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 탐색전
“데카드? 어디로 가는 거예요?”
갑자기 집행관들이 간 산맥 쪽으로 걷기 시작한 데카드를 엘리스가 영문도 모른 채 쫓아갔다.
“흑마법사들이 산맥에 있어.”
“흑마법사들이요?”
마법사를 업으로 삼지 않은 엘리스도 흑마법사에 대해선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가끔 암살단에게 흑마법사들이 모종의 물건을 훔쳐오라는 의뢰를 넣기도 하니 말이다.
“흑마법사들은 기운을 잘 감추는 걸로 소문이 나 있지만.”
마법사는 흑마법사를 감지할 수 없지만 흑마법사는 마법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어우! 마수왕님! 저기서 역겨운 냄새가 나요!]
이 마수들이 있다면 그런 상식쯤이야 산산이 깨부술 수 있다.
흔적의 시간이 얼마나 오래된 건지는 몰라도 마수들은 꽤 시간이 지난 흑마법사의 흔적도 귀신같이 발견해냈다.
휘이이잉-
산맥으로 입성하자 숲보다 더 강하고 차가운 바람이 몸을 스쳐 지나갔다.
[추위는 걱정마십쇼!]
다행히 고오른이 안에서 마나를 빠르게 순환시켜주는 덕에 몸은 정상 온도를 다시 찾아갔다.
“소환.”
자신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발끝이 얼어버릴라 추운데 뒤에 있는 엘리스는 이대로 두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
찌지-
데카드의 손바닥에서 붉은 색깔의 도마뱀이 바닥으로 기어가더니 엘리스의 몸에 착하고 붙었다.
“흐아…….”
“따뜻하지?”
엠버 리자드는 저서클에서 소환할 수 있는 마수로 이렇게 추운 환경에서 손난로같이 몸을 뜨겁게 해주는 아주 고마운 마수다.
“엄청요.”
엘리스는 엠버 리자드를 손이나 몸에 붙여 몸을 녹였다.
“그럼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게 가 보자고.”
흔적 위로 눈들이 조금씩 덮어지고 있어 마수들이 맡을 수 있는 냄새도 연해지고 있었다.
바람이 매섭지만, 이제는 뛰어서 그 뒤를 추격해야 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눈에 빠져버리는 다리를 힘들게 뽑아가면서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마수왕님! 흔적 여러 개다!]
티이라의 말처럼 지금까지 하나로 통일돼 있던 흑마법사들의 흔적이 여러 갈래로 나뉘기 시작했다.
“흩어져서 찾기 시작한 건가.”
이 행동은 두 가지 경우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아직 집행관이 해리스 산맥에 들어온 것을 몰라서 겁 없이 혼자 다니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집행관과 1대1로 붙어도 전혀 꿀리지 않는 힘을 가졌기에 배짱을 부리고 있다는 것.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목표물을 암살하고 쫓아가는 게 일상이었던 엘리스도 데카드가 무엇을 보고 달려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데카드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는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일이 생기긴 했지만, 문제까지는 아니야.”
이들이 흩어진다면 자신도 찾는 눈을 늘리면 그만이다.
“소환.”
추운 바람을 뚫고 마법진들이 데카드와 엘리스의 주위를 에워쌌다.
카아악-! 카아-!
3서클로 올라서면서 한 번에 통제 가능한 마수들의 수가 확연히 늘어나게 되었다.
스카이 크레인 3마리와 마운틴 호크 3마리.
흑마법사가 갈라진 방향은 세 갈래 정도밖에 없으니 지금보다 훨씬 빠른 추격이 가능하다.
다만 마수들의 마나를 흑마법사가 눈치채면 기습이 어려워지기에 거리를 두며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한다.
“다시 출발하자.”
두 방향은 마수들에게 맞기고 데카드와 엘리스는 원래 가던 방향대로 움직였다.
* * *
“정말 유물이란 게 있는 건가?”
아직 산맥이 무척이나 크고 넓어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이런 산골짜기에 그런 물건이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있으니까 저희를 보낸 게 아닐까요.”
보이는 거라곤 하얀 눈과 청록색 나무밖에 없었어도 이 산맥 어딘가에는 전설이라 불리는 유물이 있을 거다.
하지만 그 길은 멀기만 했고 둘은 가면서 여러 가지 잡담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보다 이번에 들어온 용병들은 어때? 나는 그 데카드라는 녀석이 꽤나 쓸만해 보이던데.”
집행관도 아니면서 수도에 자리 잡았던 흑마법사를 처치하고 본인은 상처 하나 없이 무사한 그 실력은 아무리 신분이 낮은 용병이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제가 봐도 그런 것 같아요.”
맨날 짐승같이 근육만 키울 줄 아는 용병들을 보다가 자신에게 빵을 내미는 데카드는 퍽 색달랐다.
“그보다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이요?”
헤칸도 확실하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들은 소문이 맞는 것 같았다.
“그 너랑 동기인 문제아 있잖아.”
“아아…… 창피하군요.”
같은 동기조차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할 정도로 사이먼은 안으로나 밖으로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무리 부하라고는 하나 용병들을 무슨 노예 대하듯이 하고 시민들에게는 집행관의 신분을 내세워 갑질을 일삼았다.
“갑자기 그놈이 팔에 붕대를 감고 왔을 때 있지?”
벨린다의 옆자리였던 사이먼이 선배한테 깨지고 또 어떤 용병에게 기분 풀이를 위해 시비를 걸러갔었다.
그러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야 팔에는 붕대를 감고 썩은 표정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집행부 건물에서 저렇게 다칠 일이 있나 하고 이상해했던 기억이 벨린다는 조금씩 났다.
“기억나요.”
“용병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데카드라는 용병이 문제아 놈과 대결해서 이겼다는군.”
데카드는 굳이 그 일을 말하고 다니지 않았고 사이먼은 창피함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소문은 용병들에게서만 알음알음 퍼졌다.
“소문은 믿을 게 못 되죠.”
벨린다도 순간 혹해서 정말 헤칸의 말이 맞나 싶었지만 그래도 집행관이라는 이름은 동전 따먹기로 얻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꼴통이래도 일개 용병에게 상처를 입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나는 소문이 사실일 것 같아.”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는 헤칸도 당연히 거짓이라고 생각했는데 데카드가 흑마법사를 잡았다는 소리가 들려오자 믿기 시작했다.
“돌아가면 밥부터 먹어야겠어.”
밥도 안 먹고 바로 조사를 시작했더니 근육 빠지는 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느낌이었다.
바스락-
“으음?”
아주 살짝 멀리서 누군가가 내는 나뭇잎 밟는 소리에 헤칸이 뒤를 돌아보자 흑색의 불덩이가 날아오고 있었다.
“피해!”
실전 경험이 부족한 벨린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마법의 전조에 아무런 의심 없이 앞만 보고 있을때 헤칸이 몸을 날려 그녀를 붙잡고 바닥을 굴렀다.
콰아아앙-!
불덩이는 벨린다의 머리카락을 스치면서 날아가 방향에 있던 나무들을 그대로 폭발시켜버렸다.
“웬 놈들이냐!”
하지만 일체의 대답도 없이 불덩이는 계속 날아왔고 헤칸은 재빨리 일어나 땅에 양손을 짚었다.
“어스 월!”
처저저적-
땅이 요동치면서 두껍게 덮인 눈을 뚫고 흙벽이 3중으로 솟아났다.
콰아앙-!
불덩이들은 흙벽에 막혀 다가오지 못하고 부딪치자마자 폭발해버렸다.
스르릉-
벨린다의 허리춤에 있던 청색 장검이 음악과 같은 소리와 함께 뽑혀 나왔다.
“칫, 아깝군. 아까의 기습으로 다 죽일 수 있었는데.”
“상관없다. 지금 죽이면 된다.”
하나같이 흑색의 로브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어떤 이들이 감췄던 모습을 드러냈다.
“흑마법사 새끼들이었군.”
헤칸이 땅에다가 침을 거칠게 뱉으며 몸에 힘을 주자 근육이 넘실거리며 마나룸이 개방됐다.
“겨우 두 놈인가?”
발이 붙어있는 곳을 중심으로 땅이나 돌맹이들이 진동하면서 마치 작은 지진이 생겨난 듯 흑마법사들을 위협해왔다.
“한 놈은 제가 맡을게요.”
콰르릉-
푸른색 장검의 검신이 뇌전으로 물들며 파지직하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크크큭. 꽤나 강해 보이는군. 너희들.”
계속 끊어가면서 말을 잇는 흑마법사의 어깨로 검은색 흑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좋은 제물이 되겠어.”
헤칸과 벨린다를 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는 두 흑마법사는 싸울 의지가 만연해 보였다.
“우리가 집행관인 건 알고 있나?”
상대가 도망치지 않는단 건 쫓아가는 귀찮음을 덜 수 있기에 오히려 좋았지만 이렇게 겁 없이 나댄다는 것도 이상했다.
“집행관? 마법부의 졸개들이 여긴 왜 왔지.”
“설마 네놈들도…….”
두 진영은 지금 이 순간 서로의 목적이 같다는 것을 눈치챘다.
또 저들을 지금 당장 죽여야 한다는 생각도 완벽히 일치했다.
휘이이-
끝도 없이 부는 바람만이 이 정적을 메꿔주고 있을 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교전은 시작됐다.
벨린다가 검을 날카롭게 앞으로 세우며 달려나가고 헤칸이 원거리에서 보조했다.
“마검사인가.”
“끔찍한 혼종이구나.”
아직까지 그 이유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흑마법사들은 마검사를 극도로 싫어하고 질색한다.
청색 장검이 전격을 흩뿌리며 시야를 가림과 동시에 검의 모습 또한 가려 정확한 공격로를 예상하지 못하게 했다.
“죽어.”
그렇게 흑마법사 한 명의 목이 베어지려는 찰나 흑염이 전방위로 내뿜어지며 진입을 방해했다.
“크흑……!”
순간 팔에 가해지는 초고온에 화끈함과 고통이 느껴지자 벨린다는 곧 바로 백스텝을 밟아 거리를 두었다.
“괜찮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팔에 닿을 때마다 녹아내리며 연기로 기화할 만큼 팔에 붙은 불은 강했다.
“……괜찮아요.”
보통의 불보다 흑마법사의 저주받은 불은 더욱 아프고 고통스럽게 다가왔음에도 벨린다는 이를 악물고 참아냈다.
“락 캐논!”
허공에서 마법진들이 하나둘 열리며 사람 절반 크기의 바위들이 대포알처럼 쏘아졌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불덩이가 헤칸이 날린 바위의 개수 만큼 똑같이 날아가며 다가오기 전에 공중에서 부숴버렸다.
그렇게 바위들은 활약하지 못하고 떨어지나 했지만 헤칸은 웃고 있었다.
“바위 하나가 끝이라고 누가 그러더냐.”
바위가 부서져서 생겨버린 수십 개의 돌맹이들은 하늘로 올라가 장대비처럼 흑마법사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다크메터 쉴드.”
흑마법사중 한 명이 돔 모양의 보호막을 만들어 방어하는 사이 다른 한 명은 그 순간을 노려 정체 모를 주문을 영창했다.
그와 동시에 헤칸과 벨린다의 몸이 점점 무거워져 갔다.
“하아…… 하아……. 몸이 이상해요.”
매일 자신의 몸같이 움직이면서 들어왔던 검이 갑자기 무거워지고 몸은 방금 행군을 끝내고 온 것처럼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놈들의 저주다. 절대 쓰러지면 안 된다.”
다크매터 쉴드가 강한 방어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이긴 하지만 일정 시간 후에 자동으로 사라지는 단점이 있다고 알려져있었다.
지금 암석의 비가 끝났음에도 계속 쉴드를 켜고 있는 건 저주를 거는 중인 한 명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5초 후에 방어막이 꺼진다. 그때를 노려 공격해라.”
“알겠어요.”
벨린다는 방어막이 꺼지는 그때 몸을 움직이기 위해 헤이스트를 비롯한 버프마법을 걸어 저주에도 몸이 버틸 수 있게 만들었다.
후웅-
쉴드가 사라지고 도끼로 장작을 패듯 벨린다가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리쳤다.
콰르르릉-!!
눈이 멀어 버릴 듯한 전광과 동시에 번개의 참격이 흑마법사를 갈라버릴 듯 날아갔다.
“이거나 먹어라!”
헤칸이 손바닥을 쫙 펴자 떨어졌던 암석들이 떠오르고 그대로 주먹을 쥐어버리니 날카로운 돌들이 흑마법사에게 박혀 들었다.
“크헉!!”
“쿨럭!! 카학!!”
참격에 몸이 두 동강 나고 암기같이 잔뜩 날이 선 암석들이 장기들을 뚫고 지나갔다.
흑마법사들은 피를 쏟으며 그대로 쓰러졌고 흰 눈이 새빨간 피로 물들어갔다.
“후훗! 쉬운 놈들이었어!”
웬만하면 생포해서 집행부로 데려가 심문하고 싶었지만 나름대로 저항이 거세 죽일 수밖에 없었다.
“좋은 꿈 꿨나?”
그 순간 음험하면서도 벌레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