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유적의 함정
[주인님.]
‘왜 그래?’
짹짹이가 안내를 하다말고 갑자기 데카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신호가 끊겼습니다.]
‘신호가 끊겨……?’
[그렇습니다.]
선두에 선 데카드의 무스가 턱하고 멈춰버리자 나머지 일행이 타고 있던 무스들도 전부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선배님?”
“잠깐만, 생각 좀 할게.”
신호가 끊긴 거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사용자의 죽음이다.
인질로 잡은 흑마법사의 기계 신호를 짹짹이가 기억해서 이렇게 따라갈 수가 있는 건데 이렇게 되면 일이 꼬여버렸다.
[그래도 마지막 신호까지는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지.’
다시 무스의 허리에다 살짝 발을 구르자 다시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엘리스에겐 데카드가 뒤돌아 있는 모습이라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추적하던 신호가 끊기긴 했는데 일단 그곳까지 가봐야 알 것 같아.”
정지해있는 마지막 신호까지 무스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나무들을 뚫고 바닥에 내리는 눈발에 머리 위가 하얗게 칠해져도 멈추지 않았다.
[곧 있으면 마지막 신호에 도착합니다.]
무스들이 짹짹이가 안내한 마지막 신호에서 턱하고 멈췄다.
“이, 이게…….”
“유적…….”
“이런 건물은 처음 보네요.”
일행이 놀란 이유는 마지막 신호가 있는 자리에 죽은 시체가 있다던가 아니면 피가 낭자해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도착한 곳에서 본 전혀 처음 보는 양식의 건물 때문이었다.
“이 안에 유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다.”
데카드는 무스에서 내려 건물의 위용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순수히 돌로 조각되거나 만들어졌고 그 시간의 흐름 때문에 거의 절반은 눈에 파묻혔지만, 그 자태는 실로 감탄스러웠다.
“문제는 이 안에 흑마법사가 먼저 들어갔단 말이지.”
“흑마법사.”
벨린다는 복수심과 흑염에 당한 상처를 떠올리며 얼음처럼 차가워진 장검을 뽑아들었다.
“어서 따라잡아야겠어요.”
흑마법사의 뒤를 잡는 거라면 엘리스에게도 유리한 판이었다.
“마나는 다들 최대한 갈무리해줘.”
흑마법사는 마법사를 감지할 수 있지만, 마법사는 흑마법사를 감지할 수 없다.
그들의 저주받은 마나를 마법사는 느끼지 못했고 흑마법사들은 본래의 마법사였던 자들이라 당연히 마나를 바탕으로 하는 마법사를 알 수 있었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나룸을 닫고 마나 회로를 돌고 있는 마나도 잠재워버려 완전히 기척을 감췄다.
“흑마법사가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가 알 수 있어.”
“우리……요?”
벨린다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곳에 흑마법사를 감지하는 것이 가능한 인물은 없어 보였다.
[그게 우리다!]
[그럼! 그럼!]
[티이라! 역겨운 냄새는 나지만 기대된다!]
[…….]
“출발하자.”
유적 안으로 발을 들이자 위로 송송 뚫린 구멍으로 햇빛이 들어와 실내를 밝혀주었다.
복도 같은 일직선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자 빛은 점점 줄어들고 어느새 어둠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저에게 좋은 물건이 있습니다.”
마나는 혹시 흑마법사들이 알아챌 수 있으니 최대한 쓰지 말아야 했기에 헤칸은 품에서 작은 구를 꺼냈다.
딸깍-
몇번 눌러주자 광구는 환하게 주변을 빛냈고 다시 앞도 보이기 시작했다.
“오오, 신기술.”
데카드가 현역일 때는 그냥 닥치고 횃불이어서 쓸데없는 불편함이 많았다.
이런 옛날 생각에 빠져서 걷고 있을 때 복도가 끝이 나고 넓은 방이 나왔다.
“아름답군요.”
양옆에 일렬로 무기를 든 조각상들이 쭉 늘어져 있는 모습은 예술을 즐기는 자라면 감상에 젖을만했다.
바닥은 또 처음 보는 문양이 그려져 있는 정사각형 모양의 타일이 깔려져 있었고 그 타일마다 문양이 같은 것이 있고 다른 게 있었다.
“구경하라고 만든 건 아니겠지.”
자신이 이런 유적을 탐험하는 트레져 헌터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있다는 구린 냄새가 진동했다.
[냄새! 쭉 이어져 있다!]
티이라는 조각상 사이를 뚫고 저 반대편 복도까지 냄새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 지나가도 된다는 뜻인가?’
고민해서 달라질 건 없다, 일단 가봐야 무언가 해결이 되리라.
“그럼 제가 먼저…….”
헤칸이 그 앞으로 발을 디디려 하자 데카드가 손을 들어 막았다.
“소환.”
굳이 사람이 갈 필요가 없다.
가볍고 반사신경이 재빠른 우드 몽키가 그 일을 대신해 줄 것이다.
우끼-! 우끼-!
우드 몽키 한 마리가 방방 뛰며 빠르게 반대편 복도까지 뛰기 시작했다.
덜컥-
우끼-?
우드 몽키가 크게 점프하면서 타일 하나를 밟자 그 타일이 쑤욱하고 들어가더니 조각상들의 눈에서 푸른 빛이 튀어나왔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조각상들은 팔을 굽히고 다리를 움직이며 들고 있는 거대한 창을 우드 몽키에게 찔러넣기 시작했다.
쾅-! 쾅-!
우끼-! 우끼끼-!
우드 몽키는 죽을 힘을 다해 창 위를 넘나들며 공격을 피해냈고 창 하나에 올라타 그것을 꼭 붙잡았다.
결과적으로 타일 위에는 아무것도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게되자 조각상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자리를 지켰다.
“수고했어.”
정말 수고한 우드 몽키를 역소환하고 데카드는 뒤를 돌아봐 일행들과 눈을 마주쳤다.
“어떻게 생각해?”
“흐음…….”
누르면 들어가는 타일과 그에 맞게 반응하며 움직이는 조각상들.
어느 누구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건 데카드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집을 지켜주는 움직이는 거석상은 남자들의 로망에 있을 법해 이 일이 끝나고 나면 하나 가져가고 싶기도 했다.
“벨린다는 뭐 알겠어?”
바닥에 쭈구려 앉아서 각자 모양이 다른 5개의 타일을 관찰하던 벨린다는 눈쌀을 좁히며 말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이 문양들?”
타일들에게 박혀있는 5가지의 다른 문양들은 규칙적이지 않고 무작위로 깔려있었다.
“선배님의 마수는 가벼워서 중간까지는 문제없이 갔지만 점프해서 타일을 밟은 순간 어느 무게 이상으로 이 타일을 밟게되서 석상이 움직였어요.”
“그랬지.”
“타일 위에서 올라오자 석상은 다시 돌아갔고요.”
벨린다는 석상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고는 타일을 가리켰다.
“이 문양 중에 밟아도 괜찮음을 알리는 문양이 있을 거예요.”
“호오, 그럴듯해.”
방법은 알았으니 이제 5개의 문양 중 뭐가 정답인지 알면 깔끔히 해결되는 일이다.
데카드는 손바닥을 삭삭 비비고 다시 한 번 소환을 펼쳤다.
우끼-! 우끼끼-!
이번에도 우드 몽키가 나왔지만 하나가 아닌 문양의 숫자와 같은 5마리다.
“모두 다른 문양 위에 올라가 줘.”
역시 가벼운 우드 몽키들은 특별히 힘을 줘서 밟지 않는다면 타일이 내려가지 않았다.
“점프!”
우끼-! 우끼-!
우드 몽키들이 동시에 점프하고 있는 힘껏 타일을 밟았다.
덜컹- 덜컹-
예상대로 4개의 타일이 밟히고 조각상들이 움직이면서 우드 몽키들을 찌르기 위해 거대한 창을 이쑤시개 다루듯 휘둘렀다.
“오케이! 다들 들어가!”
마수들이 역소환되고 이제 어디가 활로인지 알게 되었다.
“이 문양만 밟으면 되겠어요.”
“흑마법사들은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석상들에게 당한 흔적도 없었고 마치 전부 알고 있다는 듯 편안하게 넘어간 것 같았다.
“일단 움직이자.”
흑마법사들이 유적에 관한 정보를 알아내면서 함정의 파훼법도 알아낸게 틀림없다.
그런 놈들을 따라잡으려면 쉴 틈 없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이다.
밟아도 들어가지 않는 타일을 차례대로 한 명씩 밟아나가면서 석상이 있는 방을 지나쳐 반대편 복도까지 도달했다.
“이번에는 또 뭐냐.”
이 방에는 지금까지 들고 있었던 광구가 필요 없이 아주 환했다.
횃불들이 벽면마다 일정한 길이대로 배치되었고 바닥에는 원 모양의 유리 같은 것이 정사각형 타일의 중간마다 있었다.
“무슨 수수께끼 같은 게 있을까요?”
“그렇겠지.”
유물 같은 고대의 보물을 찾으러 가는데 어서 오세요 하고 레드 카펫이 깔려있지는 않을 것이다.
필시 보호를 위한 장치들과 함정들이 즐비하겠지.
“이번에도 마수를 보내봐야겠어.”
오늘따라 열일 하는 마수들에겐 미안하지만 조금 더 고생해주어야겠다.
우끼끼-
다른 마수들을 부를 수는 있었어도 우드 몽키만큼 벨런스가 좋고 부담 없는 마수가 없었다.
“저기까지 뛰어볼래?”
우끼-!
우드 몽키는 힘차게 뜀박질을 하며 타일 위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타일이 들어가는 소리를 비롯한 아무런 징조도 없이 바닥이 열리면서 날카로운 창들이 올라왔다.
우끼-!!
당사자인 우드 몽키가 기겁하며 그 유연성으로 허리를 비틀어 가까스로 창을 피해냈다.
그래도 창은 솟아나는 걸 멈추지 않았는데 우드 몽키가 움직일 때마다 계속 밑에서 창으로 찌르려 했다.
“그만 들어가 봐.”
우드 몽키를 역소환시킨 데카드는 다른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조금 알 것 같아.”
모두가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데카드가 조용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정말요?”
“조금은.”
사실 이게 맞을 것 같다는 확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감에서 기인한 생각일 뿐이었다.
“이 함정들은 그림자로 작동하는 것 같아.”
“그림자……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까 우드 몽키가 창들을 피했을 때 저 동그란 유리에 그림자가 닿지 않자 창들이 멈칫했었다.
“그림자가 저기 타일 중앙에 있는 유리에 닿지 않으면 될 거야.”
“하지만 어떻게 그림자가 없을 수 있죠?”
온 벽면에 횃불이 붙어있어 그림자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면 되지.”
데카드는 헤칸이 들고 있는 광구를 뺏은 다음에 그것을 하늘 높이 들고 천천히 유리 구를 피해 걸었다.
“아아! 저렇게 하면 그림자가!”
빛이 위에 있다면 그림자는 최대한 작아져 자신의 발밑 만을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
[마수왕님! 똑똑하다!]
[역시 지덕체를 고루 갖추신 마수들의 왕이십니다!]
[마수왕님은 뇌도 섹시하시네요!]
[…….]
마수들의 열띤 응원과 찬사를 받으며 데카드는 문제 없이 타일들을 통과했고 아무래도 이게 정답이 맞는 것 같았다.
“이거 던질 테니까 잘 받아!”
“알겠습니다!”
이제 나머지도 데카드와 똑같은 방식으로 건너오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데카드가 던진 광구를 받은 헤칸이 아까 데카드가 행동한 대로 손을 높이 들며 그림자를 줄였다.
“될려나?”
헤칸은 덩치가 산 만해서 아무리 그림자를 지웠다고는 하나 그 줄어든 크기마저 커다랬다.
헤칸도 그걸 아는지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최대한 그림자를 없애가며 참은 숨 때문에 얼굴이 붉어서 터질 때 쯤 반대편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건너와!”
광구가 이번에는 엘리스에게로 넘어갔다.
원체 유연하고 운동신경이 좋은 엘리스는 문제 없이 타일을 넘어왔고 마지막 벨린다만 넘어오면 끝이 난다.
“천천히 해.”
빨리 오면 좋겠지만 그러다가 저승도 더욱 빠르게 갈 수 있어 안전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았다.
옆에 있는 헤칸도 했는데 그보다 훨씬 마른 벨린다가 통과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모두들 안심하며 벨린다가 마저 건너오길 기다리는 그 순간.
[주인님, 여자의 검이.]
“응?”
벨린다가 허리에 매고 있는 검이 만들어낸 길쭉한 그림자가 유리를 가려버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