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36화 (36/208)

036 의문의 종이

점원이 벙찐 표정으로 주문을 받고 창고에 있는 재고를 전부 가져와 테이블 위에 고기를 올렸다.

“고기다! 고기!”

우적 우적-

그 뒤로는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고기 굽는 소리와 먹는 소리 말고는 누가 소음 제거 마법이라도 걸어놓은 것처럼 아무 말이 없었다.

“고기가 육즙이 엄청납니다!”

고기를 절반쯤 먹었을 때 고오른이 내지른 감탄이 테이블에서 나온 마지막 말소리였다.

짹짹이는 이미 먹어본 맛이기에 가만히 있었고 레오야 원래 말이 잘 없는 성격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평소 시끄럽던 다른 마수들조차 조용했다.

그렇게 모두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이자 데카드가 구워준 고기들을 눈 깜짝할 새에 해치워 버리고 말았다.

“음? 고기가 사라졌네.”

“꺼억. 배부르군요.”

“인간계의 음식은 이렇게 다 맛있는 건가요?”

“다음에 또 오자!”

“…….”

레오는 어지간히 감명을 받았는지 그릇에 묻은 고기조각도 남김없이 입에 넣고 있었다.

“그래! 다음에 또 오자!”

상자째로 쌓여있던 고기들이 1시간도 안 돼서 전부 자취를 감추자 점원들은 눈을 의심했다.

“얼마예요?”

“10골드 40실버입니다.”

고기로만 나온 값이라 생각하면 심하게 많이 나오긴 했지만, 종류별로 5인분을 시켰는데 무리도 아니다.

“여깄습니다.”

체크카드로 계산을 마치고 마수들은 다시 데카드의 안으로 들어왔다.

“하암…… 졸리네.”

무언가를 배부르게 먹고 난 뒤에 항상 찾아오는 식곤증이 데카드를 덮쳤다.

원래라면 어디 벤치에 누워서 잤을지 모르나 점심시간이 끝난 오후에는 순찰 업무가 있었다.

“귀찮아 죽겠다.”

그냥 같은 구역을 계속 걸어 다녀야 하는 일인 만큼 특별한 사고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이것보다 재미 없는 게 없다.

레이첼에게 받은 파일을 열어보니 오늘 데카드가 순찰 돌아야 할 구역이 나왔다.

“어디 보자……. C구역을 돌면 되네.”

루비아는 일정한 범위를 기준으로 A부터 F까지 구역을 나눠놓았다.

데카드가 배정받은 C구역은 상점가들이 집중적으로 분포된 곳이다.

순찰을 할 때 착용하는 조끼를 입고 보급품으로 주는 진압봉까지 허리에 차자 누가 봐도 별 볼 일 없는 순찰병의 모습이 되었다.

데카드는 C구역까지 천천히 걸어갔다.

“하암…….”

아직 퇴근 시간인 5시까지는 한참 남았는데 도착하자마자 벌써 졸리고 피곤해졌다.

굳이 순찰병이 돌 필요도 없이 테러리스트나 불법 마약거래 같은 큰일들은 루비아의 입구에서 막히고 만다.

“이런 평화로운 도시에 뭔 사건이 일어난다고…….”

콰앙-!

“…….”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작스러운 폭음이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뚫고 데카드에게 들려왔다.

“꺄아아!”

폭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폭발이 일어난 쪽에서 멀어지던 이들 중 누군가가 순찰병으로 보이는 데카드를 보며 외쳤다.

“뭐 해요! 순찰병이! 빨리 들어가서 확인해봐요!”

뽀글뽀글한 머리의 아주머니가 데카드에게 성화를 부리며 연신 ‘어떡해 어떡해’ 를 외쳤다.

“다친 사람은 없나 빨리 확인해 봐야지!”

“……안 그래도 가려 했습니다.”

조끼를 입고 있는 지금은 일단 이 아줌마의 말대로 안쪽을 살펴보며 일하는 시늉이라도 해야했다.

폭발의 원인을 알아야 좀 더 안전하겠지만 지금은 현장에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거슬러 올라가 현장에 도착한 데카드는 눈을 찡그렸다.

“아, 뜨거.”

아까 그 폭발로 건물에 불이 붙었는지 까만 연기와 함께 뜨거운 열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불이라도 끄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럴까?’

딱히 사람이 죽을 정도의 화재는 아니었지만 불은 다른 곳으로 번질 염려가 있으니 지금 빨리 꺼트려주는 게 좋았다.

“소환.”

저번 집행관과의 대결에서 나왔던 웨이브 돌핀이 불이 난 곳을 지나다닐 때마다 물길이 일며 마치 비라도 온 듯 건물이 젖어갔다.

치이이-

불은 점점 크기를 줄여가면서 꺼져가고 돌핀은 다시 데카드의 곁으로 돌아왔다.

“가스가 터졌나?”

불이 꺼지자마자 강하게 들어오는 가스 냄새에 데카드는 잠깐 코를 막았다.

“돌핀, 여기 잔해 좀 치워줘.”

카가가-

돌핀은 데카드가 들어갈 수 있게 떨어질 만한 잔해들을 물로 받치거나 치워버렸다.

“흐음…….”

가스가 터졌다면 혹시 폭발장소에 사람들이 다쳤을 수도 있으니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폭발이 일어난 주변은 바닥의 타일이나 가구들이 날아갔지만 정작 터졌을만한 가스통이나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뭐가 터진 거야?”

가스가 있을만한 주방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가게로 보일 뿐이었다.

[마수왕님! 누가 폭발을 일으킨 걸까요?]

요르의 질문에 데카드도 그것이 머릿속에 의문으로 있긴 했다.

“민간인의 실수라고 하기엔 폭발이 나고 도망쳐 나온 사람도 없어.”

폭발에 휘말렸다는 가능성이 있긴 해도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텅빈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는 답은 말이 안됐다.

[주인님, 저기 구석에서 뭔가가 느껴집니다.]

짹짹이가 새까맣게 타버린 잔해 속에 깔려있던 타다만 종이를 보고 말했다.

“이거?”

[굉장히 불길한 기운입니다!]

[티이라! 기분 나쁘다!]

마나의 민감한 마수들은 데카드가 종이를 손으로 만지자마자 얼굴을 찡그리며 질색했다.

“불길한 마나?”

데카드는 감각을 집중시켜보아도 그냥 평범한 종이처럼 느껴질 뿐 마수들처럼 싫다는 기분이 들진 않았다.

“에이, 몰라! 집행관들이 조사하겠지.”

여기서 더 깊게 파고들면 사건에 말려들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데카드는 종이를 바닥에 내려놓으려다가 망설였다.

“이건 챙기자.”

결국 타다만 종이를 주머니에 넣은 채 데카드는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비켜라! 비켜!”

저 멀리서 사람들의 소란을 뚫고 집행관들이 오고 있는 게 보였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당.”

데카드는 인파 속으로 사라져 다시 순찰을 돌기 시작했다.

* * *

“5시다!”

집행부에 거의 모든 이들이 퇴근하는 5시가 되자 데카드의 순찰도 끝이 났다.

조끼와 진압봉을 반납하고 1층으로 돌아오자 엘리스도 오늘 해야 할 일이 끝났는지 레이첼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엘리스!”

“데카드 님!”

퇴근 시간이 되고서야 만난 둘은 다시 어제 잤던 여관으로 걸어갔다.

“데카드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나야 뭐, 청소하고 순찰했지.”

중간 중간 작은 헤프닝도 있었지만 그건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너는?”

“저는 레이첼 선배를 따라다니면서 집행부에서 조심해야 하거나 주의할 점들을 배웠어요.”

둘의 업무는 극명한 온도 차를 보였고 그건 아마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쉬엄쉬엄해.”

평생 다닐 직장도 아닌데 선배들에게 점수 따고 집행관들 비위 맞춰줄 필요도 없다.

“열심히 하는 건 데카드님 같은데요?”

오전에 데카드가 마수를 이용해서 청소한 모습은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집행관들이야 청소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을 맡은 용병들은 다들 투덜투덜 거리면서 대충 물칠이나하지, 데카드처럼 마법까지 써가며 하는 이는 없었다.

“나 편하려고 그런 거지, 열심히 할 생각은 없었어.”

마법사란 걸 숨길 이유도 없으니 마수들에게 일을 시키고 자신은 편하게 누워있으려고 한 일이었다.

“힘 좀 쓰는 용병이 들어왔다고 집행관들이 눈여겨보는 것 같더라고요.”

집행관들은 전부 마법사였기에 우드 몽키가 마수라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데카드가 마나를 딱히 숨기지도 않아 우드 몽키를 다루는 사람이 데카드라는 것도 집행관들은 쉽게 유추했다.

꽤나 뛰어나 보이는 마법사가 청소나 하고 있으니 집행관들은 퍽 신기했을 것이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어?”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집행관들이 모여서 말하는 게 귀로 들어왔어요.”

이것도 암살자의 습관인진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은 정보였다.

‘꼴통 같아 보이긴 해도 집행관을 상처입혔다고 뭐라 하면 어쩌나 했는데.’

오전의 그 신입 집행관도 자존심은 있는지 선배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말 할 수가 없겠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신이 기강을 잡겠다고 수련장으로 데리고 갔는데 영혼까지 털렸다는 사실을 누구한테 말할까.

선배 집행관들? 아니면 친구?

쪽팔려서 못할 짓이다.

여관에 도착해서 방문 앞까지 온 둘은 밤 인사를 했다.

“그럼 잘 자!”

“데카드 님도요.”

덜컥-

데카드가 들어간 방문이 닫히고 안에 있던 마수들이 튀어나왔다.

“어제보다 이 방은 훨씬 넓군요!”

고오른이 말한 대로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마수들을 생각해 훨씬 넓은 방으로 키를 받아왔다.

“가능하다! 앞구르기!”

굳이 할 필요는 없었지만, 티이라는 데굴데굴 구르며 방이 넓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

짹짹이와 레오는 활동적인 둘과 다르게 어디 의자에 앉아 비치되어있는 책이라도 꺼내 읽었다.

“이건 뭘까.”

데카드도 침대에 앉아서 폭발 현장에서 주운 종이를 꺼냈다.

“으으! 소름 돋아요!”

종이가 데카드의 손에 들리자마자 마수들이 즉각 반응하며 데카드와 가장 가까이 있던 요르가 두 팔을 문질렀다.

“난 왜 아무것도 안 느껴지지?”

데카드도 1000년간 마수계에 있으면서 그 어떤 인간 마법사보다 마나의 감응력이 높아졌다고 자신했는데 종이에서 느껴진다는 불쾌함이 전혀 없었다.

“여기에서 뭐가 느껴지는데?”

“불쾌하고 불길하고 역겨운 느낌이에요!”

부정적인 단어란 단어는 전부 넣은 것 같은 감상에 데카드는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설마 이게 관련이 있을까?”

원본이 무엇이었을진 상상하기가 어려웠지만, 마수들의 반응으로 보아 이게 폭발의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 당장 머리 싸매면서 고민한다고 나오는 답은 없으니 지금은 샤워라도 하면서 오늘의 피로를 풀어야겠다.

이렇게 넓은 방에는 옵션으로 욕실이 있어 편안한 목욕이 가능하리라.

종이는 잠시 책상 위에 올려두고 옷을 하나씩 벗어가자 요르가 아까 고기보다 더 맛있는게 눈앞에 있는 듯 침을 질질 흘렸다.

데카드가 옷을 전부 벗고 욕실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요르는 정신을 차리며 자신도 허물 벗듯 옷을 던지고 데카드가 있는 욕실로 들어갔다.

“같이 씻어요! 마수왕님!”

데카드와 요르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나머지 마수들도 자신의 취미 활동을 했다.

고오른은 윗몸 일으키기를 비롯한 맨몸운동을 하고 티이라는 멈추지 않고 분출되는 에너지를 해소하기 위해 쉼 없이 움직였다.

짹짹이는 원래라면 자신의 깃털로 무언가를 만들겠지만 인간계에 와선 독서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이거 읽어봐라.”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는데 짹짹이가 추천해준 책들을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읽어갔다.

스르-

그렇게 모두가 자신의 할 것에 빠져 집중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 올려둔 종이가 조금씩 어딘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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