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44화 (44/208)

044 뒷마당에서 일어난 일

계속된 마찰음 사이로 날붙이가 살을 파고드는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괘, 괜찮아요?”

“아아, 괜찮아.”

“무슨 일이야?”

데카드가 도착해 있을 때는 팔뚝 쪽이 살짝 베여서 지혈을 하고 있는 벨린다와 옆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엘리스가 있었다.

“그, 그게 벨린다님이 저하고 대련을 하고 싶다 하셔서 해드렸는데…….”

“저의 욕심 때문에 생긴 상처에요, 굳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벨린다는 그 말을 끝으로 떨어뜨린 장검을 납검하고 여관으로 들어갔다.

“후우…….”

데카드와 엘리스가 자신을 보지 못하는 방까지 들어오자 벨린다는 응급 상자를 꺼내 다친 팔에다가 붕대를 감았다.

칼에 베인 고통은 별게 아니었다.

지금 벨린다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스스로의 무능력함이었다.

똑똑-

붕대를 전부 감고 그 끝을 동여맸을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상처는 어때?”

데카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방금 붕대를 다 감은 상처를 살펴보았다.

“크게는 안 베였어요.”

“그래, 팔이 아픈 게 아니지?”

정통을 찌르는 말에 벨린다가 눈에 띄게 동요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무 저 자신이 쓸모없는 것 같아요.”

한 학년 올리기도 어렵다는 마탑에서 거의 최상위의 성적으로 졸업하고 그렇게 가고 싶어했던 집행부도 수석으로 들어왔다.

그때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무능력함이란 감정이 지금 벨린다를 깊게 후벼 파고 있었다.

“엘리스 같은 용병도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저는 아무것도 못 한 채 걸림돌만 되고…….”

입을 열면 열수록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장검에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소리는 내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그래, 확실히 지금 너의 실력으로는 오늘 만난 흑마법사들을 절대 이길 수 없었을 거야.”

“…….”

벨린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장검을 두 손으로 꽈악 잡았다.

“그런데 살았잖아? 지금 너를 봐. 사지 중 한 군데가 잘려나간 것도 아니고 멀쩡하잖아.”

“그건 선배님이 나타나 주셔서…….”

데카드는 귀를 긁적이며 벨린다의 옆에 앉았다.

“네 말대로 내가 나타나서 네가 살긴 했지,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할 건데?”

“다음에……요?”

“그래, 다음에.”

이번 싸움에서는 운 좋게 데카드와 엘리스가 폭음을 듣고 달려와 둘을 구했지만, 다음에도 이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흑마법사와 또 만난다면, 그때도 꼴사납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건가?

그런 짓이나 하라고 죽을 만큼 단련해온 지난날이 아니었다.

“싸워서 이길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지금 이렇게 질질 짜고 있을 틈이 없다.

벨린다가 장검을 들고 벌떡 일어서며 허리까지 완전히 굽힌 채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제가 뭘 해야 할지 알았어요.”

“지금이라도 알았다니 다행이네.”

데카드는 미소를 지으며 퉁퉁 부어버린 벨린다의 눈매에 물기를 살짝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아악! 부럽다, 저 암컷!]

[요르! 좁다! 그만 움직여라!]

“그렇다고 너무 무리는 하지마.”

흑마법이 몸에 일으키는 효과는 절대 무시할 게 못되니 적어도 흑염에 당한 상처는 회복해야 했다.

“알겠어요.”

벨린다가 싱긋 웃으며 대답하자 데카드도 이만 방을 나왔다.

방 밖에 있던 엘리스는 안절부절못하다가 문을 열고 나온 데카드를 붙잡으며 물었다.

“벨린다 님은 어떤가요?”

“괜찮으니까 너무 마음 안 써도 돼.”

오전에만 해도 흑마법사의 목을 단검으로 사정없이 그어버리던 암살자는 이런 면에서 마음이 여렸다.

“조금 자 둬야 하나.”

이미 어두워진 밖은 흑마법사가 말한 동틀 때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남지는 않아 보였다.

부족한 잠을 채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 시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엘리스, 혹시 시간 있으면 그 암살 기술을 알려줄래?”

“좋아요.”

엘리스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벨린다와 대결했던 뒷마당으로 데카드와 내려왔다.

“뭐를 제일 먼저 배우고 싶으세요?”

“으음…….”

암살자는 조용한 발걸음과 일격필살의 급습,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 등등 여러가지 기술들을 가진 존재들이다.

그중에서도 데카드가 필요하고 배우고 싶은 건 이것이다.

“나는 단검 투척술을 배우고 싶어.”

“투척술…….”

엘리스는 허리에 꽂힌 투척용 단검을 한 손에 두 개씩 꺼내 들었다.

“이 기술은 최소 4개에 단검을 가지고 투척을 해야 해요.”

여관을 두르고 있는 울타리를 조준하고 엘리스는 그대로 양손을 빠르게 교차하며 4개에 암기를 던졌다.

챙-!

단검이 날아가는 소리는 없었지만, 중간에 단검들이 서로서로 부딪치면서 방향을 달리해 울타리에 박혀 들어갔다.

“와아…….”

[엄청나군요.]

저렇게 단검을 던진다면 받는 상대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퍼져오는 단검의 궤적에 반응하지 못하고 몸에 바람구멍이 숭숭 날 것이다.

“방금 보여 드린 기술은 대인전 능력이 좋지만, 암살에 적합한 기술은 아니에요.”

단검들이 공중에서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 때문인지 엘리스는 이 기술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한 번 해보시겠어요?”

“알았어.”

데카드는 엘리스가 방금 보여준 동작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날붙이 대신 암기처럼 써오던 짹짹이의 깃털을 두 개씩 뽑았다.

[제 깃털로도 될지는 의문이군요.]

금속과 깃털은 그 무게감과 감각이 완전히 달라 이것에도 엘리스의 기술이 통용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도 해 봐야지.’

아까 전에 흑마법사에게 자신의 입으로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말하지 않았는가.

칠흑의 깃털이 쌔액 소리를 내며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후두둑-

목표하던 울타리에 빠짐없이 깃털이 박혀 들어갔고 엘리스는 말없이 그걸 바라보았다.

“어때?”

엘리스의 반응을 보니 아마 실패가 맞는 것 같았지만, 문제점이야 고치면 그만이다.

“데카드는 혹시 암살자였나요?”

“암살자는 아니었는데.”

슬레이에서는 거의 모든 행동이 은밀해야 했던지라 암살자 같은 모습을 보였어도 자신은 기본적으로 소환사다.

“데카드가 날린 암기들.”

엘리스는 울타리에 반쯤 박힌 깃털 한 개를 뽑았다.

“이거 제 머리끈의 재료 아닌가요?”

“그렇지.”

집행부의 유치장에서 엘리스의 머리끈을 짹짹이의 깃털로 만들어줬었다.

“무기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보다 더 완벽해요.”

“응?”

엘리스는 다시 데카드의 곁으로 오며 말했다.

“한 번만 다시 해주세요, 이번에는 저도 같이할게요.”

“알았어.”

엘리스와 데카드가 자신들의 암기를 각각 손에 쥐고 던질 준비를 마쳤다.

“하나, 둘, 셋!”

데카드의 구령에 맞춰 둘의 암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암기들은 이번에도 역시 서로에게 맞고 튕겨져 전부 다 다른 방향에 박혔다.

“조금 전 투척술에서 암기들을 부딪칠 때 어쩔 수 없이 소리가 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데카드가 던지는 깃털에서는 그렇게 전혀 없었어요.”

“그러네.”

[확실히 큰 도움이 될 기술들입니다.]

짹짹이의 사용이 가장 잦은 지금은 이런 기술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크게 써먹을 때가 올 것이다.

“웬만한 베테랑 암살자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건데 데카드는 굉장히 쉽게 하시네요.”

암기의 차이도 있겠지만 단검을 던져내는 실력 또한 엘리스의 기준으로도 데카드는 상급이었다.

“내가 좀 빨리 배우는 편이긴 해!”

[주인님, 이럴 때는 겸손 또한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

‘원래 이렇게 몇 번씩 뽐내줘야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법이야.’

이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라 해도 데카드는 너무 자주 해서 문제다.

“다음 기술은 단검 두 개를 필요로 해요.”

한 손에 하나씩 단검을 쥐고 엘리스는 울타리를 조준했다.

슈욱-!

먼저 하나.

왼손에 들려있던 단검 하나가 날아갔지만, 그 방향이 이상했다.

원래 노리고 있었던 울타리가 아닌 뒷마당에 놓여진 애꿎은 수레에게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실수한 건가?’

데카드가 잠시 이런 의심을 품었을 때 엘리스의 오른손에 있던 단검이 날아갔다.

챙-!

수레로 날아가던 단검을 엘리스가 방금 던진 단검이 맞추면서 그 궤도가 완전히 바뀌어버려 바로 옆에 있던 울타리를 꿰뚫었다.

말문이 턱 막히는 투척술에 데카드는 서커스라도 본 사람처럼 박수를 쳤다.

“이번 건 어떻게 한 거야?”

단검을 맞췄으면 그 날아가려는 힘이 약해져서 그냥 밑으로 떨어져야 하는 게 정상인데 단검은 급커브를 돌며 울타리를 맞췄다.

“헤헷…… 별거 아니에요.”

쑥스러운 듯 엘리스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박힌 단검을 뽑고 돌아왔다.

“이건 제가 암살자로 뛰어다닐 때 정말 자주 사용했던 기술이에요. 처음 기술의 심화 버전이죠.”

“어떻게 하는 건데?”

“편한 손에 있는 단검은 원래 던지는 것처럼 잡아주시고, 방향을 틀어줘야 할 단검은 이렇게 잡아주세요.”

데카드는 편한 손이 왼손이고 엘리스는 오른손이라 제일 중요한 방향잡이 단검의 손 모양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이렇게?”

“으음…… 조금 더 새끼 손가락을 안으로.”

뭔가 말로 설명만 들어서는 잘되지 않는 동작이라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엘리스가 나서서 데카드의 손을 이리저리 만지며 모양을 잡아주었다.

“아아! 이렇게구나.”

“그…… 데카드, 손이 너무…….”

“어?”

손 모양을 잡아주다 보니 엘리스의 손이 데카드의 손에 끼어있어 마치 연인처럼 둘의 손은 서로를 꽉 붙잡고 있었다.

“크흠…… 미안.”

“괘, 괜찮아요.”

데카드가 손에 들어간 힘을 풀어주자 엘리스는 급하게 손을 빼서 자신도 단검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이 각도에서 틀면 정확히 저곳에 맞겠다는 걸 머릿속에서 다 계산을 하고 던지셔야 해요.”

“알겠어.”

수학은 딱히 자신 있는 학문이 아니었지만 이런 건 감과 센스의 영역이다.

슈욱-!

깃털이 파공음과 함께 날아가고 아까의 엘리스처럼 수레에 거의 닿을 듯 암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방향을 바꾸기 위해 남은 손에 있던 암기도 마저 던져버렸다.

콰직-

“…….”

“살짝 늦었네요.”

방향을 바꾸지 못한 암기는 그대로 수레바퀴에 박히려다가 결국 뚫어버려 부서트리고 말았다.

바퀴가 무너지자 수레도 그 중심을 잃고 우지끈하고 무너져 안에 있던 상자들이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처음 한 것치고는 굉장히 잘하네요.”

단검이 단검을 맞추는 타이밍은 누가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해보면서 알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엘리스도 가만히 있었고 지켜만 보았는데 결과는 실패였어도 꽤나 놀라운 성과였다.

데카드는 분명 투척술이 처음인데도 미세한 차이로 암기들이 서로 어긋난 것을 빼면은 그 강도와 궤적들은 모두 완벽했다.

‘암살단에서 만났으면…….’

아마 좋은 직장 동료이자 좋은 친구.

어쩌면 그 이상을 바라봤을 수도 있었을 거란 망상에 엘리스는 혼자 헤헤거리며 웃었다.

“엘리스? 왜 그래?”

“아, 아니에요! 빨리한 번 더 해보세요.”

“알았어.”

* * *

데카드가 암살단의 기술을 스펀지가 물 빨아들이듯 배우고 있을 때 해리스 산맥에서는 어떤 이들이 조금씩 모여들고 있었다.

“추적은?”

“없었습니다.”

“원래 시간보다 훨씬 일찍 모인 이유는 알고들 있을 거다.”

모인 넷중에서 가장 낡은 로브를 입고 있는 중후한 목소리의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눈밭에 던졌다.

“누구에게 죽은 겁니까?”

그것은 엘리스에게 기습을 당해 죽었던 흑마법사의 시체였다.

“수법은 암살자 같은데 이렇게 깔끔한 건 그놈들밖에 없다.”

상처의 깊이와 그 주변 부위를 보니 사람을 죽일 때 필요한 곳이 아니라면 칼자국 하나가 없었다.

“다른 한 명은 어디 있는 겁니까?”

“마을에 있다.”

지금 모인 흑마법사들은 서로의 생사 확인을 위해 작은 기계 하나를 몸속에 넣어두었다.

기계에 신호는 산맥과 매우 가까운 마을에서 울렸으며 아마 잡혀있을 가능성이 컸다.

“메이슨, 제이콥. 너희 둘이 그놈을 찾아와라.”

“그냥 버리면 안 됩니까, 대장?”

제이콥은 굳이 꼬리만 길어지는 일을 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유적에 있는 함정과 가디언들은 쉬이 볼 만한 존재가 아니다.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그냥 돌아와도 좋다.”

“흐으…… 알겠습니다, 대장.”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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