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45화 (45/208)

045 산맥 속의 추격전

야심한 새벽.

몇몇 이들을 제외하곤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잠들어있는 시간이다.

사사삭-

여관 옆에 있는 커다란 창고 주위에서 그런 어둠을 틈타 몰래 접근하고 있는 흑색 로브 차림의 두 명.

“아아, 이 새끼 왜 이런데 갇혀있는 거야.”

어디 갇힐 수 있을지가 그의 마음대로 됐을 리는 없지만, 제이콥은 짜증이 났다.

“그냥 여기 있는 주민들 전부 스켈레톤으로 만드는 게 낫지 않나? 그러는게 전력 증강에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죽은 자의 뼈를 사용해서 몬스터로 만드는 흑마법인 스켈레톤은 그 재료에 따라서 나오는 몬스터의 위력이 천지차이다.

“스켈레톤? 그런 걸 언제 만들고 자빠져있냐, 그냥 좀비가 훨씬 빠르고 쉽지.”

스켈레톤은 뼈만 남을 때까지 살점을 떨어내고 피를 닦아줘야 하는 반면 좀비는 죽이자마자 그 자리에서 몬스터로 만들 수 있다.

“좀비는 너무 느리잖아, 멍청하고.”

“너보다는 좀비가 똑똑할걸?”

“……너부터 스켈레톤으로 만들어 줄까?”

둘은 환상의 팀워크를 보이며 창고의 앞까지 도달했다.

“어쨌든 여기 인간들을 몬스터로 만드는 건 일이 너무 커지니까 안 돼.”

“알고 있다고, 젠장.”

밖에서 잠겨 있는 창고 문은 사슬과 자물쇠로 열리지 않도록 단단히 묶여 있었다.

“조잡하구만.”

“이런 걸 보안장치라고.”

메이슨이 약간의 흑염을 손에 두르고 사슬을 꽉 잡았다.

주르륵-

삽시간에 사슬이 열을 이기지 못하고 녹아내리면서 자물쇠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예상보다 쉬운데?”

매복해있는 적도 없고 별다른 함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뭐가 어렵겠어. 빨리 그 새끼 구하고 나가자.”

끼익-

창고의 문이 열리면서 어두컴컴한 실내가 드러났다.

“드렌? 거기 있냐?”

골치만 아프게 하는 드렌의 이름을 작게 불러보자 창고의 중간쯤에서 읍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위치가 여깄네.”

벽면에 붙어 있던 전등 스위치까지 켜자 창고가 완전히 밝아지고 입에 뭐가 물린 채 의자에 묶여 있는 드렌이 보였다.

“하아, 이 새끼 여기 있네.”

“빨리 풀고 나가자.”

사슬을 끊었던 방법과 똑같이 드렌을 묶은 줄을 끊어버렸다.

“읍읍!”

대충 해석하면 입에 있는 것도 풀어줘야지!

정도로 볼 수 있겠지만 흑마법사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냥 그러고 가.”

“대장이 너 때문에 화가 많이 났어.”

드렌을 어깨에 들치고 둘은 원래의 창고처럼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읍읍!”

“조용히 해. 너 때문에 인간들 다 깨겠다.”

흑마법사들이 다시 산맥으로 멀어지고 있을 때 근처 수풀에서 지켜보고 있던 두 사람이 있었다.

“야아……. 진짜 못 알아채네.”

“그렇죠?”

데카드는 엘리스에게 암살단의 카모플라쥬 능력을 배우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 흑마법사들이 왔고 드렌을 데려갈 때까지 계속 근처에 있었지만, 그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런데 인질을 이렇게 풀어주셔도 괜찮나요?”

“아아, 그거?”

딱히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흑마법사들이 저놈을 구출해 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저놈의 심장에 작은 기계가 있더라고.”

심장에 손을 대고 마나를 흘리면서 고문을 하던 도중 기계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신호를 따라가면 흑마법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 나올 거야.”

“그렇군요.”

흑마법사들은 유물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나침반을 갖고 있고 데카드는 그 흑마법사들을 추적할 수 있게 됐다.

‘짹짹아, 어때?’

[잘 느껴집니다.]

인간보다 훨씬 마나에 민감한 마수들 덕분에 작은 기계에 신호도 문제없이 쫓아갈 수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잠이자 자자, 하암…….”

오랜만에 학구열을 불태웠더니 몸이 금방 피곤해졌다.

* * *

“커어어…….”

밤늦은 새벽에 자기 시작해서 그런지 해가 중천임에도 데카드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보였다.

마수들 또한 거의 영생에 가까운 세월을 때우기 위해 단련된 잠자기 실력으로 거의 기절하듯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유일하게 짹짹이 만이 멀쩡하게 깨 있는 채로 가만히 의자에 앉아 책을 읽었다.

사람들이 보통 일어나는 시간에서 꽤나 늦었음에도 짹짹이는 데카드를 구태여 깨우지 않았다.

별다른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굳이 주인의 단잠을 깨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주인이 깨어나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육포와 물을 준비해놓는 걸로 충분하다.

평화로운 아침을 즐기고 있을 때 누군가 방으로 가까이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데카드가 주문한 방은 이 여관에서 가장 넓은 대실이라 주변에는 다른 방이 없어 또 다른 투숙객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똑똑-

“선배님? 아직 주무십니까?”

두꺼운 목소리와 힘이 잔뜩 들어간 이 목소리는 헤칸이었다.

아마 흑마법사와 유물의 문제로 데카드를 찾는 것이리라.

“쯧.”

잘 자는 주인님을 깨우기는 싫지만 어쩔 수 없다.

“주인님.”

“으응…… 왜…….”

방금 깨서 거의 잠긴 목소리로 대답하자 짹짹이는 데카드가 편안하게 듣도록 중저음의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밖에서 헤칸이 주인님을 부릅니다.”

“문밖에 와 있어?”

“그렇습니다.”

“일어나야겠네.”

데카드가 따뜻한 이불 안에서 뒤척거리며 커다란 굼벵이처럼 조금씩 꿈틀거렸다.

“마수왕님…….”

일어나려 하는 데카드에게 요르가 안겨오는 걸 짹짹이가 막았다.

“선배님?”

“어, 헤칸. 잠깐만 기다려줄래?”

“알겠습니다!”

식탁에 올려져 있는 아침을 간단하게 마친 후 빠르게 세수까지 끝내자 나갈 준비가 끝났다.

“얘들아, 안에 들어와서 자.”

“졸리다…….”

티이라를 비롯한 고오른, 레오, 요르가 하나둘 데카드의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상처도 전부 회복됐고 이제 유물을 찾으러 가고 싶습니다.”

흑마법사 또한 유물을 찾고 있다는 말에 살짝 성급해진 헤칸은 일행의 대장이 되어버린 데카드에게 허락을 구하러 온 것이다.

“벨린다의 상처는 어때?”

“신참도 이제 거의 다 나았습니다.”

헤칸 보다 벨린다가 더 직접적으로 당한 상처가 커 그녀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짹짹아, 신호는 어때.’

[산맥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데카드는 짹짹이의 말에 지금까지 산맥을 돌아다니던 마수들을 모두 역소환하며 말했다.

“좋아, 이제 움직이자고.”

“알겠습니다!”

헤칸은 뛸 듯이 기뻐하며 짐을 싸기 위해 몸을 돌리려는 찰나 데카드가 뒷말을 이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당해버리면 책임 못 진다?”

“하핫! 걱정 마십쇼!”

저들도 집행관 배지를 달았으니 이제 저주가 몸에 어떻게 작용하고 걸리는지 알 것이다.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오자 투숙객들이 쓰는 공용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 벨린다와 엘리스가 보였다.

“하핫!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제가 그 사람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진흙 속에 빠뜨렸어요!”

“하하핫!”

10대 소녀들처럼 꺄르륵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둘은 어제 칼부림한 사이치고 굉장히 친해 보였다.

“뭔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데카드 일어났어요?”

“방금 일어났어.”

데카드 빼고는 다들 워낙 일찍 일어나는 게 습관화 돼 있는 사람들이라 아침부터 여기서 놀았던 것 같다.

“엘리스는 되게 재밌는 사람이네.”

“헤헷, 그런가요?”

두 사람의 얘기를 끊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제 산맥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산맥으로 다시 가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채비를 위해 다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휘이잉-!!

오늘은 유난히 산맥의 바람이 강한 날이었다.

살과 살 사이를 파고드는 추위가 매섭기 그지없었고 오늘도 엘리스에게는 엠버 리자드 하나를 붙여주었다.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맨 앞에서 방향을 잡고 있는 데카드에게 헤칸이 물었다.

“유물이 있는 곳!”

신호로밖에 측정이 안 될 정도로 흑마법사와 데카드 일행의 거리는 멀었지만, 아직 그들이 산맥 안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하아…….”

숨을 내뱉을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조금 먼데?’

[중간중간 산을 넘어야 해서 느껴지는 거리보다 실질적인 거리는 훨씬 먼 것 같습니다.]

추위는 마법사들이라 어떻게 해결됐다 쳐도 푹푹 빠지는 눈밭은 기동성을 빼앗고 있었다.

“흐음…….”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소환!”

눈밭 위로 4개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커어엉-

빛무리와 함께 튀어나온 사람만 한 몸집과 두꺼운 다리 근육.

탐스럽게 하늘로 솟은 두 뿔은 무엇이든 뚫고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라운드 무스야, 다들 인사해.”

“아, 안녕.”

엘리스가 조금씩 목을 쓰다듬어주자 무스도 거부하지 않고 잘 받아들였다.

“이걸로 뭘 하시려는 거예요?”

“뭘 하긴, 타고 가야지.”

그래서 일부러 덩치도 좋고 스태미너가 강한 애들로 뽑아왔다.

“자, 다들 말은 한 번씩 타봤지?”

마탑에서 승마술도 어느 정도 가르치니 집행관들은 아마 탈 줄 알 것이다.

헤칸과 벨린다가 어렵지 않게 무스에 올라타고 뿔을 잡아서 중심을 잡았다.

“엘리스는 괜찮아?”

“네, 괜찮을 것 같아요.”

엘리스는 말을 직접적으로 타본 적은 없지만, 그 특유의 벨런스 감각과 운동 신경으로 무스 위에서 금방 중심을 잡았다.

“좋아, 그럼 이제 한번 달려보자고.”

무스들이 처음에는 걸어가면서 조금씩 탑승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해나갔다.

‘이게 마수 소환학이라고?’

‘역시 선배님은 달라도 다르군!’

이 무스들은 전부 다른 개체들로 보이나 사실 데카드라는 커맨드 타워 안에 종속된 것들이다.

지금 무스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 하나하나가 전부 데카드의 컨트롤로 이루어지는 것이었고 데카드는 한 마리도 아닌 네 마리를 동시에 조종하고 있었다.

알수록 더 보인다고, 집행관들은 데카드 행동 하나하나의 감탄했다.

[확실히 이동속도가 빨라졌습니다.]

‘당연하지.’

그라운드 무스는 땅속성을 타고난 마수들로 울퉁불퉁한 길도 평지처럼 달릴 수 있다.

그러니 산 같이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길에도 안정적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흑마법사 새끼들 잡히면 죽는다.’

한편 그 흑마법사 새끼들은 흑색 로브가 바람에 휘날리면서 산 하나를 더 넘고 있었다.

그리고 손은 봉마 수갑에 묶이고 말도 하지 못하게 막혀버린 드렌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턱-

나침반을 보고 가던 대장이 갑자기 멈춰 서자 다른 흑마법사들도 멈춰 섰고 그는 뒤를 돌아보며 드랜을 보았다.

“이제 풀어줘라.”

대장의 명령에 데카드가 채워놓은 걸 다른 흑마법사들이 풀어주었다.

“죄, 죄송합니다, 대장!”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드렌은 번개같이 무릎을 꿇고 대장에게 용서를 빌었다.

“죄송할 건 없다. 그 값은 언젠가 갚게 될 테니까.”

뜻 모를 말과 함께 대장은 다시 나침반이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겼고 뒤를 따르던 다른 흑마법사들은 한 번씩 드렌을 비웃고 지나갔다.

“이제 거의 다 왔다.”

고대의 유물이 잠들어있는 유적까지.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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