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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40화 (40/208)

040 어디에나 있는 방해꾼들

약간은 멍하면서도 그 안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 때로는 암살자의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눈빛의 엘리스가 문을 열며 나올 줄 알았다.

“무슨 일이야?”

데카드가 고심하며 고른 방에는 엘리스가 아닌 목욕을 막 끝냈는지 젖은 머리에 수건을 목에다 두른 벨린다가 나와버렸다.

“어…… 음…….”

사실 엘리스에게 빵을 주러 나왔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분이 나오셨다.

“나한테 주려는 거야?”

벨린다가 데카드의 손에 들린 빵을 보며 물었다.

여기서 그냥 ‘아니요’라고 하면 벨린다가 ‘그럼 왜 온 거지?’ 하는 말을 할 게 뻔했다.

“맞습니다. 배고파 보이셔서.”

줄 건 주고 빠르게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게 현명하다 판단 내린 데카드는 들고 있던 빵을 벨린다에게 주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럼 저는 이만.”

그 말을 끝으로 벨린다는 다시 문을 닫으려다가 다시 열며 멀어지던 데카드를 불러세웠다.

“잠깐만 있어볼래?”

벨린다가 문이 닫히지 않게 걸어두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무언가 우당탕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여깄다.”

소리를 들어보니 어지간히 정리를 안 해놓은 것 같았다.

발에 채는 물건들이 많아, 그렇게 넓지도 않은 1인실에서 나오는데 안에서 한참을 끙끙거리던 벨린다는 겨우 밖으로 나왔다.

“받아.”

다시 가까이 온 데카드가 방 안쪽에서 벌어진 물건들의 대소동을 보지 못하도록 몸으로 가린 채 벨린다가 무언가를 주었다.

“이게 뭡니까?”

“찻잎이야. 뜨거운 물에 타 먹어.”

쾅-

벨린다의 방문이 닫히고 복도에서 들린 소란에 바로 옆방에 있는 엘리스가 문을 열었다.

“데카드님?”

“어어, 엘리스.”

원했던 목표물은 방금 막 숲에 나온 사슴 같은 눈망울로 데카드를 바라보며 복도로 걸어나왔다.

옷은 밖에서 입던 것과 똑같은 암살용 복장이었는데 무장만 해제돼있었다.

“다른 잠잘 때 입는 옷은 없어?”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옷이라고 해봤자 납치될 때 입고 있었던 옷이 전부였는데 그 옷은 쳐다도 보기 싫었다.

“다음에 같이 사러 가자.”

데카드도 딱히 옷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단벌신사는 조금 아니라는 것 정돈 알고 있었다.

“좋아요!”

엘리스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유난히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왜 오셨나요?”

따로 할 말이 없다면 대실과는 층 자체가 달라 올 일이 없는 곳이다.

“빵을 전해주려다가…….”

“빵이요? 저 빵 좋아해요!”

빵은 종류에 따라서 소리 없이 먹을 수 있고 저온 보관이 가능하며 금방 배부르게 해줘 암살자들이 자주 챙기는 음식이었다.

“그래?”

데카드가 지금 와서야 주머니를 뒤적거려봐도 아까 벨린다에게 주었던 빵이 되돌아오진 않았다.

“으음…… 잠깐만 기다려줄래?”

“네! 저 기다리는 거 엄청 잘해요.”

마치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엘리스는 데카드가 지나갈 수 있게 옆으로 살짝 비켜서 주었다.

만약 꼬리가 있었다면 살랑살랑 흔들었을지도 모른다.

데카드는 계단을 한 번에 두 세 개씩 뛰어넘으며 방까지 도착했다.

“마주왕니 오셔써요?”

요르가 입안에 빵을 가득 물고 방 안으로 급하게 들어온 데카드를 바라봤다.

“빵 남은 거 있어?”

흩어져서 떨어진 빵 봉지들 사이로 아직까지 살아남은 마지막 빵이 보였다.

“후우, 다행이다.”

데카드가 재빨리 빵을 챙기고 다시 엘리스가 기다리는 복도로 달려갔다.

복도에서는 벽에 등을 기댄 엘리스가 한쪽 발뒤꿈치로 벽을 콩콩 차고 있었다.

“그…….”

막상 빵을 쥐고 엘리스에게 주기 위해 상태를 확인해보니 빵 안에 있던 크림은 밖으로 튀어나오고 엉망인 상태였다.

“이게 제 빵인가요?”

엘리스가 데카드의 손에 들린 크림투성이에 부서진 빵을 보며 물었다.

모양새가 이러니 이쪽에서도 주기가 부끄러워졌다.

“마음에 안 들면…… 지금 나가서 새로운 걸로 하나 사올…….”

“마음에 들어요.”

“뭐?”

엘리스는 데카드가 들고 있는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빵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제가 먹어도 될까요?”

“나는 괜찮은데 이런 걸로 괜찮겠어?”

발로 밟은 것 같이 생긴 빵은 솔직히 남에게 주어선 안 될 것 같았다.

“데카드님이 절 위해 가져오신 거 잖아요.”

“그……렇지.”

마수들이 먹고 있던 빵 중에서 간신히 하나를 구해온 거지만.

엘리스는 빵을 포장하고 있던 비닐을 뜯어내고 밑에서부터 조금씩 밀어내며 한입에 깨물어 먹었다.

“잘 먹네.”

“그렇죠?”

엘리스는 다 부서져 간 빵을 계속 씹으며 미소를 지었다.

“빵 고마웠어요.”

“나도 잘 먹어줘서 고맙네.”

이런 먹을 걸 줘도 이렇게 행복하게 먹어주는 사람은 아마 엘리스 밖에 없을 거다.

“지금 느껴지는 기분은 전혀 밤 같지 않지만 어쨌든 잘자.”

루비아와 다르게 지금 이곳은 깜깜한 밤이니 생각보다 일찍 밤 인사를 해야 했다.

“데카드 님도요.”

“아아, 그.”

데카드가 잠시 손을 들며 엘리스의 말을 막고 그녀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데카드 님이 아니라 그냥 데카드라고 불러줘.”

“……정말요?”

“정말이야.”

이제 같이 다닌 지도 꽤 됐는데 데카드 님은 너무 딱딱하지 않은가.

“데카드…… 그래도 생명의 은인한테 존대를 하지 않는 건 맹세에 어긋나요.”

“그 당사자가 괜찮다니까? 아니면 나도 엘리스 님이라 부른다.”

“그, 그건 안돼요!”

엘리스가 데카드와 다니고 처음으로 가장 격렬하게 반대해왔다.

“그러니까 데카드라고 불러. 알았지?”

“알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한 번 불러봐.”

엘리스는 신발 앞이 다 닳을 것 같이 바닥에 문질렀고 손도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 채 조금씩 떨려했다.

‘그렇게 힘든 거야?’

데카드는 일류 암살자가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자신이 그렇게 큰 파문을 던졌나 의문이었다.

“데, 데카드.”

“좋은 느낌이네.”

살아있는 살생부라고 불렸던 여자가 이름을 불러주는 건 뭔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럼 이제 진짜 잘자.”

“데카드 님…… 데카드도 잘자요.”

* * *

얇은 나뭇잎에 쌓인 눈들이 인상적인 숲.

[티이라! 눈 먹어보고 싶다!]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모자라도 쓰지 않으면 머리카락의 눈이 들러붙어 녹아내린다.

그럼 눈은 얼어붙어 머리를 얼려버리고 심하면 저체온증으로 이어진다.

[후훗! 이런 눈 따위는 제 불을 버텨내지 못합니다!]

고오른의 마나가 가진 불의 성질이 마나 회로를 덥혀줌과 동시에 몸을 뜨겁게 해줘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집행관들도 아마 이런 방법으로 추위를 막고 있겠지만 데카드는 고오른이 알아서 마나를 돌려주고 있어 정신력의 소모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엘리스가 좀 마음에 걸리네.’

도시와 다르게 아예 숲으로 온 지금은 추위의 정도가 완전히 달랐다.

아마 로브를 입고 있더라도 많이 추울 게 분명했다.

엘리스는 마법사가 아니라 추위에 대한 대응법도 그저 옷을 껴입는 것 뿐일 테니 더욱 그러할 것이다.

“춥지 않아?”

“저는 괜찮아요.”

[으으! 암컷! 끼 부리지 마!]

엘리스가 살짝 웃으며 후드를 조금 더 껴입는 행동에도 요르의 질투는 폭발해나갔다.

“마을이다.”

유물이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산맥과 가장 가까운 이 마을은 베이스캠프로 안성맞춤이다.

“그럼 용병들은 우리의 짐을 가지고 마을의 여관을 잡아놓도록.”

‘용병은 걸리적거린다는 건가.’

집행관인 자신들이 일을 처리할 동안 용병들에겐 잡일이나 시킬 생각인게 훤히 읽혔다.

엘리스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몰라 데카드를 쳐다봤고 그는 집행관이 주는 아공간 주머니를 받아들었다.

“분부대로 합죠.”

“여관에서 기다려라.”

표면적으로는 가장 고참인 헤칸이 용병 신분인 둘에게 명령했다.

[이대로 물러나시는 겁니까?]

‘후배님들이 알아서 잘 처리해준다는 데 굳이 나설 이유도 없고 관광이나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것 보기만 번지르르하지 이 덜떨어져 보이는 놈들이 잘해낼지는 모르겠지만, 집행관 짬을 헛으로 먹지는 않았겠지.

헤칸과 벨린다가 산맥을 향해 가고 마을에 남겨진 엘리스와 데카드는 여관을 잡았다.

“쯧, 1인실밖에 없네.”

겉으로 봐도 방의 크기가 커 보이지 않아 걱정이 좀 됐었는데 역시나였다.

1인실은 단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마수들과 거의 부둥켜안고 자야 하기에 불편한 점이 많았다.

[좋았어!]

요르는 오히려 더 좋은 듯 오늘 밤이 기대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마을에는 뭐가 유명한가~”

데카드는 벌써부터 관광지에 놀러 온 휴양객의 마음으로 기분 좋게 가이드 북까지 하나 샀다.

짐이 들어있을 주머니들을 데카드가 예약한 그들의 방에 던져넣기 위해 계단을 올라가려 했을 때 주민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부커 소식 들었지?”

“어제까지 멀쩡하던 친구가 왜 그런 거야?”

1층 테이블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둘의 얘기는 데카드를 멈추게 만들었다.

“갑자기 밤에 잠도 잘 못 자고 헛소리만 해대고…….”

“헛것을 보고 환청을 듣나? 낮에는 멀쩡하다가 그것도 밤에만.”

“으응?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슈?”

갑자기 모르는 낯선 이가 얘기에 끼어들자 두 남자는 놀란 듯 보였지만 그가 말한 증상은 부커가 겪고 있는 것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젠장.”

데카드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여관을 나왔다.

“왜 그러세요?”

집행관들의 짐을 갔다 두는 것도 잊은 채 데카드는 마을을 살폈다.

엘리스가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무슨 일이지 물어도 답해줄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서 활기가 느껴지지 않아.’

다들 얼굴도 퀭하고 언뜻 밝은 것처럼 보여도 사람이 마땅히 가지고 살아가야 할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가 흡수해가고 있어.”

모기들이 사람의 피를 빨아가서 번식을 위해 사용하듯 이들의 활기를 누군가가 빨아가고 있다.

그리고 데카드는 누가 그런 짓을 취미이자 본업으로 삼는지 알고 있다.

“흑마법사…….”

[그들이 여기에서도 뿌리를 내린 겁니까?]

이런 작은 마을에?

뭐 뽑아갈 게 있다고 흑마법사들이 자신들의 위치만 드러날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놈들도 냄새를 맡은 거지.”

흑마법사들이 유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해리스 산맥으로 온 것이다.

“일이 제대로 꼬였어.”

데카드의 눈이 방금 집행관들이 향한 해리스 산맥으로 돌아갔다.

흑마법사들이 마을에도 손을 써둔 걸 보니 일행보다 먼저 해리스 산맥에 들어간 건 틀림없었다.

“하아…… 그놈들 잘하는 거 맞아?”

흑마법사들이 모습을 감춘 지가 오래됐다고 지금 집행관들은 전부 나태해지고 흑마법사에 대한 제대로 된 대처법도 모르고 있었다.

실력은 뛰어난 이들이니 믿고 맡길 법도 했지만 데카드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흑마법사들의 손에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진 유물이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건 안 되지, 절대 안 돼.”

돈, 젊음, 힘. 이 삼박자가 고루 갖춰진 지금의 인생에서 그런 존재들은 아주 큰 방해물이다.

“어딜 내 이지 인생을 방해하려고.”

데카드는 해리스 산맥으로 움직였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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