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30화 (30/208)

030 되찾고 싶은 직장

계단이 있는 복도가 울릴 만큼 큰 발소리에 데카드는 풀려 있는 수갑을 다시 차고 엘리스도 머리카락 한 개를 더 뽑은 후 수갑을 찼다.

끼익-

유치장으로 오는 문이 열리고 자칫하면 머리가 천장에 닿을 만큼 키가 큰 남자가 데카드와 엘리스가 있는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취조를 해야 하니 둘 다 나와라.”

철창의 문이 열리면서 둘은 밖으로 나왔다.

그 길로 계단을 올라가자 데카드가 일했던 집행부의 모습이 다시 한 번 보였고 덩치가 산만한 남자는 그 책상 중 하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앉아라.”

앞에 있는 의자에 데카드와 엘리스도 앉자 남자는 본격적인 취조를 시작했다.

“이름.”

“데카드 아르마다.”

데카드가 먼저 이름을 밝혔고 그 이름을 들은 남자는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하며 종이에 정보를 써 나갔다.

“너는?”

“엘리스.”

“성은 없어?”

성이라는 말에 엘리스는 어두워진 낯빛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는 곳이랑 집 주소.”

사는 곳이라 물으면 딱히 할 말이 없어진다.

루비아에 있는 자신의 원래 집은 처분 되었을 게 뻔하고 지금 사는 곳만 말할 수밖에 없다.

“집은 없고 루비아에 살고 있지.”

집행관의 월급이 세다고는 하지만 그것보다 더 높은 게 루비아의 집값이었다.

한 푼 두 푼 모아가며 샀던 집이지만 십년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 내 꺼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쪽은?”

“없어.”

엘리스의 간단한 답변에 남자는 이상해하지 않고 종이에 적었다.

이곳에서 취조를 받는 사람 중에는 사는 곳을 딱히 정해두지 않고 사는 모험가들이나 여행가들, 또 돈이 없어서 거처를 구하지 못하는 부랑자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일단 너희들은 위조범 혐의를 받고 있고 그게 거의 입증된 상태야.”

남자가 앉음으로써 곧 부러질 것 같은 의자에 등까지 기대버리자 의자는 삐걱삐걱 소리를 냈다.

“기계는 그게 가짜인지 진짜인지 아니면 정지된 것을 전부 똑같이 반응하기 때문에 사실 여부를 판별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만약 정지라면 네가 진짜 집행관이라는 건데…….”발견된 위조 집행관 신분증은 데카드의 얼굴이 담긴 하나였기에 남자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겠지, 만약 집행관이라면 얼굴을 한 번이라도 마주쳤을 테니까.”

“집행관이 된 지 얼마나 됐어?”

“한 5년 좀 넘은 것 같군.”

데카드가 실종 당한 시간은 10년이니 이 남자와 마주칠 일도 서로 통성명을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위에 맡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신입!”

“예!”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사내가 부리나케 남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거 부장님한테 드리고 와.”

“알겠습니다!”

사내는 남자가 준 서류들을 받아들고 발 빠르게 부장이 있는 맨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부장?”

집행부장은 말 그대로 이 집행부 건물에 있는 집행관들을 총괄하는 자로서 모두가 인정할만한 힘과 능력 없이는 올라갈 수 없는 자리다.

“하이론 영감님은 잘 계시냐?”

남자는 어떻게 네가 그런 걸 알고 있지라는 눈빛을 보내다가 대답해주었다.

“하이론 부장님은 은퇴하셨지.”

“은퇴했어? 와아, 그 양반 정정하더니.”

데카드가 앞뒤 그런 거 재지 않고 그냥 날뛰며 소탕하면 그 뒤처리를 해 주던 게 바로 하이론 부장이었다.

흑마법사와의 전투를 하다보면 각종 기물파손이며 인명사고가 날 경우가 많았기에 데카드를 향해 날아드는 비난의 화살들을 막아주던, 데카드로선 나름 고마운 사람이었다.

“인사는 하고 싶었는데.”

뛰어난 인품과 능력으로 부하 집행관들한테 사랑받았던 하이론이 없다는 사실에 데카드는 혀를 찼다.

“허억…… 허억…….”

아까 최상층으로 올라갔던 사내가 아까보다 더 급하게 내려오면서 거의 구르듯이 계단을 내려오는 게 보였다.

“부장님께서 두 명 모두 자기 방으로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갔다 오라고.”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는 별 상관없다는 투로 턱짓으로 사무실을 가리켰다.

하이론도 아니고 새로 바뀐 집행부의 부장이 왜 자신들을 호출했을까.

자신의 이름을 보고 누군지 기억한 걸까.

아니면 엘리스가 갈까마귀 암살단이었단 걸 알아챈 걸까.

둘 중에 뭐가 됐던 상급자와의 만남은 데카드에게 호재였다.

집행부의 부장쯤 되는 자라면 데카드가 집행관으로 일하면서 기록됐던 옛날 문서들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앞이 부장님의 방입니다.”

“알아.”

이미 수백 번 왔던 방이고 언젠가 자신이 저기 앉겠지 하는 생각을 늘 품게 해주었던 방이다.

덜컥-

데카드가 문고리를 돌리면서 문을 열자 그 안에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이 그를 반겨주었다.

“데카드!”

“필립?”

집행부에 들어온 동기이자 하나밖에 없는 직장 친구였던 필립이 집행부장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데카드를 끌어안았다.

“살아 있었냐! 난 네가 죽은 줄 알았어!”

“난 네가 짤릴거라 생각했는데.”

데카드도 반가움에 웃으면서 진담아닌 농담을 건넸다.

“저 사람은 누구예요?”

“직장 동료이자 친구지.”

“일단 여기 앉아.”

방 안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앉자 정신이 없어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필립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여름날에 숲 속 같던 녹발은 서리가 조금씩 앉았고 탱글하던 얼굴은 조금씩 주름이 졌다.

“사람 얼굴을 왜 그렇게 뚫어져라 봐?”

“어떻게 하나도 안 늙었냐?”

그래도 경박한 말투나 몸짓은 자신이 아는 필립 그대로다.

“너도 다른 차원 한 번 갔다 와 봐.”

“다른 차원?”

데카드는 옆에 엘리스가 있긴 하지만 딱히 말해서 손해 볼 것도 없어 그간의 일들을 전부 털어놓았다.

1000년의 이야기를 압축하는 건 꽤나 힘든 일이라 20분 정도가 걸려서야 그간 데카드가 어떤 고난을 지나왔는지 말할 수 있었다.

“잠깐잠깐, 나 정리 좀 할게.”

그래도 집행부장으로 쌓아왔던 연륜이 있는지 필립은 눈을 감고 빠르게 상황정리를 했다.

“그럼 지금은 3서클이고?”

“그렇지.”

필립은 놀란 얼굴로 데카드를 바라보고 이제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휴…… 그래, 재능충이 어디 가겠어.”

거의 한 달 만에 3서클까지 찍었다는 데카드의 말은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이면서도 필립이 아는 그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분은?”

“새로 사귄 친구야.”

데카드가 일부러 과시하는 몸짓으로 엘리스를 자신의 옆으로 끌어오자 그녀의 귀가 전에 없이 빨개지며 괸리가 안되는 표정을 숨기기 위해 가을에 벼처럼 고개를 푸욱 숙였다.

“거짓말하지 마! 너가 그 성격에 나 말고 친구를 어떻게 사귀냐?”

아무런 방비도 없는 상태에서 날아온 팩트 폭력에 데카드도 팩트를 날려주었다.

“응~ 모솔아…….”

“나 결혼했는데?”

순간 흐른 이 적막을 누가 깨줄 수 있을까.

데카드는 자신의 팩트가 막힌 것보다 자신의 친구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더 믿기 힘들었다.

“정말……?”

“내 나이가 몇인데 당연하지, 애도 둘이야.”

애까지 있다는 건 정말 남들 부럽지 않은 가정을 꾸렸다는 것이고 가족사진까지 책상 위에 있는 걸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애가 널 닮으면 안 될 텐데 말이야.”

“뭐 인마?”

둘은 10년 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한창 둘이 일하던 그날처럼 서로를 놀렸다.

“근데 네가 집행부장이야?”

“그렇지.”

필립은 책상 위에 붙어 있는 자신의 이름을 어깨를 두드리듯 툭툭 쳤다.

“너가?”

“내가 뭐!”

자신이 기억하는 필립은 남들보다 딱히 특출난 게 없었던 그저 그런 집행관이었다.

물론 집행관이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얻어낼 수 있는 건 맞지만 그런 경쟁률을 뚫어낸 자들 사이에선 별다른 두각이 없었다는 거다.

“윗선한테 돈이라도 맥였냐?”

“실력이야, 실력!”

[느껴지는 마나가 범상치 않기는 합니다.]

데카드가 실종된 10년 동안 어떤 변천사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짹짹이가 놀랄 정도면 실력이 좋아진 건 맞는 것 같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잡스러운 얘기는 끝내고 이제 하고 싶었던 말을 할 때다.

“나 복직시켜줘.”

루비아로 온 목적은 집행관으로의 복직을 이뤄서 일상을 되찾는 것.

이미 사망처리되었으니 힘들수는 있겠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난 이상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말이야.”

필립은 데카드의 눈을 피하며 말하기를 망설여했다.

“뭔데?”

“복직이 조금 어려울 것 같거든.”

필립은 책상 위에 있는 화분을 집어 던지려는 데카드를 간신히 막으면서 상황 설명을 했다.

“기록이 다 날아갔다고?”

“어, 사망자에 관한 기록은 전부 처분해버리는 게 원칙이라 그 어디에도 네가 집행관이었던 흔적을 찾을 수 없어.”

데카드는 이마의 혈관이 돋아나는 것을 느끼며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올라왔지만 차마 화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방법이 있어!”

“방법?”

필립이 생각난 듯 창문을 열고 집행부 건물 앞에 있는 이들을 가리켰다.

“쟤들 보여?”

“전속 용병들?”

굳이 집행관이라는 비싼 인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잡스러운 범죄나 연행을 해결해주는 이들로 다른 용병단 소속이 아닌 집행부의 소속으로서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다.

“나보고 저걸 하라고?”

물론 좋게 말해야 집행부 전속 용병이지 나쁘게 말하면 집행관들의 따까리나 다름없었다.

성격 나쁜 집행관들은 전속 용병을 하수인처럼 부려 먹기도 하고 힘의 차이를 이용해 그들을 업신여겼다.

“만약 너가 저걸 하겠다고 한다면 내가 바로 꽃아 넣어줄 수 있어.”

집행관까지는 힘들더라도 아무나 실력만 있다면 가능한 전속 용병은 집행부장의 힘으로 얼마든지 가능했다.

“하아…….”

돈은 어차피 평생 먹고 놀아도 될 만큼 있는데 굳이 집행관이 아닌 다른 일을 해야 될까 하는 의문이 데카드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숨을 쉬며 창문에서 고개를 돌리던 중 필립의 책상 위에 놓인 문서에서 익숙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유물? 집행부가 이걸 찾고 있어?”

“너 이거 뭔지 알아?”

데카드가 돌아왔을 때보다 훨씬 놀란 표정을 지은 필립이 유물이란 단어에 반응한 그를 바라보았다.

“들어는 봤지.”

본적은 없지만 그걸 실제로 보고 힘을 체험했던 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은 경험이 있었다.

책상에 있는 유물 관련 문서들을 차례대로 보던 데카드는 일정 부분에 집행관들이 몇 명의 전속 용병들과 함께 유물이 있는 의심 장소로 간다고 쓰여 있는 걸 발견했다.

“전속 용병들이 따라간다고 돼 있는 이 부분, 나랑 엘리스가 가도록 바꿔줄 수 있어?”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누가 갈지 뽑지도 않았어. 네가 하게?”

유물은 어차피 한 번쯤 알아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상태, 집행관들의 안전한 호위까지 받으면서 갈 수 있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어때 엘리스. 용병일 같이 할래?”

“야! 너는 저렇게 여리여리한 분에게 용병하자고 물어보냐?”

필립은 아직 엘리스가 갈까마귀 암살단이었던 걸 몰라 겉모습으로 그녀를 판단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엘리스는 옷차림부터 시작해 얼굴도 거친 용병하고는 단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다.

“할래요.”

하지만 엘리스는 망설임 없이 하겠다고 답해왔다.

데카드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필립을 바라봤다.

“전속 용병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

1000년 만에 귀환한 천재 소환사

0