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 탐나는 물건
산맥을 걸어 다니는 동안 필립이 평소 데카드의 대해 어떻게 말하고 다녔는지 헤칸이 아는 대로 설명해주었다.
“나를 완전 또라이로 만들어놨네.”
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해도 필립은 추가적인 설명 없이 정말 일어난 일만 담백하게 말했었다.
술자리에서 꺼냈던 흑마법사를 갈아버리고, 익사시키고 했던 여러 에피소드들은 필립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것이었다.
“너는 내가 그런 사람 같냐?”
무슨 사정이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일단 필립과 동기라는 점에서 헤칸과 벨린다에게는 대선배라고 할 수 있기에 데카드는 자연스럽게 말을 놨다.
“아니요.”
전속 용병의 신분인 데카드를 봤을 때도 그는 친절하고 처음 본 사람에게 빵도 주는 친절한 사람 같았다.
“그렇지?”
자신은 마음이 넓고 배려심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지금까지 단 한 치의 의심 없이 살아왔는데 필립이 소문을 과대하게 부풀린 것이다.
[크흠……. 이건 좀…….]
[마수왕님! 양심 조금 없다!]
[이런 양심 없는 모습도 저는 사랑해요! 마수왕님!]
[…….]
마수들의 반발 아닌 반발은 가볍게 무시해주고 데카드는 아직 계속 산맥을 정찰 중일 호크와 크레인의 정보들을 받았다.
‘아직까지 수상한 건 없나 보네.’
흔적을 따라 꽤나 오래 정찰을 했음에도 유물의 흔적이나 흑마법사는 보이지 않았다.
‘대충 4명 남은 것 같은데.’
흔적이 세 갈래로 나누어지고 한 갈래에서 만난 흑마법사들은 2인 1조였으니 다른 갈래도 그럴 확률이 높았다.
“저희는 이제 어떡합니까?”
헤칸이 계속 눈길을 걷고 있는 데카드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흐음…….”
지금 상황은 어찌 된 게 흑마법사와 펼치는 유물 쟁탈전 레이스가 되어버렸다.
안타깝게도 흑마법사가 앞서있는 상태지만.
“소환.”
그 차이를 최대한 좁히려면 마수들을 더 많이 소환해서 찾게 해야 한다.
카아아-! 카아-!
마운틴 호크 4마리를 더 소환해 이제 총 10마리의 마수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유물이 어디 있는지 찾아줄 것이다.
아무래도 걸어서 이동하는 흑마법사들보다 날아서 가는 마수들이 스피드는 더 빠를 것이기에 조금 무리가 와도 지금은 참아야 했다.
“마수들에게 산맥을 전부 뒤져보라고 명령을 내렸으니 일단은 마을로 내려가서 상처를 치료해.”
이렇게 다친 상태로 흑마법사와 싸우다가 상처에 저주가 걸리면 팔을 잘라야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저희만 빠질 수는……!”
“어허, 명령이야.”
“……알겠습니다.”
역시 이런 게 편하긴 하다.
위계가 확실히 잡혀있는 집행부는 부당하지 않은 적당한 명령이라면 아래에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했다.
“너희들 상처 치료가 끝나야 뭘 찾든가 말든가 하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마수들에게 맡겨야 하지만 이들의 상처 치료가 끝나는 동안 데카드도 할 일이 있었다.
* * *
‘으윽…… 여긴 어디지?’
깨질 것 같은 머리와 함께 눈이 떠진 곳은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이었다.
‘결국 처형인에게 잡히고 만 건가…….’
입에는 자살을 막기 위해 딱딱한 무언가가 물려있었고 손에는 봉마 수갑이 묶여져 있었다.
‘발도 묶였나.’
혹시 발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까 해서 움직여 봤지만, 의자와 함께 묶여 있었다.
흑마법사는 옴짝달싹도 못한 채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 좀 전에 있었던 데카드와의 싸움을 떠올렸다.
‘압도적이었다.’
옛날에 보았던 놈의 장기인 마수 소환술은 나오지도 않았는데 그 이상한 무기가 너무나 강해 밀려버리고 말았다.
‘충분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혼자만의 만용이었군.’
만약 데카드를 만나지 않고 헤칸과 벨린다와만 조우했다면 승기는 흑마법사 쪽이 손쉽게 가져갔을 것이다.
그만큼 저주의 위력은 강했기에 일반적인 집행관들은 이길 수 없었다.
“방은 어때? 내가 특별히 스위트 룸으로 잡아놨는데.”
흑마법사의 눈이 번쩍 뜨이며 뒤를 돌아보려 했으나 몸을 묶은 속박은 그런 행동도 허락하지 않았다.
데카드가 천천히 흑마법사의 주위를 돌며 그의 앞으로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딸깍-
위에 있던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자 아무것도 없이 텅 빈 창고 같은 방이 드러났다.
“내가 너한테 몇 가지를 물어볼 거야.”
입을 막고 있는 것 때문에 뭐라 따로 대답이 들리지는 않았어도 이 흑마법사의 눈은 절대 입을 쉽게 열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근데 네가 쉽게 말해주지는 않겠지?”
흑마법사들이 흑마법이나 저주를 쓰다 보면 몸의 기관들이 망가지는데 제일 처음으로 망가지는 것이 고통을 느끼는 기관이다.
“너희들이 고문 같은 걸 두려워하지 않는단 건 아주 잘 알고 있어.”
살을 가르거나 몸에 전기를 흘리는 등, 물고문도 고통이 없어 통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피부가 썩어가고 터지는 와중에도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너희가 고통을 느끼는 딱 한 곳을 알아.”
집행관 때 처형인으로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한창 이름을 날리게 해준 이유는 다름 아닌 이것이었다.
스르르-
“크아아악!!”
데카드가 손바닥을 흑마법사의 심장이 있는 쪽 가슴에 대자 그는 온몸이 조각조각 찢겨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몸부림쳤다.
1분 정도가 지나고 데카드가 손바닥을 떼자 흑마법사는 온 몸이 땀범벅이 된 채 숨을 헐떡거렸다.
“허억…… 허억…….”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통이지?”
흑마법사도 결국 큰 틀에서 보면 마법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도 마나회로가 있고 마나룸이 있으며 심장에는 서클이 감겨져 있다.
지금 데카드는 자신의 마나를 흑마법사에게 흘려 넣고 그 안에서 거칠게 움직이거나 날뛰어 마치 서클을 올릴 때 느껴지는 고통을 계속 넣어주었다.
“이건 사람의 감각과 관련이 없거든.”
아무리 고통을 느끼는 기관이 약해졌다고 해도 이건 차원을 달리한다.
“나 말고는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너도 아마 처음 겪어볼 거야.”
데카드처럼 마나 감응력과 지배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이 고문법도 전혀 소용없는 짓이기에 집행부에선 오직 데카드만이 가능했다.
“이제 말할 마음이 좀 생겼어?”
막힌 입을 풀어주자 흑마법사는 아까의 고문으로 안에서 쌓인 거친 숨을 밖으로 내뱉었다.
“하아…… 하아…….”
숨을 쉴 때마다 몸이 들썩거리고 땀으로 젖은 머리칼은 떨려가며 그 끝에 맺힌 땀이 바닥을 조금씩 적셔갔다.
“……말하겠다.”
“좋아! 대신 1분만 더할게.”
데카드가 아까처럼 자신의 심장에 손을 올리자 흑마법사가 기겁하며 말했다.
“마, 말한다고 했지 않은가……!”
“응, 근데 내가 그냥 기분 나빠서.”
다시 데카드의 마나가 몸을 헤집기 시작했고 흑마법사는 어금니가 부서질 것 같이 깨물며 경련을 일으켰다.
“크하아아악!!!”
1년 같은 1분이 지나고 흑마법사는 이제 녹초가 되어버려 고개를 들 힘도 존재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잘 참네?”
중간에 기절도 안 하고 예상보다 잘 버티길래 1분보다 조금 더 해버렸다.
“뭐, 상관없겠지.”
이제야 무언가 물어볼 준비가 끝난 것 같다.
단 2분 만에 흑마법사 중에서도 정예라고 할만하던 남자가 동공은 풀어져 있고 입에서는 침을 줄줄 흘리며 중간 중간 손을 조금씩 떨고 있었다.
“산맥에는 어인 일로 흑마법사께서 행차하셨을까?”
“……유물…… 때문이다.”
아까 비명으로 소리를 너무 질러버려 다 쉰 목소리로 겨우겨우 신음 같은 대답이 나왔다.
“너희는 유물에 대해 얼마나 알지?”
“우리는 정보의 공유가 제한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산맥 어딘가에 유물이 있다는 것뿐이야.”
“흐음…….”
데카드가 다시 일어나 심장으로 손바닥이 향하자 흑마법사는 갑자기 번쩍 일어나더니 변명을 급하게 마구 늘어놓았다.
“저, 정말이다! 나는 모르지만 대장이 유물을 찾기 위한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 들었다!”
“중요한 물건?”
“그렇다! 뭐 하는 물건인지는 몰라도 대장은 계속 그걸 꺼내보면서 움직이는 방향을 바꿔나갔다!”
데카드가 손바닥을 때고 무언가 생각하 듯 턱을 괴자 흑마법사는 안도의 한숨을 푸욱 쉬었다.
‘물건을 보면서 방향을 찾는다.’
나침반으로 북쪽을 찾는 것은 아닐 테고 어떤 특정한 무언가에게 안내해주는 물건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건 유물일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런 물건이 있는데 너희는 왜 나눠서 길을 걸어갔지?”
“혹시 모를 추적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주 철두철미 하시구만.”
이 흑마법사의 말을 들어보면 그 물건을 가지고 있는 무리의 대장은 철저한 성격에 작은 가능성 하나 허투루 무시하지 않는 놈이었다.
“성가시네.”
상대하면서 제일 짜증 나는 유형이다.
그런 놈과 싸우면 두뇌 플레이가 필수라 머리도 아프고 싸워야 할 때면 몸까지 같이 아파와 웬만해서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언제 다시 모이기로 했어?”
추적을 피하기 위해 흩어졌다면 이제 다시 모여야 한다.
“내일 동이 틀 때 산의 중턱에서 만나기로 했다.”
“산의 중턱이라.”
아침 산책으로는 딱 적당한 코스다.
“그 대장놈이 가지고 있는 물건, 탐난단 말이지.”
그것만 있으면 산맥에서 춥게 몸을 오들오들 떨 필요도 없고 딱 할 일만 끝낸 후에 다시 루비아로 돌아갈 수 있다.
“크큭,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또 왜, 저주라도 걸어놨나?”
정확히 맞췄는지 흑마법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가고 눈이 커졌다.
“너네 심리야 내가 꿰뚫고 있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에다가 남이 훔쳐가지 않도록 저주를 거는 건 흔한 일이다.
만지면 몸에 전염병이 생긴다거나 끝없는 두통, 설사, 별의별 저주가 다 걸려있다.
“그 물건은 항상 대장이 품속에 넣고 있다. 절대 불가능해.”
“이 세상은 말이야, 절대 불가능이란 건 없어.”
데카드도 이 말처럼 거짓말같이 차원의 벽을 뚫고 인간계로 돌아왔다.
아마 세상에 이거보다 어려운 일은 없을 거다.
“그런 거에 비하면 물건 훔치기야 쉬운 일이지.”
“자, 잠깐!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
“죽이진 않을게, 루비아로 압송될 테니까 알아서 잘 살아봐!”
얻을 건 다 얻었으니 이제 원래의 절차대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데카드가 직접 손을 써서 죽이진 않고 루비아로 간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대우는 못 받을 거라는 게 현실이다.
덜컥-
흑마법사가 있는 창고를 잘 잠그고 밖으로 나오자 헤칸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행관들을 불렀으니 이제 며칠 뒤면 이곳에 도착할 겁니다.”
“오케이, 잘했어.”
유물을 찾는 동안 계속 일행이 데리고 있을 수는 없기에 집행관이 오면 흑마법사를 압송할 것이다.
“동이 틀 때면 이제 몇 시간 뒤네.”
대장이라는 놈과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는 그래도 아직 텀이 있었다.
“엘리스는 어디 있어?”
“벨린다하고 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챙- 챙챙-
금속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여관의 뒷마당을 울려댔다.
두 개의 단검이 빠른 속도로 전방위를 공격해나갔지만, 장검은 들어오는 족족
루트를 차단하고 반격까지 날아왔다.
“강하시네요.”
“엘리스도.”
보통 검끼리의 싸움에서는 상대방의 풋스텝과 무기가 들린 손을 동시에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발이 움직이는 방향은 소리로 파악하고 눈은 보통 손에 집중하는데 엘리스에겐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뭔 소리가 들려야 인식을 하지, 잠깐 화려한 단검 솜씨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면 엘리스의 발이 날아오고 있었다.
푸욱-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