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 조사
지루했던 일반 업무가 끝나고 오늘이 바로 유물 조사를 하러 가는 날이다.
데카드는 드디어 그 하기 싫던 순찰이 끝났다는 생각에 좋아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조사를 떠날 채비를 했다.
바로 옆방에 있던 엘리스는 오늘도 데카드가 만들어준 깃털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어 올리고 단검을 허리춤에 꽃는 것을 마지막으로 준비를 마쳤다.
집행관을 따라가는 전속 용병의 신분으로 데카드와 엘리스는 조사를 떠나기 전 필립의 방으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덜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이번 조사의 메인이 될 집행관 두 명이 이미 앉아있었다.
그중 한 명은 처음 필립의 방에 왔을 때 봤던 여자였는데 오늘은 허리에 장검을 차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게.”
모두가 있는 공식적인 자리이니 필립도 격식을 갖추며 데카드와 엘리스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조사를 위해 떠나는 이들이 모두 모이자 필립이 조사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자네들이 모인 이유는 알다시피 유물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큐브를 찾기 위해서야. 가진 힘을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소문과 전설에 따르면 인외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
‘그렇긴 하더라.’
데카드도 슬레이에서 세이칼이 말해준 유물의 힘을 들었을 때는 과연 그게 사실일까 하는 의심부터 들었다.
“하여, 그런 힘을 가진 유물이 악인의 손에 넘어가면 안된다는 게 마법부의 결정이다.”
집행관들은 필립의 말을 경청하며 그가 말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넣으려 했고 데카드는 오늘 아침을 못 먹고 온 게 생각이 났다.
‘배고픈데.’
[제가 토스트라도 사오겠습니다.]
[내 것도!]
[뭔진 모르겠지만 맛있어 보이는 이름이군! 내 것도 부탁하네!]
[짹짹아! 내 것도 사주라!]
[…….]
졸지에 양손 가득 토스트를 안고 오게 생긴 짹짹이는 침묵하며 약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루비아에서 흑마법사가 발견됐지.”
필립의 말에 집행관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며 면목없다는 듯 두 어깨가 축 내려앉았다.
“그걸 여기 있는 데카드가 잡아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
집행관들의 눈이 데카드에게 집중됐다.
소문으로 원숭이 청소부가 흑마법사를 잡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게 정말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필립의 말로 확인을 받자 둘의 시선은 더 이상 용병을 대하는 눈이 아니라 조금 더 상승된 격으로 대하는 것처럼 바뀌었다.
“흑마법사들이 루비아까지 아무렇지 않게 들어올 정도로 대담해지기 시작했으니 자네들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유물을 노리는 건 집행부 하나만이 아니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거대하고 강한 세력들 또한 그 큐브에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할 사람들이니 인사들 나누시게.”
“벨린다야. 마검술이 주력 무기지.”
“헤칸이다. 땅속성을 비롯한 방어계 마법들을 전문으로 사용한다.”
집행관들은 앞으로 전투를 같이 해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니 자신의 강점을 말함과 동시에 악수를 청했다.
“데카드입니다. 마수 소환을 하고 있죠.”
“엘리스예요.”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엘리스 혼자 자신의 특기를 말하지 않자 필립이 물었다.
“엘리스는 따로 자신의 장기 같은 게 없나?”
“딱히 자랑할만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자랑할 게 없다고?
나는 사실 전직 갈까마귀 암살단이었다고만 던져줘도 이 방 안은 아마 뒤집어질 거다.
집행관 중에는 갈까마귀 암살단원을 체포하는 게 꿈인 사람도 있을 만큼 그들의 실물을 보기란 호수에서 고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앞에 놓인 파일에 적힌 대로 유물의 추정 위치는 해리스 산맥 어딘가에 있네. 정확한 위치까진 알아내지 못해 고생을 꽤나 해야 할 거야.”
유물이 어디 있는지도 대충 알았겠다, 이제는 출발할 일만 남았다.
“그럼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집행관들과 데카드, 엘리스는 그대로 내려가 건물 밖에까지 나왔다.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헤칸은 앉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엄청난 거구였다.
이런 몸으로 마법을 쓰며 싸운다는 생각에 무언가 강한 언벨런스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집행관 두 명은 가져온 짐을 확인했고 벨린다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가져온 장검을 확인했다.
‘마검술이라.’
마법이라는 무기로 원거리 전을 강하게 가져갈 수 있는 마법사는 근접으로 다가온 공격의 취약하다는 단점 때문에 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검술은 원거리 전에서 우위를 점하면서도 근접전에서도 특유의 마법을 섞은 검술로 밀리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마검술사는 또 오랜만에 보았기에 데카드는 벨린다에게 흥미가 갔다.
“그럼 부지런히 출발해서 오늘 중으로 해리스 산맥 근처 마을까지 가자고.”
해리스는 산맥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해리스 산맥과 가장 가까운 도시인 달렌까지는 텔레포트 기계로 이동하고 산맥 근처에서 머무를 마을까지는 육로로 가야 했다.
‘토스트 먹을 시간도 없겠네.’
집행관들은 뭐가 그리 바쁜건지 여유가 없었고 급해 보였다.
“바로 움직이도록 하지.”
일행은 텔레포트 기계까지 갔고 목표 도시인 달렌까지 순간이동 했다.
슈욱-!
바람빠지는 소리와 함께 눈을 감았다가 뜨자 풍경이 바뀌면서 몸을 에워싸는 추위가 느껴졌다.
데카드야 짹짹이가 워낙 따뜻했기에 괜찮았고 집행관들은 자체적으로 불마법을 몸에 옅하게 두르면 되니 상관없었다.
하지만 옆에 있는 엘리스는 그렇게 두껍지 않은 옷이라 살짝 추워 보였고 데카드는 안에 있던 전투용 로브를 벗었다.
“이거 입어.”
전투용이라 방한 성질이 있어 이 정도 추위는 충분히 막아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엘리스가 로브를 받아서 입고는 얼굴을 들지 못하며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많이 추워?”
로브를 입었는데도 추운 것인지 엘리스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괘, 괜찮아요.”
[아악! 주제도 모르는 암컷이 감히 누구의 옷을 입어!]
[여기서 날뛰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라!]
추위에서 정신이 멀어지니 이제서야 달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하늘에서 눈송이가 내리고 세모 모양의 지붕을 가진 집들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었다.
“여긴 루비아하고 뭔가 다른 느낌이네요.”
루비아가 최신식 설비로 가득 찬 현대 문명의 종착지 같은 곳이라면 이곳은 고즈넉한 느낌과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주는 고향 같은 느낌이었다.
길거리 곳곳에 자란 높은 침엽수 나무들이 그 감상을 더욱 강하게 해주었고 집행관들이 여관을 찾으며 말했다.
“오늘 하루만 이곳에서 자자고.”
루비아에서는 분명 아침에 출발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해가 지고 있었다.
지금 도시 밖으로 나가봤자 추운 숲에서 노숙이나 하게 되리라.
적당한 규모가 있는 여관으로 들어가자 그곳의 주인이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쇼. 네 분이십니까?”
“그렇소. 방은 남녀로 나누겠나?”
‘어우.’
그렇게 된다면 저 덩치랑 같은 방을 써야 되는 데 그건 죽어도 싫었다.
“각자 따로 돈을 내서 방을 잡는 게 어떻겠습니까?”
데카드가 헤칸의 의견대로 되기 전에 발 빠르게 말하자 나머지 세 명도 좋은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게 하자고.”
데카드를 제외한 셋은 1인실을 계산하고 데카드 혼자 넓은 대실을 계산했다.
“자네는 혼자 자면서 뭘 그렇게 큰 방을 골랐나?”
1인실을 사면 마수들 때문에 좁아터질 것 같아 이런 대실이 아니면 여유롭게 잘 수가 없다.
또 1인실과는 다르게 이런 대실에서 자는 손님들에겐 더 좋은 서비스가 나온다는 점도 한몫을 했다.
“딱히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이런 잡다한 이유를 말할 필요는 없어 데카드는 대답을 회피했고 헤칸도 딱히 관심 없었는지 물고 늘어지진 않았다.
“내일 9시에 이곳으로 다시 모이도록 하지.”
“좋습니다.”
* * *
“딱히 잠은 안 오는데.”
달렌에는 밤이 찾아오고 있지만 잠이야 이미 충분히 자고도 남았다.
[아침밥을 여기서 드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오오! 좋은 의견이다, 짹짹이!]
“좋은데?”
짹짹이의 말처럼 루비아에서 못 먹었던 아침밥을 이곳 특산물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데카드는 그대로 여관을 나와 바닥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눈을 뽀득뽀득 밟아가며 음식점을 찾았다.
“달렌은 뭐가 맛있으려나.”
달렌같이 추운 북방 지역은 빠르게 소비되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각각의 고기들이 그들만의 조리법으로 요리된다.
그 증거로 거리마다 하나씩은 꼭 고깃집이 있었다.
“고기는 저번에 먹었는데.”
평소대로면 고민 없이 고깃집으로 직행했어도 최근에 고기를 거하게 먹어버려 똑같이 고기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뭐 없나?”
고깃집 다음에는 고깃집이 있는 게 이곳 사람들은 질리지도 않고 고기만 먹나 보다.
“내가 용사다! 마왕을 잡아라!”
“꺄악! 용사님, 저를 구해주세요!”
그렇게 여관에서 멀어지며 달렌을 걷다 보니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용사와 마왕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저거 어렸을 때 많이 했는데.”
데카드가 자란 고아원에서도 아주 유행하던 놀이였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마왕을 하고 이긴 사람은 용사를 해서 마왕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하는 간단한 놀이다.
“추억이네.”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열심히 싸우고 있는 용사님과 마왕님을 제치고 데카드는 다시 달렌을 걸었다.
“에이, 모르겠다.”
결국 데카드는 근처 빵집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렇게나 오래 고른 탓에 뭔 빵집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고깃집을 제외하고 달렌에서 처음 본 먹을 것을 파는 가게였다.
왠지 이곳을 지나치면 다시는 다른 음식점을 못 볼 것만 같아 데카드는 진열된 빵들을 골라 담았다.
‘너희들은 이런 걸 좋아하겠다.’
마수들의 취향대로 골라 담은 다양한 종류의 빵들은 바게트부터 시작해 조각 케이크, 크림빵, 초콜릿 빵 등등 여러 가지였다.
데카드는 계란빵과 설탕에 튀긴 토스트를 골랐고 계산대로 가져와 보니 빵이 한 무더기였다.
“23실버 입니다!”
수지맞았다는 생각에 가게 주인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계산을 했고 데카드는 추운 날씨에 빵이 얼지 않도록 종종걸음을 뛰며 여관으로 걸어갔다.
“으으, 손 시려.”
대형 봉투를 들고 다니느라 손이 다 빨개져 버렸다.
방에 도착하자마자 봉투를 내려놓고 양손을 비비는 사이 마수들이 밖으로 나와 봉투를 열어보았다.
“이게 뭔가요?”
“킁킁, 좋은 냄새 난다!”
“빵이라 부르는 음식이군요!”
“…….”
마수들이야 원체 식성이 좋아 음식이라는 말에 일단 긍정적이었다.
“맛있어 보이는 걸로 먹어봐.”
데카드는 자신이 고른 빵들을 몇 개 집고 포장을 뜯으려다가 아직 자신처럼 빈속일 엘리스가 떠올랐다.
“잠깐 여기 있어봐. 금방 갔다 올게.”
“네!”
마수들이 처음 먹어보는 또 다른 음식에 정신이 팔린 사이 데카드는 엘리스의 방이 어디인지 찾기 시작했다.
“이곳이었나?”
아까 엘리스가 이 복도로 들어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 이 복도에는 방이 세 개가 있다.
“복도로 가서 열쇠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의 시간은 2초 정도.”
데카드는 집행관의 추리력을 발휘해 세상 철저하게 방 세 개 중 어느 것이 엘리스의 방일지 찾기 시작했다.
그냥 복도에서 엘리스의 이름을 부르면 그녀가 듣고 나오겠지만,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데카드가 심심해서였다.
“여기다.”
오랜 집행관의 경력으로 쌓인 감이 이 문 뒤에 엘리스가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똑똑-
거침 없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오래 걸리지 않아 문이 벌컥 열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