무리의 대장은 이빨을 갈며 금화속에 빠져서 정신 못 차리는 흑마법사들을 꺼내왔다.

“황금! 황금!”

“내가 다 가질 거야!”

기껏 꺼내와도 다시 황금 속에 들어가려 하는 이 멍청한 새끼들을 어떻게 처분해야 하는지 심히 고민되었다.

“죽이면 안 되지.”

지금은 참아야 한다.

흑마법사들이 모인 단체는 지금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시체를 부리고 망자를 일으키는 흑마법사가 무슨 인력난이냐고 해도 그들을 지휘하는 자들은 필요하기 마련.

저주에 빠져 희희낙락거리고 있는 이 흑마법사들도 정예라고 할 만한 주요 전력이었다.

옛날처럼의 개인 생활이 아닌 단체 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은 이런 놈들 하나하나가 소중한 자원이다.

“깨어나라.”

한 놈 한 놈 저주 해제를 걸어주자 다들 풀렸던 동공이 퍼뜩 뜨이더니 헛바람을 들이키며 정신을 차려나갔다.

“내, 내가 왜 여기에……!”

저주에 걸린 이들은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 흑마법사처럼 기억마저 온전치 않게 된다.

“유, 유물은 어디 있습니까?”

“없어졌다.”

다른 흑마법사들이 전부 정신을 차리자 대장은 유물의 위치를 알기 위해 자연스럽게 품에서 나침반을 꺼냈다.

그 모습에 데카드가 혀를 차며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이런 젠장!’

이제 거의 통로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는데 저 망할 흑마법사가 나침반을 손에 들었다.

딸깍- 딸깍-

흑마법사의 나침반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침들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당연하게도 지금 데카드가 나가려고 하는 통로.

“멈추어라!!”

아까 유물이 사라졌을 때와 흑마법사들을 다그칠 때 냈던 노성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커다란 괴성이 뿜어져 나왔다.

이미 위치는 들켰기에 데카드는 황급히 외쳤다.

“모두 귀 막아!”

고서클 흑마법사는 저렇게 짧은 단어에도 저주를 담아낼 수 있어 들으면 들을수록 저주에 휘말리게 된다.

어차피 들킨 거 일행은 몸을 숨기지 않고 들어왔던 복도를 통해 날개가 달린 조각상이 있던 방으로 달려나갔다.

“으으, 어지러워요.”

서클이나 마나룸이 개방되지 않아 저주에 대항하는 힘이 가장 약한 엘리스는 저주의 소량 노출된 것만으로도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조금만 참아.”

이 유적 바깥으로 나가기 전까진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죽여버리겠다!!”

아까 자신들이 달려나온 통로로 대장 흑마법사의 노호성이 들려왔다.

“젠장.”

이대로 가다간 저 흑마법사들과 전면전을 펼쳐야 하는데 그건 압도적으로 일행에게 불리했다.

전력차이로나 공격마법의 제한성으로나 모든 것이 흑마법사 쪽의 우위였다.

지금 이 상황을 엎어버릴 수라면 어떤 거라도 시도해볼 가치가 있었다.

그런 데카드의 눈에 문을 지키고 있는 새 머리의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아까 저 조각상이 자신을 부수면 유적도 무너진다 그랬지?”

“네, 그랬어요. 선배님 설마…….”

“모두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화력을 복도로 쏟아부어.”

[이 몸이 나설 차례군!!]

데카드의 양손에 볼캐닉 건틀렛이 씌워지고 주위로 아지랑이가 번져나갔다.

“정말입니까, 선배님……?”

“조각상이 부서지고 나면 모두 내 곁으로 와.”

평소 장난기 넘치던 데카드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모두들 준비해라.]

[준비! 끝났다!]

[언제나 준비 완료라고요!]

총 5개의 마나룸이 전부 열리면서 아지랑이는 파랗게 변하고 푸른색 입자들이 건틀렛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벨린다가 장검을 뽑아들자 전격이 사방으로 튀기면서 위력을 높여나갔다.

“라이트닝 베쉬!”

전격에 휘감긴 참격이 복도의 중앙을 갈라버리며 천둥이 우르르 울려퍼졌다.

콰르르릉-!!

그럼에도 흑마법사들의 뛰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이제 정말 가까워졌을 때 데카드는 지면을 박차며 점프했다.

“그라운드 펠리스!”

부족한 거리는 헤칸이 바닥에서 계속 기둥을 세워주었고 그것을 디딤돌 삼아 계속 뛰어가자 조각상의 얼굴까지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뭐, 뭐하는 짓이냐!”

“미친 짓!”

콰아아앙-!!!!

데카드의 양 주먹이 조각상의 정수리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것처럼 내려치자 그 충격의 유적 전체가 진동했다.

흑마법사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조각상의 머리를 시작으로 금이 쩌저적 갈라졌다.

그와 동시에 유적의 벽면도 떨려나갔고 붙어있던 먼지들과 모래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놈, 미친 것이냐!! 그걸 부순다면 이 유적이……!!”

“그걸 원한 거다!!”

건틀렛이 불을 뿜으며 흑마법사를 향해 허공을 강타했다.

쿠우웅-!!

고온의 잿더미가 휘몰아치며 흑마법사를 향해 충격파가 날아들었다.

“어린애 장난 같은 공격으로는 나에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흑색의 마력이 로브 위로 고드름처럼 올라와 벽 모양의 베리어를 만들어냈다.

“어린애 장난이라기엔 꽤나 통했는데?”

베리어는 고오른의 열을 버티지 못해 조금씩 녹아내려 구멍이 뚫려있었다.

“생포하기 위해 봐줬더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나대는구나.”

“대, 대장! 벽들이!”

“데카드! 유적이 무너지고 있어요!”

지금 각 무리의 대장들이 자존심 싸움으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조각상과 유적은 금을 넘어 아예 파편이 무더기로 떨어지고 있었다.

곧 있으면 나갈 문의 입구도 무너지게 생겼기에 데카드는 올라갔던 기둥에서 단숨에 내려왔다.

“너는 왠지 또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드네.”

여자와의 인연은 모르겠어도 흑마법사와 맺어진 악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네놈은 여기서 나한테 잡힐 텐데 뭘 또 만나느냐.”

쿠구궁-

이젠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얘들아, 잠깐 실례 좀 할게. 짹짹아, 너는 나를 도와줘.”

[물론입니다.]

등 뒤로 흑색 깃털의 날개가 펴지면서 아공간 주머니를 든 데카드가 순식간의 일행들을 주머니 안에 넣어버렸다.

“꽉 잡아라.”

주머니 안에서 뭔 잡을 게 있을진 모르겠지만 지금 살 길은 이것뿐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겠습니다.]

촤라락-!

날개가 저절로 움직이며 깃털을 흩뿌렸고 그것들은 하늘거리며 힘없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 암기처럼 흑마법사들에게 날아갔다.

“이건 저희가 막겠습니다!”

호기롭게 나선 부하 흑마법사들이 베리어를 펼쳐 들자 깃털은 방어를 뚫지 못하고 막히는 것처럼 보였다.

“크학!”

“어, 어떻게!”

“역시 쓸모가 있어.”

갈까마귀 암살단의 암기 투척술.

뒤늦게 뿌려진 깃털들이 앞서 나간 깃털들을 따라잡고 쳐내면서 방향을 바꿔냈다.

그 결과 베리어를 넘어 흑마법사들의 어깻죽지에는 사람의 손바닥만 한 깃털들이 깊게 박혔다.

달려서 쫓아오는 건 무리일 것이다.

“전속력으로 날아간다.”

[준비됐습니다.]

피융-!

데카드는 통로를 말 그대로 하나의 화살처럼 튀어 나갔다.

슬레이의 상공을 날아다닐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빠르게.

“네 이놈!!”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한순간의 이명으로 들릴 만큼 날아갔다

그림자가 생기면 안 되는 함정과 안전한 타일을 밟아야 하는 함정들도 전부 통과했다.

“더 빨리!”

[이게 최대 속력입니다.]

처음 들어갈 때를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속력이었지만 유적이 무너지는 속도는 이보다 더 빨랐다.

[마수왕님! 마나가!]

[크윽……!! 마나가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

[마수왕님! 저희는 더 버틸 수 있어요!]

아직 입구까지는 조금 더 남았다.

마수들의 마나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데카드의 마나도 슬슬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크흑……!!”

지금 데카드가 전속력으로 날아가고 있는 복도도 곧 있으면 따라잡힐 듯 뒤가 실시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짹짹이의 날개가 무너지는 파편들과 닿을 것처럼 가까워졌고 깃털 몇 개는 이미 깔리면서 뽑혀나갔다.

조금이라도 느려지거나 마나가 빠진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쥐포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건 사양한다.’

어느 누가 살아있는 채로 쥐포를 만들어 지는 걸 좋아할까.

무섭게 뒤를 쫓아오는 죽음과 술래잡기를 하던 도중 저 멀리 바깥으로 나가는 입구가 보였다.

“나왔다!!”

콰르릉-

데카드가 빠져나와 눈밭을 떼굴떼굴 구름과 동시의 유적은 완전히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짹짹이의 날개는 깃털로 산화하며 사라졌고 데카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머니에 넣어놨던 일행을 꺼냈다.

“저, 저희 산 건가요……?”

“당연…… 하아…… 하지…… 하아…….”

웬만해선 절대 다 쓸 수가 없다고 자신했던 5개의 마나룸도 이제는 정말 날개 한 번 더 펄럭일 힘밖에 남지 않았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엘리스가 다가와서 부축해 주려 하자 데카드가 손을 들며 막았다.

“괜찮아. 나 혼자 걸을…….”

후들거리는 무릎으로 일어서려 했지만 몸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털썩-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