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새로운 힘
후방에서 일어나는 폭발음에 데카드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서 흑색의 로브를 입고 후드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나타났다.
[주인님, 저자에게서 종이의 기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욱! 티이라! 토 나온다!]
[으악! 여기다 하지 마라!]
[어떻게 저런 역겨운 마나를 품은 거야!]
[…….]
종이와 같은 기세를 내뿜는 남자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불을 질렀나.”
“내가 그걸 답해줘야 되냐?”
남자는 피식 웃으며 품 속에 손을 집어넣었고 데카드도 등 쪽에 있는 마공학 권총을 잡았다.
“네놈이 집행관은 아닌 것 같으니 죽여도 상관없겠지.”
“너 같은 흑마법사 새끼 잡아 족치는 게 일이긴 했어.”
후드 안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남자는 우스운 듯 조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크큭……. 내가 흑마법사라는 걸 아는데도 피하지 않는단 말인가.”
“앞에 벌이 있다고 길을 돌아갈 필요는 없잖아? 결국, 벌레인데.”
흑마법사는 조소로 올라가 있던 입꼬리를 내리며 품속에 넣어둔 손을 꺼내 부적을 허공에 흩뿌렸다.
“저주에 몸부림치다가 죽어라.”
흑마법사의 손에서 떨어진 형형색색의 부적들이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빳빳하게 펴지기 시작했다.
탕-! 탕-!
그렇다고 데카드가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제일 빠른 공격속도를 가진 권총을 꺼내 들어 흑마법사의 급소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알은 그대로 투명한 방어막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후후. 그딴 기계로 위대한 악마가 주신 힘을 뚫을 순 없지.”
“쳇.”
흑마법사들은 저게 가장 까다롭다.
악마마다 항상 다른 힘을 흑마법사에게 부여해 딱히 정해진 능력들이 없다는 점.
플랜 A가 막혔다 해도 데카드에겐 아직 플랜 B가 존재했다.
“끝내주마, 천둥벌거숭아.”
흑마법사가 손가락을 까딱하며 내리자 부적들이 공격로를 알 수 없게 방향을 뒤틀며 어지럽게 날아왔다.
“소환!”
기기긱-
강철의 중갑을 두른 듯 매우 단단한 외피를 가진 아이언 딜로가 뛰어올라 데카드에게 날아오는 부적들을 몸으로 막아냈다.
“마수 소환사인가. 그렇다고 해도 너의 마수는 저주에 걸렸을 거다.”
“과연 그럴까?”
저주란 것은 본디 상대방의 피가 있어야 완전해지는 법.
아이언 딜로에게 날아온 부적은 외피를 뚫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그런 종이 쪼가리로는 흠집도 내지 못해.”
“그래 봤자 짐승들이지.”
흑마법사가 그 말을 끝으로 더욱 많은 부적을 손에 쥔 채 데카드에게 뿌렸다.
[주인님! 그 종이입니다!]
짹짹이가 종이의 끝 부분을 보고 저번에 폭발을 일으켰던 물건이란 걸 눈치챘다.
화악-!
데카드가 빠르게 아공간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내며 덮었을 때 부적에서 빛이 튀어나오며 폭격했다.
콰과과과광-!
수차례의 폭격이 지속되고 멀쩡하던 귀도 폭음에 멀어 버릴 만큼 커다란 폭발이 지나가자 그곳에는 흑마법사가 멀쩡하게 서 있었다.
“끝났군.”
시체도 남지 않은 듯 아까 그 소환사가 서 있었던 자리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끝나긴 뭐가 끝나!”
잔해와 셀러멘더의 가죽 사이에서 들린 말소리와 함께 진한 초록색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고작 화살 같은 걸로 내 방어막이 뚫릴 리가…….”
콰직-!
권총으로는 씨알도 안 먹히고 아까 그 폭발에서조차 흑마법사를 지켜주던 방어막이 처참하게 뚫리고 화살이 심장을 꿰뚫었다.
“커헉……!!”
[고작 화살이 아니거든? 이 역겨운 인간아!]
데카드의 손에 들린 백색의 장궁에서 요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요르문간드의 활.
지배자급 마수인 요르가 무구의 형태로 몸을 바꾼 것인 이 활은 당연히 평범한 활과는 다르다.
“몸이…… 쿨럭……!!”
몸을 움직이려던 남자가 갑자기 굳어가는 몸에 흠칫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몸이 점점 마비되고 있지? 한 번 더 맞아볼래?”
활시위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음에도 데카드가 시위를 당기자 초록색 화살이 모습을 드러내며 장전이 완료됐다.
이 화살은 요르의 맹독으로 만들어진 마력 화살로 인간이 그냥 맨몸으로 맞아버린다면 1분 안에 전신이 굳어 결국 사망하게 된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꼴에 흑마법사라고 1분보다 조금은 더 버티고 있다.
푸욱-!
하지만 이 화살로 끝날 것이다.
처음 쏜 화살도 못 버텨서 숨이 껄떡거리던 흑마법사는 두 번째 화살까지 맞아버리자 하반신 전체가 마비돼 움직일 수 없게 됐다.
“너는 대체 뭐냐…….”
“아직 입은 마비가 안 됐나?”
흑마법사들이 저주와 흑마법을 다뤄 이런 독 같은 것의 내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 흑마법사는 유난히 잘 버티고 있다.
“너 혼자서는 우리를 막지 못한다……. 절대로…….”
“그래그래. 나도 그럴 생각 없어.”
[주인님, 집행관들이 옵니다.]
데카드는 요르를 다시 집어넣고 이제 목까지 마비된 흑마법사를 쳐다보았다.
“너희 벌레들이 뭘 꾸미는지는 모르겠는데 너는 못 보고 죽겠다.”
“크크큭…… 지금 많이 웃어두거라. 곧 그분이…….”
결국 말을 다 잇지 못하고 흑마법사는 전신이 마비되고 곧 호흡이 끊어졌다.
“그분?”
“거기 정지해라!”
데카드가 그분이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되뇌이고 있을 때 누군가가 뒤에서 소리쳤다.
[집행관인 것 같군요.]
“귀찮아졌네.”
생각보다 흑마법사가 끈질기게 버티는 탓에 늦어버렸다.
“그대로 양손 들어!”
“집행부 전속 용병입니다.”
데카드가 지갑에서 용병증을 꺼내 내보이자 집행관이 그것을 확인했다.
“쓰러진 사람은 누구지?”
“흑마법사입니다.”
“흐, 흑마법사?”
집행관이 흑마법사라는 단어를 듣고 저렇게 놀라나?
뭐 루비아에서 흑마법사라니 놀라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집행관이 아직 데카드의 대한 경계를 풀지 않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놈에게서 떨어져라!”
일단은 집행관이 하라는 대로 데카드는 흑마법사의 시체에서 양손을 들고 조금씩 멀어졌다.
“정말 흑마법사가 맞나 보군.”
흑마법사는 저주스러운 악마의 힘을 몸에 받아들인 부작용으로 죽게 되면 몸이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빠르게 부패가 진행된다.
“으윽…….”
요르의 독에 중독되어 사망한 이 흑마법사도 벌써 핏기가 빠지고 썩은 내를 퍼트렸다.
“네가 잡은 건가?”
“그렇습니다.”
뒤돌아있던 데카드의 얼굴을 이제야 제대로 본 집행관은 그가 집행부에서 유명한 원숭이 청소부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신분은 확인됐으니 이제 그만 손을 내려라.”
집행관은 그 말과 함께 손에서 마법 한 가지를 준비해 하늘로 쏘아 올렸다.
퍼엉-!
집행관이 다른 집행관을 부를 때 쓰는 마법으로 색깔에 따라 부르는 이유가 달라진다.
지금 집행관이 쏜 마법의 색은 검은색.
흑마법사가 이곳에 있다는 신호였다.
* * *
루비아에 흑마법사가 떴다는 말에 그 신호를 본 집행부는 비상이 걸리며 직급이 높은 고참 집행관들이 모두 공장에 모였다.
한 나라의 수도에서 버젓이 일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은 엉덩이가 무거운 집행부장도 오게 했고 필립은 오자마자 흑마법사를 잡았다는 데카드를 찾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너였냐?”
“너희가 치웠어야 하는 똥을 대신 닦아준 거지.”
흑마법사는 백해무익한 존재로 어딘가에 정착하게 두면 작든 크든 테러를 일으킨다.
“어쨌든 창고 안 바닥에 비밀 입구가 있거든? 거기 수색해봐.”
데카드는 그대로 등을 돌려 어딘가로 걸어갔다.
“어디 가?”
“밥 먹으러.”
점심시간은 지났지만, 도시에서 기생하던 흑마법사를 잡았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된다.
필립과 집행관들에게서 멀어지자 요르가 방금 자신이 데카드와 펼친 활약에 대해 마구 말을 쏟아냈다.
[너희들 봤지! 내가 마수왕님하고 그 인간 딱 잡는 거!]
[흥! 굳이 네가 아니라 나였어도 가능했다!]
[고오른의 말이 맞다! 나도 할 수 있었다!]
[…….]
요르가 활로 변한 것처럼 다른 지배자급 마수들도 저마다의 모양과 특색을 갖춘 무기로 변하는 게 가능했다.
지금도 짹짹이가 형태를 취하고 있는 그림자 코트가 그 예다.
‘그래, 너희들 전부 충분히 강하니까 이제 그만 싸워.’
데카드가 마수들 사이에서 중재하자 그제야 시끄러운 논쟁은 끝이 났다.
[흑마법사가 말한 그분이라는 건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데카드도 걸으면서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흑마법사는 단체를 만들어도 동맹을 맺어 모두가 같은 위치였다.
그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높은 상하 관계가 있었던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다.
‘흑마법사들이 뭉치기 시작한 건가.’
음지에 숨어서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놈들이 이제는 똘똘 뭉쳐가고 있었다.
“귀찮아졌네.”
악마한테 영혼과 몸을 팔았으면서 꼴에 자존심은 높았던 흑마법사들이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면 그분이라는 자는 대체 뭐하는 놈인지 퍽 궁금해졌다.
“뭐가 귀찮아져요?”
바로 뒤에서 툭 들려오는 목소리에 데카드의 이마로 땀 한 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졌다.
“……놀랐잖아.”
입 밖으로 새된 비명이 나오는 건 꾸욱 눌러내고 짐짓 괜찮은 척 표정을 고치고 말하자 엘리스가 베시시 웃으며 옆으로 왔다.
“순찰하고 있었는데 데카드가 있어서 와봤어요.”
[마수왕님에게서 떨어져! 암컷아!]
요르는 데카드의 안에서 날뛰며 엘리스를 노려보았다.
“일은 괜찮아?”
“네! 좋아요. 이렇게 걷는 것도 좋고, 사람들과 함께 평화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 자신을 봐서도 안 되고 의식해서도 안 되는 위치에서 평생 살아온 엘리스에겐 신기하고 언제나 동경해왔던 하루였다.
꾸르륵-
배에서 들리는 천둥소리에 데카드가 자신의 배를 턱 붙잡으며 막았다.
밥 먹을 시간 조금 놓쳤다고 바로 아우성치는 이 배는 상황구분 못 하고 울려댔다.
“점심 아직 안 드셨나요?”
“그렇게 됐네.”
“점심시간은 이미 꽤 지났는데 왜 그때 안 드셨어요?”
비밀입구 발견하고, 공장 불태우고, 흑마법사랑 싸우고 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벌레 잡느라 늦었어.”
“벌레요?”
엘리스는 알 수 없는 데카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상인을 발견했다.
“그럼 저거라도 드실래요? 이번에는 제가 살게요.”
“오케이.”
돈이 많아져도 공짜는 여전히 좋다.
데카드는 굳이 거절하지 않고 엘리스가 이끄는 점포로 갔다.
둘이서 온 점포는 길거리 음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컵밥과 간단히 그 자리에서 해치울 수 있는 어묵이었다
“오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어묵은 추운 겨울날 몸을 녹여줌과 동시에 배를 채워주는 음식이었고 컵밥도 하나 포장한 다음 일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으음….뭐가 맛있나요?”
“다 맛있습니다!”
점포의 주인은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너스레를 떨며 어묵에 꼬치를 꽃았다.
엘리스는 이렇게 남들처럼 메뉴와 메뉴 사이에서 고민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상기된 표정으로 메뉴판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데카드는 빠르게 결정을 마쳤다.
“참치 마요네즈 컵밥 하나 주세요.”
적당히 짜고 느끼한 게 데카드의 어린이 입맛에는 딱이었다.
“저도 그걸로 하나 주세요.”
5분 정도가 지났을까 봉지 안에 따뜻한 컵밥들이 담겨져나왔다.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점포 안에는 자리가 없어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먹어야 했다.
“그런데 엘리스는 몸이 매일매일 달라지네?”
전부터 느꼈던 거긴 했지만, 하룻밤 자고 다음날 엘리스를 보면 전날과 달리 근육량이나 말랐던 팔다리에 살이 붙어가고 있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처음 엘리스를 아공간 주머니 안에서 꺼냈을 때는 방금 빈민촌에서 나온 사람처럼 뼈밖에 없었다.
근육이 점점 올라오면서 조금씩 원래의 신체 능력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거니 다행인 일이다.
“너무 뚱뚱해진 것 같나요……?”
바람에 옷이 흩날리는 소리마저 없애기 위해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입은 엘리스는 그 몸의 곡선들이 전부 드러나고 있었다.
루비아에서 본 웬만한 패션모델들 뺨을 부서져라 칠 수 있을 정도로 엘리스는 조각의 몸매를 가졌다.
“아니? 나는 좋은데.”
“그, 그런가요?”
엘리스는 다시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 붉어진 귀를 가리기 위해 넘긴 머리를 살짝 내렸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