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33화 (33/208)

033 가족

상봉

“저기요?”

아직 상황 판단이 덜 된 건지 관리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은 쩍 벌린 채 바닥에 기절한 헨리와 멀쩡히 서 있는 데카드, 엘리스를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똑똑-

유리창 너머에 앉아있는 관리인에게 소리로 정신을 깨워주고 나서야 퍼뜩 깨어나며 도장을 쿡 찍었다.

“A급 드리겠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A급 실력이었다.

어쩌면 S급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건 B급 용병을 상대로 판단할 수 없기에 지금은 A급을 주었다.

“여깄습니다.”

관리인이 유리창에 뚫린 구멍 사이로 용병증 두 개를 내밀었다.

“깔끔하네.”

조그마한 사각형의 사진과 그 옆에 여러 개인 정보들이 적혀 있었고 맨 밑에는 A급 용병임을 증명하는 도장이 찍혀있었다.

“저도 이제 용병이 된 건가요?”

“그렇지.”

엘리스도 데카드처럼 신기한 듯 용병증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잃어버리지 않도록 품 안에 잘 넣었다.

새로운 A급 용병의 탄생과 함께 주변 사람들은 감탄, 또는 질투와 시샘의 시선을 보내왔다.

“다시 집행부로 돌아가자.”

볼일이 끝났으니 이제 발급받은 용병증을 들고 필립의 도움을 받아 정식으로 집행부의 전속 용병이 될 수 있다.

[싱겁게 일이 끝났군요.]

짹짹이는 쓰러진 헨리를 슬쩍 보고는 아까 대결의 감상을 말했다.

‘그렇긴 했지.’

상대가 마법사를 자주 볼 일도 없을 테고 그중에서도 희귀한 편에 속하는 마수 소환사는 더욱 본적이 없을 것이다.

갑자기 눈앞에 멧돼지 한 마리가 소환되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데 두 발이 얼어붙으며 당황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데카드도 압도적인 차이로 헨리를 이겼지만, 옆에서 차분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 엘리스 또한 도저히 좁힐 수 없을 것 같은 실력차를 보여주며 대결에서 승리했다.

“아까는 엄청 대단하더라?”

“아, 아니에요.”

아까 길드를 나오면서 후드를 내린 탓에 조금씩 색깔이 변해가는 얼굴이 전부 드러났다.

“아냐!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나와?”

아까 엘리스가 대결 때 보여준 무브먼트는 옆으로 제비를 돔과 동시에 날아오는 대검을 그대로 밟아 눌러 중간에서 멈추게 했다.

역시 갈까마귀 암살단이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기예였다.

“본능적으로…….”

검이 날아오는 그 짧은 순간은 뇌가 생각이란 걸 하기에 부족한 시간이다.

몸과 근육 깊숙이 배어 버린 본능이 엘리스를 움직였던 것이다.

“나도 가르쳐 줄 수 있어?”

“네?”

“그 갈까마귀 암살단의 기술 말이야.”

이 부분에서는 살짝 데카드도 조심스러워졌는데 인생을 갈아 넣어 얻은 기술들을 함부로 알려달라 하는 건 누구에게나 실례였다.

하지만 만약 갈까마귀 암살단의 고유 기술들을 배울 수 있다면 짹짹이를 이용한 전투력이 훨씬 상승할 것이다.

[저택에서는 그런 기술들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긴 했었습니다.]

아무리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제약적이긴 하지만 순간 이동이 자유롭다 해도 다양한 상황에서 데카드가 펼칠 수 있는 공격수단은 한정적이었다.

암습에 최적화된 짹짹이를 바탕으로 한 전투에서라면 엘리스의 기술들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엘리스는 잠시 입을 오목하게 다물고 고민하더니 결정이 선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르쳐 드릴게요.”

“정말?”

사실 엘리스가 정말 수락할지 모르고 반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정말 가르쳐 주겠다고 하자 데카드가 더 놀랐다.

“네. 어차피 저는 이제 갈까마귀 암살단이 아니니까요.”

은인의 목숨을 한 번 구해주겠다는 맹세가 끝이 난다면 엘리스는 지체없이 암살자를 그만두고 그동안 못해봤던 평범한 일상을 살 계획이었다.

그러니 암살단의 기술 정도야 알려줘도 크게 상관없었다.

“대신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시면 안 돼요.”

“물론이지.”

암살단의 비전이라 할 수 있는 기술들이 뿌려진다면 갈까마귀 암살단은 이 쪽에게 앙심을 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암살 집단을 적으로 둬서 좋을 건 없으니 이 기술들은 당연히 데카드만 알고 있어야 한다.

* * *

두 명이서 떠들다 보니 어느새 집행부로 와 있었다.

시간은 많이 지나 벌써 해는 지고 있었고 집행부 건물의 불이 꺼지기 전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둘은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 슬슬 퇴근 준비를 하는 집행관들을 뚫고 최상층에 있는 필립의 방까지 왔다.

벌컥-

노크 따위는 하지 않고 바로 문을 열어버리자 안에서 필립이 어떤 여자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번에 있을 조사에 저를 넣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네. 고려해보지.”

“감사합니다.”

페일을 떠올리게 하는 청발이지만 훨씬 더 짙은 색을 가진 여자가 뒤에서 문을 열고 서 있는 데카드와 엘리스를 힐끗 보고는 필립의 방을 나갔다.

“쟤는 누구야?”

“이번에 새로 들어온 집행관인데 동기 중에 최우수로 들어온 애야.”

어쩐지 은연중에 느껴지는 마나가 장난 없기는 했다.

“네가 받아오라 한 거 여깄다.”

책상 위로 용병증을 던지자 필립이 찍혀있는 A급 도장을 보고 짧게 자란 턱수염을 매만졌다.

“A급이면 반발도 많지 않겠네.”

처음 들어온 신입을 중요한 조사에 넣는다는 것부터가 사람들이 의문을 품을 만했어도 그걸 찍어누르는 실력을 보여주면 쏙 들어가기 마련이다.

다행히 A급이면 대놓고 말이 나올 정도는 아니라 필립은 안심하며 둘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여기 사인하면 이제 너희는 집행부 전속 용병이야.”

데카드와 엘리스가 사인을 마치고 필립은 조사를 나갈 인원에 둘의 이름을 추가했다.

“조사까지는 3일 남았으니까 그동안은 성실히 일해야 한다. 알겠지?”

“귀찮은데.”

그냥 띵가띵가 루비아에서 놀다가 조사를 가고 싶은데 전속 용병이 된 이상 집행부가 주는 업무를 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9시 출근이다!”

방을 나가려는 뒤통수에 대고 필립이 무어라 말했지만 데카드는 귀를 후비적거릴뿐 대답하지 않았다.

“어휴……. 이거 잘한 짓 맞나?”

오랜만에 만난 절친은 반가웠으나 자신도 모르게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놈 건드는 멍청이는 없어야 할 텐데.”

데카드가 집행관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도 선배들이 기강 같은 걸 잡으면 역으로 숨만 쉴 때까지 패버려 집행부에선 요주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옛 명성이기에 만약 데카드를 건드리는 미친놈이 있다면 필립은 지금 미리 명복을 빌어주기로 했다.

* * *

“어우 추워.”

밤이라 그렇다 해도 루비아는 슬레이보다 훨씬 밤이 추웠다.

짹짹이를 더욱 여민 데카드는 집행부 건물 근처 괜찮아 보이는 여관으로 엘리스와 함께 들어갔다.

밖과 달리 따뜻한 여관 안은 벽난로가 구석에 있어 기분 좋은 온기가 건물 곳곳을 돌고 있었다.

“1인실로 방 두 개 주세요.”

데카드와 엘리스가 같은 방에서 잘 수는 없으니 혼자서 잘 만한 1인실 두 개를 주문했다.

“계산은 나가실 때 해주시면 되고 편안한 밤 되십쇼.”

여관 주인은 데카드가 방 두 개를 달라고 하자 의외라는 듯 쳐다보고는 다시 방 키를 들고 왔다.

“여깄습니다.”

“감사합니다.”

키에 적힌 숫자를 보고 방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간 둘은 서로의 방이 옆에 있었다.

저녁이야 여관에서 따로 올려줄 테니 따로 만나지 않는 이상 오늘 둘이 볼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일 것이다.

“그럼 내일 보자.”

“안녕히 주무세요. 그, 그리고 옷이랑 단검 너무 감사해요.”

아까 대결에서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사람을 죽이는 암살자였는데 지금은 눈도 똑바로 못 마주치는 부끄럼쟁이다.

“그래그래, 엘리스도 잘자.”

엘리스는 고개를 조금씩 끄덕이고 호다닥 방문을 열어 들어갔다.

[부끄럼이 많은 소녀로군요.]

‘그러게나 말이다.’

데카드도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1인실 답게 넓지는 않았지만, 침대를 비롯한 의자나 책상, 있을 건 다 있는 방이었다.

“오늘이다 짹짹아.”

[그걸 하시려는 겁니까?]

“그래, 그걸 지금 해야겠다.”

유물 조사까지는 3일이라는 시간이 남았고 이 지루한 시간을 적절히 써먹기 위해 지금 그걸 해야했다.

“후우…….”

데카드는 마나를 손가락에 집중시켜 마법진을 하나 그려넣었다.

손가락을 깨물어 살짝 피까지 내고 나자 모든 준비가 완벽했다.

“꺼내봐.”

짹짹이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면서 마수들의 선물을 꺼내 마법진 위로 잘 배치해 놓았다.

“성공할 수 있겠지?”

“이론상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 데카드가 하려는 일은 마수계에 있는 자신의 부하들, 지배자급 마수들을 부르는 일이다.

원래 9서클이 아니라면 지배자급 마수를 불러오는 게 불가능하지만, 일종의 편법을 통해 가능해질 수 있다.

지금 데카드 앞에 놓인 지배자급 마수들의 선물.

이것들은 모두 그들의 신체에서 떼어온 것으로 각자의 고유 마나가 아주 듬뿍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걸 이용하면 온전한 상태는 아니더라도 소환이 가능해져.”

물론 9서클이 아닌 3서클 때 진행하는 지배자급 마수들의 소환이기 때문에 본체로의 변신은 꿈도 못 꿀 만큼 마수들이 약해질 것이다.

“그래도 지배자급은 지배자급이지.”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기존에 있던 3서클 마수보다야 훨씬 강할 것이다.

그건 데카드가 서클을 높여나갈수록 더 두드러질 것이고 언젠가 9서클에 오른 순간 마수들은 전부 본래의 힘을 되찾게 된다.

“소환!”

이제 마수들의 선물을 매개체로 삼아 마수계에 있는 그들을 부를 차례다.

우우우웅-!

마법진이 빛으로 물들면서 어두웠던 방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마법진을 부숴버릴 듯 엄청난 양의 마나가 꿈틀거렸고 데카드는 그것이 완전하게 파괴되지 않도록 막는 게 최선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데카드가 땀으로 샤워를 한 것처럼 젖어가고 있을 때 마법진에서 무언가가 불쑥 솟아났다.

“마수왕님! 저희 왔어요!”

“고오른 등장!”

“마수왕님! 반갑다!”

“…….”

요르, 고오른, 티이라, 레오 순으로 차례차례 마법진 바깥으로 튀어나온 마수들은 피와 살이 아닌 마나로 육체를 구성하며 인간의 모습을 갖춰갔다.

“후우! 이 정도면 괜찮은데요?”

요르는 방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에다가 자신의 육감적인 몸과 잿빛의 머리칼을 비춰보더니 만족한 듯 해맑게 웃었다.

“고오른의 근육도 아직 살이 있습니다!”

마나로 이루어진 몸이라 딱히 힘을 준다고 근육이 부풀지는 않았어도 고오른은 만족한 듯싶었다.

“티이라도 똑같다! 마수계에서처럼!”

티이라의 구릿빛 피부와 특유의 날카로운 이빨은 모두 마수계에서와 같이 잘 살아있었다.

“레오도 똑같은 것 같네.”

하늘 높이 떠있는 태양같이 빛나는 백금발과 과묵한 성격은 달라지지 않았다.

“드디어 다 모였어!”

마수왕과 5마리의 지배자급 마수들.

마수계에 이어 인간계에서도 6명 전부 모일 수 있었다.

똑똑-

“데카드님! 안에 무슨 일 있나요?”

바로 옆방에 있던 엘리스가 갑자기 데카드의 방이 시끌시끌해지자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왔다.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알겠어요.”

다시 엘리스가 복도를 걸어 방으로 들어가고 여자의 목소리에 요르의 표정이 싹 굳었다.

“저년은 누군가요?”

질투심이 강한 요르가 당장에라도 뛰쳐나갈 듯 눈에서 독기를 품으며 물었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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