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42화 (42/208)

042 이것이 집행관이다

전신에 돋아버린 소름과 함께 시야가 흐릿해지면서 몸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릎이 꿇려졌으며 곧 시야가 완전하게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 이게 대체…….”

“크큭, 너네가 이기는 줄 알았냐?”

분명 조금 전에 참격으로 베어 넘긴 흑마법사가 멀쩡하게 살아서 헤칸과 벨린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게 집행관이라고? 이 정도면 유물이 굳이 필요 없겠는데?”

저주로 환각에 걸린 집행관이란 놈들이 제멋대로 떠드는 모습은 아주 우스웠다.

“이놈들……!!”

쩔그럭- 쩔그럭-

당장 일어나서 저 썩은 얼굴이 부서지도록 주먹을 날려주고 싶었지만, 몸을 꽁꽁 묶어버린 검은 사슬들은 그 어떠한 행동도 허락하지 않았다.

“크크크큭! 마법부도 무뎌졌군. 이딴 애송이들을 집행관이라고 내세우다니.”

“우리들이 사라진 줄 알고 몸뚱이만 불린 거 아니겠어? 카카칵!”

데카드가 한창 집행관으로 활약하던 시절, 그때는 흑마법사들이 천지에 깔려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못 이겨서 리치가 되려 하는 자.

원래는 마법사였으나 재능의 벽에 막혀 결국 마도를 택한 자.

그밖에도 다양한 이유로 흑마법사가 된 이들은 강해진 자신의 힘을 믿고 완벽하게 숨어들지 않았다가 데카드에게 머리가 부서지고는 했었다.

하지만 데카드가 실종되고 어떤 날을 기준으로 흑마법사들의 자취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계속 의심했지만, 시간이 몇 년 단위로 흘러도 아무 일이 없자 흑마법사들이 모두 죽었거나 아니면 정말 소수만 남았다고 생각을 굳혔다.

“우리가 알던 집행관은 어디 갔나. 눈앞에 흑마법사는 전부 죽여버리고 압도적인 힘을 가졌던 그런 놈들 말이다.”

까악- 까악-

대답이라도 해주듯 까마귀들이 허공을 맴돌며 울어댔다.

흑마법사와 까마귀.

퍽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지만 이렇게 추운 산속과 까마귀는 어울리지 않는다.

“크큭, 너희들의 시체를 뜯어먹어 줄 까마귀도 오는구나.”

“까악! 울어라, 까마귀들아!”

흑마법사 한 명이 점점 땅으로 내려오는 까마귀들 사이에서 눈 위를 방방 뛰었다.

“이제 그만 죽여주도록 하지. 유물은 걱정하지 마. 우리가 잘 써먹어 줄 테니까.”

흑마법사의 손에서 검은 불길이 타오르고 그것은 금방이라도 둘을 집어삼킬 듯 크기를 부풀려나갔다.

‘검만 손에 있다면….!’

벨린다는 흑염의 열에 피부가 타들어 갈 것 같이 뜨거워져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는 검을 잡기 위해 발버둥쳤다.

“확실히 요즘 애들이 약해지긴 했어.”

“누구냐!”

흑마법사들이 고개를 홱홱 돌리며 주변을 봐도 빽빽한 나무들만 있을 뿐 사람이라 할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흑마법사 새끼들 좀 없다고 이렇게 긴장감이 없다니.”

“모습을 드러내라!”

말소리만 공허하게 허공에서 바람을 타며 들려와 어디에 있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일단 저주를 준비……!”

흑염을 쏘던 흑마법사가 옆에 있는 동료를 돌아보며 말하려던 찰나 저주를 쓰던 흑마법사의 목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통에 젖은 비명조차 내지 못하게 사람이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까지 한꺼번에 잘라버려 흑마법사는 쥐 죽은 듯 숨이 끊어졌다.

“네놈이냐!”

어떻게 자신들의 기감을 피하면서 접근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습이 막힌 이상 자신을 이길 수 없다.

검은 암살자의 옷을 입고 후드를 쓴 정체 모를 난입자에게 흑염의 창이 날아갔다.

당장에라도 몸을 뚫고 태워버릴 듯 날아오는 창을 난입자는 바닥을 굴러 피해냈다.

“저게 누구지……?”

헤칸은 갑작스럽게 나타나 자신들을 구해주고 흑마법사를 죽인 난입자를 보았다.

입고 있는 옷이 꼭 올 때 같이 온 여자 전속 용병을 닮은 것 같기도 했지만, 그저 자신의 착각이라고 치부했다.

“집행관님들? 앉아서 편하게 잘 쉬고 계셨습니까?”

언제 왔는지 사슬로 묶인 채 앉아있는 둘의 어깨에 손을 턱하고 올리며 데카드가 뒤에서 나타났다.

“자, 자네는……!”

“마침 잘 왔어! 저기 있는 내 검을 갖다 줘, 그럼 내가 저놈을 어떻게든 끝장낼게.”

저주만 아니라면 벨린다는 흑염이 어찌 됐든 번개로 저 흑마법사를 튀겨줄 생각이었다.

“아니요. 두 분은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시죠.”

“어, 어딜 가려는 거야! 저놈은 네가 잡았던 흑마법사와 달라!”

확실히 그때 그놈보다야 강해보이긴 하다만 이 산맥에 들어온 흑마법사는 저 두 명이 끝이 아니니 지금 수를 줄여놔야 했다.

“괜찮으니까 여기서 구경이나 하세요.”

진짜 집행관의 싸움이 뭔지.

데카드는 무릎을 피고 일어나 둘의 사이를 뚫고 엘리스와 싸우고 있는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수고했어, 엘리스.”

아무래도 기습에 최적화된 엘리스는 흑마법사와의 싸움에서 버티는 것에 그쳤지만 처음 다른 한 명을 죽여준 것만 해도 그녀는 할 일을 끝냈다.

엘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서고 데카드가 나오자 흑마법사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놈. 저기 있는 쓰레기들보다 약해 보이는데 괜찮겠나?”

흑마법사는 데카드의 안에서 느껴지는 서클의 수를 보고 괜히 긴장했다는 듯 다시금 여유를 되찾았다.

“마법사의 강함을 서클의 개수로 판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개소리는 죽어서 계속해라.”

엘리스에게 쐈던 것과 똑같은 흑염의 창이 데카드의 머리를 과녁으로 날아왔다.

흑마법사는 멋모르고 자신의 앞에 선 저 멍청이가 당연히 불타올라 쓰러질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저 멀리 빗나갔다.

처저저적-

[드디어 이 몸이 나설 차례인가!!]

데카드의 양 주먹에 달린 건틀렛 위로 조각된 산양의 콧김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볼캐닉 건틀렛.

한 번 달리면 그 앞에 무엇이 있는 전부 부숴버리는 고오른의 특성을 아주 잘 물려받은 무구다.

기본적인 건틀렛과 달리 이 건틀렛은 팔꿈치까지 덮어버렸고 주먹에는 산양의 얼굴 부분이 있어 그 뿔은 악마의 그것처럼 불타올랐다.

후르르-

흑마법사의 흑염 창을 건틀렛이 빨아들였다기보단 먹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창이 흡수되었다.

[푸르르-! 다진 고기로 만들어주지!]

건틀렛 주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바닥에 겹겹이 쌓여있던 눈들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건 대체 무엇이냐!”

불을 먹고 그 힘으로 더욱 강한 열을 방출하는 무기에 대해선 전혀 들어본 적도 없다.

“설명한다고 네가 알아듣겠어?”

주먹을 들어 올리자 아지랑이가 맹염으로 바뀌고 데카드는 그대로 스트레이트를 내질렀다.

기본적이고 평범한 펀치 자세였지만 그것이 가져온 결과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공간이 엄청난 충격에 진동하고 불길이 주먹을 내지른 그대로 순식간에 뿜어져 나가 흑마법사를 강타했다.

“커헉!!”

몸을 보호하던 로브는 불에 타버려서 군데군데 찢어지고 충격파에 내장이 전부 뒤틀리며 저 멀리 날아가 나무에 부딪혀서야 바닥으로 떨어졌다.

“쿨럭! 쿨럭!”

흑마법사는 겉으로 보이는 상처보다 충격파로 입은 엄청난 내상에 연신 피를 토하며 내장 조작을 뱉어냈다.

“너희들도 저주가 없으면 참 별거 없단 말이지.”

보아하니 집행관들이 방심하다가 저주로 한꺼번에 당한 것 같은데, 몇 번 맞다보면 어떻게 파훼해야 할지 대충 감으로 알게 된다.

“어쨌든 이제 심문에 들어가 볼까?”

[마수왕님! 멋있어요!]

[크하하! 역시 이 고오른의 힘을 이렇게 잘 써주시는 건 마수왕님 밖에 없습니다!]

[마수왕님! 다음엔 나도!]

[…….]

데카드는 건틀렛을 해제하고 본인이 부딪쳐 반쯤 부서진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는 흑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옛날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건데 그런 거 쓰고 다니면 앞은 보이냐? 어우, 내가 다 답답하네.”

흑마법사가 눌러쓴 검은색 후드를 훌렁 내려버리자 흑마법의 부작용으로 활기가 완전히 사라져버려 창백해진 흑마법사의 얼굴이 드러났다.

입에서는 피를 줄줄 흘리고 온몸의 뼈가 부서진 것 같아도 흑마법사는 눈을 치켜뜨며 데카드를 노려보았다.

“어딜 눈을 부라려.”

스트렝스 버프 마법이 담긴 딱밤이 흑마법사의 이마에 적중했다.

“크흑…….”

두개골이 갈라질 듯 뇌를 조여오는 딱밤의 고통에 흑마법사는 눈을 찌푸리며 신음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딱밤의 고통보다 더 충격적인 흑마법사의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너, 너는……!”

마수들을 부리며 자신의 스승님과 동료를 유린하고 또 그것을 즐겼으며 결국 고통스럽게 죽여버린 그놈.

흑발의 흑안, 얼굴에 퍼져있는 장난기, 그때와 분위기는 조금 다르지만, 확실히 그놈이 맞다.

그가 지나가는 곳에는 흑마법사의 피밖에 남지 않았고 모두들 안 그런 척하지만 그 시대에 살았던 모든 흑마법사들은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은신처 안에 박혀있었다.

흑마법사와 음지에서 숨어 살던 자들에게는 악몽 그 자체였던 집행관.

그놈이 떴을 때면 흑마법사들에겐 비상이 걸리고 미친 사람처럼 이 말만 소리치고 다녔다.

“처형인이 나타났다…….”

“응? 너 나 알아?”

옛날에 흑마법사들이 자신을 부르던 이명이 나오자 데카드는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알다마다.”

분명 자신들은 악마에게서 힘을 받고 그들과 거래를 하는 자들인데 사실 진짜 악마는 이놈이었다.

흑마법사를 상대하는 때 놈은 어떻게 해야 사람을 가장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 같았다.

“네놈은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돌아왔지. 반가워서 죽을 것 같아?”

흑마법사는 대답 대신 어금니에 힘을 주고 혀를 깨물려 했다.

“어딜 인마.”

하지만 데카드가 울대를 손날로 내려쳐 흑마법사를 기절시켰다.

“심문은 나중에 해야겠네.”

시전자가 힘을 잃고 쓰러지자 헤칸과 벨린다를 묶고 있던 검은 사슬들도 풀어졌고 둘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 기절한 흑마법사를 끌고 오는 데카드를 보았다.

두 손은 저절로 공손하게 모아지고 마치 대선배를 마주한 후배처럼 시선은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뒹굴거렸다.

“얘 좀 묶어주실래요?”

“네? 아, 응.”

벨린다는 순간 튀어나온 존댓말을 감추고 품 속에 있는 봉마수갑으로 흑마법사의 양 손목을 속박했다.

“다친 데는 없으세요?”

방금 흑마법사 두 명을 손쉽게 쓰러뜨린 둘보다 어째 헤칸과 벨린다가 입은 상처가 더 많아 보였다.

“응급 상자 가져오셨죠? 여기 꺼내서 쓰세요.”

데카드는 방 예약만 하고 급하게 나오느라 가져왔던 둘의 아공간 주머니를 건넸다.

헤칸은 아직 상황파악이 덜 된 듯 방금 데카드가 보여준 무위와 흑마법사가 한 말을 생각하며 멍하니 상처를 치료했다.

벨린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화상을 입은 팔에 붕대를 감으면서도 눈은 데카드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힘이 용병에게…….’

흑마법사를 단숨에 행동불능으로 만들어버린 그 힘은 자신이 졸업한 마탑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엘리스는 괜찮아?”

“저는 괜찮아요.”

엘리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흑마법사를 암살할 때 눈 밟는 소리를 내지 않는 게 조금 어려웠어도 다른 건 버티기만 하면 돼서 죽을 위기는 없었다.

“흐음……. 이 흑마법사는 잠시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고.”

주머니를 넓게 벌리고 봉지 안에 물건을 담듯 흑마법사를 털어넣었다.

“아아! 기억났어!”

헤칸이 감고 있던 붕대를 던지며 벌떡 일어섰다.

“집행부장님이 술 먹을 때마다 말했던 그 망나니!”

헤칸은 조금 전 흑마법사가 기절하기 전 데카드를 보고 말한 처형인.

그 단어가 가리키는 인물에 대해 떠올랐다.

필립은 집행관들과 회식을 갈 때면 술에 약하면서도 부어라 마셔라 했었는데 만취할 때마다 꼭 데카드의 얘기를 했었다.

죽은 자신의 동료 중에 허구한 날 흑마법사만 때려잡던 놈이 있었는데 그냥 한 마리의 망나니였다.

그놈 주위에 있으면 하도 피가 튀어서 세탁 방을 매일 가야 했다.

그런 잡스러운 이야기부터 무용담까지 술만 먹으면 온통 데카드 얘기만 계속했었다.

그를 가리켜 흑마법사들이 처형인이란 공포스러운 이름으로 부른다는 이야기 또한 나왔었다.

그리고 저 용병의 이름도…… 데카드였다.

“혹시 십 년 전에…… 실종되셨다는 그분 아니십니까?”

“크흠……. 망나니는 아닌데.”

필립 이 새끼가 사람 소문을 어떻게 내논거야?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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