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32화 (32/208)

032 용병 시험

뛰어난 암살자라면 무기나 특별한 도구 없이도 목표를 암살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지만 단검 하나라도 있으면 전투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법이다.

딱히 별다른 무기가 없어도 엘리스가 용병 시험에서 B급 이상을 못 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있어서 안 쓰는 것과 없어서 못 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법.

명색이 암살자 중에서 최고를 논하는 갈까마귀 암살단의 일원이었는데 무기 하나 없이 실력을 테스트받게 하는 건 엘리스에게 실례다.

“내가 또 좋은 가게를 알고 있지.”

대장간은 가게가 팔 무기들을 납품하고 좋은 대장간일수록 당연히 좋은 무기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데카드가 엘리스의 무기를 구해줄 가게는 루비아 최고의 대장간이 거래처로 삼은 곳으로 집행관 때도 많이 애용했던 곳이다.

“따라와!”

“너, 너무 많은 걸 받아버린 것 같은데…….”

데카드가 가지고 있는 돈 중에서는 극히 일부분이라고는 하나 백금화 하나가 들은 체크카드, 고급 가죽옷까지 받았다.

나아가 전용 무기까지 맞춰 주려 하자 엘리스는 데카드가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은인의 목숨을 구해줄 때까지 따라다니겠다고 선언한 엘리스인데 데카드의 목숨까지 위협할 위기라면 칼 한 자루 없이 구하기에는 힘들 것이다.

“나도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고.”

자신을 지켜주는 자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는데도 무기 하나 쥐여주지 않는 건 오히려 자기 손해다.

“여기야!”

옷가게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무기 상점은 루비아에서 제일 유명한 곳이라 건물의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어서 오세요!”

안쪽을 들어가자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발랄한 목소리의 점원이 친절하게 인사를 했고 엘리스는 엉거주춤 고개를 숙이며 맞인사를 했다.

“투척용 단검이랑 암살용 단도는 어디 있을까요?”

가게 안에서 물건의 설명을 돕는 또 다른 점원에게 묻자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저쪽으로 쭉 가셔서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나올 겁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넓어서 일일이 찾으러 가는 것보단 이렇게 점원에게 묻는 게 훨씬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점원의 말을 따라가니 어렵지 않게 단검이 늘어져 있는 진열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엘리스는 얼른 구경하고 만지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해 보였다.

그리고 데카드에게 곁눈질을 하며 망설이는 게 꼭 허락을 구하는 강아지 같아 퍽 귀여웠다.

“마음껏 골라.”

엘리스는 데카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아까부터 눈여겨보았던 단검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이 아까 옷을 고를 때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마공학 권총 탄알은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위층으로 올라가시면 바로 있습니다.”

저번에 현상금 사냥꾼에게서 빼앗은 마공학 권총은 탄알이 얼마 남지 않아 적절하게 보충해두어야 했다.

“엘리스! 다 고르면 여기 있어, 나는 잠깐 위층 좀 다녀올게.”

“네!”

데카드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 위층에 왔고 냉병기를 파는 1층과 다르게 2층은 조금씩 기계적인 요소가 들어갔다.

“여깄네.”

마공학 권총을 취급하는 이곳은 아마 탄알도 같이 판매할 것이다.

‘짹짹아, 너는 뭐 필요한 거 없어?’

[저는 딱히 없습니다.]

짹짹이도 인간 상태에서 쓸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할까 싶었지만 온몸이 무기인지라 짹짹이는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탄알 사러 왔습니다.”

점원에게 목적을 밝히자 점원이 상자들을 뒤지며 탄알들을 찾기 시작했다.

“총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마공학 권총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자 점원이 힐끗 무기를 보고 그에 맞는 탄알을 꺼냈다.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10금화 정도의 양만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 정도의 양이면 지금 곧바로 준비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점원은 그저 탄알이 들어있던 상자 하나를 통째로 데카드에게 내밀었다.

“계산은 지금 도와드리겠습니다.”

“여깄습니다.”

체크카드로 계산을 마치고 탄알들은 아공간 주머니에 전부 털어 넣었다.

“다음에 또 오십쇼.”

용건을 마치고 다시 단검을 파는 곳으로 내려가자 엘리스도 물건들을 전부 고른 듯싶었다.

“다 골랐어?”

“네! 그런데 너무 비싼 것 같아요…….”

원하는 물건은 데카드의 말대로 전부 고르긴 했지만 가격표들을 보니 헉소리가 날 정도로 비싸 엘리스는 점점 데카드에게 미안해졌다.

목숨까지 구해준 은인에게 어째 빛만 자꾸 늘어나는 것만 같아 역시 적당한 단도 하나만 고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계산은 끝나있었다.

“뭐해? 이제 용병 시험 보러 가야지!”

“네?”

“칼날 예리한 거 봐라, 잘 샀네!”

엘리스가 고른 단검들은 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고유의 예기가 잘 느껴졌다.

“산 거 지금 한 번 껴봐!”

엘리스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이 고른 허리띠를 먼저 매고 그곳에 단도와 투척용 단검들을 꽃았다.

양 소매에도 급할 때 뽑을 수 있게 단검을 넣어놓자 다시 암살단으로 돌아간 듯했다.

“잘 어울리네!”

“그, 그런가요?”

이제서야 처음에 들었던 무언가 빠진 느낌이 사라졌다.

엘리스와 데카드는 그대로 가게를 나왔고 용병증을 발급해줄 용병 길드로 향했다.

* * *

용병 길드는 다른 귀족이나 상단에서 내거는 퀘스트를 받고 그걸 용병들이 수행할 수 있게 중개를 해주는 역할을 한다.

용병이 되고 싶다면 정식으로 이곳에서 용병증을 받고 그때부터 경력을 쌓아 등급을 높여나가는 게 일반적이다.

최고 등급인 S급 용병들은 전부 유명한 인물들이고 데카드가 듣기에도 한가닥하는 실력에 소유자들이었다.

끼익-

용병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살짝의 땀 냄새와 술 냄새가 풍겼고 곳곳에 깔린 테이블에 앉아 퀘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무용담을 펼치고 있었다.

중앙에 있는 퀘스트 관리인에게 가면 시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용병증 발급받으러 왔는데요.”

“두 분 다?”

데카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관리인은 서류 두 장을 꺼내 앞으로 건넸다.

“저기 앉아서 서류 작성해 주세요.”

데카드와 엘리스는 관리인이 말해준 테이블로 가 앉았고 간단한 서류작업을 마쳤다.

그냥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 사는 곳만 적으면 끝나,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었다.

“다 적으셨나요?”

“네.”

사라졌던 관리인이 다시 나타나 데카드와 엘리스가 적은 종이들을 전부 가져가고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했다.

“오늘은 헨리가 수고 좀 해줘요.”

“알겠다.”

헨리라고 불린 사람은 턱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등 뒤에 바스타드 소드를 메고 있었다.

“이리 나와라.”

헨리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 둘을 공간이 넓은 중앙으로 데려왔고 검을 뽑았다.

“지금부터 용병 시험을 시작하겠다. 얼마나 너희의 능력을 입증하냐에 따라 등급이 나뉠 것이다.”

“참고로 헨리는 B급 용병이니까 너희들에 실력을 과감하게 보여줘도 돼!”

자리로 돌아간 관리인이 오랜만에 생긴 구경거리에 간식거리를 뜯으며 둘에게 소리쳤다.

“오오, 용병 시험인가?”

“저 사람이 그 거검의 헨리로군.”

눈앞에 있는 용병은 꽤나 유명한 듯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알아보고 있었다.

“누구부터 할 건가.”

“먼저 할래?”

“그럴게요.”

헨리가 처음 등장한 그 순간부터 목표에 대한 관찰을 멈추지 않던 엘리스가 먼저 나왔다.

“호오…… 이런 일을 할 얼굴은 아닌데.”

헨리가 엘리스의 미모에 감탄하면서도 봐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검에 들어간 힘은 빠지지 않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들린 대검이 바닥을 스윽 긁고 지나갈 때마다 무거운 마찰음이 길드 건물에 진동했다.

스륵-

검집에서 검날이 뽑혀나오는 소리도 은밀함을 위해 차단한 암살용 단검 두 개가 어느새 엘리스에게 들려있었다.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만큼 엘리스는 빠른 손놀림으로 발검했고 후드를 푸욱 눌러썼다.

“하아…….”

숨을 한 번 길게 내쉼으로써 몸이 안정되고 정신은 맑아지며 제대로 된 상황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선공은 양보…….”

헨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스가 사라졌다.

헨리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는 거의 모든 이들이 엘리스를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저곳에 사람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무런 위화감 없이 헨리의 앞에 그녀가 도착해있었다.

“이런!”

이렇게 거리를 쉽게 줘버리면 커다란 무기를 가진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알기에 헨리는 바로 백스텝을 밟으면서 대검으로 전방위를 휩쓸었다.

부웅-!

바로 옆에서 살벌한 기세로 날아오는 대검을 유연하게 옆으로 제비를 돌며 피한 엘리스는 그대로 대검을 위에서 아래로 밟아 내렸다.

위에 사람 한 명이 올라가자 그 무게에 대검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고 무장해제 된 헨리는 목젖까지 다가온 단검을 피할 수 없었다.

“…….”

침 한번 잘못 삼키면 목젖이 칼끝에 닿을 것 같아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실력은 충분히 보여줬다는 생각에 엘리스가 검을 집어넣고 뒤에 있는 데카드를 보자 그는 두 개의 엄지를 모두 들며 그녀를 칭찬하고 있었다.

엘리스는 얼굴을 붉히며 그것이 드러나지 않기 위해 후드를 조금 더 눌러 썼다.

“헨리가 저렇게 쉽게 당한다고?”

“저놈 그냥 운빨인가?”

분명 엘리스가 기예에 가까운 움직임과 손놀림을 보여준 것은 맞으나 손도 못 써보고 당한 헨리를 향한 의심에 눈길이 속출했다.

“젠장…….”

보통 남성에게 한 주먹거리도 안 돼 보이는 엘리스에게 속절없이 쓰러져 한순간에 놀림거리가 되게 생긴 헨리는 다시 대검을 잡고 일어났다.

‘다음 놈은 개 패듯이 패줘야겠군.’

다음 시험을 보게 될 남자는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게 무기를 차지도 않았고 겉모습만 요란했다.

‘내 제물이 되어주어야겠다.’

지금 분위기로는 자신의 이름이 똥바닥으로 처박히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아 보였다.

지금 저 남자를 이용해 확실히 기강을 다져주어야 한다.

“이번에도 선공은 양보할 건가?”

헨리는 방금 선공을 양보했다가 크게 당해버려 꺼림 직했지만 그렇다고 선공을 안 주기에는 주변의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

“나야 좋지.”

마법사야 사전 준비가 길 수밖에 없는 직업인 만큼 상대가 선공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면 넙죽 받아야 한다.

“소환!”

“마, 마법사였나!”

딱 봐도 힘캐로 보이는 헨리를 위해 데카드도 마수계에서 힘 좀 쓰는 마수를 소환했다.

꾸울-

사람의 절반만 한 크기지만 온 몸이 두꺼운 근육으로 쌓인 포레스트 보어는 입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엄니를 내세운 돌진을 무기로 하는 마수였다.

“가라!”

길드는 분명 넓은 건물이었고 데카드와 헨리까지의 거리는 멀어 보였으나 보어의 각력은 단 몇 초 만에 그 거리를 주파했다.

“자, 잠깐……!”

콰앙-!

대검과 함께 사람이 날아가며 볼품없이 바닥에 철푸덕하고 쓰러진 헨리는 움찔거릴 뿐 다른 반응이 없었다.

“기, 기절했어!”

“한 번은 버틸 줄 알았더니.”

마수 소환사는 처음 만나본건지 헨리는 당황스러움만 얼굴에 잔뜩 피어나다가 생각할 틈도 없이 보어에게 부딪쳐버렸다.

“시험 결과는 어떤가요?”

관리인이 입에서 먹고 있던 간식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멍 때리는 걸 보면 결과는 좋은 것 같았다.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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